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서점 문을 닫으며


몇 분만 있으면 여섯시인데 서점에는 아무도 없었어요.

나는 책등을 밀어넣어 열을 나란히 맞추고 엉뚱한 자리에 있는 책들을 원래 자리로 돌려보내며 책장을 정리했어요. 카운터를 정돈하고 계산대 옆 책갈피 더미를 가지런히 한 뒤 계산대를 잠갔어요. 하루종일 이 작은 서점이 그렇게나 북적이더니 드디어 텅 비어서 ‘열림’ 표지판을 ‘닫힘’으로 뒤집을 수 있었지요.

이곳은 늘 분주한 중심가의 오래된 건물에 입점한 작은 서점이에요. 바닥에는 폭이 넓은 나무 널빤지를 깔았고, 높다란 우물천장에는 오래된 연철 샹들리에가 달려 있어요. 우리 가게에는 이곳이 몇 세대 전 공구점일 때부터 있었던 긴 카운터가 한쪽 벽면에 고정되어 있고, 다른 벽면에는 거리가 내다보이는 창들이 쪼르르 나 있어요. 쿠션을 여러 개 쌓아놓고 벽에 일러스트 그림을 붙여놓은, 책 읽기에 딱 좋은 아늑한 공간도 몇 군데 있지요. 안 흘리겠다고 약속만 하면 커피를 가져와도 돼요. 서점에는 점심때마다 조용히 커피를 홀짝이며 책장을 넘기는 손님들도 있고, 주머니에서 샌드위치나 사과를 몰래몰래 꺼내 먹는 손님들도 있답니다. 그래도 우리는 개의치 않아요. 책을 사랑하는 분들이니까요. 그거면 충분해요.

책 읽기 좋은 공간 중 하나는 서점 전면 창 바로 앞이에요. 나무판자로 만든 부스 형태라서 자기 몸은 조금 숨기는 동시에 창밖에 오가는 사람들은 실컷 구경할 수 있는 구조지요. 그 부스 안쪽에는 아프리카와 유럽 대륙 지도, 일본 도시 지도, 톨킨 세계의 ‘중간계’ 지도, 곰돌이 푸가 사는 ‘헌드레드 에이커 우드’ 지도, 심지어 레브 그로스먼이 창조해낸 마법사들의 세계가 펼쳐지는 ‘필로리’를 손으로 그린 지도까지 붙어 있답니다. (첫 장에 지도가 실린 책은 결코 실망시키는 법이 없다는 것, 다들 알잖아요.) 직원도, 손님도 인정하는 명당이라 비어 있는 때가 드물지만, 다들 그 자리의 의미를 잘 알기에 다음 차례를 노리며 기웃거리는 일은 하지 않아요. 






매장은 그만 둘러보고 다시 뒷정리를 하기 시작했어요. 먼저 뒷문을 잠갔어요. 나무 널을 대고 군데군데 물결무늬 유리판을 끼워넣은, 이 건물만큼 오래된 육중한 나무문이에요. 잠금장치를 딸깍 돌리고 가림막도 내렸어요. 뒷문 쪽 복도와 화장실을 돌며 불을 일일이 끄고 사무실 문도 꼭 닫은 다음 앞문으로 갔어요. 앞문도 두껍고 육중하지만 방충문이 덧달려서 날이 푹할 때는 신선한 공기가 책 향기와 섞여들도록 문을 열어두기도 해요. 그 문을 닫고 잠금장치를 거는데 문 꼭대기에 달린 종이 달랑거려서 배시시 웃음이 났어요. 아침에 첫 손님이 들어올 때 종소리가 나는 것도 참 좋지만 저녁에 문 닫을 때 고요에 잠기기 전 듣는 마지막 종소리도 못지않게 좋거든요.

잠시 문에 기대 가만히 서 있었어요. 사람을 구경하기 딱 좋은 시간이었죠. 일이나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발길을 재촉하는 행인들은 봄날의 햇살에 눈을 깜빡이면서도 입에는 미소가 가득했어요. 서점 안은 고요했어요. 우리는 서점을 그저 책이 있는 만남의 장소라기보다는 도서관에 가까운 곳으로 생각하기에 음악을 잘 틀지 않아요. 째깍째깍 시계 초침 소리와 희미한 길거리 소음만이 들렸어요. 인정해요, 그 순간을 만끽하려고 늑장을 부리고 있었다는 걸. 스스로를 기다리게 만들었죠. 책을 파는 일이 즐겁고 책에 둘러싸여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좋아하지만, 혼자서 책 읽는 것도 못지않게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매일 하루를 마무리한 뒤 꼭 혼자 책을 읽는답니다.

잡동사니 가득한 좁은 사무실로 돌아가면서 기대감에 한껏 설렜어요. 사무실 안에는 전기포트와 머그잔 몇 개, 그리고 지난주에 한 시간 동안 함께 요리책을 골랐더니 손님이 고맙다며 선물해준 쿠키 두어 개가 있었어요. 나는 전기포트 스위치를 올리고 차 상자를 뒤적이다가 시나몬 차이를 마시기로 했어요. 사무실 구석 소형 냉장고에는 늘 아몬드 밀크가 쌓여 있지요. 다들 차에 아몬드 밀크를 넣는 걸 좋아하거든요. 아몬드 밀크가 뽀얗게 퍼진 차에 설탕을 넣어 휘휘 젓고, 쿠키 봉지와 읽던 책을 집어들고 창가 자리로 갔어요. 연작 시리즈의 두번째 권을 읽기 시작하려던 참이었어요. 1권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서 2권을 손에 넣기까지 무려 일 년을 기다렸어요. 아주아주 재미있는 책을 처음 읽는 기회는 언제나 단 한 번뿐인지라, 그 기대감마저 즐길 작정이었어요.

서두르지 않고 편히 자리를 잡았어요. 적당한 위치에 차와 쿠키를 놓고 쿠션도 적당한 위치에 놓았죠.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은 후 신발을 벗어 좌석에 다리를 길게 뻗고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쿠키를 조금 베어 물고, 창밖을 지긋이 내다봤어요.

그런 뒤 숨을 한 번 깊게 들이마시고, 다시 크게 내뱉고, 비로소 책장을 펼쳤지요.

좋은 꿈 꿔요.




이 작품은 매주 목요일 연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