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으름 씨 뱉기(1)

채림이 엄마에게 받은 선산의 주소는 부안군 안평리 산 21번지. 그러나 산의 주소라는 게 그렇듯 등기 서류에나 적힌 문자일 뿐 그곳으로 가는 정확한 지표는 되지 못해서, 근방에 이른 후로는 엄마가 말해준 모호한 설명에 의지해 길을 찾아야 했다. 채림이 ‘왕천 손두부’ 간판을 발견한 뒤부터 긴장한 채 ‘가드레일이 끊어지는 지점’을 발견하려 차창 가까이에 얼굴을 댄 것도, 그러다 현우에게 좀 천천히 가라고 윽박을 지른 것도 그런 이유였다.

“다 보면서 가고 있는데 왜 짜증이야. 이런 도로에선 서행이 더 위험한 거 몰라?”

채림은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왔다. 도로는 평범한 국도였고, 먼저 이유 없이 짜증을 낸 쪽은 현우였다. 엄마의 배웅을 받으며 시골집을 나선 뒤 운전해 오는 내내 한마디도 하지 않다가, 룸미러로 뒷좌석을 확인하곤 지수가 잠들어버린 게 채림 탓이라는 양 이제 어떻게 데리고 올라갈 거냐고 쏘아붙였고, 그나저나 너 성묘 한 번이라도 가본 적 있냐고, 나는 대학 가기 전까지 평생을 숙창리 시골에 살았어도 제사 한 번 지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고, 아버지 어머니가 다 천주교인이라 성묘나 제사 같은 구시대적인 건 다 사라진 줄로만 알았다며 채림의 신경을 긁었다.

“그렇게 귀찮으면 네가 칠억 삼천 만들어보든가.”

“넌 내가 귀찮아서 이러는 것 같아?”

그렇게 말한 현우가 속도를 늦추더니 부드럽게 핸들을 틀었다. 가드레일이 끊어진 지점을 발견한 거였다. 좁은 비포장도로를 지나자 엄마의 설명대로 작은 마을이 나타났고, 맞게 들어왔다는 생각에 안심한 채림은 그제야 어깨의 긴장을 풀었다.

“알아. 엄마 때문인 거. 저기, 저게 왕밤나무 같은데.”

채림이 개울 너머에 있는 나무를 가리켰다.

“왕은 아닌데?”

“저만하면 왕이지, 무슨 바오밥나무만해야 돼?”

현우는 불퉁거리면서도 채림이 손짓한 왕밤나무 쪽을 향해 나아갔다. 개울 위의 짧은 다리를 지나자 왕밤나무 아래 넓은 노지가 나왔고, 현우는 전진과 후진을 반복하며 차가 빠져나가기 쉽도록, 잠든 지수가 깨지 않도록 조심히 주차했다.

“네가 장모님이랑 이야기하는 거 듣고 있으면 미치겠어. 너를 너무 무시해. 넌 나한텐 잘만 소리지르면서 왜 장모님 말은 가만히 듣고만 있어?”

“그래. 알았어. 알았으니까 얼른 칠억 삼천 벌러 가자.”

채림이 어깨를 토닥이자 현우가 한숨을 쉬곤 벨트를 풀어 차에서 내렸다. 채림도 곧바로 따라 내렸다. 하늘이 파랗고 높은 가을날이었다. 시원한 공기를 마시자 엄마 집에서부터 주눅들어 있던 마음이 펴지는 것 같았다. 왕밤나무 아래서 할머니 두엇이 밤을 줍고 있었다. 현우가 뒷좌석 문을 열어 잠든 지수를 둘러업는 사이, 채림은 트렁크에서 커다란 폴리백을 꺼내 어깨에 멨다. 엄마가 챙겨준 성묘 용품들이 담겨 있었다.

“기억이 새록새록 나는 것도 같고.”

채림이 희미한 어린 시절의 기억과 엄마가 그려준 약도를 되짚으며 앞장섰다. 잠든 지수를 업고 뒤따르던 현우가 다행이네, 하고 짧게 대답했다. 코너를 돌자 마을회관부터는 낙엽이 푹신하게 깔린 산길이었다. 왼편에 엄마가 말한 비닐하우스 세 동이 보였고 그곳을 지나면서부터 오르막이 시작됐다. 채림은 시선을 멀리해 풀이 누운 좁은 길을 바라보았다. 인공적으로 조성된 등산로가 아닌 마을 사람들의 발길로 다져진 길이었다. ‘흙냄새부터 다르네.’ 채림은 생각했다. 하늘에선 이름 모를 새가 길고도 희한하게 지저귀는 소리가, 땅에선 무언가가 마른 낙엽과 풀숲을 가르며 나아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십오 분은 올라가야 한다고 엄마는 말했다. 채림은 폴리백을 고쳐 메곤 걸음을 빨리해 산을 오르다가, 현우가 숨을 몰아쉬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 잠시 걸음을 멈추고 기다렸다. 산세는 완만했고 시야도 트여 있는 편이었지만 흙길이라 걷기가 쉽지 않았다. 현우 덩치에 애까지 업었으니 더 그럴 거였다. 얼마 뒤, 허리가 완전히 굽어진 채 산을 오르는 현우의 정수리와 지수의 늘어진 양팔이 보였다. 그 뒤로 지붕, 논, 밭, 비닐하우스, 방금 전에 지나온 것 같은데 나무에 가려져 이제 더는 보이지 않는 오솔길.

“현우야, 조금만 참아. 거의 다 온 것 같아.”

현우는 대답하기도 힘든지 고개만 끄덕였다. 십 분쯤 더 오르다 키가 큰 풀을 젖힌 채림이 외쳤다.

“찾았다! 찾았다 여보!”

직사광선을 받고 있는 두 개의 무덤이 그 앞에 있었다.

“자기야, 돗자리. 돗자리 빨리.”

채림이 허둥지둥 폴리백 속에서 돗자리를 꺼내 펼치자마자 현우가 잠든 지수를 눕히곤 자기도 그 옆에 드러누웠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지수는 한번 잠이 들면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깊이 잤다. 채림도 돗자리 가장자리에 주저앉아 챙겨온 물을 마셨다. 에잇, 현우가 얼굴 위로 강하게 내리쬐는 햇살에 인상을 찌푸린 채 몸을 일으키더니, 입을 반쯤 벌리고 잠든 지수의 얼굴을 바라보다 바람막이 점퍼를 벗어 해를 가려주었다.

“지수 깨기 전에 빨리 하자.”

채림의 말에 자리에서 일어난 현우가 폴리백 속에서 장갑을 찾아 낀 뒤 낫을 꺼내들었다. 그러곤 오른쪽 무덤의 풀을 베기 시작했다. 성묘 같은 건 해본 적 없다더니, 풀을 베 한쪽으로 던지는 솜씨나 수그린 허리의 각도가 예사롭지 않은 게 역시 시골 남자는 시골 남자인가 싶었다. 현우를 지켜보던 채림도 일회용 접시를 꺼내 배와 사과의 윗동을 깎아 올리고, 할머니가 생전에 좋아하셨다는 죠리퐁과 할아버지가 장롱에 숨겨놓고 드셨다던 약과도 꺼내 세팅했다. 그러곤 현우의 장갑 한 짝을 빌려 봉분 위에 솟은 잔풀을 손으로 뜯어냈다.

“현우야, 이만하면 됐어.”

채림은 무덤 중앙에 조화를 놓은 뒤 보기 좋게 접시를 세팅하곤 소주도 올렸다. 두 사람은 돗자리 가운데에 대자로 뻗어 누운 지수의 양옆에 서서 절을 했다.

“이제 인증샷 찍을까?”

현우의 말에 채림이 주머니 속 핸드폰을 꺼내 여러 각도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엄마에게 전송했다. 비로소 미션이 끝난 거였다. 생각보다 쉽게 무덤을 찾았다는 안도감과 가장 중요한 ‘돈 문제’가 끝났다는 개운함. 채림은 오른손을 들어올린 현우에게 힘차게 하이파이브를 했다.

두 사람은 돗자리에 앉아 제사상에 올렸던 사과를 한입씩 베어먹었다.

“근데, 너를 그렇게 예뻐하셨다는데 한 번도 올 생각을 안 했어?”

현우가 잇자국이 선명한 사과를 채림에게 건네며 물었다.

“어렸을 땐 왔는데, 서울 가고부터는 사는 게 바빴으니까.”

채림도 사과를 한입 베어먹은 뒤 다시 건넸다. 현우는 됐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앞으로 삼 년에 한 번씩은 오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채림은 그럴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앞으론 더 바빠질 거고, 지금보다 훨씬 멀어질 테니까. 현우와 칠억 삼천의 증여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무렵, 채림의 핸드폰이 울렸다. 핸드폰에 뜬 발신자는 뜬금없게도 ‘외삼촌’이었다.

“응, 채림아. 느그 엄마가 갑갑질 났는지 나한테 설명 좀 하라고 하드라. 그 무덤이 아니여.”

“예?”

외삼촌은 껄껄 웃었다.

“애먼 무덤에 절했어. 사진 보니까 용태네 무덤이더만. 온 길로 쭈욱, 오른쪽만 구다보면서 내려가면 나올 것이여. 할머니 할아버지 무덤은 그보다 밑에 있고, 양지도 바르고, 비석도 있고.”

전화를 끊은 채림이 뒤돌아보니 통화 내용을 들은 현우가 폴리백 속에 조화와 음식들을 거둬들이고 있었다. 채림은 어르신 이거 죄송하게 됐다며 인사하는 현우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풀숲을 향해 심만 남은 사과를 던졌다.

 

*

 

전주의 엄마 집에 머물던 이틀째 날이었다. 지수는 서재에 틀어박혀 돌아가신 채림 아버지의 오래된 옥편을 보물 다루듯 읽고 있었고, 엄마와 채림과 현우는 뉴스를 보며 포도와 사과를 집어먹던 참이었다. 현우와 눈빛을 주고받은 채림이 입을 열었다.

“엄마, 우리가 미국으로 이민 가려고 하거든. 이게 투자이민이라고, 정말 좋은 기회로 자격이 맞아서 가게 되는 거야. 지금 신청해도 일 년 반은 걸리는데, 내가 말을 좀 두서없이 하지? 무튼 미국 영주권 자격이 생기는 거야. 미국 정권이 바뀌면 조건이 어떻게 달라질지 몰라서 급하게 진행해야 하는 상황이거든?”

현우가 접시 위에 포크를 올려놓고 말을 이었다.

“장모님, 청림학원 아시죠? 거기 대표가 진행하는 투자이민 사업에 들어가는 거예요. 일종의 얼리버드 개념이 있어서 이제 시간 지나면 이 투자 못 들어가요. 투자 원금의 85프로까지 보장되고요. 저는 시애틀 지사 발령 신청해뒀고, 투자다보니 초반에 목돈이 들긴 하는데 배당 수익이 안정적이고 미국은 학비도 저렴해서 채림이랑 지수 고생할 일 없어요 어머님.”

소파를 등받이 삼아 앉은 채, 고개 한번 돌리지 않고 두 사람의 말을 가만히 듣던 엄마는 뉴스가 흘러나오던 티브이를 껐다. 여덟시 뉴스 아나운서는 명절마다 엄마에게 꼭 찾아오는 조카여서, 엄마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저녁 뉴스를 건너뛰거나 끄는 법이 없었다.

“그래서?”

마침내 엄마가 고개를 꺾어 채림을 바라보았다. 채림은 마른침을 삼켰다. 현우네 부모님이 논 만 평을 담보로 농민 우대 대출받아 주신 돈이 팔천.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 전세 보증금 빼서 은행 대출 갚고 나면 육억 이천. 그러고도 사억의 돈이 더 필요하다고 채림은 말해야 했다. 하지만 엄마의 눈빛을 본 순간 입이 굳어 열리지 않았다.

“결정은 다 됐으니 돈이나 내놔라?”

채림이 손사래를 쳤다.

“아냐, 엄마 그런 게 아니라요, 달라는 게 아니고 빌려달라는 거고,”

“제가 이것저것 따져보느라 시간이 촉박해졌습니다 장모님.”

엄마는 이번엔 현우를 노려보았다.

“자네 왜 채림이 말을 끊나? 집에서도 그러나?”

현우가 대꾸를 하지 않자 엄마는 앓는 소리를 내며 두 다리를 쭉 뻗은 채 소파에 등을 완전히 기댔다. 그러더니 채림이 손에 쥐고 꼼지락거리고 있던 포크를 잡아채듯 빼앗았다.

“지수도 안 하는 짓을. 너 중언부언하지 말고 똑바로 말해. 지난번에 왔을 때 나 토지 보상금 받은 거 알았잖아. 그거 달라고 말하는 거 아냐? 나 죽으면 어차피 네 건데 이왕 줄 거 좀 일찍 내놔라 그거지?”

“그런 거 아냐. 그냥 못 들은 걸로 해요 엄마.”

채림이 울먹이자 엄마가 긴 한숨을 쉬었다.

“넌 내가 무슨 말만 하면 우니? 하여간에, 지수 때문에 간다는 거 아냐.”

채림이 맞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도 지수 낳아보니까 알겠지?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 내가 너 유학 가라고 노래를 불렀던 게 다 부모 마음이야. 그렇게 유학 가서 공부하다 유학생 만나 결혼해 한국 들어와라, 귀에 피가 나도록 말할 땐 우물쭈물거리더니. 지수 하나 잘 낳아서 나 같은 마음고생은 안 해도 되니 그건 네 복이다, 네 복이야.”

채림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닭똥 같은 눈물을 떨궜다. 눈물을 닦을 때 현우가 주먹을 꽉 쥔 걸 본 것도 같았다.

엄마는 채림에게 토지 보상금 칠억 삼천을 전부 증여하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건 조건은 하나. 채림의 가족이 성묘에 다녀오는 것이었다. 원래 그 땅은 채림의 할아버지가 과수원을 하려 사들인 뒤 돌아가시기 전 자신의 몫으로 물려준 땅인데 어쩌다 운이 좋아 골프장이 들어서면서 보상금을 받게 된 거니 자신이 주는 게 아니라 외할아버지가 주는 것이다, 공서방이 들었을지 모르겠는데 우리집이 대대로 딸 귀한 집이라 차별은커녕 내가 윗목엔 누워본 적도 없는 사람이다, 내가 그런 집 고명딸이고 채림이가 그 고명딸의 외동딸이다, 저것이 머리가 나빠 기억을 못해서 그렇지 소 잡는 날이면 육사시미가 우리 어머니 아버지 건너뛰고 일곱 살짜리 채림이 입에 먼저 들어갔으니 말 다 한 거다, 그러니 돈을 받고 싶거든 선산에 성묘 가서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에게 자초지종 설명드리고 지수도 인사시켜라, 그리고 너희들, 내 다리가 이 모양 이 꼴이면 산소 가보겠단 말을 먼저 할 법도 한데, 에휴, 됐다, 나무랄 것도 없다, 다 내 얼굴에 침 뱉기다. 그러곤 자신의 두 다리를 어루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