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회

조난(1)

임정희는 요즘 들어 자주 샛길로 빠졌다. 매일같이 오가던 익숙한 등산로를 걷다가도 정신을 차리고 보면 인적 없이 나무만 빼곡한 숲 한가운데를 헤매고 있었다. 가파른 흙길을 기어오르기라도 했는지 손톱 밑에 까맣게 흙이 끼어 있곤 했다. 언젠가는 집이 흙탕물에 잠기는 꿈을 꾸다 깼는데, 일어나보니 실제로 온몸이 흠뻑 젖어 있던 적도 있었다. 유리창을 부수며 난폭하게 들이치던 물소리가 웅성거리는 사람들의 목소리로 바뀌는 순간, 눈앞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쏟아지는 햇빛에 도로 눈을 감자 손끝에 미지근한 바람이 감겨드는 것이 느껴졌다. 그제야 서서히 정신이 들었다. 자신이 계곡물에 빠졌었다는 것을 알려준 사람은 국립공원 관리소의 안전요원이었다. 멀쩡히 등산로를 걷던 자신이 갑자기 가파른 비탈길을 내려갔다고 했다. 뒤따라 걷던 등산객들이 임정희가 바위와 바위 사이를 뛰어넘다 미끄러져 물에 빠지는 것을 목격하고 허겁지겁 그녀를 뭍으로 건져올렸다. 물이 얕아 뇌진탕이 왔을 수 있으니 꼭 병원에 가보시라는 안전요원의 당부를 한 귀로 흘려들으며, 임정희는 끝없이 흐르는 계곡물을 바라보았다. 물이 저렇게 맑았어야 했는데. 그래야 길몽인데.

며칠 뒤 임정희는 언니들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언니들은 그녀가 이곳에 이사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무렵, 둘레길을 오가다 친해진 무리였다. 한동네에 사는 네 명의 언니들은 모두 칠순이 훌쩍 넘은 나이였지만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산을 올랐다. 언니들은 이 동네엔 산을 오르는 것을 목숨처럼 여기는 사람들 천지라고, 어느 날 자신들 중 하나가 안 보이면 저세상에 간 것으로 알라고 농담을 하기도 했는데, 임정희에게는 차츰 그것이 농담이라기보다는 암묵적인 규칙으로, 자연의 엄연한 섭리로 받아들여졌다. 그녀는 아침밥을 챙겨 먹은 뒤 느긋하게 움직이는 편인데다 남자친구와 함께 밤을 보내거나 하는 모종의 이유로 부지런한 언니들과는 마주치는 시간이 어긋날 때가 많았다. 그러나 간혹 무서운 기분에 잠을 설친 날이면 남자친구를 제쳐두고 일찍 집을 나서곤 했다. 걷잡을 수 없이 밀려드는 막연한 두려움을 이해해주는 남자를, 임정희는 평생 단 한 명도 만나본 적이 없었다. 북한산성 입구인 대서문을 지나 한 시간여를 걸으면 곁길에 비스듬히 놓인 정자 하나가 나왔는데, 그곳에 가면 감자나 곶감을 먹으며 느긋하게 아침때를 보내는 언니들을 만날 수 있었다. 난간에 나란히 기대어 앉아 아무렇게나 놓은 작은 발 네 쌍을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조금 풀렸다.

물에 빠져 죽을 뻔한 것보다 한끗이 어긋나 돈 들어오는 꿈을 놓친 게 더 분하더라는 임정희의 말에 언니들이 저마다 토를 달았다. 누구는 그래도 같은 물이니까 좀 기다려보라고 했고, 누구는 외려 그런 꿈은 사고를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언니들 중 하나가 자기는 대웅전 뒤로 후광이 비치는 꿈을 꾼 적이 있는데 이십 년이 지나도록 아무 일도 안 생기더라고 하자 다른 언니가 말을 받았다. 죽은 사람 보는 게 제일이야. 그만한 게 없어. 자연스레 이야기가 망자의 혈색과 행색으로 이어지는 동안, 임정희는 살면서 자신이 꾼 길몽들을 떠올렸다. 지금도 기억나는 인상적인 꿈들이 더러 있었다. 그때마다 좋은 일이 일어났는가 하면 그건 아리송했지만, 아주 없었던 건 아니었다. 운좋게 생식 대리점을 인수받아 한창 돈을 만질 무렵에는 똥밭을 구르는 꿈을 자주 꾸었다. 뭐니 뭐니 해도 딸아이를 가졌을 때 꾼 태몽만큼 생생한 것은 없었다. 맑은 물에서 노니는 무지갯빛 잉어를 낚는 꿈이었다. 임정희는 귀한 꿈은 입에 올리지 않는 법이라던 시어머니의 충고에 따라 지금껏 누구에게도, 심지어 딸에게도 태몽에 대해 알려주지 않았다. 절에 다니기 시작한 뒤로는 탐스러운 연꽃을 만지는 꿈을 꾼 적도 있었는데…… 그땐 어떻게 됐더라? 그때, 생각에 잠긴 임정희 앞으로 불쑥 손 하나가 다가왔다. 가장 연장자인 안나 언니가 그녀의 입에 떡을 밀어넣은 것이었다. 

그런데 자네는, 아직 젊은 양반이 벌써부터 정신을 놓으면 쓰겠는가?   

엉겁결에 받아먹은 절편은 냉동 떡을 따듯한 물에 넣어 녹인 것이라 가장자리가 흐물흐물해져 영 맛이 없었다. 안나 언니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녀를 애 취급했다. 그녀는 그런 취급을 받는 게 여전히 어색했지만, 싫지는 않았다. 올해로 예순셋인 자신이 어딜 가서 또 막내 취급을 받을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다친 곳은 없는지 눈으로 살피며 흐트러진 머리칼을 귀 뒤로 넘겨주는 안나 언니의 손길도 모르는 척 받기만 했다. 임정희는 오 남매 중 셋째로 위로 언니와 오빠가 하나씩 있었고 아래로도 남동생과 여동생이 있었다. 어릴 적 죽은 형제까지 합하면 그보다 훨씬 많았지만, 오래전 일이라 모두 잊었다. 형제들은 하나같이 모난 구석 없이 순하고 소박한 성정이었는데, 임정희만은 투지도 욕심도 많아 별종 취급을 받았다. 딸이라는 이유로 고등학교에 보내주지 않은 엄마를 두고두고, 뇌졸중으로 돌아가실 때까지 원망한 사람도, 불행한 결혼생활을 박차고 나간 사람도, 연고 하나 없는 서울에 무일푼으로 상경한 사람도 모두 임정희가 유일했다. 그래서 형제들은 그녀를 이해하지 못했고, 어떻게 위로해야 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임정희의 형제들은 일과를 마치면 식탁에 둘러앉아 자신들의 노고로 일군 양식을 하나님의 공으로 돌리는 독실한 개신교도들였기에 수시로 맞닥뜨리는 고난과 역경, 슬픔과 분노를 하나님의 선물로 여기는 것처럼 자신들이 살면서 얻은 정당한 노력의 대가도, 심지어 타인의 선의나 희생조차도 하나님의 은혜로 여겼다. 그러니 자신의 욕망과 성취를 그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임정희가 그들에게는 다른 인종이나 다름없었다. 제삿날마다 둘러앉아 성경책을 놓고 주기도문을 외우고 찬송가를 부르는 것에 도무지 적응할 수 없었던 그녀가 서울로 상경한 이후 고향에 발길이 뜸해진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임정희는 양순하기만 한 자신의 형제들을 답답해했다가 그들의 무심한 모습에 서운함을 느끼기도 했고, 안분지족하는 생활 태도를 은근히 무시하다가도 한순간에 그 모든 것을 그리워했다.

겁도 없이. 

그것은 임정희가 살면서 형제들에게 가장 자주 들은 말 중 하나였지만, 임정희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그들만큼 자신에 대해 몰이해한 이들도 없으리라고 생각했다. 자신은 누구보다도 겁이 많았으니까. 어린 시절 형제들과 다 같이 과수원에 놀러갔다가 오두막에 잠든 자신을 내버려두고 갔을 때도 그랬다. 뒤늦게 깨어난 그녀는 어둠과 적막에 휩싸인 사방을 둘러보다 혼자 남겨졌다는 걸 깨닫고는 겁에 질려 울음을 터뜨렸다. 언니와 오빠와 동생들의 이름을 번갈아 부르며 가로등 하나 없는 산길을 허겁지겁 뛰어내려와 집에 도착했을 때, 그녀의 형제들은 안방에 둘러앉아 장떡을 나눠 먹고 있었다. 불그죽죽한 임정희의 얼굴을 보더니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눈물과 땀에 전 그녀의 손에 장떡을 쥐여주는 언니를 바라보며, 어린 임정희는 누구에게도 얕잡히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 이후로 임정희에게는 말할 수 없는 것들이 늘어났다. 주로 실수나 실패에 관한 것들, 슬픔이나 두려움, 위로받고자 하는 마음 같은 것들이었다. 임정희는 이 년 전 언니가 유방암으로 죽었을 때를 떠올렸다. 대전에서 장례를 치른 직후, 그녀가 한동안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사실은 지금까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비밀이었다. 무서워서였다. 장례를 치르느라 지친 몸을 안방 침대에 뉘었을 때, 방문 너머로 누군가가 자신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곧바로 일어나 현관문의 잠금 장치를 확인하고 베란다의 이중창과 커튼까지 꼼꼼하게 닫았다. 이 동네엔 좀도둑이 꽤 있었다. 잠을 자지 못해 예민해진 탓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침대에 눕자 다시금 방문 너머로 집요한 시선이 느껴졌다. 그건 낯선 누군가의 시선 같기도 했고 죽은 언니의 시선 같기도 했다. 언니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자 무서움이 걷잡을 수 없이 커져갔다. 임정희는 결국 방밖으로 나갔다. 부엌과 거실 전등, TV를 죄다 켜둔 채 집안을 밤새 서성였다. 해가 뜰 무렵 거실 구석에서 기절하듯 쪽잠이 들었던 그녀는 눈을 뜨자마자 간단한 옷가지 몇 벌만을 챙겨들고 집을 나와 모텔에 방을 잡았다. 그녀는 그 사실을 당시 사귀고 있던 남자친구에게도, 하나뿐인 딸인 수민에게도 숨겼다. 대신 식당에서 가능한 오래 일하면서 몸을 혹사시켰고, 마감 시간이 다가오면 근처 가게에서 음식을 사 들고 와 사장 부부와 나눠 먹으며 시간을 끌었다. 일부러 보란듯이 크게 소리 내어 웃기도 했다. 일주일쯤 지나자 무서움이 조금씩 가시기 시작했다. 다행스러운 일이었지만 곧 그 자리에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아무리 그래도 언니를 무서워하다니. 임정희는 그 사실이 창피했다. 창피해서 시간이 지난 뒤에도 누구에게도 말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이 언니를 두려워했다는 사실에 마음이 상했다는 걸 깨달았다. 집으로 돌아온 뒤 남은 것은 후회와 슬픔의 시간이었다. 임정희는 은근히 언니를 무시해왔었다. 변변한 직업도 갖지 못한 남자와 결혼한 언니를, 없는 살림에도 거절을 못해 온 가족 보험을 들고 강매당한 가습기와 화장품 따위를 장롱에 숨겨두었다가 형부에게 걸려 쫓겨날 뻔한 것을 비웃었었다. 어디가 모자란 게 분명하다고, 나사가 빠져도 한두 개가 빠진 게 아니라고 다른 형제들에게 빈정거렸었다. 이제 와 돌이켜보면 후회가 되었다. 언니는 형제들 중 유일하게 그녀에게 돈을 빌려주기도 했었다. 자신도 언니의 유약한 성정에 덕을 봤으면서. 그렇게까지 이야기할 필요는 없었는데. 임정희는 이곳으로 이사올 때까지 거실에서 잠을 잤다. 더는 시선이 느껴지지 않았지만, 어쩐지 침대에서 자는 것이 꺼려졌다. 

우리 신부님한테 기도라도 부탁해볼까?

안나 언니는 산에서 종종 넋을 놓는다는 임정희의 말에 적잖이 신경이 쓰이는 눈치였다. 

저는 절에 다니잖아요. 

기도에 그런 게 어디 있는가? 다 재량껏 하는 거지.

임정희는 요즘 자신이 왜 샛길로 빠지는지 알 것 같았다. 이게 다 잡생각 때문이었다. 한번 생각에 빠지면,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무얼 하는지 잊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신이 들었다. 물에 빠진 건 임정희에게도 놀랄 만한 일이었지만, 으레 그랬듯 다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 자신은 정상이 아닌 게 정상이었다. 임정희는 하루에도 열두 번씩 죽고 싶었다. 그러다 곧 죽어도 죽기 싫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누구 좋으라고. 임정희는 정신 똑바로 차리자고, 정신머리를 붙잡자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래서 산에서 길을 잃은 지금, 그녀는 그때 자신이 신부님에게도 스님에게도 기도를 부탁하지 않은 것이 깊이 후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