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를 마치며

난 애를 둘째처럼 키울 거야.”

작년 11월 엄마가 된 나의 언니는, 아기를 낳기 전 이렇게 말했다. 직관적으로 이해했지만, 확인차 되물었다.

 

그게 무슨 뜻이야?”

언니가 대답했다.

막 키운단 뜻이지.”

 

언니가 이 말을 한 후 현장에서 잠깐 진실 공방이 벌어졌다. 엄마는 본인이 언니에게 먼저 한 말이라고 주장했고, 언니는 자기가 한 말에 엄마가 동의한 거라고 주장했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같은 논의였다. 존경하는 판사님, 결국 두 사람 다…… 둘째는 막 키우는 거라는 말에 동의한단 뜻이잖아요? 막 키운 둘째 딸이 듣고 있거든요?

 

뭐든지 처음이 어렵고 두번째부터는 쉽다. 출산과 육아도 그럴 것이다. 각종 시도와 시행착오는 대체로 첫째의 몫이다. 둘째쯤 이르면, 양육자도 경험이 쌓인다. 엄마는 첫아이가 조금이라도 잘못될까봐 전전긍긍하는 마음에 언니를 강도 높게 통제했다. 두 사람은 가보지 않은 길을 함께 가느라 자주 엉망진창이 되어 끌어안고 나뒹굴었다. 그에 비해 나에 대해서는 느긋하고 자유로운 편이었다. 엄마는 경력자였기에 처음만큼 힘을 주지 않았다. 자식이 아이돌 콘서트장에 가거나 학원을 빠지고 볼링장에 간다고 해서 큰일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 , 원래 애들은 흙도 먹으면서 크는 법이지……”

 

언니가 말한막 키운다는 이런 뜻이다. 적당히 쿨하게, 너무 연연하거나 얽매이지 않으면서, 상호 자유로운 관계를 추구하는. 잘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지 않고, 할 수 있는 만큼만, 너무 찌들지 않으면서. 이런 태도야말로 양육에서 필요한 여유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둘째처럼 키우라는 말의 정확한 의미는 다음과 같을 것이다. ‘여유롭고 자유롭게 키운다.’ 전둘연이여, 서러움을 떨치고 이제 차녀 프라이드를 걸칠 때다.

 

또 딸인 나의 존재가 양육자에게는 별로 경이로운 세계가 아니라는 사실이 어렸을 때는 못내 서운했다. 하지만 가족이라는 건 애초에 자신의 역할에 만족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지옥의 팀! 주어진 자리가 만족스럽지 않다면, 내가 직접 일굴 수밖에. 차녀가 든 삼지창에는 인정욕구와 열등감, 그리고 주변을 두루 살피는 눈치가 영롱하게 빛난다. 덕분에 어딜 가든 적당히 잘 녹아들고, 제일 존재감 약한 사람을 찾아내 먼저 다가가는 능력이 발달했다. 사소한 것에 서러웠기에 사소한 것을 알아보고, 대체될 수 없는 고유함을 열망했기에 자기만의 것을 찾아 고군분투했다. 여기까지 말하면 다 치유된 멋진 작가 같지만, 여전히 찌질한 차녀1에 불과해서 며칠 전에도 가족과 통화하다가 하마처럼 울었다. …… 사랑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평생 극복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래도 꾸준히 생각한다. 나는 부정적인 조각과 긍정적인 조각이 어지럽게 붙어 있는 입체적인 존재라고. 나의 괴상하고 사랑스러운 친구들처럼, 나 역시, ‘그럼에도제법 괜찮은 인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묘한 용기가 솟아오른다.

 

『차녀 힙합』을 쓰면서 다양한 차녀들을 인터뷰했다. 인터뷰의 마지막은 이 질문으로 마무리했다. “열 살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대답은 서로 달랐지만 들을 때마다 눈물이 났다. , 어린 시절의 나는 이런 말이 듣고 싶었구나……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든, 이제 우리는 다 자랐다. 여기서부터는의 과제다. 훌훌 털어버리지 못해도, 계속 원망해도, 아직도 서러움이 젖은 빨래처럼 가슴속에 구깃구깃 뭉쳐 있어도, 괜찮다. 열 살의 나에게, 그리고 나로는 충분하지 않을까봐 마음 졸였던 모든 딸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너무 애쓰지 않아도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