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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를 시작하며

짐승


1 몸에 털이 나고 네 발을 가진 동물.

2 사람이 아닌 동물을 이르는 말.

3 매우 잔인하거나 야만적인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나, 짓궂게 놀리기에 나는 좀 애매한 여자애였던 모양이다. 남자애 대여섯 명이 머리 맞대고 며칠을 궁리하더니, 겨우 내 이름 ‘지승’에 받침 하나 더한 ‘짐승’을 별명으로 붙였다. 여러 명이 나를 둘러싸고 “짐승아, 짐승아!” 해도 내겐 도무지 타격이 없어서 혹시 내가 모르는 의미가 따로 있나 하고 찾아본 사전의 의미가 대략 위와 같았을 것이다. 첫번째 의미부터 마지막 의미까지 나와는 연결점이 없었다. 몸에 털은 있어도 발은 두 개였고, 사람도 동물이라고 배웠기 때문에 헷갈렸지만 어쨌든 나는 사람이었고, 지금과 달리 잔인하거나 야만적이지 않았다. 동물은 한자어인데 짐승은 순우리말이구나, 하면서 나는 잠시 골똘하다가 3번 아래에 ‘4 김지승’이라고 써넣었다. 


사전에 내 이름을 적은 날부터 나는 나처럼 짐승의 네번째 의미에 스스럼없이 자기 이름을 기입한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알아봤다. 일기가 기억의 장르라면, 이 글은 그런 짐승들의 기억이 일상을 할퀸 흔적에 대한 메모 정도가 될 것 같다. 짐승들의 애정이 어디 다감하기만 할까. 할퀴고 물고 밀고 굴린다. 그렇게도 만난다, 우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