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다음달쯤, 시에서 드디어 인공 강우제를 뿌릴 거라는 소문이 돈다

1

 

다음달쯤, 시에서 드디어 인공 강우제를 뿌릴 거라는 소문이 돈다.

구름 사람들은 아무도 겁먹지 않는다.

인공 강우제가 뿌려지면 어떻게 될지 몰라서가 아니다. 반대로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구름이 녹아내려 비가 되겠지. 우리는 분홍색 빗방울과 함께 1.5킬로미터 아래로 떨어질 것이다. 모든 게 착착 뭉개지고 깨져 곤죽이 된다. 집도, 세간살이도, 몸뚱어리도. 이미 수백 수천 번 상상하여 실제로 겪은 것마냥 모두의 머릿속에 생생한 장면이다. 그것이 이제 다음달에 실제가 된다니. 정작 곤죽이 될 사람들은 시큰둥한 얼굴이다. 뿌린다, 뿌린다 말만 많았지 실 제로 뿌린 적은 없는데다, 뿌린다고 해도 별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갈 곳이 있다면 진작에 갔을 테니까.

인공 강우제는 분명 땅 사람들의 아이디어지만, 구름 바로 아래에 사는 땅 사람들의 의견은 또 다르다. 이미 구름 때문에 이 동네 땅값은 똥값이 된 지 오래인데도 여기 땅 사람들은 인공 강우제 살포에 반대하고 있다. 정확히 뭔진 몰라도 아무튼 몸에 더럽게 나쁘다는 유독물질이 허공에 엉겨붙어 만들어진 이 구름. 그런 게 녹아 내리는 비를 꼼짝없이 뒤집어쓰라는 거냐면서. 하긴 꼭 그게 아니어도 우리가 그들의 집이나 머리 위로 떨어지는 게 결코 유쾌한 일은 아닐 거다. 그들이 원하는 건 '친환경적이고' '인도적인' '납득 가능한' 철거다.

결국 우리보고 꺼지라는 말인 건 마찬가지다.

그들이 원하는 구체적인 해결책은 다음과 같다. 우선 구름과 땅을 잇는 줄사다리 앞에 경찰을 두서넛 세워 구름 사람들이 내려오는 족족 체포 및 구금하기, 철거반을 보내 텅 빈 게딱지 같은 집들을 모조리 헐어버리기, 집을 잃은 구름 사람들이 다시는 이 동네에 돌아오지 못하도록 멀리 쫓아버리기. 땅 사람들이 특히 강조하는 건 마지막 단계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구름 사람들을 무서워하니까. 구름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죽이고 물건을 훔친 뒤 구름 위로 숨어버린다는 게 그들의 생각이다.

문화생활에는 도통 관심이 없는 나조차 알고 있다. 이런 인식이 생긴 건 어떤 영화 때문이라는 걸. 구름에 살며 내킬 때마다 땅에 내려와 깡패 짓을 하는 남자가 주인공인 어느 영화가 있다. 구름엔 아무도 그 영화를 본 이가 없지만 내용만은 모두 알고 있다. 정체 모를 사투리를 쓰며 툭하면 품에서 회칼을 꺼내 어루만지는 남자가 부잣집 땅 여자와 사랑에 빠진다나. 그 남자가 신혼집으로 얻은 멋진 새 아파트 베란다에 서서 멀찍이 하늘에 뜬 구름을 보며 착잡한 표정을 짓는 마지막 장면이 가히 압권이라고 들었다. 그 영화는 외국에서 큰 상을 받아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황금 트로피를 쥔 영화감독은 수상 소감으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저 아름다운 분홍빛 구름을 보세요. 마치…… 불행으로 만들어진 솜사탕 같지 않습니까.

텔레비전이 있었다면 그 웃기는 개소리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구름 위에 그런 걸 가진 집은 하나도 없지만.

그 영화 덕분에 구름 사람들은 원치 않는 주목과 더불어 이미 굳건했던 사회적 편견을 한 겹 더 얻게 되었다. 그러나 그건 구름 사람들만의 문제지 땅 사람들의 문제는 아니다. 아무도 신경쓰지 않는다는 점이 그 증거다.

구름 사람들도 땅 사람들의 일에 별로 관심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우리는 생계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바쁘기 때문에 편견 같은 고급진 문제에는 신경쓸 겨를이 없다. 어차피 땅에 발을 붙이고 사는 사람들은 우리의 처지를 절대 이해할 수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예를 들자면 뭐가 있을까, 그렇다. 우리는 아주 간단하게 생을 끝낼 수 있다. 집에서 나와 끝까지 걸어가기만 하면 된다. 구름 끝에는 난간도 울타리도 없으므로 그냥 발 닿는 대로 쭉 걸어가면 떨어져 죽는다. 깔끔하고 단순하게. 하지만 땅 사람들은 어떤가. 아무리 걷고 걸어도 두 발이 땅에 온전히 붙어 있다. 여간해선 죽을 일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언젠가 이 이야기를 했을 때 원은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고 대꾸했다. 자살한 땅 사람을 본 적이 있다는 거였다. 원은 큰 빌딩의 사무실 청소 일을 꽤 오래 했는데, 보통 청소를 시작하는 밤 열두시쯤에도 아직 남아 일을 하는 땅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어느 날엔가 그중 한 명이 빌딩에서 뛰어내렸다는 것이다. 도대체 왜? 내가 묻자 원은 어깨를 으쓱했다.

모르지. 나름대로 좆같은 점이 있었나보지 뭐.

좆같은 점이 뭐였을까.

모르지.

그런 좋은 직장에 다니면서.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차를 타면서.

그걸 니가 어떻게 아냐.

뻔하지, 땅 사람인데.

병신아. 땅 사람들이라고 다 잘사는 거 아냐.

씨발, 우리보단 낫잖아.

원은 딱하다는 표정을 짓고는 더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아마 부정할 말이 더는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럴 수밖에. 땅 사람들의 집은 인공 강우제 따위에 녹지 않는다. 바람이 불지도 않고 태워 죽일 듯한 햇빛이 내리쬐지도 않는다. 그런 데 살면서 죽긴 왜 죽어. 내게 그런 집이 있다면 나는 절대 죽지 않을 것이다. 악착같이 돈을 긁어모아서 집을 늘리고 차를 늘리고 식구를 늘리고.

그리고 그 식구들 모두의 배를 항상 맛있는 음식으로 가득 채울 테다.

 

 

2

 

나는 구름 위에서 태어났다.

이 사실은 내 남은 평생에 관한 많은 것을 예언한다. 나는 평생 분홍색 옷은 절대로 입지 않을 것이다. 나는 평생 햇볕에 그을린 검은 얼굴로 살 것이다. 나는 평생 반려동물을 기르지 못할 것이다. 나는 평생 자동차를 가져볼 수 없을 것이다. 나는 평생 바람의 방향을 온몸으로 체감해야 할 것이다. 나는 평생 모터가 달린 1.5킬로미터짜리 사다리의 발판을 오르내릴 것이다. 벽돌을 쌓아 만든 네 개의 벽으로 가로막힌 공간을 집이라고 부르며 빨지 않은 이불을 덮고 잠을 잘 것이다.

아주 오래전에는 구름이 이렇게 단단하지도, 분홍빛이지도 않았다고 들었다. 하늘은 지금보다 훨씬 더 파랗고 구름은 락스에 담갔다 뺀 것처럼 새하얀 색이었다나. 내가 아는 구름이란 대기중에 급격히 늘어난, 뭐라더라, 무슨 먼지인가를 핵으로 삼아 단단하고 널찍하게 뭉쳐진 분홍색 덩어리이다. 허공에 둥둥 떠 있는 거지들의 핑크빛 요새.

이 구름 위에는 총 서른 가구 정도가 산다. 가구라고 부를 수 있다면 말이다. 다른 지역에도 비슷한 구름 덩어리들이 있고 거기에도 사람이 산다고 들었다. 땅을 돌아다니다보면 그 사실이 정말로 신기하게 느껴진다. 이렇게 번화하고 부유한 땅 위에 우리처럼 가난한 사람들이 존재한다니. 물론 다른 구름에 가본 적도 없고 거기 사람들을 만나본 적도 없다. 건너 건너 이야기를 들었을 뿐이다. 건너오는 이야기들이 대개 그렇듯 순 좋지 않은 말들뿐이다. 어느 동네 구름이 기어이 철거되었대. 어디는 구름 위에서 싸움이 나서 사람이 죽었대. 무슨 동 구름인가는 폭풍에 쓸려가서 초토화됐대.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말로만 들어서는 정말 남의 얘기처럼 느껴진다. 아마 그들도 우리 이야기를 들으면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구름 위에선 모든 것이 남의 일 같다.

때로는 내 일조차도. 

구름의 양 끝에 있는 두 개의 커다란 기둥은 지상으로 이어진다. 두 기둥 모두에 쇠로 된 두꺼운 사슬이 친친 감겨 있다. 왼쪽 기둥은 구름을 정박시키는 용도이고, 오른쪽 기둥은 구름을 오르내릴 때 사용하는 사다리를 지탱한다. 이 기둥 옆에는 작은 플라스틱 의자와 파라솔이 놓여 있다. 원의 할머니가 하루종일 앉아 있는 곳이다. 사람들은 원의 할머니를 춘 여사라고 부르는데, 아마도 이름 첫 글자나 두번째 글자를 딴 것이 아닐까 추측만 해댈 뿐 정작 진짜 이름이 무엇인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 같다. 춘 여사가 하는 일은 단순하다. 기둥 옆에 있는 모터를 돌려서 쇠사슬 도르래를 작동시키는 것이다. 땅으로 내려가려면, 쇠사슬에 달린 발판에 올라서서 손잡이를 꽉 잡고 춘 여사에게 신호를 보내면 된다. 춘 여사가 모터를 작동시키면 웅 하는 소리와 함께 도르래가 돌아가며 발판이 땅을 향해 내려가기 시작한다. 그게 땅에 부딪히기 전에 적당한 높이에서 뛰어내리면 끝. 반대로 땅에서 구름으로 올라갈 때도 춘 여사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이때는 전화를 걸면 구름 위에서 모터를 켜준다. 내려갈 때보단 느리지만 꽤 안정적으로 올라갈 수 있다.

구름 사람들은 매달 조금씩 돈을 모아 춘 여사에게 월급을 준다. 그 대가로 춘 여사는 평생을 발판 앞에 앉아 모터 스위치를 달그락거리며 보냈다. 새벽에도 오가는 사람이 있으면 부스스 일어나 모터를 켜주러 온다. 그러나 정작 춘 여사가 땅을 밟아본 일은 손에 꼽는다. 양 발목이 비틀려 제대로 중심을 잡지 못해 발판에 안정적으로 올라탈 수 없기 때문이다. 원의 말에 따르면 초기에 병원에 갔으면 간단히 치료할 수 있는 일이었다는데, 구름 위에 의사 나부랭이가 있을 리 없으니까. 그래도 춘 여사는 아침마다 출근하려고 길게 줄을 서 있는 구름 사람들에게 일일이 밝게 인사를 건넨다.

잘 다녀와요. 오늘도 돈 많이 벌어요. 손잡이 잘 잡고 내려가 응.

나는 가끔 돌아오는 길에 시원한 보리차나 팥양갱 따위를 사다가 춘 여사에게 건네곤 한다. 원의 할머니라서가 아니라 춘 여사라서다. 나에게 유일하게 인사를 건네주는 사람이어서다. 그런 것들을 주면 춘 여사는 항상 고맙게 받는다. 아이고 우리 하늘이가 최고다, 그렇게 말해준다. 나는 머쓱해하며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말아야지, 생각한다.

우리집에서 춘 여사의 신세를 지는 사람, 즉 땅으로 돈을 벌러 다니는 사람은 다섯 중 셋이다. 엄마, 아빠, 나. 할아버지는 몸이 아프다. 그리고 내년에 초등학교에 가는 동생은 아직 어려서 일을 할 수 없다. 밥만 축내고 있는 것이다. 하긴 동생도 의무교육인 중학교만 졸업하면 바로 일을 시작할 것이다. 내가 그랬듯이. 그러나 어쨌든 그전까지는 식충이인 셈이다. 동생 역시 그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집에서는 쥐죽은듯이 지내려고 노력한다. 우리의 심기를 거스르면 밥을 굶는다는 것을 동생은 태어나자마자 학습했다.

하지만 누군가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동생을 사랑하지만, 자주 때린다. 아빠가 나를 사랑하지만 나를 자주 때리는 것처럼.

 

 

3

 

아빠는 새벽 네시에 땅으로 내려가 인력 사무소를 찾는다. 그때부터 쭉 일을 기다리는 것이다. 나는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지만, 인력 사무소에 앉아 있는 아빠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그려볼 수 있다. 아마 거기에는 싸구려 가죽으로 된 푹 꺼진 소파가 있고 그 위로 담배 연기가 자욱하게 고여 있을 것이다. 창문에 시트지로 붙어 있는 인력 사무소라는 글자가 모두의 얼굴 위로 그림자를 드리울 것이다. 금이 간 바닥에 먼지와 머리카락이 굴러다닐 것이다. 거기에 다른 모두와 함께 앉아 있는 아빠. 돈을 기다리는 아빠. 일이 올지 안 올지는 그날의 운수에 달렸다. 하지만 보통은 온다. 땅 사람들은 약간의 빈틈만 있어도 건물을 지어대니까. 건물을 짓는 데는 자재가 필요하고 자재를 나르고 쌓고 치우는 사람도 필요하다. 그러니까, 아빠는 집을 짓는 것이다. 평생 살아보기는커녕 들어가볼 일도 없는 남의 집을.

그 생각만 하면 똥이 마렵다고 아빠는 말한다.

너 그거 아냐.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아무데나 똥을 싼다. 아니 그렇다고 정말 아무데나 싸는 건 아니고, 그래, 예를 들면 화장실에 욕조를 넣으려고 파놓은 공간 같은 거 있잖냐. 그런 데가 있으면 꼭 똥을 싸 넣어. 그 위에 시멘트를 붓고 기물을 얹으면 매끈하거든. 아무도 모르거든. 땅 사람들은 똥이 든 집을 몇십억씩 주고 사는 거야. 그 집을 쓸고 닦고 아끼면서 사는 거지. 내 똥이 있는 줄도 모르고. 후후후. 웃기지. 나는 그 생각만 하면 자다가도 웃음이 나더라. 나는 꼭 똥을 싼다. 높고 좋은 건물일수록 많이 나온다.

아빠는 이 이야기를 하면서 정말로 크게 웃는다. 온 구름이 쩌렁쩌렁 울리도록.

나는 속으로 생각한다. 웃을 일도 많다고.

아빠는 내게 항상 기술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자기는 등짐 지는 것밖에 몰라 잡부를 하고 있지만 미장이며 타일, 도배 따위를 할 줄 아는 사람들은 네가 상상도 못할 어마어마한 일당을 받아간다면서. 그래서 그 상상도 못할 어마어마한 일당이 얼마인지 나는 묻지 않는다. 알게 되면 실망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 금액이 적어서가 아니라 아빠의 그 빈약한 상상력, 상상 속에서조차 가난해서 고작 그만한 돈밖에 소망해볼 수 없는 그 거지같은 수준 때문에 실망할 것이다. 나는 대신에 그 기술은 어디서 배우면 되느냐고 물어본다.

일하는 사람들을 따라다녀야지.

그럼 따라다니는 동안에도 돈 줘요?

안 주지, 인마. 일 가르쳐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해야지.

그럼 그동안 뭐 먹고 살아요?

뭐? 이게, 싸가지 없긴.

나는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것을 예감하고 황급히 몸을 피하지만 소용없다. 이미 아빠의 단단한 주먹이 날아와 내 머리를 때린 뒤다.

아! 왜 때려요.

싸가지 없는 딸년은 맞아도 싸다.

내 어디가 그렇게 싸가지 없다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더이상 말하지 않는다. 아빠도 말없이 먼 어딘가를 바라본다. 아빠의 몸에서 진한 땀냄새가 나고 있다. 내 몸에서도 같은 냄새가 나고 있을 것이다. 나는 벌떡 일어서서 웅크려 앉은 아빠의 어깻죽지를 내려다본다. 티셔츠 소매에 반쯤 가려진 아빠의 팔에는 팔꿈치부터 어깨로 이어지는 커다란 흉터가 있다. 공사 현장에서 떨어지는 철근에 스치는 바람에 난 상처다. 운이 나빴으면 머리로 떨어졌을 거라고들 했다. 그랬다면 큰 보상금을 받았을 텐데. 어쩌면 땅에 집을 살 수 있는 정도의 돈이었을지도 모른다. 철근이 머리 아닌 어깨로 떨어진 것은 행운일까, 불운일까.

아무튼 아빠는 그 사고로 수술비를 내고도 남는 돈을 받긴 했다. 그 돈은 지금 우리집 바닥에 묻혀 있다. 항상 이불을 깔아두는 곳, 겹겹이 깔아둔 낡은 요를 들추고 나무판자까지 들어내면 나오는 작은 구멍 안에. 아빠가 직접 구름을 파내어 만든 구멍이다. 아빠는 내가 그 구멍의 존재를 안다는 걸 모른다. 우리집의 돈은 다 거기 있다. 더럽고 누덕누덕한 지폐들. 가끔 집에 혼자 남으면 나는 요를 들추고 돈을 세어본다. 늘어 있는 때도 있고 줄어 있는 때도 있다. 줄어 있는 경우가 더 많다.

 

언제부턴가, 땅을 걷다가 공사장을 발견하면 괜히 그 아래에서 어슬렁거리곤 한다.

 

 

4

 

아무래도 아빠보다야 엄마가 좀더 낫다. 최소한 나를 때리지는 않으니까.

엄마가 나를 때리지 않는 이유는 그럴 힘이 없기 때문이다. 엄마는 항상 지쳐 있다. 머리를 지탱할 힘도 없는 듯 축 늘어진 어깨에 팔과 목을 길게 늘어뜨린 자세로, 손끝 하나 까딱할 힘이 없다고 자주 말한다. 그러나 엄마의 혀와 입술은 쉬지 않는다. 아무 의미 없는, 방금 했던 말을 계속 반복하며 끊임없이 중얼중얼 떠든다. 평생 말을 한마디도 하지 못하는 형벌을 받았다가 방금 막 풀려난 사람처럼.

그럴 만도 하다. 엄마는 땅 사람 집 세 군데를 돌며 파출부로 일하는데, 그 집들에는 말동무가 아무도 없다. 엄마가 아침 일찍 첫번째 집 문 앞에 도착해 기다리고 있으면 출근하러 나서는 집주인이 엄마를 집에 들여보내준다. 첫번째 집 일이 끝나면 두번째로 이동하고, 두번째가 끝나면 세번째 집으로 간다. 장소는 다르지만 하는 일은 같다. 청소, 빨래, 설거지, 환기, 간단한 반찬과 국을 만들어 그들의 냉장고에 넣어두는 것. 땅 사람들은 입을 모아 엄마의 음식 솜씨를 칭찬한다고 한다. 집에서 요리라곤 라면밖에 안 끓이는 엄마가 어디서 그것들을 배웠는지는 모를 일이다. 하긴 여기에도 번듯한 부엌이 있었다면 얘기가 달랐을지도 모르겠지만. 엄마는 그들이 떠들어댄 칭찬을 심드렁하게, 하지만 빠르게 우리에게 전한다. 그들이 엄마의 음식을 얼마나 게걸스럽게 먹어치우는지, 얼마나 비싼 식재료들이 그들의 냉장고에서 썩어가고 있는지도. 그러고는 덧붙인다. 재료만 있으면 누구나 만들 수 있는 걸 가지고. 요즘 땅 사람들은 손 하나 까딱하려 하지 않아. 빨래는 세탁기가 해주고 설거지는 식기세척기가 해주는걸.

나는 엄마를 고용한 그 땅 사람들이 굉장히 부자라고 생각했지만, 엄마는 그렇지 않다고 했다. 부자긴 하지만 굉장한 정도는 아니라는 거였다.

걔들은 그냥 바쁜 것뿐이야.

뭘 하느라 바쁜데요?

돈을 버느라 바쁘지.

엄마를 쓰는 데도 돈이 들잖아요.

당연하지. 아니면 내가 뭣 때문에 그 집에 가서 일을 하겠니?

돈을 버느라 돈을 쓴단 말이에요?

더 큰돈을 벌기 위해서 적은 돈을 쓰는 거지.

나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인다. 엄마는 말하는 내내 손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벗겨진 허물을 잡아 뜯는다. 고무장갑은 불편하다며 굳이 맨손으로 일하는 엄마의 손은 습진이 나을 틈이 없다. 뜯겨진 허물이 얇은 비단 조각처럼 하늘거리며 공중으로 날아간다.

너 그거 아니.

뭐요?

두번째 집에 개가 있거든. 주먹만한 갈색 푸들.

물론 그 개에 대해서도 질리도록 들어 알고 있지만, 나는 처음 듣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끄덕하며 엄마의 말을 들어준다.

그게 사람을 졸졸 따라다니면서 아주 귀찮게 해서 골치가 아팠는데, 오늘 가보니까 없어졌더라고. 개는 어디 갔느냐고 물으니까 뭐라는지 아니?

뭐라는데요?

유치원에 보냈대. 유치원!

유치원이요? 개를요?

그래! 개를! 유치원에!

개들이 다니는 유치원도 있어요?

그렇단다. 거기서 뭘 하느냐니까 간식도 먹이고 낮잠도 재우고 산책도 시켜준대. 친구들도 만나고. 친구들! 개 친구들!

그렇게 말하고 엄마는 아주 잠깐 동안 입을 다문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구나, 짐작한다. 땅에서 태어났으면 동생은 지금 유치원에 다닐 나이다. 개도 다니는 유치원을. 우리 식구들 중 누구도 유치원을 다녀본 사람은 없다.

그래도 개들의 유치원이라는 곳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일렬로 누워 낮잠을 자는 개들. 세상의 불행은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엄마의 몸에서는 냄새가 나지 않는다. 땅 사람들의 집에서 욕실 청소를 하면서 자기 몸도 씻는다고 했다. 그 위에 깨끗하게 세탁한 옷을 입고 다닌다. 행색이 지저분하면 아무도 집에 들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얼굴이 새까만 것은 어쩔 수 없다. 이곳 구름 위에는 햇빛을 가려줄 처마도 가로수도 없어, 구름 사람들의 얼굴과 목덜미는 항상 새까맣다. 새까만 얼굴은 구름 사람들의 상징과도 같다. 평생을 통틀어 새까맣지 않을 때는 단 한 순간, 태어난 직후뿐이다.

엄마는 돌아오는 길에 장을 봐 온다. 사다리 앞에서 만나 나와 물건을 나눠 들고 올라오기도 한다. 냉장고가 없으므로 오래 보관해야 하는 것은 먹지 못한다. 가장 저렴한 것들로만 채워진 비닐봉지를 하나씩 끌어안고 구름 위로 올라가는 엄마와 나. 그 안에는 보통 컵라면, 생수 병, 뻥튀기, 약간의 야채, 부탄가스 등이 들어 있다. 봉지를 들고 올라온 날이면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듣고 동생이 집밖으로 뛰쳐나온다. 그러고는 항상 같은 것을 묻는다.

사 왔어?

응.

나는 봉지에서 초콜릿 한 갑을 꺼내 동생에게 쥐여준다. 동생은 낚아채듯 그것을 받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집안으로 들어가버린다. 구름에는 동생과 동갑내기인 꼬맹이들이 서너 명 있는데, 동생은 그중에서 대장 노릇을 하고 있다. 다른 애들보다 체격도 작고 멍청한 편인 동생이 대장질을 할 수 있는 건 초콜릿 덕분이다. 녀석은 그걸 나눠주거나 나눠줄 것처럼 굴며 아이들을 수족처럼 부리는 모양이다. 그걸 아는 나와 엄마는 돈이 정말 없는 날에도 초콜릿은 꼭 하나씩 산다. 덕분에, 동생은 유치원을 못 가도 행복하다.

 

 

5

 

나는 고깃집에서 일한다. 오후 세시부터 새벽 한시까지. 손님을 자리로 안내하고 숯에 불을 피우고 불판을 갈아주고 반찬을 더 갖다주는 것이 나의 할일이다.

처음에 사장은 나를 채용하지 않으려고 했다. 너무 어린데다 딱 봐도 구름 사람인 티가 난다는 거였다.

어디서 티가 나는데요?

얼굴.

얼굴이 왜요?

새까맣잖아.

……

월 백, 어때?

뚱뚱한 남자 사장은 그렇게 말하며 내 얼굴을 흘깃 쳐다보고는 두꺼운 금 목걸이를 만지작거렸다. 싫으면 꺼지라는 듯한 태도였다. 양아치 같은 새끼. 나는 속으로 욕을 했다.

백오까지만 맞춰주세요.

좋아.

계약서 따위는 없었다. 나는 그날부터 주 육 일을 일하기 시작했다.

불을 피우는 일은 재미있다. 토치를 사용해 쇠로 된 화로 위로 불을 한참 쬐어주면 동그란 숯이 빨갛게 달아오른다. 빨간 알사탕처럼. 손아귀에 넣고 돌돌 굴리면 도르륵 도르륵 소리가 날 것 같다. 보기엔 예쁘지만, 긴 쇠집게로 화로째 집어 나를 땐 조심해야 한다. 손님에게 엎어버리기라도 했다간 큰일이 날 테니까. 아직까진 한 번도 그런 실수를 한 적이 없지만 꿈에서는 가끔 일어나는 일이다. 테이블에 줄지어 앉은 손님들의 머리통 위로 불붙은 숯을 쏟아버리고, 고기 냄새에 그들의 살과 머리카락이 타는 냄새가 섞여드는 꿈. 비명을 지르는 손님들 앞에서 나는 당황해 오줌을 쌀 것만 같은 기분이 된다. 방광이 부풀어오르는 느낌이 생생하다. 이건 꿈이야.

잠에서 깨면 온몸에 땀이 흥건하다.

 

손님들이 얼마나 많은 음식을 남기는지 알면 구름 사람들은 소스라치게 놀랄 것이다. 밑반찬은 물론, 심지어 가끔 고기를 남기고 그냥 가기도 한다. 처음에 나는 앞치마 주머니에 비닐봉지를 끼운 채로 그 모든 것들을 챙겨 담았다. 그런데 그걸 본 사장이 봉지를 가로채 모두가 보는 앞에서 쓰레기통에 처넣었다. 그러고는 나를 가게 뒤로 끌고 가 누구 장사 망하게 할 일 있냐면서 윽박질렀다. 어차피 버리는 음식을 가져가는 건데 뭐가 문제냐고 따지자 사장은 두툼한 손으로 내 입을 틀어막았다. 네 의도가 뭐든 간에, 그걸 본 손님은 식당에서 음식을 재활용하는 줄 알 거 아니냐. 나는 할말이 없어 그저 사장의 손이 내 입을 막고 있도록 놔두었다. 사장은 다시 한번 그런 짓을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을러댔다.

그뒤로는 상을 치울 때 보란듯이 모든 음식을 커다란 그릇에 싹싹 모아 치우곤 한다. 얼마나 많은 음식이 버려지는지! 하지만 곧 그것에 무뎌지게 되었다.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젓가락도 안 닿은 음식들을 쓸어 담아 돼지죽처럼 만들어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래도 손님들이 떠나고 나서 불판을 정리할 때, 구운 고기가 남아 있으면 그것만큼은 거리낌없이 입에 집어넣는다. 그렇게 더러운 것도 아니고, 먹지 않을 이유가 없으니까. 특히 기다랗고 큰 뼈에 붙어 있는 갈빗살은 발라 먹기가 어려워서 그런지 곧잘 버려지는데, 나는 그것을 아주 좋아한다. 어느 날 뼈를 따로 챙기는 나를 보고 직원 하나가 물은 적이 있다. 집에 개를 키우나봐? 나는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네, 개구쟁이가 뼈다귀를 어찌나 좋아하는지. 그러고는 불을 피우는 가게 뒤쪽 빈터에 가서 아작아작 뜯어먹었다. 덜 구워져 핏물이 조금 배어 나왔지만 맛있었다. 

 

월급날이면 원에게 고기를 사준다.

구름 사람들이 대개 그렇듯이, 원은 사주는 음식을 마다하지 않는다. 양념갈비를 딱 일 인분씩만 시켜서 고기는 원에게 굽게 한다. 주방 이모들이 친구를 데려왔냐며 물냉면을 한 그릇 말아서 갖다주면 내 어깨에 힘이 바짝 들어간다. 우리는 상에 올라온 그 어떤 것도 남기지 않는다. 모든 그릇을 싹싹 비운다. 깻잎 한 장, 마늘 한 점, 불판에 새까맣게 눌어붙은 양념 방울까지 싹싹 떼어먹은 뒤에야 아쉽게 입맛을 다시며 일어선다.

씨발, 먹은 것 같지도 않다.

이 새끼가, 사준 사람 민망하게.

원은 녹말 이쑤시개를 후식이라도 되는 듯 질겅질겅 씹으며, 가게를 나오기 전 출입문 앞에 놓인 섬유 탈취제를 제 몸에 미친듯이 뿌려댄다. 식구들에게 고기 냄새를 풍기지 않기 위해서다. 원의 집에는 먹성 좋은 어린 동생이 셋이나 있다. 혼자 고기를 먹고 온 것을 알면 그애들은 원을 산 채로 뜯어먹으려 할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상관없다. 어차피 항상 온몸에 배어 있으니까.

고기에 대한 답례로 원은 가끔씩 내게 솜 인형을 하나씩 갖다준다. 인형 뽑기 가게에서 뽑아오는 것이다. 원은 뽑기에 재능이 없다. 원하는 인형을 뽑기 위해 얼마를 쓰는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나는 만족한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먹을 수도 없고 입을 수도 없는, 다만 귀엽고 폭신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무언가를 갖는 일은 기쁘다. 그것을 얻기 위해 원이 했을 고생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인형을 받으면 나는 구름 끝까지 걸어간다. 가장자리는 바람이 거세어 위험한데다 난간도 하나 없어 아무도 오지 않는다. 비닐봉지에 꽉꽉 담긴 쓰레기만이 산처럼 쌓여 있다. 나는 높이 쌓인 쓰레기들을 피해 곡예하듯 조심조심 걸어간다. 반쯤 부서진 서랍장과 금 간 아이스박스 사이에 있는 폐지 무더기를 들추면, 거기에 있다. 내가 숨겨둔 커다란 상자가. 이번에 받은 회색 고양이 인형까지 합하면 총 열다섯 개의 인형이 그 안에 얌전히 놓여 잠자고 있다. 나는 고양이 인형에 코를 묻는다. 학종이, 색연필, 갓 빨아 말린 수건의 냄새가 이와 같을까. 보드랍고 무해하고 깨끗한 요것, 요 예쁜 것 같으니라구. 그러고는 행여 누군가에게 들킬세라 얼른 박스를 닫고 그 위에 도로 폐지를 덮어둔다. 감쪽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