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회

“자기계발서에 신경 끄기의 기술” : 마크 맨슨

어느 잡지로부터 성공한 삶에 대한 글을 써달라는 청탁을 받았다. 사실 나는 그 청탁을 받지 말았어야 했다. 하지만 프리랜서 글쟁이의 삶이라는 게 그렇다. 한 번 청탁을 거절하면 그 매체로부터 다시 원고 청탁을 받는 데는 꽤 시간이 걸리는 편이다. 그래서 오늘도 많은 프리랜서 글쟁이들은, 칼럼니스트들은, 저널리스트들은, 에세이스트들은, 작가들은 도무지 자신이 완전히 이해할 수 없거나 자신의 영역을 지나치게 벗어나는 원고 청탁 앞에서도 ! 그럼요! 마감일이 언제입니까?”라고 답을 한 뒤 마감 하루 전날 밤에 머리를 싸매고 후회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놈의 돈이 뭐라고 내가 이걸 쓰겠다고 한 건가 스스로에게 저주를 보내면서 말이다.

 

성공한 삶에 대한 글이라. 나는 마감 전날 밤 키보드 선으로 내 목을 졸라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그 잡지는 럭셔리 제품을 흔쾌히 구입할 수 있는 데다 언젠가는 요트를 사야겠다는 생각을 전혀 허황된 상상력 없이 진심으로 품을 수 있는 40대 이상을 위한 잡지였다. 이 글을 읽는 대부분의 여러분은 누가 에르메스 접시를 선물하면 그걸 진열장에 모셔놓고 매일매일 빛이 나도록 닦는 종류의 사람일 것이다. 그 잡지를 보는 사람들은 아마도 새벽 2시에 배민으로 주문한 죠스 떡볶이를 아무렇지도 않게 에르메스 접시에 담아서 먹는 종류의 사람들일 것이다. 물론 이 문단이 지나치게 도식적인 계급주의로 가득하다는 걸 인정한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솔직히 우리는 보이지 않는 계급으로 매일매일 서로를 나누고 재단하며 살아간다. 하여간 나는 그 글을 써야만 했다. 써내야만 했다. 그리고 써냈다. 그중 한 문단을 옮기자면 아래와 같다.

 

잡지사에 다니던 친구는 가장 진행하기 힘든 코너가 성공한 사람들에 대한 기사라고 했다. 이를테면 청담동 근사한 회원제 바에 스탠포드나 하버드 출신 남자들이 수트를 빼입고 등장하는 그런 기사들 말이다. 성공한 남자들을 모아서 사진을 찍는다. 그들은 자신들의 성공을 사회에 환원하기 위해 애쓴다고 인터뷰에서 말한다. 친구는 불평했다. “그들을 인터뷰하고 화보를 찍으면서도 그게 성공한 삶인지 도저히 모르겠어. 성공한 사람들이 성공에 대해서 말하는 것을 옮겨 싣는 것만큼 무의미한 일은 없는 것 같아.”

 

다음 날 에디터로부터 메일이 왔다. 온화한 말투로 빙빙 에둘러 설명하고는 있었지만 나는 그게 무슨 소리인지 금방 눈치챘다. 잡지에 내 글을 실을 수 없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그 잡지의 편집장이 내 글을 보자마자 어떤 표정을 지었을지 눈에 선했다. 성공한 사람들의 성공담으로 가득한 잡지에 도대체 성공의 의미가 뭔지 모르겠다고 칭얼거리는 중년 남자의 패배주의적인 글 앞에서 기겁을 했을 것이 틀림없었다. 원고 청탁을 애초에 거절했어야 마땅했다. 글을 쓰면서도 그 잡지의 성격에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글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나의 실수였다. 내 죄였다. 나는 당신이 절대 그 편집장의 선택을 비난하지 않기를 바란다. 비난받아야 하는 건 나다. 원고료에 눈이 멀어 쓸 수 없는 글을 청탁받고 결국 실을 수 없는 글을 써낸 나는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의 기본을 지키지 못한 것이다. 사죄한다.

 

그 뒤로 나는 한가지 원칙을 세웠다. 성공한 삶에 대한 원고 청탁은 절대로 받지 않는다는 원칙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자기계발에 관한 글은 절대로 쓰지 않겠다는 것이다. 나는 20년을 넘게 기자로, 에디터로, 글쟁이로 일해왔지만 도무지 무엇이 성공인지 모르겠다. 아니, 내가 아무리 성공한 삶을 살았다고 착각하며 살아간다고 해도 그런 걸 남사스럽게 문장으로 써내는 것은 정말이지 가능한 일이 아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모든 것은 운이었던 것 같다. 운이 좋아서 생전 처음으로 지원서를 낸 잡지사에 취직을 했다. 운이 좋아서 조금 더 돈을 많이 준다는 잡지사로 옮겼다. 운이 좋아서 눈 밝은 에디터의 눈에 들어 책이라는 걸 냈다. 운이 좋아서 유튜브라는 걸 하게 됐는데 운이 좋아서 구독자가 좀 생겼다. 내가 만약 성공에 대한 글을 꼭 써야만 한다면 그 책의 제목은 차라리 점쟁이에게 물어보세요가 될 것이다.

 

세상은 자기계발서로 넘친다. 모두가 자신의 성공에 대해서 글을 쓴다. 그 글을 토대로 강연을 한다. 그 강연을 토대로 또 책을 낸다. 강연비는 점점 올라간다. 책 판매량도 점점 올라간다. 가만 생각해보면 이건 을 토대로 더 큰 을 창출하는 일종의 비즈니스다. 당신의 성공은 당신만이 당신만의 방식으로 당신만의 타임라인에서 만들어낸 것이다. 그걸 다시 재현할 수 있는 사람은 당신밖에 없다. 아니, 당신 역시 당신의 성공을 다시 만들어낼 수는 없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나는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진열대의 50퍼센트 정도를 항상 차지하고 있는 자기계발서 코너를 종종 자기 자랑의 성전이라고 부르고 싶은 못된 마음을 숨길 수가 없다. 내 못된 취미 중 하나는 인터넷 서점 자기계발서 베스트셀러 목록의 제목들을 수집하는 것이다. 드디어 나는 이 글을 통해 내 아이폰 메모장에 가득한 제목들을 나열해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됐다.

 

『일 잘하는 사람의 시간은 다르게 흘러간다』. 나도 일을 못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감히 부끄러움도 없이) 생각한다. 하지만 내 시간은 같은 직장에서 정말이지 일을 못하던 직원의 시간과 똑같이 흘렀다. 단 한 번도 나의 시간이 다르게 흘러간다고 느낀 적은 없다. , 이건 혹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에 대한 책인 걸까? 『게으른 뇌에 행동 스위치를 켜라』고? 나는 매우 게으른 사람이다. 내 뇌 역시 꽤 게으른 편일 것이다. 그런데 나는 도대체 내 뇌의 어디에 스위치가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글쟁이로서 말하자면 내 뇌의 스위치는 마감일 새벽 3시쯤에나 겨우 켜지는 편이다. 『타이탄의 도구들-최고의 자리에 오른 사람들의 61가지 성공 비밀』. 최고의 자리에 오른 단 한 사람의 성공 비밀도 따라 하기 힘든데 61명의 성공 비밀을 우리가 도대체 어떻게 따라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첫 번째 인물의 성공 비밀을 따라 했다가 실패하면 두 번째 성공 비밀을 따라 해보고, 그렇게 61번의 성공 비밀을 따라 했다가 모조리 실패하면 당신 나이는 아마도 예순여덟 정도가 될 것이다.

 

리스트는 계속된다. 『백만장자 시크릿-부를 끌어당기는 17가지 메뉴얼』. 백만장자들이니까 속 편하게 나에게는 이런 메뉴얼이 있단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의 메뉴얼과 똑같은 방식으로 일하고도 파산한 뒤 개인회생을 신청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망한 자의 시크릿-파산하는 17가지 메뉴얼』이라는 제목의 책으로 묶여 나오지 않을 뿐이다. 『럭키 드로우-나만의 길을 찾을 때까지 인생의 레버를 당기는 법』이라고? 나는 지금 46년째 인생의 레버를 당기고 있는데 나만의 길이 뭔지 도대체 종잡을 수조차 없다. 심지어 요즘 인터넷 서점에는 중년의 자기계발서코너도 따로 있다. 50부터, 운을 내 편으로 만드는 좋은 습관』이라고? 맙소사 선생님. 50까지도 운이 없었던 사람들에게 이제부터라도 운을 만들라고 설법하는 건 너무 가혹하지 않습니까? 50부터는 인생관을 바꿔야 산다』라니. 예언하건데 10년 뒤에는 분명 『60부터는 인생관을 바꿔야 산다』는 제목의 자기계발서가 출간될 것이다. 그리고 20년 뒤에는…

 

몇 년 전 뉴욕의 책방에서 기가 막힌 제목의 책을 하나 발견했다. 마크 맨슨이라는 사람이 쓴 『The Subtle Art of Not Giving a F*ck』이었다. 해석하자면 신경 X도 안 쓰기의 미묘한 예술이었다. 물론 당신과 마찬가지로 나는 영어 원서를 제목이 멋지다거나 표지가 예쁘다거나 하는 쓸데없는 이유로 구입한 뒤 일곱 장 이상을 읽어내지 못하는 병이 있다. 이건 정말이지 정신적인 질병으로 분류해 이름을 붙여야 마땅하다. 그리고 1년 뒤 나는 책방에서 이 책의 번역서를 발견했다. 제목은 『신경 끄기의 기술-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만 남기는 힘』으로 약간 부드럽게 번역됐다. 이거야말로 내가 찾아 헤매던 책이라고 생각했다. 뉴욕 서점에서 영어 제목에 끌린 이유가 다 있었다. 특히 마음에 든 건 3장의 제목이었다. ‘왜 너만 특별하다고 생각해?’ 바로 이거다! ‘모두가 위대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헛소리.’ 바로 이거였다! ‘스티브 잡스가 될 거라는 망상에 빠진 벤처기업가.’ 맙소사. 나는 스티브 잡스를 흉내내는 대표 때문에 죽을 지경이라고 토로하던 벤처기업 직원을 여러 명 만난 적이 있다. 이 책은 분명히 내가 원하던 안티-자기계발서일 것이다. 확신했다.

 

나는 그 책을 여전히 끝내지 못하고 있다. 제법 신랄하게 세상의 모든 자기계발서를 까는 것처럼 보이던 책은 뒤로 갈수록 점점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남들의 성공 따위에 신경 쓰지 마. 실패는 그냥 받아들여. 할 수 없는 건 포기해버려.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너는… 성공할 수 있을 거야? ? 그러니까 이 놈의 책은 책방에 쌓여있는 자기계발서들 사이에서 어떻게든 돋보이기 위해 신랄한 제목을 당의처럼 덧씌운 자기계발서에 불과했다. 마크 맨슨은 몇 년 뒤 새 책을 냈다. 제목은 『Everything is F*cked』였다. 번역본 제목은 『희망 버리기 기술』이다. 이 남자는 정말 똑똑하다. 자기계발서가 클리셰가 된 시대에 어떻게 하면 자기계발서를 더 팔아먹을 수 있는지 너무 잘 알고 있다. 나는 감탄했다. 찬탄했다. 경탄했다. 장사를 하려면 이렇게 해야 하는 것이다.

 

마크 맨슨의 최근작은 윌 스미스의 자서전 『윌-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단 하나의 힘, WILL』이다. 불행히도 이 책이 한국에서 출간된 지 3개월 뒤 윌 스미스는 오스카 시상식에서 엄청난 힘으로 크리스 록의 뺨을 후려쳤다. 누구도 가능하리라 생각하지 않은 일을 가능으로 바꾸었다. 이 책은 더는 팔리지 않을 것이다. 나는 또 다른 시대적 베스트셀러를 꿈꾸다가 좌절감에 빠져있을 마크 맨슨에게 『신경 끄기의 기술』과 『희망 버리기 기술』이라는 제목의 책을 꼭 권하고 싶다. 꽤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작품은 격주로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