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회

8분의 1 아킬레우스

1


이치원은 두 개의 삼각형으로 이뤄진 사람이었다. 하나는 그가 올라앉은 휠체어가 만들었다. 정면에서 보면 그의 농구용 휠체어는 양 바퀴가 수직축에서 15도 옆으로 벌어져 있어 바닥을 밑변으로 삼각형의 형태를 띠었다. 다른 하나는 그의 상반신이었다. 아기 때 소아마비로 하반신이 손상된 그는 어린 시절부터 휠체어 농구와 테니스 선수로 활약하면서 상반신 근육을 탄탄하게 키워 완벽한 역삼각형의 몸을 만들었다. 티타늄으로 만들어진 세련된 삼각형 휠체어와 근육질의 역삼각형 상체가 만나 그의 몸이 되었다. 그가 상반신을 탈의하고 수건을 한쪽 어깨에 건 채 기숙사 샤워장으로 휠체어를 밀고 가면, 그의 뒷모습은 마치 영화 〈트로이〉에서 브래드 피트가 연기한 아킬레우스 같았다. 물론 뒷모습과 상반신만 아킬레우스였으니 4분의 1 브래드 피트라고 해두자. 


세상으로 나아가 이치원을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영화 속에서 아킬레우스에게 “당신은 정말 죽지 않나요?”라고 질문하는 심부름꾼 꼬마가 된 심정이었다. 20킬로그램이 넘는 스틸 휠체어에 푹 처박힌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티타늄 합금의 하체와 역삼각형의 상체를 지닌 인간을 바라보고 있자니 ‘걸을 수는 없지만 죽지는 않는’ 기이한 존재가 떠올랐던 것이다. 물론 동경은 오래 가지 않았는데, 이치원은 기숙사 전체의 지배자였고 그 권력 덕분에 아킬레우스보다는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에 가까워 보였다. 


그가 지체장애학생을 위한 특수학교에 들어가서 만난 사람들 중에는 4분의 1 브래드 피트 말고도 놀라운 몸들이 여럿 있었다. 뇌성마비(뇌병변장애)를 지닌 김경한도 그중 하나였다. 김경한은 상체가 강직되어 오른 주먹을 꽉 쥔 채 팔꿈치를 옆구리에 석고로 바른 듯 바짝 붙이고 있었다. 왼팔은 조금 자유로웠지만 손가락과 어깨관절을 편하게 사용했을 뿐 팔꿈치는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그리고 다리를 편하게 사용했으나 균형잡는 것이 어려워 걷지는 못했다. 대신 휠체어에 앉아 다리로 바닥을 밀면서 움직였다. 앞으로 갈 때는 천천히 움직였으나 뒤로 갈 때는 속도가 빨랐다. 전진은 다리와 발목으로 바닥을 끌어당기듯 움직여야 하지만, 후진은 다리로 바닥을 밀면 가능했기 때문이다. 김경한은 코가 높고 얼굴 윤곽이 분명한 미남이었고, 머리는 90년대 후반 유행했던 검은색 직모였다(그리고 그 직모로 눈을 살짝 가렸다. HOT를 떠올리게 하는 스타일). 그는 주차권을 입에 물고 허리와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면서 우아하게 후진하듯 발로 바닥을 박차 돌진하다가, 목적지에 도달하면 발로 바닥을 탁 치며 휠체어를 순식간에 180도 돌려 멈춰 세웠다. 처음 김경한이 그에게 이런 식으로 다가왔을 때 그는 ‘야만적인’ 문명의 침입을 받은 듯했지만, 곧 김경한의 높은 코와 검은색 직모, 발 구르기로 휠체어를 통제하는 모습 앞에서 예상 밖의 ‘선진 문물’을 만난 그리스인처럼 흥분했다. 그 리듬이 어찌나 경쾌하고 다이내믹했던지 그는 김경한과의 첫 만남을 오래 기억했다. 



2


1952년 영국에서 태어난 설레스트 댄데커Celeste Dandeker(thestage.co.uk)는 런던현대무용단 소속의 무용수였다. 1973년 맨체스터 오페라하우스 무대에 오른 그녀는 하늘로 높이 점프했다 공중제비를 하려는 순간 고꾸라지면서 턱부터 바닥에 부딪혔다. 공연이 중단되고 객석에서 공연을 보던 의사가 달려나왔다. 이 사고로 설레스트는 목뼈가 부러지며 경추손상을 입었다. 척수신경이 손상되어 다리는 완전히 마비되었고 상반신도 아주 조금씩만 느리게 움직일 수 있었다. 사고가 났던 날의 공연 제목은 ‘스테이지stage’였는데, 우리말로 ‘무대’라는 뜻의 스테이지는 라틴어로 stare, 즉 ‘서다’ ‘버티다’라는 단어에서 유래한다. 설레스트는 ‘스테이지’에서 주저앉았고, 다시는 일어설 수 없었다. 그녀는 무대를 떠났으며 일상이라는 삶의 무대에서도 사실상 퇴장하게 되었다.


사고 이후 런던현대무용단은 설레스트에게 돌봐줄 사람과 재활치료비를 지원했지만 무대를 다시 허용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십칠 년이 지난 1990년, 설레스트는 오랜 친구였던 안무가이자 무용수, 영화제작자인 다르샨 싱 불레르Darshan Singh Bhuller(broadwayworld.com)의 전화를 받는다. 그는 설레스트에게 BBC에서 제작하는 단편영화를 만들 예정인데 출연할 의향이 있는지 묻는다. 설레스트는 잠시 망설였지만 영화 속에서 춤추는 역할이었기에 출연을 결심했고, 다르샨은 그녀의 경험에 기반하여 〈더 폴The Fall〉이라는 제목의 십 분짜리 비디오아트를 만들었다. 영상은 설레스트의 휠체어가 뒤로 넘어지며 시작한다. 그녀는 누운 채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따라 어린 시절부터 성인이 되기까지 자유롭게 춤추던 시기를 상상한다. 곧 온몸이 마비된 후 보조기에 묶인 자신이 되고, 스스로 몸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남자무용수의 몸에 의지해 그와 함께 마루 위를 구르고, 뛰고, 안긴 채로 360도를 함께 돈다. 한 인터뷰에서 그녀는 촬영장에서 춤을 추었을 때 “마치 놀이터에 온 것 같았다”고 회고한다. 흑백의 마루 위에서 춤추는 두 사람의 모습은 어떤 지점들에서는 아름답지만, 대체로 슬프다(다음 링크에서 샘플 영상을 볼 수 있다. search.alexanderstreet.com).


한편 1990년에 안무가 애덤 벤저민Adam Benjamin(disabilityartsinternational.org)은 영국의 ‘척수손상 연구 재활 협회’가 후원하는 신체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었다. 그는 한때 중국 무술 ‘태극권’을 배우기도 했는데, 이를 활용하여 척수손상을 입은 장애인들이 할 수 있는 움직임을 찾고 이를 가르쳤다. 〈더 폴〉을 촬영하고 얼마간 이름을 알린 설레스트가 어느 날 워크숍에 참여했다. 애덤은 곧 설레스트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음을 발견했고, 그녀에게 다시 무대 위에서 춤을 춰보면 어떠냐고 설득한다. 영화 촬영을 위해 오랜만에 춤추어 설레긴 했지만, 설레스트는 다시 무대 위로 오를 생각은 하지 않고 있었다. 전문무용수로 활동했던 설레스트에게는 제한된 움직임만이 가능한 자신이 다시 무대 위에서 춤춘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1990년에 이미 영국에서는 몇몇 장애인 무용팀들이 활동하고 있었다. 움직임의 힘이나 유연성, 신체의 조형미가 아니라 개인의 독특한 움직임과 내적인 감각을 중요시했던 애덤 벤저민의 눈에는, 설레스트가 비록 예전처럼 움직이지 못해도 충분히 좋은 춤을 출 수 있는 무용수로 보였다. 많은 논의 끝에 두 사람은 의기투합했고 1991년에 무용단을 창단한다. 몇 개의 후보가 있었는데, 설레스트는 최종적으로 ‘캔두코Candoco’라는 이름을 선택한다.



3


1997년 그는 재활학교 생활을 시작하며 늘 휠체어를 탔다. 휠체어를 타고 빠르게 달리는 것이 제법 재밌었다. 스스로 멋지다는 착각에도 빠지기도 했다. 열여섯 살의 그는 사춘기를 맞아 한껏 상체 근육이 발달하던 참이었다. 그가 이주한 휠체어라는 이 ‘새로운 문명’에서 그는 꽤 높은 신분을 획득할 자질을 가진 셈이었다. 4분의 1 브래드 피트 역시 그가 자신과 유사한 신분의 인간이 될 수 있음을 은근히 내비쳤다. 그는 4분의 1 브래드 피트가 무서웠지만, 이 아킬레우스의 탈을 쓴 프리아모스왕이 먼저 말을 걸고, 간혹 오락실에서 무단 외박을 하며 밤을 새우자고 제안하면, 자신이 괜히 인정받는 것 같아 기뻤다. 


열여섯 살이 되던 해 가을에 그는 마침내 휠체어를 교체했다. 거대한 스틸 휠체어를 버리고, 60만 원짜리 ‘활동형’ 휠체어를 타게 된 것이다. 그는 자신의 짧고 가는 다리와 몸을 얼마간 숨기는 법도 점차 터득했다. 기숙사 학습실에 비치된 오래된 백과사전 두 권을 휠체어 방석 아래에 깔기 시작한 것이다. 그의 시점視點이 위로 올라갔다. 높은 세상에서 볼수록 더 많은 것을 조망할 수 있음을 그는 알게 되었다. 문제는 몸이 높이 올라가면서 발이 휠체어 발판에 닿기 어려워진다는 데 있었다. 하지만 그는 곧 이 문제도 해결했다. 신발을 제대로 신지 않고 신발 뒷부분에 발바닥을 살짝 올려두어, 신발이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을 정도만 잡아두기로 한 것이다. 그러면 그의 다리는 신발의 높이만큼 길어지는 셈이었다. 다만 종아리가 길어진 반면 허벅지는 그대로였으므로, 다리의 각 부위가 전혀 표준적인 비례에 맞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가 되었다. 그는 이 역시 오래 고민하지 않고 해결했다. 길고 통이 넓은 바지를 사서 매일 세탁하고 햇볕이 잘 드는 쪽 건조대에 널어두면 다음날 아침 바지는 빳빳한 종이처럼 말랐다. 그리고 특정 모양으로 ‘접으면’ 바지는 그 모양이 유지되었다. 그는 바지로 자신의 다리를 조각했다. 휠체어에 앉은 자세에서 무릎을 세우고 종아리를 매끈하게 폈다. 적어도 그가 조형한 ‘핏’이 그대로 살아 있는 아침 시간대에는 4분의 1 브래드 피트의 절반 정도는 따라갈 수 있다고 믿었다. 아킬레우스의 아름다움에 8분의 1이라도 닿을 수 있다는 건 그로서는 상상하지도 못하던 일이었다. 


당연히도, 이제는 바닥을 기는 일은 불가능했다. 그는 여전히 휠체어 바닥에서 전광석화처럼 움직였지만, 그가 조각한 다리로 사뿐하게 휠체어 위에 앉아 강력한 어깨만으로 8분의 1 아킬레우스처럼 당당하기 위해 그 모든 속도와 힘, 충동을 포기했다. 새로운 문명은 그가 ‘야만적인’ 바닥 생활을 청산한다면 아름다움의 자리를 내어주는 듯 보였다. 물론 백과사전 두 권과 빳빳하게 조각한 바지를 흐트러짐 없이 유지하기 위해서 그는 늘 허리에 큰 부담을 느꼈고, 자신의 근육을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못했다. 그는 아이들의 시선 앞에서 그저 조각상처럼 앉아 있다가, 화장실에 가거나 방에 혼자 있을 때 비로소 자신의 몸이 되었다. 



4


1992년 애덤 벤저민과 설레스트 댄데커는 요크셔무용센터 예술감독의 초청을 받아 처음으로 캔두코의 전문 연습실을 영국 중부에 있는 도시 리즈에 구하게 된다. 작품 제작을 위해 워크숍을 열자 태어나서 한 번도 춤이나 움직임을 연습하고 배워본 적 없던 다양한 장애인들이 참여를 신청했다. 뇌성마비 장애인, 발달(지적)장애인, 시각장애인 등이 스튜디오를 찾았다. 그중 양쪽 다리의 허벅지 아래가 없고 휠체어를 타고 다니던 우체부도 있었다. 이 우체부는 캔두코의 워크숍 전단지를 받고 기꺼이 스튜디오를 찾아왔는데, 학창시절 춤을 춰보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당연히 그럴 기회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건물 3층의 스튜디오에는 이제 다리가 없는 사람,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 근육이 강직되고 팔이 몸에 바짝 붙은 사람, 발달장애가 있어 의사소통이 어렵고 자기 행동을 통제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사람, 목을 다쳐 신체의 대부분이 마비된 사람 들이 북적이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아래층에는 발레 연습실이 있었다. 언젠가 왕립발레단에 들어가기를 꿈꾸는, 기능적으로 완전하고, 비례와 균형이 적절하게 맞으며, 마르고 팔다리가 긴 소녀들이 가득했다. 이 상황은 어딘가 아이러니한 구석이 있었다. 런던현대무용단에서 활동하던 최고의 무용수가 무용수로서 필요한 몸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한 뒤 창단한 캔두코의 연습실 바로 아래에서, 이 무용수가 ‘완전하던’ 시절의 몸에 가까운 무용연습생들이 미래를 꿈꾸고 있었던 것이다. 애덤 벤저민은 당시를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운명의 장난 같지만, 스튜디오 아래층은 지역의 주니어 발레 경연을 위한 연습공간으로 쓰이고 있었다. 같은 건물, 같은 시간대에 무용에 대한 전혀 다른 접근이 나란히 존재했던 것이다. 3층의 우리 학생들 일부는 볼 수 없고, 걸을 수 없고, 다리가 없었다. 이들은 움직임을 통해 각자의 개인적 역량을 표현할 수 있다고 점점 믿고 있었다…… 반면 아래층에는 발레 무용수가 되기를 원하는 아이들이 모여 오디션에 합격하기 위해 뼈의 길이를 재고 있었다.


워크숍이 진행되며 몸을 움직이고 춤추는 일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이 캔두코에 남게 되었다. 양다리가 거의 없지만 튼튼한 두 팔을 가졌던 우체부 데이비드 툴David Toole은 이십 년이 흐른 2012년 런던 패럴림픽 개막식 무대에서, 두 팔로 바닥을 휘젓다가 와이어를 튼튼한 어깨에 걸고 하늘로 날아오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