3회



10


 이만이 교통사고를 당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어떤 사람에게는 불운이라는 것이 운명적으로 쫓아다니는지도 모를 일인데, 자신이야말로 그런 경우라고 이만은 생각했다. 이만은 과거에도 두 번이나 교통사고를 겪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한 번은 그가 당한 것이었고, 한 번은 그가 낸 것이었다. 첫번째 교통사고는 고속도로에서의 12중 추돌이었다. 사고의 규모에도 불구하고 큰 인명피해는 없었고, 그 역시 다친 데가 거의 없었다. 한동안 물리치료를 받아야 하기는 했지만 치료를 받은 후에는 사고의 후유증 같은 것은 남지 않았다.

 그가 냈던 사고는 달랐다. 한두 잔이기는 했지만 그는 어쨌든 술을 마신 상태였고, 또 졸음운전중이었다. 깜빡깜빡 졸다가 깨어날 때마다 핸들을 꽉 움켜쥐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다. 그 와중에 브레이크까지 밟았는지 하마터면 뒤차와 충돌할 뻔하기도 했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러고도 또 눈이 감겼다. 충격과 함께 눈을 떴을 때, 그의 차는 보도의 연석을 넘기 직전이었다. 그곳에는 포장마차가 있었고, 보도에 놓인 테이블에 새벽 손님들이 여럿 있었다. 다행히 사람을 덮치지는 않았다. 차가 사람을 피했다기보다는 사람들이 피했을 것이다.  편의점 앞에서 그가 당한 사고와 전혀 다를 바가 없는 상황이었다. 

그가 사고를 냈을 때는 피해자 중 한 사람이 일 년 가까이나 병원에 입원할 정도로 상황이 나빴다. 차가 덮치는 것을 보고 놀라서 넘어졌다는데, 그후로 오만 군데가 다 이상해져 아예 움직이지를 못한다는 거였다. 보험사기가 분명해 보였지만, 사기든 무엇이든, 어쨌든 그 일 년간 그는 마음이 편안해본 적이 없었다.

자신이 누군가를 다치게 할 수도 있었다는 것, 사기거나 아니거나, 그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었다. 그는 어쩌면 누군가를 죽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눈 깜빡하는 사이에, 자신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을. 사고 직후, 그는 악몽에 시달렸다. 주로 교통사고를 내던 당시의 장면이 꿈속에서 재현되었지만, 때로는 이십여 년 전 그가 칼에 찔리던 순간이 나타나기도 했다. 꿈속에서는 칼에 찔리는 사람도 그 자신이었고, 칼로 찌르는 자도 그 자신이었다. 비명을 지르며 깨어날 때마다 그는 덜덜 떨리는 손을 들어올려 그 손에 묻은 핏자국을 보려고 했다. 꿈이 덜 깨어 또다른 꿈으로 이어지는 날에는 덜덜 떨리는 손에서 피가 줄줄 흘렀다. 그 꿈이, 그 느낌이 너무나 생생했다.

이만은 오래전에 받았던 최면 시술을 생각했다. 칼에 찔린 후 그는 한동안 손이 떨리는 후유증을 앓았었다. 첫번째 칼을 막았던 왼손이었다. 오른손잡이였으므로 칼을 막을 때도 본능적으로 오른손이 먼저 나가야 마땅했을 텐데 자상과 후유증 모두 왼손에 남았다. 그 일이 벌어지기 직전 왼쪽 손목에 찬 시계를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본능과 반응이 어떻게 연결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칼날을 막은 건 왼손이었다.

손과 손목의 경련이 나은 것은 그 최면 치료 이후였다. 그전까지는 무슨 수를 써도 낫지 않던 증상이 최면을 받고 나서 거짓말처럼 사라져버린 것이다. 이만은 다시는 그 최면술사를 찾아가지 않았다. 겁이 났기 때문이었다. 최면에 빠져 자신이 원하지 않는 곳까지 가게 될까봐. 원하지 않는 순간으로까지 가게 될까봐.

 커튼 밑의 낡은 운동화, 그를 향해 다가오던 발소리, 그리고 쉿 하는 소리…… 그리고 난데없이 어머니 아버지가 다투던 장면, 아버지가 거실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무선전화기를 집어던지고, 엄마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쥔 채 악을 써가며 울음을 터뜨리는 장면들…… 최면 상태에서 마구잡이로 그런 장면들이 보였었다. 마치 수십 개의 방문이 아무 순서도 없이 여기저기서 열렸다가 닫히고, 닫혔다가 열리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폭력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언성을 높이는 경우는 있었지만 욕설을 한다거나 무언가를 집어던지기까지 하는 걸 본 적은 결코 없었다. 그러나 최면 상태에서의 그 기억은 너무나 선명했다. 그게 고작 두 살 반 때였는데, 최면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평생토록 기억하지 않고도 살 수 있는 일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그 기억이 사실이라고 어떻게 믿을 수 있단 말인가. 두 살 반 때의 기억을 갖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게다가 두 살이나 세 살도 아니고 두 살 반이라니. 그건 얼마나 터무니없게 정밀한 기억인가.

어머니 아버지는 그 일을 기억하지 못했다. 네 아버지가 전화기를 집어던졌어? 어머니는 오히려 놀랍다는 듯 되물었고, 그리고 덧붙였다. 그런데도 네 아버지가 아직도 저렇게 멀쩡하다고? 아버지는 심지어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진짜 그랬었다면 난 살아남지 못했지. 젊었을 때 네 엄마가 얼마나 사나운 사람이었는지 넌 상상도 못할 거다. 그렇게 웃고 끝날 일일 줄 알았는데, 한 달이나 지났을까, 어머니가 밥상을 차리다 말고 말했다.

“너 두세 살 때는 무선전화기 같은 거 없었어.”

무선전화기가 없었다고? 그럼 뭐였을까? 코드가 달린 전화기였을까. 아니면 더 위험한, 다리미 같은 것이었을까? 아니면…… 그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느닷없이 어머니의 눈이 붉어졌기 때문이었다.

“내가 그때 집을 나가려고 했었어. 네 아버지랑 싸우고 나서 그냥 살기가 싫어지더라고. 그래서 자식이고 뭐고, 그냥 집을 나가버리려고 했었는데…… 네가 그걸 기억하나봐.”

아니었다. 그런 기억은 없었다. 어머니가 말하지 않았다면 평생 모르고 살았을 일이었다. 고작 두 살 반 때의 일이 아닌가. 

“근데, 그래도 뭘 집어던지거나 그러지 않았어. 너네 아버지, 그런 사람 아니야.”

그는 자신이 어머니를 괴롭혔다는 걸 알았다. 그의 쓸데없는 기억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도 알 수 없는 기억이 어머니조차 잊었던 상처를 건드려버린 것이다.

“뭘 집어던졌으면, 아마 그건 내가 그랬을 거야. 내가 그땐 성질이 좀 욱했거든. 근데, 뭘 집어던졌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모르겠네.”

어머니는 마침내 울기 시작했다.

“미안해. 그런 것까지 네가 기억할 줄 몰랐네, 정말.”

미안한 건 어머니가 아니라 그였다. 어떻게 안 그럴 수가 있겠는가. 어머니는 유쾌한 성격의 사람이었다. 욱하기는 했지만 뒤끝은 없었다. 장난을 잘 치고 농담도 잘하고 큰 소리로 잘 웃었다. 나쁜 일은 그게 뭐든지 금방금방 잊었다. 적어도 그렇게 행동은 했다. 그러나 이제 어머니는 평생 동안 어린 아들을 팽개치고 집을 나가버리려고 했던 기억을 안고 살 터인데, 수십 년 동안 완전히 잊고 있던 그 기억이 난데없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생생해져 어머니의 남은 생을 찌르고 또 찌르게 될 터였다. 어느 날은 전화기를 집어던지고, 어느 날은 접시를 집어던지고, 어느 날은 두 살 반인 당신의 아들을 집어던지는 기억에까지 빠지게 될지도 몰랐다. 존재하지 않는 기억의 구멍을 무한한 상상으로 채워가다가 그 상상이 기억보다 더 생생한 실제가 되어버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아, 맙소사. 그건 정말이지, 그가 원했던 일이 아니었다.

최면은 그에게 좋은 기억이 아니었다. 자신은 뭣 때문에 그런 것까지 시도했던 것일까. 첫 게임으로 대박을 친 후였고, 돈을 엄청나게 벌었고, 세상이 갑자기 시끌벅적하게 달라졌고, 아는 사람도 많아졌고, 호의를 보이는 사람도 많아졌던 시절이었다. 그즈음에 우연히 자신을 최면술사라고 소개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1994년 7월 24일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싶었다. 정확하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그러나 최면을 통해 그가 알아낸 거라고는 고작 시간뿐이었다. 09:54:02. 자취방을 나서기 전에 시간을 확인했었으므로 그는 그때가 밤 열시 직전이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니 분이나 초 단위를 기억해낸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그는 어쩌면 그 최면술사에게 기억하는 것보다는 잊는 것에 대해 도움을 요청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기억하는 게 아니라 지워달라고. 그게 무엇이든 제발 깔끔히 지워달라고. 

그랬다면 dufma0724에게서 온 이메일도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겨졌을까. 드래곤2974의 아이디에 느닷없이 신경이 쓰이지도 않고, 재개발지구에서 백골 사체가 발견되었다는 뉴스도 그냥 스쳐지나가버릴 수 있었을까. 교통사고도 그저 우연이라고 여길 수 있었을까. 아니다. 그럴 리가 없었다. 그렇게 많은 우연이 겹칠 수는 없었다. 그 모든 일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강한경. 사고를 낸 가해자의 이름이었다. 77세, 그야말로 고령의 운전자였다. 사고를 낸 차량이 체로키였다. 그 때문인지 운전자의 나이가 그토록 많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운전자는 아마도 브레이크 대신에 가속페달을 밟은 모양이었고, 당황하는 순간 핸들을 보도로 틀었을 거라고 했다.

이만은 실망했다. 그는 내리 dufma와 드래곤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77세의 노인이 드래곤일 수는 없을 것이었다. 드래곤2974가 돌고래 급으로 돈을 쏟아붓고 있는 <선더 어택>은 77세 노인이 즐길 수 있는 게임이 아니었다. dufma는 아직 실체가 없었다. 그러나 dufma가 77세 노인이라고 상상하고 싶지는 않았다. 상상이 안 되는 게 아니라 그러고 싶지가 않았다. 이틀 사이에 벌어진 그 모든 일들이 우연이 아니라면 그 모든 일들에는 서로를 연결하는 보다 정밀한 고리가 있을 것이었다. 고령운전자의 실수 같은 게 아니라.



11


이튿날 아침 이만은 병원에서 회사로 곧바로 출근했다. 회사에는 수면실을 겸한 휴게실이 있었고, 세면실과 샤워실도 있었고, 갈아입을 옷도 있었다. 그의 회사는 보통의 IT 회사들처럼 출근시간이 늦었다. 그러나 빌딩에는 다른 오피스들도 있었고, 그중에는 출근시간이 매우 이른 업체도 있는 것 같았다. 로비에 있는 사람들 중에 그를 쳐다보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구겨진 옷은 더러워져 있었고 군데군데 핏자국이 묻어 있었다. 설상가상 얼굴에는 거즈까지 붙어 있었다. 한바탕 싸움을 한 사람이라고밖에는 볼 수가 없는 몰골이었다. 시큐리티는 아예 입을 벌린 채 그를 바라보았다. 용역업체에서 고용된 전직 운동선수였는데, 유도라던가 격투기라던가, 그런 종목의 선수였다고 들었다. 회사가 입주해 있는 건물에는 대부분 게임 관련 업체들이 들어와 있었다. 그중 한 게임 업체가 테러 위협을 받았고, 실제로 방화 시도까지 벌어졌던 적이 있다고 했다. 그의 회사가 입주하기 전의 일이었다. 건물의 경비 체계가 완전히 바뀐 게 그 일 이후부터였다고 들었다. 드래곤2974가 회사까지 못 올라오고 꼭 로비에서 CS팀장을 불러내야 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는 사무실로 올라가 옷을 갈아입고, 얼굴을 씻고, 다시 내려왔다. 드래곤2974에 대해서 자세히 알려면 CS팀장인 윤에게 물어보는 게 가장 빠르겠지만, 윤팀장이 출근하기까지 기다리고 싶지가 않았다. 시큐리티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드래곤2974가 로비에서 소란을 피웠다는 시간에 자신은 근무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만이 CCTV를 확인할 수 있겠냐고 물었을 때, 시큐리티는 이유를 묻지도 않았다.  

이만은 드래곤2974의 얼굴을 몰랐다. 나이도 몰랐고, 실은 성별도 몰랐다. 그저 남자일 거라고 짐작했을 뿐이고, 서른몇 살쯤이 되어 보인다는 말을 윤팀장에게서 들었던 것 같은 기억이 있을 뿐이었다. CCTV 녹화 화면 속에 윤팀장이 보였다. 로비 커피숍에서 누군가와 함께 나오고 있는 모습이었는데, 아마도 드래곤2974일 것이었다. 남자였고, 서른몇 살쯤일 것 같았다. 둘은 아무 문제도 없어 보였다. 소란은커녕 오히려 친근한 사이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로비 현관에서 잠깐 얘기를 나누는 듯하더니 크게 웃는 듯 윤팀장의 어깨가 흔들렸고, 잠시 뒤 그가 드래곤2974의 어깨를 다정하게 두드렸다. 그러나 드래곤2974가 밖으로 나가자마자 고개를 흔드는 모습도 포착할 수 있었다. 불만이 있으면 말보다 고개를 먼저 흔드는 윤팀장이었다. 드래곤2974를 응대하는 동안 짜증이 많이 났던 게 틀림없었다.

윤팀장은 한 시간쯤 후에 출근했다. 이만을 바라보는 얼굴에 놀라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만은 교통사고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고 그냥 넘어져서 좀 다쳤다고만 말했다. 윤팀장은 더 묻지는 않았지만, 술도 마시지 않는 회사 대표가 맨정신에 넘어져 저렇게까지 다칠 일이 뭘까 생각하는 눈치였다. 사실 넘어졌다는 말처럼 불성실한 거짓말도 없을 거였다.

윤팀장 역시 아무것도 몰랐다. 소란을 피웠다는 것도 그때 근무중이던 시큐리티에게서 들은 말이라고 했다. 그는 드래곤2974와 로비 커피숍에서 카페라테 한 잔과 얼음물 두 컵을 마셨다고 말했다. 얼음물 두 컵까지 말한 것은 아마도 당황해서였을 것이다. 드래곤2974는 최근에 다른 게임을 하나 알게 되었는데, 그 게임이 <선더 어택>을 너무 카피했다며 화를 내더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또 <선더 어택>에 자기가 얼마나 돈을 쏟아부었는지를 떠벌렸다고 했다. 드래곤2974가 윤팀장을 괴롭히는 건 그가 무슨 소란을 피우거나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해서가 아니었다. 그건 언제나 드래곤2974의 돈 자랑, 혹은 ‘돈지랄’ 때문이었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풍인지는 모르겠지만 드래곤2974는 강남에 빌딩을 여러 채 가진 빌딩 부자의 아들이고, 본인은 그 건물들을 관리하는 관리 회사를 관리하는데, 그것도 골 빠지게 힘이 드는 일이라 게임으로라도 스트레스를 풀지 않으면 살 수가 없다고, 찾아와서 하는 말이라는 게 주로 그런 말들이라고 했다. 

그런데 드래곤2974는 왜 난데없이 이만을 만나려고 했을까. 이만이 물었을 때 윤팀장의 대답은 실망스러웠다. 한두 번 그런 말을 한 게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저 대표에게 ‘대접’을 받고 싶은 것 같다고. 아무래도 드래곤 2974는 <선더 어택>에 자기보다 더 많은 돈을 쓰는 사람은 없다고 믿는 모양이었는데, 드래곤2974의 그런 착각, 혹은 그런 자부심을 지켜주는 것 또한 윤팀장의 고역스러운 일 중 하나일 터였다.

윤팀장이 사무실에서 나가고 잠시 후 이만은 보험회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사고를 낸 체로키의 대인배상에는 문제가 없는 모양이었다. 이만의 상태를 먼저 묻는 위로의 말이 있기는 했지만, 결국 사무적인 전화였다. 

전화를 끊고 이만은 인터넷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드래곤2974가 아니라 강한경이었다. 수없이 많은 강한경이 나타났다. 나이를 붙여서 다시 검색하자 이번에는 그 어떤 강한경도 나타나지 않았다. SNS를 뒤져볼 수는 있었다.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혹은 텀블러까지라도. 그러나, 77세의 강한경이 그런 걸 했을까. 이만은 일일이 뒤져보았다. 어디에도 77세의 강한경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강한경 대신 어제 사고가 났던 시간을 검색창에 치고 교통사고라는 검색어를 덧붙였다. 날짜와 장소만으로 검색해보기도 했다. ‘교통사고 목격, 후덜덜’이라는 제목의 글과 함께 사고현장의 사진이 떴다.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모자이크 처리가 되어 있기는 했지만 그가 자신을 못 알아볼 리 없었다. 그는 범퍼에서 연기가 치솟고 있는 체로키에 달라붙어 있었다. 기억이 나지 않는 장면이었다. 잠시 후에야 자신이 체로키를 피해 넘어졌다가 어느 순간 벌떡 일어나 운전석으로 달려갔던 것을 기억해낼 수 있었다. 그때 운전자의 얼굴을 보았던가? 그것까진 기억이 나지 않는데, 난데없이 피투성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아마 자신이 흘린 피였거나 아니면 혼자서 상상해낸 얼굴일 것이다. 그런데도 구토가 치밀어올랐다. 잠깐 동안 다시 이명이 울리는 듯도 했다. 사진은 여러 장이었다. 강한경이라고 추정되는 사람이 구급차에 실리는 사진도 있었고, 자신이 마치 싸움이라도 하듯이 구급대원에게 붙잡혀 있는 사진도 있었다. 한 장의 사진을 확대해보았다. 체로키의 뒤쪽이 찍힌 사진인데 로고가 보였다. 가운데 세 글자만 알아볼 수 있었다. 림수목. 강한경 림수목이라는 검색어를 쳤다. 아무 결과도 나오지 않았다.

사내 메신저가 울렸다. 팀 회의를 알리는 십 분 전 알람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팀 작업을 소홀히 하고 싶지는 않았다. 반쯤 엉덩이를 들어올렸다가 그러나 다시 자리에 앉으며 그는 또다른 검색어를 쳤다. 백골 사체. 그리고 날짜와 동네. 사진이 떴다. 뉴스를 보고 그가 그곳을 찾아가기 전에 찍힌 것인 듯했다. 어쩌면 골목에서 만났던 중학생들 중의 하나가 올린 것일지도 몰랐다. 경찰들이 있었고, 구경꾼들이 있었고, 한 여자가 울고 있었다.



12


세상의 모든 정보가 인터넷에 있는 건 아니다. 어떤 것은 더 가까운 곳에, 훨씬 더 가까운 곳에 있을 수 있었다. 이만은 백골 사체에 관한 정보를 온라인이 아니라 오프라인에서 얻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백골 사체의 누나에 대한.

오래 수고를 할 것도 없이 바로 그 동네에서였다. 재래시장을 끼고 있는 동네였다. 시장 안에 옛날 빙수집이 있었다. 아직 정오가 되기도 전이었지만 이미 더러운 물에 젖은 빨래처럼 지쳐 있던 이만은 그 빙수집이 반가웠다. 이만은 그곳에서 손님과 주인이 백골 사체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옛날 빙수집은 그도 기억할 정도로 오래된 가게였다. 어려서 살았을 때까지 거슬러올라가지는 않지만 자취방을 얻어 살 때는 그 가게에 갔던 기억이 있었다. 완전히 옛날식으로, 그러니까 묵중한 기계의 손잡이를 돌려 얼음을 갈아 그 위에 인공 주스를 뿌려서 내는 빙수였다. 얼음은 요새 식으로 부드럽지 않고 거칠었다. 주스 맛은 촌스러웠고, 가끔은 단팥의 신선도도 의심스러웠지만, 그러나 정말이지 온몸을 얼려버릴 것 같은 맛이었다. 연희와 함께 그 빙수를 먹어야겠다고 들떠서 생각했던 기억도 났다. 좋은 것만 보이면, 재미난 것만 보이면, 맛있는 것만 보이면 오직 연희만 떠오르던 시절이었으니까. 그러나 그런 기회가 생기기 전에 그가 칼에 찔렸었다.

“그러니까 그게 떡볶이집 동생이라 이 말이잖아. 그 이쁜 여자.”

“그 누나가 이쁘지. 오죽하면 떡볶이집 미스코리아라잖아. 옛날엔 뭐야, 거…… 떡볶이집 소피마렵소, 이러기도 했어. 소피마렵소 알지? 그 누나가 그렇게 이뻤다니까.”

손님인지 지인인지 빙수 기계 앞에 앉은 사람에게 말을 하면서 주인이 저 혼자 혀를 찼다. 그러고는 이만 쪽을 바라보더니 이런 말 괜찮죠? 하듯이 눈웃음을 지어 보였다. 이만은 괜찮지 않았다. ‘그거’라니…… ‘그 누나’라니…… 아무리 백골로 발견되었다고 하더라도 ‘그거’라고 불려서는 안 되는 게 아닌가. 누구라도 그렇게 불려서는 안 되는 거 아닌가.

이만도 그 떡볶이집에 대해서는 알았다. 꼬마김밥으로도 유명한 집이었는데, 어느 예능 프로그램에 맛집으로 소개된 후로 사람들이 그걸 먹으려고 줄을 서기도 한다고 들었다. 그런데 바로 그 떡볶이집에서 ‘그 누나’가 일을 한다는 거였다. 그러니까, 백골 사체의 누나가. ‘그거’의 누나가. 

옛날 빙수집 주인과 손님의 대화 속에서 ‘그 누나’는 소피 마르소에 비견되는 ‘떡볶이집 미인’으로만 불리지 않았다. 그런 말들 끝에는 ‘얼굴만 반반하지, 뭐……’라는 긴 말줄임표가 붙었다. 모멸이 느껴지는 말줄임표였다. 그러니까 백골 사체의 이쁜 떡볶이집 누나. 그래봤자 백골 사체의 누나. 그래봤자 떡볶이집 여자. 그러거나 말거나 이만은 그들의 이야기를 좀더 잘 듣기 위해 상체를 기울이다못해 기어코 일어서기까지 했다. 자리를 그들 가까이로 옮길 작정이었다.

“뭐야?”

갑자기 주인이 소리를 질렀다. 글쎄, 뭐일까…… 이만이 당황하는 사이, 주인이 다시 소리를 질렀다.

“아저씨, 좀 비켜봐요!”

음소거 상태로 화면만 틀어져 있던 TV에서 갑자기 굉음처럼 소리가 튀어나와 이만도 고개를 돌려 돌아보았다. 뒤쪽 벽에 걸린 TV에서 속보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서울 어딘가에서 건물이 붕괴되었다는 속보였는데, 그 어딘가가 그곳에서 멀지 않았다. 리모컨을 들고 있던 주인이 가게 바깥으로 뛰어나갔고, 손님이 그 뒤를 이었다. 이만도 쫓아 나갔다. 쨍한 여름 햇살뿐이었다. 소방차 사이렌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세 사람은 동시에 가게 안으로 다시 들어왔다. 주인은 자기가 먹을 빙수를 갈기 시작했고, 손님은 다 녹은 빙수를 얼음물처럼 들이켰다. 그들은 다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는데, 더는 백골 사체 이야기도, 그 누나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었다. 건물이 붕괴된 것이다. 이십 년도 더 전에 죽어 묻혔다가 발견된 백골이 문제가 아니라 지금 붕괴된 건물 안에 묻힌 사람들이 문제였다.

세상은 늘 그런 것이다.



13


그 누나, 백골 사체의 누나…… ‘그 누나’가 일한다는 떡볶이집의 꼬마김밥은 이만도 알았다. 어려서 자주 먹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 꼬마김밥을 파는 떡볶이집에 대한 기억은 없었다. 

어려서 그 동네에 살던 시절에는 김밥이든 떡볶이든 전부 좌판에서 팔았었다. 꼬마김밥을 만드는 공장 같은 곳도 있어서 거기에서 도매로 김밥을 사다 먹었던 기억도 있었다. 도매로 사오자니 그야말로 한 함지박이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먹고도 이튿날에도 또 먹어야 했었다. 그래도 이틀 내내 맛있었다. 내리 맛있지는 않았겠으나 기억은 맛있었던 느낌만 남겨놓았다. 

‘그 누나’가 일하는 가게는 좌판이 아니었다. 좌판은 아니었지만 마치 좌판 위에다가 가게의 껍데기를 가져다 얹은 듯한 곳이었고, 실내에는 낡은 테이블 몇 개와 평상과 긴 나무 의자들이 놓여 있었다. 꼬마김밥에서는 옛날 맛이 났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또 그 이튿날 아침까지 먹었던 그 옛날 맛이. 마침내 시금치와 당근에서 쉰 맛이 나면 그것만 쏙쏙 빼놓고 당신 입에도 넣고, 그의 입에도 단무지와 계란만 남은 김밥 하나씩 쏙쏙 넣어주던 엄마의 손맛까지……

“떡볶이는 안 먹고?”

꼬마김밥 두 줄은 성인 남자가 먹기에는 너무 적은 양이었을 것이다. 주인인 듯한 여자가 물었다. 머리는 새까맣게 염색을 했지만 거의 팔십은 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노인이었다. 그는 떡볶이란 애들이나 먹는 거라고 생각했고, 그 국물이 입에 묻는 것도 싫었지만 주인이 시키는 대로 떡볶이 한 접시를 더 시켰다. 그 떡볶이를 가져온 여자가 아마도 ‘그 누나’인 듯했다. 이만은 확신할 수 있었다. ‘그 누나’는 정말로 예뻤던 것이다. 이만은 광고 계약 때문에 연예인들과 몇 번 자리를 같이한 경험이 있었다. ‘그 누나’는 그 연예인들 중의 하나가 떡볶이집 종업원을 연기하는 중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은 얼굴이었다. 아름다운, 백골로 발견된 동생이 있는, 떡볶이집의 여자.

에어컨이 돌아가고 있는 실내라고는 해도 한여름 한낮의 떡볶이집은 썰렁했다. 떡볶이나 김밥이 문제가 아니라 재래시장 자체의 문제일 것이다. 시장은 텅텅 비어 있었다. 떡볶이집에도 손님이라고는 그를 빼고는 중년의 남자 하나뿐이었다. 남자는 한여름의 한낮 떡볶이집에서 어묵을 안주 삼아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주인인 여자가 그 테이블과 마주한 평상에 반쯤 누운 듯한 자세로 앉아서 ‘그 누나’를 향해 말했다.

“그냥 들어가라, 좀.”

그리고 잠시 후, 또다시.

“너가 그러고 있으니 내 마음이 다 시끄럽다. 그러니 들어가라, 좀.”

빈자리에 앉았던 ‘그 누나’가 일어섰다. 앞치마를 벗고 가게 밖으로 나가버렸는데, 주인의 말대로 집으로 가려는 건 아닌 것 같았다. ‘그 누나’가 가게 밖의 평상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만이 앉은 자리에서 그 옆얼굴이 잘 보였다. 

늙은 주인이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 쌍둥엄마가 동생을 엄청 찾았어.”

누구한테 하는 말인가 했더니 술을 마시고 있는 손님에게였다. 

“그러기도 쉽지 않지. 지 배로 낳은 새끼가 사라졌대도 이십 년을 넘게 그렇게는 못해. 암, 못하지. 그런데 저 아가가 진국이야. 내가 저거를 애기 때부터 봤지. 우리 둘 다 이 동네 토박이잖아. 그래서 저 아가를 애기 때부터 보고, 주열이 그놈도 애기 때부터 보고, 그놈 없어진 것도 보고, 저 아가가 쌍둥엄마가 되는 것도 보고, 김주열이 그놈이 그렇게 발견되는 것도 보고, 아이고, 내가 참 오래 살았다. 안 그러냐, 주희야.”

 말끝에 주인이 가게 밖에 있는 ‘그 누나’에게 묻는 것처럼 목소리를 높였다. 일종의 추임새였다. 내가 네 맘을 안다고 하는. 그러니까 내가 김주열의 누나, 김주희 네 맘을 안다는. 주인의 말이 다시 이어졌다. 

“이 동네가 숭해. 예전엔 안 그랬는데, 정말로 숭해져버렸어. 쌍둥엄마 쟤가 들을 소린 아니지만, 알 게 뭐야, 저 동네에 그런 시체가 몇이나 더 묻혔을지. 집집마다 묻혔대도 난 안 놀라. 안 그래? 저렇게 버려진 지 수십 년인데. 밤이면 귀신이 난장을 친대도 당연하지 않겠냐고.”

여전히 김주희는 밖에 있었고, 손님은 술만 마시고 있었다. 주인이 갑자기 들고 있던 손부채를 던졌다. 부채는 소주잔을 들어올리던 손님의 손목을 쳤고, 손님은 술잔을 떨어뜨리지는 않았지만 어지간히 놀란 얼굴이었다.

“사람이 뭐라고 말을 하면 좀 들으란 말이다, 이 우라질 인간아. 술만 처먹지 말고!”

이만은 일어섰다. 계산을 하는 동안에도 그는 가게 밖에 있는 김주희를 계속해서 쳐다보았다. 

“이쁘지, 이뻐. 오죽하면 미스코리아라고 그래. 사람들이 다들 그래.”

 주인이 이만의 카드로 카운터의 탁자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현금 없어? 그거 먹고 카드를 내?”

 이만이 주머니를 뒤적이는 동안 주인은 또 말했다.

“대낮부터 술을 몇 병이나 처먹는 거냐, 저놈은.”

 이만이 주머니에서 찾아낸 현금은 오만원짜리 한 장뿐이었다. 주인이 이만에게 내밀었던 카드를 다시 뺏어갔다. 

“돈이 없기는 저놈이나 이 양반이나.” 

아마도 저놈이나 이놈이나, 라고 말하고 싶었을 터였다. 이만은 개의치 않았다. 카운터 너머로 김주희가 잘 보였다. 무표정한 얼굴, 분노도 짜증도 없는 눈빛, 아무 의혹도 궁금증도 없는 눈빛이었다. 그렇게 읽혔다. 김주희는 그런 눈으로 푹푹 찌는 한낮의 시장 거리를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이만이 가게 밖으로 나왔을 때 김주희는 여전히 더운 바람이 훅훅 불어오는 바깥 평상에 걸터앉아 있었다. 문이 열리자 이만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문소리가 나니 돌아보는 그런 무심한 눈빛이 아니었다. 김주희는 한참 동안이나 이만을 올려다보고 있었는데, 그 눈빛이 너무 집요해서 이만은 그 눈길을 피할 수가 없었다. 

“거기 있었죠?”

김주희가 말했다. 

“거기. 그 집 앞에 말이에요.”

무슨 말인가. 이만은 대답하지 못했다.

“내 동생 죽은 데요.”



14


“거기서 봤어요. 그렇죠? 그 집 앞에 있었죠?”

이만을 봤다는 것이었다. 그 집 앞에서. 그러니까 그가 그 집을 찾아갔던 날. 그 집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던 그를. 사진 속에서 울고 있던 이 여자…… 그가 그 집을 기웃거리고 있던 순간에도 울고 있었을까. 

“그런데, 왜요?”

김주희가 물었다. 

“거기도 누구 찾는 사람이 있어요?”

그리고 이만이 대답을 하기도 전이었다. 

“그런 거 같아 보였어요. 구경꾼처럼 안 보이더라고요. 그냥 그게 알아봐지더라고요. 내가 그랬으니까. 그런 얼굴로 돌아다녔으니까. 그런 얼굴로 안 가본 데가 없으니까. 난 저기, 전라도 강진까지도 가본 적 있어요. 강진이 다 뭐야, 어디 섬에도 갔었으니까. 여기 있는 줄도 모르고, 집에서 십 분도 안 되는 거리에 있는 줄도 모르고, 전라도까지 갔었다니까요. 어디 섬에, 새우잡이 배 같은 데에 붙잡혀 있는 건 아닌가 안 해본 생각이 없고요. 그렇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그런 데 가면 나 같은 사람이 꼭 하나씩은 더 있어. 그냥 나랑 똑같은 얼굴로 서로 쳐다만 보는 거야.”

김주희는 낮게 웃었고, 이만은 듣고만 있었다.

“몇 년이나 되셨어요?”

“아주…… 오래요.”

“여기 어디서요?”

“네, 여기…… 어디서요.”

김주희는 한동안 침묵을 지켰다. 뭔가 울컥하는 걸 참고 있는 듯했다. 주인이 가게 안에서 음악을 틀어 트로트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오빠라는 단어가 무한 반복되는 노래였다. 김주희가 다시 입을 열었다.

“혹시 싶어서 하는 얘긴데……”

김주희가 이만에게서 시선을 돌리며 말을 이었다.

“내 동생 맞아요. 찾는 건 그렇게 오래 걸렸는데 확인은 금방 되더라고요. 과학수산지 뭔지, 무슨 확인을 더 할 거라고는 하는데…… 그래도 내가 알아요. 내 동생 맞는 거. 동생이랑 같이 이런 거 저런 게 같이 나왔더라고요. 그게 아니면 몰랐겠지. 보기 전에는 뼈만 봐도 대번에 알 것 같았는데, 그런 게 어딨어. 안 썩은 것들이 같이 나오니까 그제야 알았지. 뉴스에 안 났나요? 난 이제 그런 거 안 봐서요. 건물이 무너졌다면서요? 아까부터는 온통 다 그 이야기뿐이네. 잘됐죠, 뭐. 이제 내 동생 얘기는 아무도 안 할 테니. 그러니까 끝난 거죠, 뭐. 난 그냥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이런 걸 편하다고 말해도 되나…… 아무튼요. 뭐 어쨌든, 이젠 더 찾지 않아도 되니까. 난 이제 그 집 앞에도 안 가보려고요. 거기서 발견됐다는 거 안 다음부터 매일매일 열두 번도 더 가봤나봐. 첫날 다음날은 아예 거기서 발이 안 떨어지더라고요. 그런데 이젠 다신 안 가려고요. 자꾸 가서 뭐하겠어요. 그런데 그쪽은 누굴……”

마치 읊조림 같던 말을 불쑥 끊고, 그런데 당신은 누굴 찾느냐는 물음이었다. 난데없는 질문이 아니었음에도 난데없이 들려서 이만은 금방 대답하지 못했다. 그렇지 않더라도 자신에게는 대답할 말이 없었으리라는 걸 깨달은 건 잠시 후였다. 그래서 이만은 대답 대신 물었다.

“혹시…… 한 가지만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김주희가 말없이 이만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게 언젭니까? 그게…… 그러니까 동생이 그렇게 된 게……”

이번에는 김주희가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게 왜 궁금하냐는 얼굴이었다. 이만은 기다렸다. 김주희가 대답해줄 때까지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었다. 그럴 작정이었다. 그러나, 곧, 이만은 깨닫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게 언제냐라는 질문보다 더 중요한 질문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김주희의 동생은 왜 죽었을까. 어쩌다 죽었을까. 어떻게 죽었을까. 설마, 칼에 찔려 죽었을까. 설마 그렇지야 않겠지. 이만은 자신이 결코 그 말만은 물을 수 없으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