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회

함께, 네 발로 기어서

1

 

도쿄 시모기타자와下北는 서울의 홍대와 대학로를 섞어놓은 것 같은 장소다. 시부야역에서 서쪽으로 향하는 노선인 게이오이노카시라선線을 타고 이십 분 정도 이동하면 시모기타자와역에 도착한다. 남쪽 출입구로 나오면 흰색 간판의 연극공연장이 보이고, 서울 대학로처럼 공연 시작 전 하우스 오픈을 기다리는 젊은 관객들의 대기줄도 눈에 띈다. 남쪽 출구에서 맥도날드가 있는 작은 사거리를 지나 큰길로 이어지는 이면도로는 완만하게 경사진 내리막이어서, 적당한 위치에너지 덕분에 휠체어에 위험하지 않을 만큼의 속도가 붙는다. 때문에 수동휠체어를 타고 가기에 좋다. 이면도로가 큰길과 만나는 지점에서 왼쪽으로 꺾으면 평지가 이어지는데, 내가 타고 온 노선 이름이 영어(Keio-inokashira line)로 크게 적힌 고가 철도가 보인다.

 

철로 아래를 통과하면 그리 크지 않은 공업사 건물 2층에 카오루코香瑠鼓의 스튜디오가 있다. 그녀는 2017년 당시 만 육십 세가 된 사십 년 경력의 안무가로, 그간 쉬지 않고 무용워크숍을 진행하며 광고나 영화의 안무를 맡는 등 활발하게 활동중인 현역이었다(2020년에도 마찬가지다). 카오루코의 워크숍은 공연 일정 등이 없는 한, 3회 또는 4회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시모기타자와의 스튜디오에서 진행되었다.

 

낮은 건물인 터라 2층 스튜디오까지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7월의 더위가 전혀 가시지 않은 저녁 시간, 건물 앞에 도착해 연락하자 몸이 깡마른 20대 중반의 남성이 내려왔다. 그는 카오루코와 함께 작업하는 무용수이며 자신을 쿠로키 유타木裕太라고 소개했다(이름처럼 그는 정말로 피부가 검고, 나무처럼 마르고 단단해 보였다). 그는 환하게 웃으며 나를 업어주겠다고 말했다. 내가 아무리 무겁지 않다고 한들 사실 좀 걱정이 되었다. 곧 이시카와 카오리石川かおり가 내려왔다. 두 사람은 모두 카오루코의 즉흥무용공연팀 ApicupiA에 소속된 무용수였다. 두 사람은 분업하여, 카오리가 내 휠체어를 들고 쿠로키는 나를 업어서 2층으로 올라갔다.

 

카오루코는 이 공간에서 이십 년 전부터, ‘배리어프리 워크숍을 주 1회 열어왔다. 발달장애인과 뇌성마비 장애인이 참여했고 이들은 카오루코와 함께하는 공연의 무용수가 되었다. 당연히 쿠로키와 카오리를 비롯한 기존 공연팀 구성원들은 자신과 다른 움직임에 대한 풍부한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나는 배리어프리 워크숍을 하는 날에만 참여하지 않고 일본에 머무는 3주간 매번 참석하기로 했다. 그래도 전혀 문제될 것이 없었다. 건물 앞 계단 탓에 장벽이 없지는 않았지만, 이들이 그간 진행해온 배리어프리한 시간이 충분히 누적되었기에 이제는 워크숍배리어프리 워크숍을 굳이 구별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2016년 서울에서 카오루코를 처음 만났고 그녀가 진행하는 움직임 워크숍에 참여한 인연으로 연락처를 교환해두었다. 20176월 말 회사를 그만두고 7월 초 그녀를 만나러 도쿄로 갔다. 물론 나는 댄서가 될 거야!’라며 호기롭게 회사를 그만둔 건 전혀 아니었다. 퇴직 후 첫 여름을 낯선 곳에서 보내고 싶었고, 한편으로는 편안한 곳에 가고도 싶었다. 나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서도, 내가 가장 편안하게 S자 척추에 힘을 빼고 숨쉬고 움직일 수 있는 곳. 배리어프리 워크숍을 수년에서 수십년 진행한 무용수들이 모인 공간이 아니라면 도대체 어디일까.

 

마침 한국인 친구가 시모기타자와에서 멀지 않은 시부야에 살고 있어 신세를 지기로 했다. 햇볕이 잘 드는 복층 집이었지만 샤워실은 2층에 있고 화장실은 1층에 있는 다소 이상한 구조였다. 나는 친구가 출근하고 나면 느지막이 일어나 2층까지 네 발로 기어올라가 샤워하고 1층으로 내려왔다. 옷을 다 짊어지고 네 발로 기어가는 일은 어려우니 1층으로 올 때는 속옷만 입고 기어서 내려왔다(입었던 옷은 아래층으로 던져버렸다). 저녁에는 쿠로키의 등에 업혀 다시 시모기타자와의 건물 2층을 올라갔다. 돌아보면 인생에서 좀 이상하고 예외적인 시기였다. 그전까지도 나는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 2층에서 진행하는 행사나 모임에 초대받으면 꽤 불쾌한 티를 내며, 주최 측이 업어서 도와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면 그것은 장애인차별금지법 제4조에 따른 정당한 편의 제공이 될 수 없으며 휠체어는 내 몸과 같아서 분리되고 싶지 않다고 답하는 사람이었다. 물론 지금도 같은 생각이지만, 2017년의 나는 좀 이상했다.

 

 

2

 

카오루코의 워크숍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무척 다양했다. 쿠로키 유타, 이시카와 카오리를 비롯한 무용수/퍼포머들이 상시로 참여할 뿐 아니라, 참가자들 중에는 컴퓨터 프로그래머, 배우, 밴드 보컬, 현대무용전공자, 대학원생 등도 있었다. 회당 1300, 우리 돈으로 약 일만오천 원 정도를 지불했으며, 배리어프리 워크숍이 별도로 열리는 날도 있었지만 평소에도 발달장애인 두세 명이 간헐적으로 왔다.

 

워크숍 참가자이면서 카오루코의 무용팀 멤버이기도 한 나카노 유코中野優子는 도쿄대에서 인지과학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고 당시에는 박사과정중인 대학원생이었다. 유코는 즉흥무용과 창의성의 관계에 대해 연구하며 실제 카오루코가 안무한 공연에도 참여했다. 그녀는 이 워크숍에 학부생 스무 명을 참여시키고, 프로그램의 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하기도 했다.

 

그녀의 논에 따르면, 춤에서 창조성은 두 가지 사이클이 반복되며 발휘된다. 첫째, 지각과 행동 사이클the cycle of perception and action. 우리는 무언가를 보고, 느끼고, 들은 후 행동한다. 이때는 지각과 행위 사이에,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미지나 아이디어는 없다. 그냥 느끼고 어떤 움직임을 바로 수행한다. 둘째, 행위와 반추(반성)의 사이클the cycle of action and reflection. 이때는 어떤 움직임을 수행한 후에, 그 움직임에 관해 머릿속으로 생각한다. 마음속에 특정 이미지나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두 사이클은 반복해서 연결된다.

무엇인가를 본다/듣는다/만진다 → (바로) 행동한다 → 행동에 대해 생각한다

이렇게 지각-행위-반성-지각-행위-반성의 반복 과정에 주변 환경이 개입한다. 다른 무용수의 존재, 그가 놓여있는 문화, 관객의 반응.

 

나카노 유코는 얼마간 친해졌을 때 자신의 논문을 내게 선물해주었다. 춤추러 갔다가 논문을 선물받기는 처음이었다. 게다가 인지과학 논문이라니. “나는 법학을 전공했어요.” 그래도 좋았다. 유코와 스튜디오 안에서 손을 잡고 빙글빙글 돈 날이었다.

 

 

3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이나 느낌을 목소리로 표현해보세요. 의성어나 의태어도 좋아요

카오루코가 내게 주문했다.

 

나는 아침마다 시부야역의 친구 집에서 2층으로 기어 올라가는 소리로 시작한다. ---. 잠에서 덜 깼을 때, 나는 느리게 네 발을 번갈아가며 계단을 하나씩 오른다. 반면 내려올 때는 (팬티만 입은 채로, 샤워한 후라 춥고, 무엇보다 부끄러워서) 가볍고 빠르게 내려온다. .....

카오리, 쿠로키, 유코 세 사람이 내가 입으로 내는 소리를 듣고 자신들이 느끼는 대로 움직여보기로 한다. 그들이 내 소리의 맥락을 알 리 없다. ‘.....’이 뭐란 말인가. 그러나 놀랍게도, 카오리가 손바닥으로 마룻바닥을 치면서 네 발로, 빠르게 앞으로 나아간다. 그녀는 내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이미 알았던 걸까? 손바닥의 소리를 기억한 걸까? 쿠로키는 어쩐지 몸을 일으켜 고개를 하늘로 쭉 뻗는다. 유코는 자세를 낮추고 종종걸음을 걷는다. 유코가 스튜디오를 짧은 보폭으로 크게 돌고, 쿠로키는 하늘을 향해 큰 숨을 쉬듯 ..’, 흉곽을 움직여 박자를 따른다. 카오리는 내 소리를 자신의 손바닥 마찰음으로 복사한다.

그날은 우리가 2주간 함께 워크숍을 진행한 후였다.

 

내 앞에 서 있는 쿠로키의 마르고 검은 몸과, 몸을 숙이고 달리는 유코의 자세를 보고, 나는 어떤 이미지를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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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색 다리가 휘청거리며, 고개는 아래로 숙이고, 좁은 복도를 지나서 달려가는 모습이 생각난다. 그를 안고 기숙사 건물 앞에 있던 119 구급차를 향해서, 새벽 시간 붉은색 사이렌이 출입구 유리문 앞에 번쩍거리는데-

카오리가 이번에는 바닥에 눕고, 누운 채로 빠르게 옆으로 구른다. “탁탁탁” “삐잉삐잉삐잉쿠로키가 무릎을 굽혔다가 폈다가, 위로 뛰어오른다. 펄쩍펄쩍 넓은 보폭으로 스튜디오 바닥을 강하게 차면서 뛴다. 마르고 길고 검은색의, 거친 나무, 천명륜의 다리가 내 앞에서 달린다. 나는 계속 입으로 소리를 내면서 휠체어에서 내려오기로 한다. “..” “뽁뽁뽁뽁” “푸르르, 푸르르, 푸르르” “-” “------” 유코와 카오리가 다가와서, 바닥에 내려온 나의 양손을 잡고 끌어당긴다. 나는 이들에게 매달려서 휠체어에서 먼 지점까지 나아간다. ‘! - --.’

소리를 멈추자, 우리 넷은 동시에 정지한다.

 

내가 (한국어로) 말한다.

이 시간에 늘 혼자 있나요?”

선 자세로 멈춰 있던 쿠로키, 카오리, 유코가, 바닥에 앉는다.

우리는 서로의 손을 잡고 연결된 채로 잠시 있는다.

 

 

4

 

워크숍 프로그램 중에는 일본 전통의 신도적 분위기를 풍기는 시간도 있었고 이를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카오루코가 나무나 그 속에 사는 정령들의 이미지 따위를 생각해보라고 하는 시간이었다. 근대의 합리적 계몽주의 전통을 이어받은 대한민국 서울의 지식인(?)으로서 내 취향에 맞지 않았다. 어린 시절 살던 고향의 서낭당이 떠올랐다.

 

그 밖에는 훌륭한 순간들이 많았다. 워크숍이 끝날 때 감상을 나누는 시간이 특히 좋았다. 나는 일본어가 서툴러 상세한 감상을 말하지 못하고 간단히 이야기했지만, 참가자들은 모두 길고 자세한 감상평을 공유했다. 워크숍을 오래 함께한 무용수들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움직임 특성에 대해 세부적인 이야기를 했고, 그때의 감정에 깊이 연결될 줄 알았다. “Won 씨는 바닥에서 휠체어의 바퀴를 잡아챌 때 어깨의 움직임이 빠르고 에너지가 넘쳤어요라든가, “소리를 따라 움직일 때 어딘가 병원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했어요라고 말하는 시간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