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회

Fish Identification Specialty Course(물고기 식별 스페셜티 과정)

Fish Identification Specialty Course(물고기 식별 스페셜티 과정)

 

멀미약 한 알을 삼키고 더 몽롱해진 기억 속에서 나의 미성년을 떠올린다. 흔들리기만 할 뿐 어딘가로 도착할 기미가 보이지 않던. 입술이 바짝바짝 마른다. 희미한 잔영처럼 남아 있는 장면들을 기억이라 할 수 있을까. 난데없이 떠올랐다 뒤돌아보는 순간 별안간 흩어지는 노랑줄무늬스네퍼떼처럼…… 기억이란 바다 밑바닥에 가라앉아 있다 무언가 지나가면 뿌옇게 일어나는 모래 회오리와 같을 때가 더 많지 않은가.

 

우리는 기억의 부드러움을 기억하기 전에 망각의 부드러움으로 바꾸어버립니다. 이것이 우리의 사랑법이고 부드러움을 다루는 방식이에요. 이 부드러움은 여러 가지로 작동합니다. (……) 얼마나 잘 결합하고 떨어졌다가 또 얼마나 잘 만나는지요.*

 

수심을 타다보면 군무하듯 무리지어 다니는 물고기들을 만나는 것은 일상이 된다. 눈앞에서 유유히 지나가는 노랑줄무늬스네퍼떼. 양손으로 물살을 가르면 삽시간에 대열이 흩어진다. 형광 노란색 줄무늬를 가진 물고기들이 스네퍼란 학명으로 불린다는 것을 물 밖에서 알게 된다. 바다 밑에서 수중 생물과 마주쳐도 일일이 그 이름을 헤아리진 않는다. 서로 갈길을 가기에 바쁘다. 감각기관이 잠시 반응할 뿐, 그 마주침에 본질적인 의미 같은 건 없다. 더 나이가 들면 기억에 대한 감각기관의 반응도 무뎌질 것이다. 잊으려하지 않아도 잊혀지겠지. 바닷속에서 마주친 수많은 스네퍼떼가 내 등장에 그러했듯이.

 

기억이 트리거피쉬로 찾아와 예리하고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도 실은 이젠 미소로 맞이할 수 있다. 트리거피쉬가 나타났다고 비명을 지르거나 몸부림을 치면, 트리거피쉬는 등지느러미의 가시를 세우고 다가와 공격할 것이다. 지난 기억을 진정 위로하고 포옹할 수 있는 건 내 자신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지난 기억은 내가 아니게 된다. 다시 말해 기억이 ‘나’라는 믿음에서 한 발자국 멀어질 수 있다. 자유로워질 수 있다.

언젠가 기억에 대해 ‘그것에 압도되어 살아가는 것보다 오염되는 편이 나을지도’ 라고 메모한 적이 있다. 오염된다는 자체가 그것을 계속 의식한다는 것임으로 이제 홀연히 왔다 사라지는 것들을 자연스럽게 갈 수 있도록 둘 것이다. 어쨌든 기억은 그것을 간직한 자가 원하는 방식으로 잘려나가고 덧붙여지며 재생된다. 잘려나간 필름을 이어붙이는 동안 어딘가에 정박하는 법을 몰라 수심을 해매는 어린 시절의 나를 발견한다.

 

보통의 미성년이 그러하듯, 나의 미성년 역시 아는 것이 적고 두려운 것으로 가득했다. 애정이 담뿍 담긴 관심과 돌봐줄 이가 필요했고 배워야 할 것들로 작은 책가방이 무거웠다. 마치 외국어를 배우듯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했고(이것이 모국어를 체득하는 과정이겠지만) 때로 이해에 대한 집착이 나를 더 혼란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어른들에게 늘 질문과 호기심이 많던 소녀, 나아가 해소되지 않으면 도서관에서 어른들의 책을 읽던 소녀. 아아, 마치 지금 골목 담벼락 아래서 담배를 태우는 아시아의 소년들처럼 작고 까맣고, 빼빼 말랐던 소녀. 헐렁한 티셔츠를 입고 땡볕 아래서 뛰는 것을 좋아하던. 어린 시절의 나를 묘사하는 일은 마치 죽은 자의 초상을 그리기 위해 죽은 자의 얼굴과 추억을 다시 떠올리는 것처럼 어렵다.

나는 특별하지 않았다. 특별하게 예쁘거나 아름답지 않다는 걸 일찍 깨달았다. 아이들은 인형 같은 외모를 선망했고, 예쁜 아이일 수록 짝꿍 만들기(관계 맺기)가 수월했다. 선택을 받기 위해 기다리지 않아도 이미 그 앞에 많은 선택지가 서 있었다. 아름답게 태어난 아이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태어난 아름다움이 특별한 선물이란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정말이지 사람들이 너무나 나를 보았기 때문에, 나는 내가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여자들처럼, 아름다운 다른 여자들처럼 예쁘다고 착각할 뻔했고 그렇게 믿을 뻔했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고 다른 것, 그렇다, 다른 어떤 것, 이를테면, 기질 때문이라는 것을. 나는 나타내고 싶은 대로 나를 나타낼 수 있었다. 사람들이 내가 아름답기를 원하면 아름다워질 수 있었다. 예쁘기를 바라면, 예를 들어 가족들이 내가 예쁘기를 바라면, 그 어느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다만 가족들을 위해서 예쁘게 보일 수 있었다. 나는 사람들이 나에게 원하는 모든 것이 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믿었다. 난 내가 충분히 매력적이라고 믿었다. 그것을 믿자마자 나를 바라보는 사람에게, 그의 취향에 맞게 내가 바뀌기를 바라는 사람에게 그것은 사실이 되었고 나 역시 그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비록 큰오빠의 죽음을 기도하는 일에 사로잡혀 있으면서도 모든 면에서 매력 있는 소녀가 될 수 있었다. (......)

 

나는 이미 깨닫고 있었다. 나는 특별한 것을 알고 있었다. 여인을 아름다워 보이게 하는 것은, 화장술도, 값비싼 향유도, 희귀한 보석도, 고가의 장신구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문제가 다른 것에 있음을 알았지만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는 몰랐다. 다만 그것이 여자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만 알았을 뿐이었다. 나는 사이공 거리의 여자들, 미개간지에 있는 백인 근무지의 여자들을 살펴봤다. 그중에는 매우 아름답고, 피부가 눈부시게 흰 여자들도 있었다. 그녀들은 아름다움을 위해서 지극한 정성을 쏟았다. 미개간지의 여자들은 특히 그랬다. 그녀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직 자신을 가꾸기만 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던가. 번화가 로드샵에서 직접 힙합 바지와 티셔츠를 사 입었고, 그 옷을 입고 사촌언니와 스티커 사진을 찍고 그 스티커 사진으로 다이어리를 꾸몄다. 그리고 또 어떤 어른스러운 짓을 했더라. 챠밍 만화책이나 패션잡지 등을 뒤적거리기도 했다. 하이틴 잡지에 실린 메이크업 페이지를 정독하며 화장을 배웠다. 설레는 그에게 고백하는 법, 예쁘게 윙크하는 법…… 그러한 터무니없는 노력이 나를 인기 많은 소녀로 만들어줄 것이라 믿었다. 엄마 화장품으로 친구들과 얼굴에 분칠도 하고 마스카라를 바르고 나가기도 했다. 고학년 오빠들이 말이라도 걸어오면 그 사건은 실시간으로 친구들과 공유되었다. 반에는 한 명씩 믿기 어려울 정도로 잘생긴 남자애들이 있었다. 공부도 축구도 잘하고 옷차림이 깔끔하던 남자애들. 난장판인 복도에 그가 지나가면 우리는 꿈을 꾸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에게선 진한 흙냄새가 났다. 선망의 대상 근처에 다가가기 위해선 나도 매력적인 어떤 것을 가져야 했다. 하아. 그 시절 그것은 어린 내게 얼마나 가혹한 과제였을까. 아직 고통이 내 운명의 정수리로 내리쬐기 전이였다. 자원이 없는 상태에서 세상은 빙글빙글 도저히 알 수 없는 것으로 돌아가는 회전목마 같았다. 고학년이 되자, 머릿속 질문들은 불완전한 내 안에서 아담한 폭포처럼 끊임없이 넘치고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더는 이 더딘 속도를 참을 수 없다는 듯 얌전히 돌아가던 회전목마의 말들은 날뛰기 시작했다.

 

품행에 관한, 도덕성이 무엇인지, 어떤 것들이 모여 도덕이 되는 것인지. 그것은 모일 수 있는 것인지, 만들 수 있는 것인지. 이미 만들어져 있다면 그 규칙이라는 건 얼마나 지루하기 짝이 없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삶에 대해 접근하고 알아가는 것이 가능할까. 배워나가는 과정에는 인내심과 집중력이 필요했는데 어째서인지 신은 그 부분은 빠뜨리고 나를 만든 게 아닐까 싶다. 차근차근…… 그 단어를 지금도 좋아하지 않는다. 중학교나 고등학교를 부디 건너뛰고 싶었다. 학교를 다니지 않는 애들을 동경했다. 더이상 수업에 나오지 않는 애들, 집에 들어가지 않고 친구들과 빈집에 사는 애들, 자전거를 훔치다 소년원에 간 애들. 아 솜씨 좋은 불량배들! 벌써부터 누군가를 쥐어패고 어른들을 감쪽같이 속이고, 어두운 골목으로 훔친 오토바이를 타고 쪼르르 정체를 감춰버리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들의 세계로 쫓아가진 못했다. 그런 아이들과 어울리기도 쉽진 않았다. 그들은 조금이라도 망설이는 이를 자기들의 그룹에 초대하지 않으니까.

 

무엇이든 섭취해야 하는 시기였다. 외부 세계에 대한 다양한 경험을 축적해고 판단을 내려야 했다. 개인과 집단의 차이를, 인간 공동체가 추구하는 영역에 대해, 사회적으로 필요한 가치들을 인지하는 법을. 집이라는 공간에서 벗어나, 누군가와 감정을 나누고 갈등을 봉합하는 경험도 필요했다. 운동장을 뛰어다니길 좋아하던 빼빼 마른 소녀는 그런 것들을 잘 배워갔던가. 막막하던 순간은 없었던가. 기억나는 몇 개의 이미지가 그 시절의 전부처럼 느껴지는데, 현재 그 이미지에 대해 적는 나는 그것이 마치 오래전 가본 적 있는 여행지의 기억 정도로만 느껴진다.

 

골목 구석구석을 누비며 동네의 생김새를 기억해야 했고 길을 외워야 했다. 아직 누추하다거나 끔찍하다는 감정을 느끼기 전이었다. 이삿짐을 열 번 정도 쌌고 다행히 이삿짐을 싸던 힘든 기억은 지워졌다. 새 학교로 여러 번 전학도 가야 했다. 잘 달리던 마차가 느닷없이 낯선 골목에 날 떨구고 간 느낌이였다. 뜨끈한 말똥에 오도커니 주저앉아 있다 엉덩이와 손에 묻은 말똥을 털고 일어나 길을 찾아 나서야 했다.

 

새 학교의 담벼락은 장미 넝쿨로 가득했다. 어둠이 지면 파수꾼처럼 그곳을 맴돌았다.

장미 넝쿨로 뒤덮인 새 학교의 담벼락, 담벼락의 울퉁불퉁하고 차가운 촉감을 손가락으로 느끼며 거닐곤 했다. 그리고 거기에 걸릴 5월의 장미에 대한 시를 써야 했다. 하교길에 장미들은 사무치게 느껴졌다. 진한 장미향이 바람에 실려 코에 닿았다. 쉽게 매혹당하고 쉽게 웃음이 터져나왔다. 새 학교는 내가 원하는 미래를 주지 않을 것이다. 새 학교는 운동장도 급식실로 향하는 계단도 학교 건물도 너무 작아서 장미 넝쿨들이 나를 옥죄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 조숙은 경멸을 품고 있었다. 그 아름다운 계절에마저.

 

교탁 앞에 서서 새 친구들에게 나를 소개하는 건 어린 나에게 늘 떨리고 긴장되는 일이었다. 운동장 구름 사다리에서, 교실에서, 같은 반 친구 생일 파티에서 새 친구들을 사귀고 친해지는 법을 터득하기 시작했다. 친구 사귀기는 중요한 미션이었다. 친구들을 집에 초대하기-선물 주기의 패턴으로 그들의 환심을 사는 것에 능숙해졌다.

그들이 관심을 보이는 게 있다면 몽땅 주었다. 잠시나마 컵 떡볶이를 먹으며 도란도란 하굣길의 중간까지 같이 갈 친구들이 생겼다. 앞서 말한 메이크업 기술을 연마하고 우리 반 잘생긴 남자애의 사생활을 공유했던 그 친구들. 얼마 있지 않아 이별을 고해야 했지만. 때론 그녀들과 헤어지기 얼마나 괴로웠던가! 우물쭈물거리다 편지로 떠난다는 것을 전해야 하는 날이 닥치기도 했다. 우리는 눈물을 흘리며 다른 학교에 다니더라도 편지를 쓰고 만나서 놀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어린이들에게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것은 홀로 외국 여행을 떠나는 만큼이나 불가능한 일이었다. 우리는 그것을 예감하면서도 지켜지지 않을 일들을 약속했다.

 

 


 

* 김진영, 『상처로 숨쉬는 법』, 한겨레출판, 2021.

** 마르그리트 뒤라스, 『연인』, 김인환 옮김, 민음사,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