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회

으름 씨 뱉기(마지막)

*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의 무덤만 생각하느라, 채림이 당연히 두 개일 거라고 생각했던 ‘성씨 일가 선산의 무덤’은 총 다섯 개였다.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의 무덤은 그것들 중 가장 아래에 있었다. 탁순자, 성학봉. 채림은 물티슈로 비석의 먼지를 닦아내며 자기도 모르게 속삭였다. 채림이 왔어요. 채림이 딸 지수도 왔어요. 그리고 우린 이제 한국을 떠나요.

현우와 지수는 무덤을 등지고 사진을 찍었다. 채림은 무덤 앞에 조화와 함께 지수가 뜯어 모은 손바닥만한 야생화 꽃다발을 올렸다.

“지수야, 엄마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야. 엄마를 엄청 예뻐하셨대. 이제 아빠 따라서 너도 절하는 거야.”

돗자리에 선 채 현우가 말하자, 지수는 어색한지 몸을 꼬더니 현우의 주머니 속에 손을 넣어 솔방울을 꺼냈다. 그러곤 채림이 차려놓은 상 앞에 그것을 올려놓았다. 세 사람은 절을 올린 뒤 반 남은 소주를 무덤에 뿌리고 죠리퐁을 뜯어 나누어 먹으며 한담을 나눴다. 돗자리 아래, 한낮의 햇살을 품은 땅에서 올라오는 온기를 느끼면서.

“지수야, 너 노래 잘하잖아. 외할머니 외할아버지한테 노래 들려드릴까?”

현우의 말에 지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성묘며 제사며 구시대를 운운하던 현우가 그런 말을 하는 게 놀랍기도 하고 고맙기도 해서, 채림은 웃으며 지수를 바라보았다.

“시작하겠습니다.”

현우는 쟨 뭘 할 땐 꼭 시작하겠다는 말을 한다고 채림에게 속삭이며 키득거렸다.

지수의 선곡은 〈오버 더 레인보우〉였다. 채림은 시선을 먼 곳에 두고 발을 까딱거리며 지수의 노래를 들었다. 영어에 강박이 생겨 그런지 가사의 단어가 쉬워서 그런지 들려오는 노랫말을 자기도 모르게 직역하고 있었다. 무지개 너머 어딘가, 펼쳐진 푸른 하늘, dare, 감히, 꿈꾸던 것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곳.

걱정거리는 레몬 사탕처럼 녹아 없어지고

굴뚝 끝 저멀리 떨어진 곳에서

나를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채림은 오늘따라 ‘레몬 사탕’이나 ‘굴뚝’같은 단어가 더 멀고 어색하게 느껴졌다. 날씨만큼 맑은 지수의 목소리로 듣는 노랫말이 묘하게 이별을 말하는 것 같아 서글프기도 했다. 희망이란 건 만국 공통으로 저멀리 떠나야만 찾을 수 있는 건가. 무심코 고개를 돌린 채림이 본 것은 붉어진 눈시울을 비비고 있는 현우의 모습이었다. 채림은 못 본 척 고개를 돌렸다. 노래가 끝난 뒤 둘은 박수를 쳤고, 분주하게 짐을 챙겼다. 산길을 털레털레 내려오는 길, 아까부터 표정이 침울한 현우에게 채림은 괜스레 주식 이야기를 꺼냈다. 그 이야기만큼 현우를 신나게 하는 게 없었다.

“케이통신은 왜 이렇게 찔끔찔끔 오르지? 다른 엄마들은 수익률 크던데 내 것만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니까?”

“너는 안전한 것만 사잖아. 주식이 리스크만 피한다고 좋은 게 아니라니까. 공부를 해서 정보를 모으고 합리적으로 판단해서 사야지.”

“너 잘났다.”

약오른다는 듯 말하는 채림의 모습에 더 신이 난 현우가 주식에 대한 자신의 이론을 장광설로 펼치는데, 지수가 끼어들었다.

“프로스펙트 이론이죠? 리스크를 피하려다 오히려 손해를 보는 거요. 아빠가 읽던 책에서 봤어요.”

현우는 지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렇지! 하고 기뻐했다.

“그치만 방금 아빠가 한 말이 전부 맞는 말은 아니에요.”

머쓱해하는 현우를 보며 채림이 말했다.

“그치? 아빠는 자기 말이 다 맞는 줄 아는 면이 있어. 우리 지수가 그걸 알아차렸구나.”

“그렇다기보다, 랜덤워크 이론도 떠올라서요.”

“그렇지. 랜덤호크 이론이 떠오르지.”

대충 얼버무린 채림이 현우는 아는가 싶어 흘긋 쳐다보니 현우도 비슷한 표정으로 채림을 바라보고 있었다.

“랜덤워크요. 주식 가격의 상승과 하락은 정보의 합에 의해 합리적으로 예측 가능한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마치 동전 던지기처럼 랜덤하다는 이론이에요. 아빠에게 주식은 합리적인 판단의 영역이고, 엄마한텐 희망적 가치죠.”

현우가 채림이 너한텐 주식마저도 희망이냐며 크게 비웃었다.

“아빠 왜 웃으세요?”

지수가 물었고,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희망이 열등한 거라고 느끼시나요? 왜요? 숫자처럼 눈에 보이는 게 아니라서요?”

걸음을 멈춘 지수가 흠칫 놀란 현우를 바라보곤 집게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두드렸다. 말로 표현하기 위해 생각을 정리하는 자기만의 과정이라는데, 잊어버린 것을 떠올리려는 동작 같아서 채림은 지수가 그럴 때마다 숨쉬는 것도 잊고 집중하게 됐다.

“장자는 ‘도道란 말로 형용하거나 감각으로 인지할 수 없는 것이다’라고 했어요. 또, 인간은 심장이 완전히 멈춘 뒤에도 오 분 넘게 뇌가 활동하는 상태지만, 죽음 이후에 죽음을 인지할 수 있는가는 불가사의의 영역이죠. 아빠가 알고 있는 것이 전부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아빤 늘 엄마를 수치와 논리로 이기려 하지만 실은 언어 표현에 서툰 엄마의 내면에 훨씬 더 깊은 지혜의 강이 있는 건 아닐까요?”

당황해하는 현우에게 채림이 입만 뻐끔거리며 일단 들어, 하고 말했다. 현우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의 의견을 비웃지 마세요.”

채림이 ‘육아의 주도권’을 떠올리곤 지수를 진정시켰다.

“지수가 엄마의 의견이 비웃음을 당한 것 같아서 화가 났구나. 그런데 사람은 누구나 부족한 면이 있어. 그 부족한 면을 너무 몰아세우면 그 사람이 무안해서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어.”

지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뒤에 선 현우가 채림만 보이게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걸음이 빨라진 지수를 선두로 세 사람은 다시 오솔길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한참 뒤, 마치 대화가 줄곧 이어지고 있었다는 듯 갑작스럽게 시작된 지수의 말에 채림과 현우는 동시에 걸음을 멈췄다.

“그래요. 아빠 말처럼 우리나라는 완전히 망할 수도 있죠. 가능하다면 탈출하는 게 최선일 수도 있어요.”

채림과 현우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엄마도 저한테 그랬잖아요. 어디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리면 피하라고, 안전하다는 방송이 나와도 절대 믿지 말고 거기서 탈출하라고. 하지만, 세상엔 위험에 처한 누군가를 구하는 쪽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러다 목숨을 잃는다고 해도요.”

“아니…… 그건,”

방금 전 지수가 한 말들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알아챈 채림이 설명하려는 순간, 지수가 말했다.

“아빠가 말한 노아의 방주엔 그런 사람들이 타야 하는 거 아닐까요.”

목이 메어 떨리는 목소리로 지수는 말을 이었다.

“그런 희생은 손해라고 생각하려고 하고, 투자이민에 들어간 비용을 어떤 직업을 통해 보상해드릴 수 있을까 고민하는 저 같은 애가 아니라요.”

뒤에 있던 현우가 채림의 어깨를 가볍게 밀치고 앞으로 나왔다. 현우는 지수를 안아올리곤 뚜벅뚜벅 산길을 내려갔다. 넋이 나간 채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채림도 걸음을 빨리해 그 뒤를 따랐다.

 

*

 

산의 초입 즈음에서 채림은 큰 소리로 현우를 불렀다.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었다가 발견한 일회용 비닐봉지 때문이었다. 엄마가 거기에 밤을 주워 담아오라고 말했던 것이 떠올랐다. 다섯시가 조금 넘은 시각이었지만 산에는 벌써 그림자가 지기 시작했다. 채림은 바닥에 앉아 발 사이에 밤송이를 끼운 채 밤을 한 알 한 알 까 비닐봉지에 담기 시작했다. 다가온 지수가 뾰족한 밤송이가 벗겨지며 알밤이 나오는 것이 신기했는지 곧바로 따라 했고, 땅에 떨어진 생밤을 주워 옷에 닦아 맛을 본 현우도 밤송이를 줍기 시작했다. 채림은 비닐봉지를 벌린 채 두 사람이 주워 담은 옹골찬 밤들이 쌓이는 것을 지켜보았다. 기분이 말도 못하게 축 가라앉았다. 아는 것도 모르는 것도 없이 이 산을 뛰어다녔을 어린 시절 자신만이 그리웠다. 채림은 궁금해졌다. 지수는 다 자라 어린 시절의 무엇을 추억하고 그리워하게 될까. 분명한 건 그건 채림은 모르는 무언가일 거라는 거였다. 도넛 가게를 나서던 여름날 그랬듯 지수를 위해 무언가를 모른 척하다 이내는 정말로 모르게 되겠지. 채림은 밤으로 가득찬 봉지를 묶으며 중얼거렸다.

“엄마라는 게……”

채림은 똑똑한 지수가 높은 빌딩과 닦인 도로, 한여름 가게의 추위가 당연한 줄 아는 아이로 살아가게 해달라고 빌었다. 이런 세상에선 그편이 낫다고 여겨졌으니까. 채림은 어린 지수의 가슴속에도 자신과 비슷한 모양의 마음이 맺혀 있으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엄마, 엄마!”

밤나무 근처의 작은 비탈 숲에서 지수가 상기된 말투로 채림을 불렀다. 가까이 다가가자 현우가 비탈 안쪽의 무성한 풀과 나무 사이에서 팔을 높게 뻗은 채 뭔가를 따고 있었다.

“뭐해?”

채림은 지수에게 봉지를 건네고 현우에게 다가갔다. 채림이 선 쪽은 아직 빛이 밝은 데 비해 나무 넝쿨이 빼곡한 비탈 숲 쪽은 어두워 현우가 뭘 하고 있는지 잘 보이지 않았다.

“채림아, 그쪽에서 내 허리 좀 껴안아봐.”

“뭔데 그래?”

채림이 현우의 허리를 강하게 붙들었다. 그러자 현우는 까치발을 든 채 얼굴에 풀잎과 꽃가루가 떨어지는 것도 아랑곳 않고 뭔가를 계속 땄다. 마침내 으차, 소리를 낸 현우가 채림과 지수 앞에 양손을 활짝 펼쳐 보였다.

“와, 으름이네. 이걸 어떻게 발견했어?”

채림이 으름 한 알을 집어 껍질을 까고는 현우의 입에 넣어주었다.

“넝쿨이 딱 으름처럼 생겼더라고.”

“지수야, 이게 으름이라고, 한국 야생 바나나야.”

채림은 이번엔 지수의 입에 넣어주었다. 그러곤 또하나를 까 자신의 입에 넣었다. 입속에 도는 으름 특유의 오묘한 단맛이 반가워 채림은 자기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옆에 선 지수가 처음엔 오물거리더니, 으윽, 하는 소리를 내며 입 속에 든 것을 후드득 뱉어냈다. 채림은 지수가 왜 그러는지 알 것 같았다. 현우도 이유를 알았는지 웃으며 지수에게 말했다.

“으름 씨앗은 떫어서 씹지 말고 뱉어야 돼. 아빠 봐봐.”

현우가 입 속에서 발라낸 까만 으름 씨앗을 비탈 쪽으로 후드득 뱉어냈다. 채림도 비탈 쪽으로 씨앗을 후드득 뱉었다.

“왜 둘 다 그쪽에 뱉어요?”

“으름이 자라라고.”

“그래야 또 으름이 자라니까.”

채림과 현우가 동시에 말했다. 고개를 끄덕인 지수가 입을 오물거리며 씨앗을 가려내려다 또 씨를 씹어버린 건지 인상을 찡그렸다.

“씨를 다 뱉긴 힘들어. 그게 으름 맛이야. 먹기 힘들면 그냥 다 뱉어 지수야.”

채림은 그렇게 말한 뒤 마지막 으름 한 알을 깠다. 그걸 입에 가져가는 순간, 지수가 채림의 손을 붙잡고 열매를 빼앗아 기어이 자신의 입에 넣었다. 채림도 현우도, 지수가 마지막 으름을 입안에서 굴리다 가려내지 못한 씨앗을 씹고 인상을 찌푸리는 것을 바라보았다.

“이제 그만 가자.”

그렇게 말하면서 현우는 걸음을 미적거리며 길가에 떨어진 씨앗을 비탈 안쪽으로 발길질해 밀고 또 밀었다.

흙길이 끊어지고 아스팔트가 시작되는 길, 이제 다 와서 모퉁이만 돌면 차가 있다는 걸 모르는 지수가 조금 천천히 가자고, 이러다 다시 오는 길을 잊겠다고 말했다. 시골길에 가로등이 하나둘 켜졌고, 어디선가 개가 짖었다. 다시 온다고? 채림은 지수의 말에 고개를 돌려 산을 올려다보았다. 산은 높고 채림은 작아서, 어쩐지 산이 자신을 품에 안고 내려다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뱉어낸 으름 씨앗은 싹을 틔울까. 그렇게 자라난 으름 씨앗의 떫고 쓴 맛을 아는 사람이 먼 미래에도 있을까. 채림은 어쩌면 저 산이 아주 오래전 어떤 가을날에도 이런 인간 셋을 굽어본 적이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차가 있는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