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회

당근이 있기 전부터 나는 당근이었네

“저 혹시…… 당근이세요?

지하철역 근처나 큰 건물 앞에서 종종 중고 거래를 하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예전에는 중고나라같은 인터넷 카페가 강세였다면, 최근에는 중고 거래 앱 당근마켓이 중고 거래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당근마켓은 위치 정보를 중심으로 근처의 중고 매물을 보고 또 살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다보니 주민들끼리 다양한 정보를 공유하고, 함께 산책하거나 심지어 벌레를 잡아줄 사람을 찾는 등 지역 커뮤니티의 역할도 톡톡히 한다. 나도 당근마켓을 통해 쓰지 않는 물건을 무료 나눔 하거나, 누수가 발생했을 때 후기 좋고 단골 많은 업체를 골랐다. 자원 순환의 의의를 깨닫고 당근마켓을 사용하기 전까지, 나는 중고 거래에 꽤 부정적이었다. 왜냐하면 차녀는 당근이 있기 전부터, 아니 중고나라가 생기기 전부터, 아니, 아나바다 운동이 시작되기 전부터 첫째의 중고 물품 수거 전문이었으니까.

 

어릴 적 앨범을 들여다본다. 첫아이의 감동이 고스란히 담긴 언니의 사진이 가득하다. 익숙한 옷이 보인다. 그럴 수밖에. 이 옷은 내 사진에서도 본 적 있다. 내가 입었던 옷은 조금 사용감 있지만. 특히 성별이 같은 두 아이를 기른다면, 첫째가 쓴 물건을 둘째가 물려받는 것은 여러모로 합리적이다. 아이는 금방 크고, 첫째의 물건이 아직 멀쩡한데 그럼 새로 사?! 다 큰 둘째는 물론 안다. 당연히 물려받아야지~! 하지만 아이에게는 어른의 합리적 선택을 이해할 의무가 없다. 충분히 서운할 만하다.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감정이다.

 

언니의 모든 물건은 언제나 신상이었다. 첫째는 온갖 브랜드의 옷과 유아용품을 섭렵한다. 재롱잔치, 학예회, 반장 선거, 첫 생리 같은 이벤트에서 새 옷이나 선물을 사는 유난도 첫째라 가능하다. 둘째 딸의 소유권은 언니가 더이상 필요로 하지 않는 것에 한정된다. 언니에게 안 맞아서, 언니가 질려서, 언니는 새로 샀으니까. 언니가 계속 쓰는 것은 나에게 기회가 오지 않았다. 사달라고 하면 이런 답이 돌아온다. “언니 거 같이 쓰면 되잖아.” 하지만 어머니, 같이 쓰라고 사준 물건을 첫째는 당연히 자기 것이라고 인식하는데요. 자기 기분좋을 때만 좀 쓰게 해주는데요. 입이 댓 발 나와 돌아간다. 그리고 한껏 비굴한 웃음을 띠며 언니에게 컴퓨터 좀 해도 되냐고 부탁하거나 심부름을 해준다.

연년생인 나는 언니의 손길이 묻은 옷, 신발, 장난감, 휴대폰까지 물려받았다. 내 첫 휴대폰은 언니가 쓰던 애니콜이었는데, 언제쯤 저게 내 손에 떨어지나 호시탐탐 노렸다. 어차피 나에게는 새 폰을 사주지 않을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콩고물을 염두에 두고, 새 폰을 사달라고 조르는 언니의 시위(?)에 연대했다. 마침내 언니가 휴대폰을 바꾸는 데 성공해, 나는 2년 정도 쓴 폰을 무료 나눔 받았다. 그것만으로도 뛸듯이 기뻤다. 나에게는 언니가 그전에 가졌던 삐삐마저 사주지 않았으니까. 당시 구독하던 만화 잡지에서 오천 원만 내면 삐삐를 준다는 쿠폰을 오려서 엄마에게 읍소했지만 통하지 않아 눈물을 쏟았다. 씨이. 언니는 최신 삐삐 차고 다녔잖아. 삐삐의 선명한 빨간색마저 기억에 생생하다.

내 몫은 언제나 차선이었다. 인형 두 개를 사면 언니가 고른 뒤 남은 게 내 차지였다. 안나 인형을 안은 채 언니의 엘사 인형 머리를 만지작거리는 식이다. 한번은 가습기를 사려고 알아보다가 중소기업 제품 리뷰에서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대충 이런 내용이다. “첫아이 자취 시작할 땐 다 알아보고 제일 비싼 L사의 가습기를 사줬어요. 써보니 그렇게까지 좋은 건 필요 없겠다 싶더라고요. 그래서 둘째 가습기로 이 제품 사줬습니다. 만족해요.” 두 제품의 가격은 약 5배 이상 차이가 났다. 제 발로 중소기업 제품을 사러 들어간 나는 모르는 사람의 아이디 위로 마우스 휠을 빙글빙글 돌리며 외쳤다. 어머니! 둘째도 좋은 거 좀 사주면 안 되나요?

 

장녀는 양보를 강요받지만, 양보의 역설은 가진 자만이 할 수 있는 행위라는 것이다. 차녀도 양보란 걸 해보고 싶다. 하지만 할 수 없다. 탐날 만한 걸 가지지 못했으니까. 오로지 투쟁, 투쟁, 그리고 쟁취가 있을 뿐!

언니는 함께 입는 옷에 툭하면 뭘 묻혀오는 나의 무심함에 치를 떨었다. 조금 변명을 하자면, 나는 새것을 애지중지해본 경험이 별로 없다. 항상 조금 닳은 옷, 올해까지만 입고 버리면 딱인 옷을 입고 활보했고 유행이 지나간 물건을 썼다. 조심스러움이 몸에 밸 기회가 없었다. 애착을 형성할 만큼 특별한 물건을 가져본 적도 거의 없다. 내 소유물은 내가 갖고 싶어해서가 아니라, 아직 쓸 만해서 나에게 양도된 것들로 이루어졌으니까. 실용성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유행이나 물건의 상태에 둔한 데는 타고난 기질 탓도 있겠지만, 이런 둘째의 숙명도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게다가 우리집은 자식이 많으니까 내가 가장 비싸고 좋은 물건을 갖겠다고 요구하면 부모를 힘들게 할 것 같았다. 눈치보는 마음과 내면의 죄책감 때문에 나는 늘 제일 좋은 것이 아닌 두번째나 세번째로 괜찮은 물건을 골랐다. 그러지 않아도 될 때조차 무의식적으로그런 버릇이 튀어나왔다.

 

몇 년 전, 스마트폰이 먹통이 되어 무척 애를 먹었다. 나는 줄곧 LG 폰을 쓰고 있었는데, 심지어 두번째 폰은 중고로 산 참이었다. 한 차녀 친구는 나와 처음 만났을 때 자신의 LG 폰을 들어 보이며 소리쳤다. “어! 나 말고 LG 폰 쓰는 사람 처음 봤어!” 우리는 눈을 마주치고는 서로를 놀렸다. “음~ 아주 개념녀야~” “검소한 게 1등 신붓감이여~ 혹시 국밥도 좋아하세요?” 자조 개그였다(실제로 국밥 좋아한다. LG 폰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업계 1위 제품이나 가장 비싼 것은 아니라는 뜻이니 오해 없길). 물건을 고를 때면 매번 내 안에서 어떤 브레이크가 걸렸다. 눈썰미도 없고 스마트폰의 다양한 기능을 활용할 줄도 모르는 나에게는 이 정도가 딱이라며 스스로 상한선을 정했다. 새 핸드폰 역시 나온 지 1, 2년 정도 된 모델이나 깨끗한 중고를 사야겠다고 마음먹고 알아보고 있을 때 우연히 본가에 방문했다. 그리고 보았다. 나의 동생들이 아이폰 최신형 모델을 쓰고 있는 것을. 순간 이게 뭐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나는 내가 벌어서 사는 물건조차 이렇게 쩔쩔매고, 그렇게까지 좋은 건 쓸 필요 없다고 나를 설득하지? 대체 누구의 눈치를 보는 거야? 나는 눈 딱 감고 당시 최신형 모델이었던 갤럭시20을 샀다. 나의 주변 사람들과 가족들은 깜짝 놀라면서 한마디씩 보탰다. “어?! 이진송 최신 폰 쓰네?!이진송 최신 폰이라는 여섯 글자가 한동안 일종의 유행어였다. 그만큼 내가 제일 좋은 물건을 사는 것은 드물고 낯선 일이었다.


그러니, 중학교 3학년 때 막내 외삼촌이 나에게 MP3를 사줬을 때의 내 심정은 전둘연(전국둘째연합) 회원들만이 온전히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그 자리에서 까무러치지 않은 것이 지금도 세계 7대 미스터리 중 하나로 남아 있다. 2003년 아이리버에서 출시한 iFP-300, 소형 잠수함을 닮은 모양으로 유명했던 히트작이다. 우아한 곡선과 편안한 그립감, TV 광고로만 보던 제품이 내 손바닥에 쏙 들어왔다. 그것도 새삥의 광택을 빛내면서. 낯설고 황홀했다. 살면서 내가 새 제품의 박스를 뜯고, 내 손으로 비닐을 벗기는 날이 오다니. 새 제품에 전원이 들어오는 순간의 불빛을 보고 있다니!

막내 외삼촌은 언니와 내가 어릴 때 우리집에서 몇 년 정도 함께 살았다. 검소하고 성실하기만 했던 부모님과 달리 멋과 흥을 알았다. 월급날이면 빨간 리본이 묶인 피자 상자를 들고 퇴근해 우리를 흥분시켰고, 만화 대여점에도 데려가주었다. 삼촌 본인이 막내다보니 자연스럽게 나에게 시선이 갔던 것 같다. 그러니 당시에도 꽤 고가였던 물건을 턱 사주었겠지. 다시 생각해도 정말 감동적이다. 고마워요, 삼촌. 나는 어릴 때 삼촌 돼지저금통이나 털었는데…… 물론 들켜서 아침밥 먹다 말고 엎드려뻗쳐를 했지만 말입니다.

언감생심이었던 최신형 전자기기를 선물받은 날의 충격과 감동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생생하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 식으로 말하자면 그 사건은 나의 핵심 기억 중 하나다. 128MBMP3에는 노래가 30곡도 채 들어가지 않았다. 하지만 용량을 가늠할 수 없는 행복이 한가득 함께했다. 단순히 새 물건을 가졌다는 기쁨이 아니었다. 나도 누군가에게 새것을 선물받을 만큼 충분히 사랑받는, 새것을 가져도 되는 소중하고 귀한 아이라는 메시지가 전해졌다. 지금도 손안에 쏙 들어오는 그만한 크기의 물건을 꼭 쥐면 그때의 감정이 되살아난다.

 

안타까운 일이다. 부모는 자식을 차별할 생각이 없었고 그저 제한된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서 열심히 살았을 뿐인데, 그런 선택이 나에게는 섭섭함을 안겨주었다. 그들의 OST로는 백예린의 노래가 좋겠다. <그건 아마 우리의 잘못은 아닐 거야>. 각자의 최선이, 사랑하는 사람에게도 반드시 최선은 아니라는 사실에서 비극이 싹튼다. 좀 오버해서 썼지만, 나도 분명 나만을 위해 마련된 많은 선물을 받으며 살았다. 다만 언제나 헌 물건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았고, 늘 새것을 가진 비교의 대상이 바로 옆에 있다보니 자려고 누우면 서러운 기억이 이불 밑 완두콩처럼 등에 배길 뿐이다. 내 물건은 언제나 헌 거. 그래서 내 마음은 아직도 헝거Hunger.

 

다른 차녀 친구들의 핵심 기억에도 나의 MP3처럼, 온전하고 반짝반짝한 무언가가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는 그런 기억으로 평생을 살아가니까. 없다면, 늦지 않았다. 지금이라도 다른 여러 조건과 타협하지 말고, 순수하게 나만을 위한 선물 하나를 골라봤으면 좋겠다.

나는 사람들에게 작은 선물을 불쑥불쑥 사주는 것을 좋아한다. 엄마와 언니는 이런 나를 두고 돈이 줄줄 샌다며 놀린다. 하지만 나는 네 생각이 나서 샀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듣는 것도 하는 것도 좋다. 그때 내가 느꼈던 기분을 다른 사람들도 경험하기를 바란다. 꽃 한 송이라도, 이건 내가 널 위해 준비한 온전히 너만의 것이라는 애정어린 메시지가 닿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