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

버터플라이

1


한쪽 팔을 앞으로 뻗고 손바닥이 옆을 향하도록 한다. 손끝에 시선을 고정하고 잠시 지켜보다가, 손가락부터 작은 파동을 만들어 손바닥 전체를 움직여보자. 천천히 반복한다. 조금씩 파동을 키우면서 손끝이 바쁘게 일렁일 때까지 나아가다가, 다시 아주 느리고, 미세하게 움직이도록 한다. 손끝에만 주의를 집중하고 이 과정을 지켜보면, 손은 내 몸의 일부가 아닌 바깥에서 독립적으로 살아 있는 생물처럼 보인다. 이제 충동에 따라 손을 계속 움직이면서 이 ‘생물’에 몸을 맡긴다. 손이 앞으로 달려나가면 나도 손을 쫓아 달린다. 때로는 높이 솟아올랐다가, 고꾸라져 내려와 바다에 닿기 직전 기체를 구십 도로 꺾어 물보라를 일으키는 비행기처럼 다시 날아오른다. 종종 손끝은 내 얼굴을 향해 다가오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뒷걸음질치고(어리석은 짓이다. 팔은 내 몸에 달려 있으니까) 고개를 돌려 손을 피한다. 손끝이 얼굴을 스친 후 어깨 위에서 방향을 틀어 겨드랑이를 지나고 옆구리를 거쳐 다시 내게서 멀어진다.       


저 앞에서 파도처럼 움직이는 자신의 손을 쫓아 마헤시가 달려온다. 각기 따로 일렁이던 나의 왼손과 마헤시의 오른손이 만나 팔목을 겹치면, 우리의 손은 이제 양날개가 된다. 마헤시와 나는 손목을 교차한 채로 달리기 시작한다. 나는 한쪽 팔로 휠체어를 밀기 어렵지만, 마헤시가 두 다리로 달리며 손목에 힘을 주어 나를 끌어당긴다. 혼자 손끝을 쫓을 때보다 나는 더 빠르고 자유롭게 오른손으로 휠체어의 핸드림(휠체어 바퀴를 따라 부착되어 있는 손잡이)을 적당히 쥐었다 풀며 균형을 잡는다. 팔을 서로 교차한 채 마헤시가 제자리에 멈춰 빙글빙글 돌면 나는 그의 주변에 큰 원을 그리며 돈다. 그의 팔이 내 팔을 당기는 힘과 내 휠체어가 바깥으로 튕겨나가려는 힘이 균형을 이룬다. 속도가 점차 빨라진다. 정말로 날고 있는 것 같다. 


우리의 손은 이제 아래로 향한다. 속도를 줄이고 바닥을 천천히 탐험한다. 마헤시는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상체를 숙인 채 바닥을 기어가듯 움직인다. 나도 그처럼 더 낮게 날고 싶지만 휠체어에 앉아 자세를 굽히자니 편하지 않다. 결국 휠체어에서 내린다. 발 치수보다 훨씬 큰 신발을 휠체어 발판 위에 사뿐히 올려두었기에 바닥으로 내려가는 순간 신발이 벗겨지려 한다. 어쩌지? 모르겠다. 휠체어를 버리고, 신발을 버리고, 우리는 바닥에서 날갯짓을 시작한다. 


어린 시절 내가 혼자 뛰놀던, 부모님의 안방처럼 매끈한 바닥 위에서 우리는 천천히 비행중인 서로의 손을 쫓는다. 잠깐의 탐험이 끝나고 우리의 손이 상승한다. 마헤시가 굽혔던 무릎을 펼치며 일어난다. 바닥에 있는 나는 그대로 앉아 마헤시의 한쪽 팔을 끌어당긴다. 이번에는 그가 내 주위에 더 큰 원을 그리며 천천히 달린다. 나는 나의 자리에서 그와 함께 빙글빙글 돈다. 내가 그의 팔을 당기는 힘과 그가 바깥으로 튕겨나가려는 힘이 균형을 이룬다. 나는 바닥에 있지만, 날아가는 것 같다.


어릴 때의 내가 이 워크숍에 있었다면 어떤 표정을 지었을까. 그는 아마 표정을 찡그리고서 주변의 (무용을 전공한 아름다운) 형, 누나 들의 모습을 유심히 관찰하다가, 바닥에서 빙글빙글 돌고 있는 저 인간과 자신이 비슷한 존재임을 깨닫고는 조용히 문을 밀고 떠났을 것이다. 그러고는 방구석으로 돌아가 짠맛 나는 과자를 집어먹거나 비디오게임을 실컷 한 뒤, 이불을 뒤집어쓰고 머릿속으로 자기만의 무대를 상상할 테다. 하여간 그는 그런 종류의 소년이었다.



2


그는 미래의 자신을 만나고는 했다. 부모님은 직장에, 누나는 학교에, 할머니는 밭일을 나간 시간이었다. 햇살이 한창인 낮에 미래의 자신을 기다리려면 눈을 꼭 감아야 했다. 20세기의 작은 텔레비전과 둥근 스테인리스 밥상, 문밖으로 보이는 옆집 외양간의 녹색지붕이 눈에 들어와서는 도무지 21세기의 그를 만날 방법이 없을 테니 말이다. 빛을 잘 차단하고, 작은 시골 마을의 생활소음을 무시하고, 정신을 집중하면 미래의 그가 보였다. 이십 대 후반에서 삼십 대 초반쯤 되었을 그가, 십 대 초반을 살던 그에게 ‘걸어서’ 온다. 미래의 그는 꽤 큰 키에 긴 목, 근육으로 다부진 팔다리를 가졌다. 미남인 아버지의 좀더 젊을 적 모습을 닮았고, 이제 막 사춘기에 들어선 한두 살 위의 친구들과도 비슷했다. 미래의 그가 말한다. “아무 걱정 말렴. 이게 네가 될 모습이야. 지금과는 다를 거야.” 미래의 그는 직업이나 자산 현황 따위를 말해주는 일은 없이 그저 자신의 몸을 보여주고는 성큼성큼 문을 밀고 21세기로 사라졌다. 


태어나서 첫 십 년(1980년대)을 그는 거의 몸으로만 존재했다. 늘 아파서다. 뼈가 부러지고 부러져 뼈가 있다는 것을 생생히 알게 되었다. 『우리 몸은 왜』 따위의 책을 읽지 않아도 다리를 이루는 뼈들의 해부학적 구조를 짐작할 수 있었다. 우리의 뇌는 신체에 대한 지도를 지니고 있지만 내부 기관들에 고통이 없다면 그것의 존재를 지각할 수 없다. 췌장의 존재를 평소에 느끼는 사람은 없다. 정강이를 한 대 걷어차여야 정강이뼈의 존재를 생생하게 경험한다. 


그의 병명은 ‘골형성부전증’인데, 무엇보다 그가 몸을 지닌 존재임을 분명히 드러내준 것은 다름아닌 뼈였다. 완전하지 않아서(不全) 가장 선명한 셈이었다. 생각해보면 몸의 통증이란 특별한 경험이다. 인간의 의식 경험은 거의 항상 어떠어떠한 ‘대상을’ 향한다. 다시 말해, 우리가 좋아한다는 감정을 느낄 때는 그 마음이 향하는 대상이 늘 존재한다. ‘커피를’ 좋아하고 어떤 ‘사람을’ 욕망한다. 싫어하는 것도 마찬가지여서 특정 ‘색깔을’ 싫어한다. 반면 육체적 고통에는 고통의 감각이 지향하는 대상이 없다. 뼈가 부러지면 몸의 어느 ‘부위에서’ 고통이 시작되었는지 우리는 대략 알지만, 고통이 어떤 대상을 지향하며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무엇을’ 향해 아픈 것이 아니라 그냥 다리가 아픈 것이다.


고통은 아무것도 지시하지 않기에, 이를 다른 사람과 공유하기 위해 몸 바깥의 대상과 관련지어 설명하기도 무척 어렵다. 정말이지 죽도록 아픈 순간이 있었다면 떠올려보자. 이는 몸밖의 어떤 대상으로도 향하지 않기에 설명할 길조차 없으며, 오로지 몸 안에서만 일어날 뿐이다. 그 경험은 누구와도 나눌 수 없으므로 우리는 철저히 혼자가 된다. 1~10점 사이로 통증 수준을 척도화하거나 “쿡쿡 쑤신다” “누가 망치로 때리는 것 같다” 등으로 고통을 표현하는 방법도 있지만, 이는 의사들이 환자의 통증 묘사와 실제 상태의 관계를 통계적으로 추정하여 진단에 활용하는 것에 불과하다. 내가 어떻게 아픈지 다른 사람은 알 길이 없고, 그가 어떻게 아픈지 나도 알 수가 없다. 아픈 몸을 통해 우리는 세상과 철저히 분리된다. 육체의 고통이 자주 발생하면 우리는 바깥세상으로부터 고립된다. 



3


그는 태어나고 두번째 십 년(그러니까, 1990년대)이 돼서야 점차 고통에서 벗어났다. 이제 철저하게 주관적인 몸의 통증에 머물지 않고 바깥의 사물과 만날 기회를 얻었다. 그의 의식은 바깥세상의 수많은 것들로 향했다. 집밖으로 멀리 보이는 다리를 지나 등교하는 B가 예뻐 B에게로 욕망이 향했다. 마당의 새끼강아지를 어미가 물어뜯으면, 어미에게로 분노가 향했다. 맑은 날 하늘을 반으로 가르는 비행운을 바라볼 때면, 그의 마음은 먼 나라로 달렸다.


의식은 그처럼 많은 곳으로 향했지만 그의 몸은 ‘ㄱ’자 모양의 집과 앞마당에 갇혀 있었다. 겨우 십 대 초반이었기에 혼자 ‘ㄱ’자 안에서 보내기에는 하루가 무척 길었다. 길고 긴 시간 동안 상상력을 작동해 온갖 세상과 사건을 설계했다. 2002년에 치러질 한일월드컵이 그중 하나였다. 그는 한국의 경기장과 관객들의 풍경을 상상하고 월드컵 대진표를 커다란 달력 위에 촘촘히 짰다. 한국과 이탈리아가 결승에서 맞붙도록, 드라마틱한 경기가 중간중간 펼쳐지도록 대진표를 구성했다. 이 단계는 물론 초기 설정에 불과하다. 이제 각 경기를 직접 수행해야 한다. 조별 리그부터 시작한 머릿속 월드컵에서 수십 차례의 경기가 열렸다. 처음에는 실제로 몸을 움직이면서 경기를 묘사했다. 한국의 공격수 황선홍 선수가 되어 방의 한구석 끝에서 반대편 끝까지 두 팔을 두 다리 삼아 전진했다. 달리다보면 상대편 수비수의 태클이 들어오기 마련이라 수비수 역할도 직접 했다. 매끈한 방바닥 위로 몸을 날려 미끄러지듯 황선홍의 다리 사이로 치고 들어온다. 태클이 끝나면 다시 허둥지둥 황선홍이 된다. 공을 양다리(두 팔)에 끼고 펄쩍 뛰어오른다. 


시간이 흐르며 점점 더 많은 것이 상상으로 대체되었다. 두 팔로 방바닥을 질주하면서 상대편의 수비수를 상상했다가, 나중에는 질주하는 공격수의 몸도 상상으로 채웠다. 밤에 잠을 자려 누워서도 경기 전체를 온전히 재현할 수 있게 되었다. 컴퓨터 그래픽의 발전이 영화 속 실재들을 점점 더 대체하는 것과 같았다. 머릿속 거대한 스타디움이지만, 그가 실제로 두 팔로 질주하고, 펄쩍펄쩍 뛰고, 슬라이딩태클을 하고, 몸을 뒤집었을 때는 심장이 거세게 뛰고 땀이 흐르며 호흡이 가팔라졌다. 그 순간 그는 정말로 움직이되, 자신의 몸과 주위의 배경을 머릿속 그래픽 기술로 화려하고 생동감 넘치게 강화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가 자신의 몸마저 ‘그래픽’으로 온전히 대체했을 때 거친 호흡, 심장 소리, 땀 냄새 모두 가만히 누운 자리에서 구현되었다. 

 

고통은 몸을 생생하게 지각하게 하지만, 정작 아무 대상도 지향하지 않는 수동적 경험이다. 반면 상상은 적극적으로 어떤 대상을 향하는 의식 활동이지만, 상상이 정교해지면 몸을 잃어버린다. 눈을 감고 귀에 닿는 소리도 무시한 채, 바닥에 닿는 어깨와 등, 엉덩이와 발뒤꿈치의 감각도 지워버린 채, 그는 축구를 하고 농구를 하고 세상의 온갖 장소를 뛰어다녔다. 그러다 해가 저물 무렵 부모님이 퇴근하고 할머니가 밭일을 끝내고 집에 오면, 몸이 있는 바닥으로 돌아왔다. 


그런 날들이 반복되던 어느 날, 그는 스프링처럼 튀어나갈 듯한 몸 위에 교복을 입은 친구들의 모습을 발견했다. 친구들은 곧 날아갈 준비를 마친 것처럼 보였는데, 그는 번데기 안에 갇혀서 상상으로만 날아다닐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