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

연재를 마치며

봄부터 여름 내내 그리고 가을이 될 때까지, 그동안 내가 계속해서 무슨 글을 쓰고 있는 건지 궁금하다고 베를린 서가의 주인은 말했다. 읽기에 대하여, 라고 나는 대답했다. 그렇다면 그것은 네가 읽은 책에 대한 글이냐고 베를린 서가의 주인이 다시 물었다. 아니라고 대답했다. 나는 책에 대해서는 한 줄도 쓰지 않았다고. 내 글에는베를린 서가의 주인이라는 상상의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는 글 속의 대화체를 위한 장치이며듣는 사람으로 위장한말하는 사람의 역할이고, 실질적으로는말을 암시하는 사람이자말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이라고. 그는 마치 한 권의 책과 같고, 나는 반복해서 책을 읽는다고 쓸 뿐 한 권의 책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고. 그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왜냐하면 나에게 독서란 한 권의 책과 나란히 일어나는 동시성의 또다른 사건이지 책을 기억 속에 저장하는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군가 이 글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읽기에 대한 글이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고

오늘 우리는 페리를 타고 섬으로 갔다섬은 울창한 자작나무 숲과 풀이 무성한 해변과 멧돼지가 파헤쳐놓은 떡갈나무 비탈과 텅 빈 캠핑장과 농가를 개조한 비어가르텐으로 이루어졌다우리는 비어가르텐에서 맥주를 마시며 잠시 책을 읽었고숲을 산책한 후 선착장으로 왔다선착장을 지키는 남자가 말했다이제 겨울이 되면 자신들은 모두 철수하며 섬에는 아무도 살지 않는다고겨울 내내세 마리의 멧돼지가 섬의 유일한 거주자일 것이라고우리가 유일한 승객인 페리를 타고 호수를 건너는 중에 청회색 구름이 몰려오면서 수면이 갑작스럽게 요동쳤다나뭇잎이 소용돌이치며 마치 거대한 무리의 새떼처럼 호수 상공을 지나갔다건너편 숲 위로 번개를 머금은 듯 금빛으로 테두리가 반짝이는 거무스름한 구름들이 위협적으로 짙게 쌓여갔다그러나 숲의 드높은 나무들은 갈색을 띤 황금빛 장벽처럼 꼼짝없이 장엄하게 서 있었다마지막까지 물에 떠 있던 백조 한 마리가 날아올랐다순식간에 호수는 불투명한 청동빛으로 변했다아마도 겨울에 우리는 보트를 빌려 타고 다시 한번 더 섬으로 오게 될 것이다하는 예감이 그 순간 우리를 동시에 엄습했다.  



 

이것은 글자 그대로, 오직 이 정원을 따라서 쓰인 글이다. 어느 날 내가 우연히 도착하게 된, 투야나무 울타리 뒤편의 보이지 않는 정원. 거기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이것은 정원의 시간과 동시에 일어난다. 정원의 삶과 나란히 간다. 이 글 속의 그 무엇도 정원보다 앞서거나 나중에 말해지지 않았다. 이곳은 파라다이스라고 베를린 서가의 주인은 말했다. 파라다이스의 어원은 고대 이란어로울타리로 둘러쳐진 땅을 의미하므로.

 

배수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