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회

편협하게 아름다운

1


미닫이문은 마을 중앙을 가로지르는 시냇가를 향해 나 있었다. 겨울을 제외한 모든 계절에 그는 미닫이문을 열고 오른쪽 팔꿈치를 문턱에 기대고 앉아 바깥을 내다보았다. 그렇게 몇 년을 보내자 그의 척추는 S자 모양에 조금씩 가까워졌다. 워낙 오랜 시간 바닥을 기어다니며 농구를 하고 축구를 하고 빙글빙글 돌고 펄쩍펄쩍 뛰기도 했기에, S자의 척추에 달라붙은 팔뚝과 어깨는 다소 굵은 편이었다. 하지만 몸이 커질 무렵에는 오히려 몸을 점점 쓰지 않고 많은 경험을 그저 상상으로 대체했기에, 그의 몸은 그 상태로 멈춰 있었다. 


그는 자신의 몸보다 친구와 가족 들의 몸을 바라보는 시간이 훨씬 많았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의 몸도 그와 같지 않았다. 상상의 세계에서 축구장과 농구코트 위를 말처럼 달리던 그의 몸은 친구와 가족 들을 닮아 있었지만 현실의 세계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그가 자주 바라보던 전신 거울은 바닥에서 50센티미터 가량 떨어진 곳부터 시작했고, 길고 튼튼한 팔로 바닥을 짚은 채 정면을 바라보(고 각도를 잡으)면 그의 몸은 50센티미터가 잘린 채로 거울에 비쳤다. 그 모습이 그다지 아름답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점점 벌어지는 어깨와 긴 팔이 제법 근사해 보이는 것도 같았다.   


물론 불안했다. 이제 막 찾아온 사춘기가 지난 후에 그는 어떤 몸을 갖게 될까? 실제로 어떤 몸으로 세상을 여행하게 될까? 월드컵에 나가는 일이야 불가능하겠지만 그래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아름다운 동작으로 세상을 만지고 지각하고 싶었다. 답답하고 불안해지면 미래의 자신을 소환했다. 여느 때처럼 눈을 감고 기다린다. 21세기의 그가 녹색 외양간을 지나 빨간 ㄱ자 지붕의 집으로 들어온다. “봤니? 이게 미래의 너다.” 그곳에는 잘생긴 청년 한 명이 서 있다. 당시 그는 휠체어를 타지 않았으므로, 휠체어에 탄 그를 상상하지는 못했다. 다만 긴 팔과 다리를 휘휘 저으며 한 발 한 발 걸어들어온 저 인간이 그에게 걱정하지 말고 지루한 하루를 버티라고 조언한다. 이런 젠장, 벌써 그 말이 몇 번째인지 알아? 이제 곧 열네 살이라고. 20세기의 그가 21세기의 그에게 따져 묻는 날이 많아졌다. 팔뚝이 굵어지고 머리통은 커졌지만 나머지는 달라진 게 없다고. 게다가 재산은 좀 있어? 직업은 도대체 뭔데? 


좀더 시간이 지났을 때, 그는 자신이 상상한 미래가 완전히 틀릴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키 165센티미터를 넘은 친구 기현이가 근육질의 허벅지와 장딴지를 선보이며 그에게 놀러온 것이다. 레슬링 시합에서 간단히 상체로 제압할 수 있었던 동네 최약체 호성이도 제법 몸이 커져서, 이제 호성이의 하체 근육에 맞으면 날아갈 것 같았다. 어깨와 팔뚝으로 저놈이 날뛰면 제압할 수나 있을까? 한숨이 나왔다. 어린 남자아이들은 키와 근력의 양으로 잠재적 서열을 정하는 법이다. 그는 근력의 양으로 중간 서열을 차지했는데 이제는 친구들의 하체 근력이 그의 상체 근력을 뛰어넘고도 남았고 키 차이는 더 벌어졌다. 


어느 일요일 오전, 강아지들이 짖어대는 소리에 그는 늘 오른쪽 팔을 기대던 문턱 위 미닫이문을 열었다. 열 살 이전에나 농담을 주고받던, 그보다 한 살 많은 윤정이가 그곳에 있었다. “너희 할머니 계시니?”(실제로는 강원도 영동지방 특유의 사투리로 대화했지만, 편의상 서울말로 옮긴다). 그보다 한 살 많으니 그녀는 열다섯 살이었을 텐데, 윤정이는 어깨 길이에 살짝 못 미친 단발머리, 기현이보다 아주 약간만 작은 키, 긴 목, 금세라도 튀어나갈 듯한 다리로 문 앞에 서 있었다. “할머니? 어……” 그녀가 기다리지 않고 말했다. “우리 할머니가 점심때 너희 할머니 우리집에 오시면 된대” 그러고는 곧바로 스프링처럼 가벼운 발걸음으로 되돌아갔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기현이와 잘 어울린다고. 두 사람이 교복을 입고 각자의 중학교로 매일 아침 등교하는 모습을 떠올리며 마당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을 때, 예고도 없이 21세기의 그가 다시 찾아왔다. 쪼그리고 앉아서 양쪽 발등 위를 두 손으로 짚고, 손으로 신발을 잡아끌어 올리며 한 걸음 앞을 내딛는 식으로, 윤정이가 사라진 길을 거슬러 걸어왔다. 그는 짧은 목, S자가 더 심하게 찌그러진 모습, 눈가에는 얼마간 주름도 있는 얼굴로 헤벌쭉 웃고 있었다. 강아지들이 목줄을 당기며 시끄럽게 짖어대던, 어느새 귀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던, 윤정이가 서 있던 마당으로 미래의 그가 나타났다. 

    


2


“Won, you should be a dancer.” (원, 너는 댄서가 되어야 해)


워크숍이 끝나갈 즈음 게르다가 말했다. 뭐라고요? 저는 지금 공무원인걸요. 게르다가 독일로 돌아간 후 나는 게르다에게 메일을 보내 함께 작업할 여지가 있을지 물었지만 그녀는 답이 없었다(서양사람들이 마음에 없는 칭찬을 종종 한다더니 사실이었단 말인가). 게르다의 말은 나의 움직임에 대한 예술적 평가는 아니었던 셈이지만, 그녀가 보기에도 내가 워크숍 기간 동안 잘 놀기는 했던 모양이다.


나는 본래 연극에 관심이 많았다. 아쉽게도 대학에서 연극동아리를 하지 못했지만, 무려 대학원생이 되어서 친구들과 프로젝트 공연팀을 만들었다. 우리 팀의 주요 목표는, 너무 거창하게 들리겠지만, 미美에 대한 접근성accessibility을 높이자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하나는 공연을 비롯한 각종 문화예술 창작물에 장애를 가진 사람들도 편하고 자유롭게 접근해 즐기도록 하는 것이다. 다른 말로 배리어프리barrier free 공연, 영화, 전시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를테면, 휠체어를 탄 사람이 영화를 보고 싶어도 휠체어가 접근 가능한 좌석은 주로 영화관의 첫번째 줄인 A열에 있다. A열에 앉으면 고개를 치켜들고 스크린이 시야에 다 들어오지도 않은 채 영화를 보아야 해서 액션영화라도 본 후에는 토하고 싶어진다. 청각장애가 있는 사람은 어떨까? 오스카상을 받은 한국영화라도 자막이 나오지 않기에 소리를 듣기 어려운 사람은 영화를 즐길 수 없다. 시각장애인이라면 대사를 들을 수 있지만, 인디언 모자를 쓴 운전기사가 사장의 심장에 칼을 꽂는 영화 〈기생충〉의 한 장면을 소리만으로 파악하기란 어렵다. 배리어프리 예술은 누군가에게 이러한 ‘배리어’가 되는 요소를 없애거나 축소한 공연, 영화, 전시를 말한다. 나와 친구들의 공연팀은 배리어프리를 지향했다. 배우의 대사를 자막으로 실시간 전달하고, 음성해설가가 필요한 사람에게 배우가 지금 어떤 움직임을 취하는지 무대 뒤편에 앉아 전달했다. 


‘미에 대한 접근성’의 두번째 측면은, 다양한 신체와 감각을 지닌 사람들도 ‘아름다움’을 표현할 기회를 ‘공평하게’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S자 모양의 척추를 가진 사람, 침대형 휠체어에 늘 누워서 생활해야 하는 사람, 언어장애가 있어서 발음이 부정확하거나 적절한 타이밍에 발화가 어려운 사람, 팔과 다리가 평균보다 짧은 사람, 나이가 아주 많은 사람 등이 잘 기획된 무대 위에서 자신의 매력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도록 돕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언어장애가 있는 배우가 편안하게 대사를 말하는 방법을 찾고, 침대형 휠체어에 누운 배우가 무대 위에서 자유로워 보일 연출 방법들을 고민했다.   


물론 이 두번째 측면은 많은 논쟁을 낳았다. 우선 무엇이 ‘아름다움’이냐는 것이다. 침대형 휠체어에 누워 있는 배우가 꼭 인위적인 조명과 연출, 다른 배우의 조력을 통해 화려해 보이는 것이 아름다움인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진실된 자신만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야말로, 관객들의 새로운 미적 감각을 일깨우는 공연이 아닌가? 아름다움이라는 것이 꼭 방탄소년단의 뮤직비디오나, 아이돌 출신 배우가 주연을 맡은 대형 뮤지컬이 주는 그런 감각은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누구보다도 나는, 침대형 휠체어 위의 배우가 자기 모습을 무대 위에 올리고 자신의 삶을 진실되게 터놓을 때 불러일으키는 종류의 감동이 (내가 기대하는) ‘아름다움’과 거리가 멀다고 주장했다. 나는 아름다움에 대해 아주 편협한 기준을 가진 인간이었다.


   

3

    

그는 계속해서 ‘몸’의 존재를 더 잊으려 애썼다. 미닫이문이 열린 바깥 세계를 바라볼 때도 오후 5시는 피했다. 중학생이 된 친구들이 학교를 마치고 도착하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등 아래로 가방을 메거나 어깨에 걸린 가방끈을 손으로 잡고, 흰색과 푸른색 셔츠와 블라우스를 입은 아이들이 성큼성큼 마을 다리를 건너갔다. 그는 이제 월드컵 경기 따위에는 신물이 나서 새로운 상상의 세계를 구축하려 애썼다. 어떤 상상을 하든, 이를테면 오스트리아 빈이나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중국의 베이징을 여행하더라도, 상상 속의 모든 영상은 몸에 달린 눈이 조망한 광경일 수밖에 없었다. 시선을 아래로 내리면 울퉁불퉁한 인도를 걷는 자신의 발이 보일 뿐이었다. 일곱 살 전후로 약 이 년간 그는 땅을 딛고 걸어다녔기에 걸을 때 보이는 발의 움직임을 자세히 알고 있었다. 체중이 양쪽 다리로 번갈아서 분산되는 느낌이 무엇인지도 정확히 기억했다. 그리하여 이제는 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구도로, 당시보다 더 커진 발로 상상 속 여행지를 누비는 자신의 몸을 상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현실로 돌아오면 그는 ㄱ자 집에 있었고(구글어스와 VR이 있었다면 그 시간은 어떻게 달랐을까?), 그의 다리는 중력을 분산하며 번갈아 바닥을 내딛는 저 아래가 아닌 쪼글쪼글한 주름으로 뒤덮인 발바닥과 가느다란 발목을 한 채 무심히 방바닥에 놓여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부모는 그에게 덩치 큰 휠체어를 선물했다. 무게는 20킬로그램이 넘었다. 그가 올라앉자 몸이 쑥 들어갔다. 물론 그것을 타고 기현이와 윤정이의 세계로 나가지는 못했지만, 그날 이후 잃어버렸던 몸을 조금씩 되찾으면서, 자신이 생각하는 편협한 아름다움을 꿈꾸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