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그때 소설이 시작됩니다.

가네하라 히토미(金原ひとみ)
소설가. 『뱀에게 피어싱』으로 2003년 스바루 문학상을 수상하고 이듬해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다. 소설집 『별에 떨어지다』 『우울들』 『트립 트랩』 『마리아주 마리아주』, 장편소설 『오토픽션』 『애시 베이비』 『아미빅』 『마더스』 『갖지 못한 자』 『하이드라』 등이 있다.

 

아사부키 마리코(朝吹真理子)
소설가. 2009년 『신초』에 「유적」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키코토와』로 2011년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다. 소설집 『유적』, 장편소설 『키코토와』 『TIMELESS』 등이 있다.

 

조해진
소설가. 2004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천사들의 도시』 『목요일에 만나요』 『빛의 호위』 『환한 숨』, 장편소설 『한없이 멋진 꿈에』 『로기완을 만났다』 『아무도 보지 못한 숲』 『여름을 지나가다』 『단순한 진심』 『빛과 멜로디』, 중편소설 『완벽한 생애』 『겨울을 지나가다』, 짧은 소설 『우리에게 허락된 미래』 등이 있다. 신동엽문학상, 젊은작가상, 이효석문학상, 김용익소설문학상, 백신애문학상, 형평문학상, 대산문학상, 김만중문학상, 동인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백수린
소설가. 201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폴링 인 폴』 『참담한 빛』 『여름의 빌라』 『봄밤의 모든 것』, 장편소설 『눈부신 안부』, 중편소설 『친애하고, 친애하는』, 짧은 소설 『오늘 밤은 사라지지 말아요』, 산문집 『다정한 매일매일』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 등이 있다. 한국일보문학상, 현대문학상, 이해조소설문학상, 문지문학상, 김승옥문학상 우수상, 젊은작가상 등을 수상했다.

 

강지희(사회)
문학평론가. 200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평론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평론집 『파토스의 그림자』가 있다.

 

 

조해진 한국은 처음이신가요?

가네하라 히토미(이하 가네하라) 네, 처음입니다.

아사부키 마리코(이하 아사부키) 저도 처음입니다. 두 분은 일본에는 와보셨을까요?

조해진 규슈와 도쿄, 홋카이도. 이렇게 세 번 가본 적이 있습니다.

백수린 저도 예전에 몇 번 가보았습니다.

강지희 일본 작가님들은 여기 오시기 전에 서대문형무소에 갔다 오셨다는데요. 처음으로 한국에 오셨는데 왜 거기로 가셨는지요?

아사부키 원래 일본의 역사에는 무거운 가해의 측면이 있지요. 그래서 이렇게 서울을 방문한 기회에 일본의 과거를 알 수 있는 곳으로 가보고 싶었습니다. 서대문형무소는 친구이자 화가인 유사미 간지(弓指寛治) 씨가 예전에 찾아갔는데 좋았다고 추천해줘서 저도 가고 싶었습니다.

강지희 실제로 찾아가보시니까 어떠셨어요?

아사부키 오늘 막 갔다 온 곳인데다, 저는 말로 표현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편이라 침묵할 수밖에 없는데요. 하지만 전시실 벽 전체가 수감되었던 분들의 얼굴 사진으로 가득 채워진 방이 잊히지 않습니다. 남성이 많았지만, 여성도 있었고, 아무리 봐도 소년 소녀라고밖에 할 수 없는 어린아이들도 있었습니다. 고문 기구를 보면서 많은 이들이 가지고 있는 가학성을 느꼈고, 폭력을 휘둘렀을지도 모르는 또다른 나 자신을 떠올렸습니다.
오늘 뵙게 된 조해진, 백수린 작가님의 소설 속에도 소중하게 그려져 있는 이야기인데요. 저는 이제 여기에 없는 사람,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 사람, 잊혀진 사람, 이름조차 남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습니다.
이미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을 지금 살아 있는 우리가 어떻게 느낄 수 있을까요? 저는 저 자신을 잘 잊어버리고, 쉽게 휩쓸리고, 어리석은 인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라는 인간은 가장 잊고 싶은 것을 잊으려고 하는 존재가 아닌가 싶기도 해요. 그래서 더더욱 거대한 이야기 속에서 다루어지지 않는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는 존재하지 않는 사람을 느끼는 일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미래)과 연결되는 일이라고도 생각합니다.

조해진 서대문형무소는 서울 한가운데 있고 저의 집에서도 버스로 30분 거리여서 언제라도 갈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에, 그리고 일제 강점기 때 고문과 핍박을 받은 독립운동가에 대해서라면 이미 알고 있다는 선입견에 더 걸음을 못한 듯합니다. 저는 폴란드의 아우슈비츠를 다녀온 뒤 「빛의 호위」 같은 단편을 썼는데도 정작 가까이 있는 역사적 공간을 외면했다는 걸 이 시간을 통해 돌아보게 됩니다.

아사부키 전시실에는 많은 분들의 이름이 있었습니다. 조해진 작가님의 훌륭한 소설 『단순한 진심』에는 한국분들의 이름에 담긴 많은 기억과 의미에 대해 쓰여 있었습니다. 이름을 찾는 행위는 그곳에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사람을 찾아가기 위한 길을 찾는 일이기도 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조해진 작품 소감을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소설을 읽은 일본인 작가님의 말씀으로 식민지 시대의 역사를 돌아보니 그 속에서 존재감을 상실해가는 수많은 희생자들을 한 분 한 분 호명해보고 기억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백수린 저 역시 늘 가봐야겠다고 생각했으면서도 집에서 가까우니 언제든 갈 수 있다는 이유로 미루기만 한 것 같아 부끄럽습니다. 아사부키 작가님의 말씀을 듣고 보니 꼭 가야겠어요.  

아사부키 아니요. 서대문은 일본인들이 서울에 오면 꼭 가봐야 할 곳이에요. 올리브영에 가기 전에 가야 합니다. 저희는 먼저 올리브영으로 가버렸지만요……!

가네하라 가버렸어요.(웃음) 저도 두 분께 소감을 말씀드려도 될까요? 저 역시 조해진 작가님의 『단순한 진심』과 백수린 작가님의 『여름의 빌라』를 읽어보았는데, 우연히 둘 다 프랑스와 관련된 소설이었습니다. 저는 아이들과 함께 프랑스로 이주했기 때문에 많은 것을 느꼈어요. 예를 들어 『여름의 빌라』에 수록된 「시간의 궤적」 중에 “이따금씩 길을 잃었다는 느낌에 사로잡히면 거리에 서서 조용히 울었다”라는 문장이 나오는데, 저도 프랑스에서 똑같은 기분을 느낀 적이 있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거기에 있는 것에 대해 의문을 가진 적도 없었는데 갑자기 스위치가 꺼져버린 거예요. 외국에서 이방인으로 산다는 것. 모든 것이 다 말라버린 듯한 상황에 내가 서 있는 그런 감각. 그리고 그것을 다시 한국을 방문하는 타이밍에 읽다 여러 가지가 연결되고 또 겹쳐 그 문장이 인생의 일부가 된 듯한 감각을 맛볼 수 있었습니다.

아사부키 백수린 작가님의 작품을 읽고 저에게 잊지 못할 풍경이 된 것은 「고요한 사건」(『여름의 빌라』 수록)입니다. 땅은 원래 누가 소유하는 것도 아닌데 매매된다는 이상한 점, 살해된 고양이의 시신을 묻기 위한 자리를 찾기 시작하자 마치 모든 길을 덮으려는 듯 내리기 시작한 눈. 잣눈, 싸라기눈, 포슬눈. 다양한 눈의 이름을 읊조리면서도, 정작 지금 길 위에 내리고 있는 눈을 표현할 수 없다는 묘사가 아름다운 문장으로 쓰여 있어 오히려 더욱 참혹하게 느껴졌습니다.

백수린 작품에 대한 생각을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대담이 좀더 진행되면 더 다양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겠지만, 저는 두 작가님의 소설을 읽으며 고통의 극한을 쓰는 용기가 경이롭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소설을 쓰다보면 기쁜 장면을 쓸 때 인물보다 더 큰 기쁨을 느끼고 슬픈 장면을 쓸 때는 더 슬픈 감정을 느끼게 되는 일이 많은데, 가네하라 작가님의 작품 속 펄떡이는 신체적 고통과 아사부키 작가님 작품 속 물결처럼 확장되는 통증을 독자로서 느끼며 어떻게 이렇게 우회하지 않고 쓸 수 있을까 감탄했습니다.

강지희 자, 이제부터 본격적인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먼저 작가로서의 시작점에 대해 여쭤보려고 합니다. 다들 젊은 나이에 등단하신 걸로 알고 있어요. 나를 작가로 만들어낸 책이나 사건, 관심사, 소설을 쓰기 시작한 계기가 있으시면 말씀해주세요.

조해진 저는 29살에 등단했습니다. 여기서는 제일 늦은 나이에 시작했을지도 모르겠네요. 어렸을 때는 조직이나 단체생활에 어려움을 느끼는 아이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학교에서 혼자만의 공상의 시간을 많이 갖게 되었고 그때부터 책을 많이 읽으며 나도 쓰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공상은 구름 형태에서 벗어나 서서히 구체적인 이야기로 발전해갔습니다. 가령 외로운 모습으로 지나가는 할머니를 보면서 그녀의 삶을, 그녀를 관통한 시간과 서사를 상상하게 되었죠. 그렇게 조금씩 이야기를 만들고 그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는 문장을 고민하면서 소설이라는 장르로 귀착하게 되었던 듯합니다.

백수린 저도 조해진 작가님과 거의 비슷하게 29살에 등단했어요. 유년 시절부터 이사를 많이 다녔고 낯을 가리는 성격이었기 때문에 친구가 많이 없어서 더욱더 말하는 것이 어려운 아이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남과 대화할 시간에 아무래도 책을 더 읽게 되고 혼자 상상을 많이 하게 되었고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이야기의 매력에 빠지게 됐던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어릴 때부터 말의 부스러기 같은 것들에 관심을 많이 갖게 되었고 그런 것들, 그러니까 뭔가 일상의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는 것들을 글로 쓰며 희열을 느끼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강지희 일본 작가분들은 어떠신지요?

가네하라 제가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은 읽기 시작한 것과 거의 동시였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쯤 읽기 시작했고 ‘나도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보고 싶다!’며 쓰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짧은 글을 쓰거나 적어놓기를 반복하다가 18~19살 때 어느 정도 분량이 있는 글을 써서 문학상에 응모해서 데뷔했습니다.

아사부키 저도 어렸을 때부터 노트에 쓰고 있었어요. 여러분에게도 ‘이매지너리 프렌드’가 있을까요? 자신만의 친구라는 뜻인데요, 저는 학교에는 친구가 없었고 어깨에 올라탄 용만이 유일한 친구였습니다. 매일 그 아이와 함께 등하교를 했어요. 모두에게 그런 친구가 있는 줄 알고 있었고요. 없는 사람도 있다는 걸 알게 된 이후부터는 아무한테도 이야기하지 않았는데, 무라타 사야카 작가님과 온천 여행을 갔을 때 그녀에게는 왠지 이 친구가 있을 것 같아(웃음) 물어보았더니 역시 있다고 해줬어요. 어른이 된 이후 처음으로 이 이야기를 누군가와 나눌 수 있어서 매우 기뻤습니다. 글쓰기와 직접적으로는 관계가 없을 수 있지만 저에게는 그 둘이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강지희 지금도 (이매지너리 프렌드는) 있을까요?

아사부키 용은 중학생이 되고 인터넷상에서 친구가 생기자 사라져버렸어요. 너무 슬펐지만 언젠가 다시 찾아올 수 있으니 과거형으로 말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요. 저의 경우 소설을 쓰기 시작한 계기는 소설이 저에게 찾아왔다고밖에 설명할 수가 없네요.   

강지희 찾아온다는 사실이 굉장히 재미있습니다. 그럼 소설을 계속 쓰는 동력은 무엇일까요?

아사부키 제 몸은 하나의 튜브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냄새나 소리, 영상 같은 여러 가지가 흘러들어와요. 불쾌한 것도, 혐오스러운 것도, 아름다운 것도 뒤섞여 들어오지요. 그것들이 몸속에서 부딪히다 하나의 소용돌이가 되고 또 가득차버리면 생활할 수 없게 되니 이를 밖으로 내보내려고 글을 씁니다. 쓰는 동안에도 다 쓰고 난 후에도 그것이 무엇인지 저도 잘 몰라요. 다시 읽고 고쳐쓰고 그걸 반복하다보면 소설이 되어가요. 꿈은 자는 사이에 꾸는 것이지만, 저에게 소설이 찾아오는 이미지는 말하자면 마치 낮에 꾸는 꿈에 가깝습니다.

조해진 아사부키 작가님의 「금붕어의 낮잠」을 읽었는데, 소설도 그런 방법으로 쓰인 것 같다고 느꼈어요. 꿈속에서 계속 되살아나는 듯한.

강지희 가네하라 작가님에게는 소설이 탄생하는 순간이란 어떤 것일까요?

가네하라 사람이나 사회처럼 제 바깥에 있는 것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작은 상처가 점점 쌓여갑니다. 그 상처가 늘어나면서 맨 마지막 순간에 상처에 불이 붙는 듯한 순간이 찾아옵니다. 저에게는 그것이 바로 소설이 탄생하는 순간이에요.

조해진 두 분의 작품을 보면 환상이나 개인적인 상처가 작품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반영된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아사부키 소설이 탄생하는 순간에 대해 두 분의 이야기도 듣고 싶습니다.

백수린 저는 일상에서 아이디어를 얻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일이 저에게는 이질적인 것으로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왜 나에게 이 장면이 유독 다르게 보일까? 그런 생각을 한참 하다보면 평소 제가 품고 있던 고민이나 생각과 맞물리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때 소설이 시작됩니다.

조해진 소설마다 쓰게 하는 동력은 다른 듯합니다. 다양한 곳에서 온 씨앗이 허공에서 나부끼다 그중 특별한 씨앗이 제가 쓰는 소설에 내려와 발아하는 느낌이랄까요? 『단순한 진심』의 경우는 한국계 미국인 입양인 제인 정 트렌카가 쓴 『피의 언어』가 그 씨앗이었습니다. 씨앗에서 발아되고 생장하는 식물의 형태는 저의 몫이긴 합니다. 소설의 인물은 저의 상상을 통해 구체적으로 재현되니까요.
가네하라 작가님의 작품 속 인물들은 자신의 직간접적인 체험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인터뷰를 보았습니다. 그런 작품 창작 방식이 저에게는 큰 자극이 되었고 저 역시 다른 방식으로 써보면 어떨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가네하라 그렇다면 지금까지는 자신의 경험을 반영해서 글을 쓰지는 않았다는 말씀이시군요?

조해진 지금까지는 그렇습니다. 자전적인 작품을 한 편 쓴 적은 있지만, 대부분은 상상에 기대어왔습니다.

강지희 다음은 등장인물에 대해 여쭤보고 싶습니다. 아사부키 작가님의 「금붕어의 낮잠」에서는 마치 작은 점처럼 자신의 내면에 머물며 관찰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가네하라 작가님의 경우, 연인 사이이지만 서로 집착하고 구속하며 상대를 파괴하는 방식으로 얽히는 관계가 자주 등장합니다. 백수린 작가님의 작품에서는 모계 혈통의 가족이 인상적인데, 이전 세대의 여성들에 대한 동경이나 존경이 담겨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조해진 작가님의 경우, 혈연관계가 없는 사람들이 서로 의지하고 호의를 가지며, 상대를 돕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관계가 형성됩니다. 지금까지 집필한 작품 중에서 특히 애착이 가는 인물이나 잊지 못하는 인물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조해진 모든 인물에 애착이 가지만 그래도 골라야 한다면 『로기완을 만났다』의 ‘로기완’이 가장 먼저 떠오르긴 합니다. 취재를 위해 벨기에 브뤼셀에 찾아갔을 때 ‘여기서 로기완이 기도를 했겠지, 엄마를 떠올렸겠지’ ‘아시아 식당이 밀집해 있는 이 거리에서는 분명 배가 고팠겠지’ 하는 상상을 하며 로기완에게 저 자신을 투사했기에 로기완을 생각하면 그 도시의 거리들이 함께 떠올라요. 『로기완을 만났다』를 쓴 이후로 역사 속에서 잊힌 사람들 혹은 소외된 사람들에 대해 많이 쓰게 되었다는 것도 이 소설에 대한 애정이 커진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조금 전 소설에 제 경험을 많이 반영하지 않았다고 말씀드지만, 돌아보면 등장인물들이 겪는 일들은 결국 제가 어디선가 경험한 것들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직접 본 적 없는 역사 속 인물을 구체적인 이야기로 만들고 입체적으로 형상화하기 위해서는 제 경험이 필수적이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가네하라 맞아요. 『단순한 진심』을 읽으면서 저는 입양된 적도 없고 어머니의 얼굴을 모르는 것도 아닌데,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어디에도 연결되지 못한다는 그녀의 감각은 저에게도 익숙한 것이었습니다. 어디에도 연결되지 못하는 모든 사람에게 그 소설은 자신의 경험처럼 느껴질 것이라 생각해요.

백수린 제 소설에는 어머니, 이모, 할머니 등 모계 친족이 자주 등장합니다. 하지만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공동체에 특별한 의미를 두고 있는 것은 아니고요. 저는 ‘종’과 ‘횡’으로 연결된 여성 공동체에 관심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일본어로 번역되지 않은 『친애하고, 친애하는』에는 종적으로 연결된 여성 3대가 등장하고요. 또 횡적으로는 『여름의 빌라』에 실린 단편들을 비롯해 곧 일본에서 출간될 장편소설 『눈부신 안부』 등의 작품들 속에서 여자아이들이나 성인 여성들의 우정을 그렸습니다. 여성들이 어떻게 서로 연결되어 있고 영향을 주고받는지에 기본적으로 관심이 있는 편이에요.
저는 관계성 속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늘 흥미를 느껴요. 그런 것들을 보여주기 위해 매우 친밀한 공동체인 가족이나 연인, 친구 사이를 소설에 그리는 것이 제게는 필요했습니다. 마치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인간관계의 역동에 대해 세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게 하는 관계망들이니까요.
그런 맥락 속에서 모녀 관계를 다룬 「폭설」이라는 작품 속 어머니가 특히 기억 남습니다. 『여름의 빌라』에 수록된 작품인데요. 「폭설」의 어머니 캐릭터를 기점으로 제 소설 속 여성 인물들이 달라졌다고 느끼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독자들에게 유독 많은 사랑을 받는 동시에 미움도 많이 받는 인물이라 애착이 갑니다.

가네하라 저는 제 경험을 바탕으로 글을 쓰는 경우가 많기에 아이를 갖거나 해외에서 생활하는 등 제 생활이나 사회의 변화에 따라 쓰는 내용도 달라집니다. 그 변화의 과정에 대해 생각해보면, 초기에는 제가 허용할 수 있는 사람, 그러니까 용서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밖에 못 썼어요. 그런데 나이를 먹을수록 오히려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더 쓰고 싶어졌습니다. 최근에는 전혀 이해할 수 없다고 느끼는 사람을 주인공으로 만들기도 해요. 저와 공명하는 캐릭터보다 저와 상반되는 캐릭터의 세계관이 지금의 저에게는 더 깊은 인상을 남기는 것 같습니다.

조해진 최신작이 빨리 번역되었으면 좋겠어요. 꼭 읽어보고 싶습니다.

백수린 전혀 이해할 수 없다고 느끼는 사람을 주인공으로 만드신다는 말이 무척 흥미롭네요.

아사부키 두 분이 쓰신 등장인물은 당연히 실제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은 아니지만, 마치 자신의 기억과 같은 강렬함으로 마음속에 자리잡은 것 같습니다. 그것이 소설을 읽을 때의 두려움이자 행복한 경험이기도 하죠.
조해진 작가님의 『단순한 진심』에는 식당이 문을 닫은 날, 한 노파가 큰 소리를 내며 들어오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노파의 삶이 점점 드러나면서 그녀가 나와 아주 가까운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 마치 제 기억이 새롭게 쓰이는 듯한 경험이었어요.
백수린 작가님의 「국경의 밤」(『참담한 빛』 수록)에는 십 년이 넘도록 엄마의 뱃속에 머무르는 아이가 등장합니다. 태어날지 말지를 선택할 수 있다고 해도, 저는 두려워서 선택하지 못할 것 같아요. 이 아이가 마침내 뱃속에서 나오기로 결심할 때까지 (읽는 행위를 통해) 아이와 함께할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저는 글을 쓸 때 등장인물이 모두 ‘나’라고도 생각하고, 모두 모르는 사람이라고도 생각합니다. 외부의 자극과 제 자신의 충돌 속에서 등장인물이 탄생하기 때문에 ‘나’이기도 하고 모르는 존재이기도 한 거죠. ‘찾아오는 것’에 대해 되도록 깊이 생각하지 않으려 합니다.

조해진 제2차세계대전, 특히 전쟁 말기를 다룬 작품에 대해서라면 저는 어쩔 수 없이 피식민 국가의 국민 입장에서 읽어왔습니다. 하지만 아사부키 작가님의 「금붕어의 낮잠」을 읽는 동안엔 일본인 소년, 그러니까 식민 통치를 한 국가의 인물 입장에서 그 시대의 풍경을 살펴볼 수 있었고 이 경험이 저에게는 굉장히 소중했습니다. 세상을 넓게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셈이죠.

아사부키 정말 감사합니다!

백수린 작가님이 쓰신 소설 속 인물이 ‘모두 나’인 동시에 ‘모두 모르는 사람’이라는 말에 깊이 공감합니다. 그 말씀을 듣고 나니 작가님과 동시대 사람도 아니고 젠더도 다른 「금붕어 낮잠」의 주인공을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번역: 오영아)

본 대담의 일본어판은 『GOAT』의 별책 『GOAT meets』(2025년 7월 24일 발간)에 게재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