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개가 사라진 일에 대해서 엄마와 누나 모두 아는 게 없는 것 같았다. 혹시 새벽 일찍 일을 나간 아버지는 알지 않을까, 누나가 묻자 엄마는 그럴 리 없다고, 오토바이 뒤칸에 도시락을 실으며 직접 배웅했기 때문에 아버지도 모를 거라고 말했다.
나와 엽은 서둘러 집을 나섰다. 골목을 돌며 개를 찾았다. 이름이 없어서 개를 부를 수도 없었다. 엽은 평소에 내가 가지 않는 골목까지 깊숙이 들어가 살폈다. 골목 끝 다른 개가 있는 집 담벼락에서 기웃거리자 주인이 엽을 쫓아냈다. 엽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다른 골목으로 들어갔다. 그런 얼굴은 처음이었다. 엽은 최선을 다해서 뛰었고 나 역시 개가 갈 만한 곳을 떠올려보았다. 동네에 하나뿐인 슈퍼, 고양이들이 밥을 먹기 위해 모이는 중국집, 배추와 감자가 자라는 텃밭까지 샅샅이 뒤졌다. 개는 없었다. 개는 처음부터 없었던 것만 같았다.
아버지는 평소보다 일찍 퇴근했다. 마루에 앉아 있던 엽이 벌떡 일어나 개의 행방을 물었다. 아버지는 개집을 들여다보며 한동안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개집 안으로 손을 넣어 단면이 거칠게 끊어진 목줄을 꺼냈다. 개 스스로 끊고 나간 것 같다고 아버지는 말했다. 우리집은 평소 대문을 자주 열어놨었다. 이웃집에 숟가락 몇 개 있는지 알 정도로 친밀한 사이였기에 굳이 대문을 잠글 이유가 없었다. 이웃집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럼 개가 다시 집으로 오냐고, 제 발로 돌아오냐고, 엽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내게 따지듯 물었다. 아버지는 문득 뭔가가 생각난 듯이 빠른 걸음으로 집을 나섰다. 나와 엽은 아버지를 따라갔다.
너흰 집에 있어라.
엽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매미가 너무 크게 울어서 귀가 멀 것 같았다. 아버지는 뒷산에 있는 내 친구의 집으로 향했다. 그 집은 담벼락이 없어 멀리서도 마당이 한눈에 들어왔다.
친구의 아버지가 뭔가를 태우고 있었다. 고무 대야에 가려 자세히 보이진 않았지만, 그는 몸을 수그린 채 부탄가스에 토치를 연결해 태우는 일에 집중하고 있었다. 하얀 연기가 짙게 피어올랐다. 마침 바람이 우리 쪽으로 불었고 욕지기가 날 정도로 역겨운 냄새가 났다. 엽은 헛구역질을 했다. 그는 우리가 가까이 가도 인기척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아니, 못 본 체하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그를 부르지 않고 멀찍이 서서 눈을 가늘게 떴다. 마른침이 넘어갔다. 그는 불을 끄고 아버지를 바라봤다.
왜요.
뭐 태워?
뭘 태우긴요.
그는 토치를 고쳐 쥐며 아버지를 향해 말했다.
개털 태우는 냄새 같네.
그래서요.
아버지는 어깨를 으쓱했다.
좀 봐도 돼?
그의 발치에 까맣게 그을린, 가늘고 기다란 뭔가가 있었다.
너넨 거기 있어.
아버지는 그에게 다가간 뒤 고개를 숙여 아래를 바라봤다. 나는 궁금했지만 아버지 말을 들었다. 그 자리에 못박힌 것처럼 서 있었다. 엽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는 그것을 내내 바라봤다. 그는 하던 일에 방해를 받아 언짢은 건지 토치 버튼을 눌렀다 떼길 반복했다. 딸각딸각. 아버지는 그의 어깨를 툭 치곤 우리를 지나쳐 왔던 길로 향했다. 아버지가 말했다.
너무 까맣다. 다 태워서 모르겠어.
하얀 털을 태우면 까맣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까 고무 대야에.
아버지가 집으로 들어간 뒤 엽이 말했다.
내장 같은 게 잔뜩 있었어.
하얀 털 뭉치는 그 집 마당 여기저기를 굴러다니고 있었다. 우리는 다시 개를 찾으러 나섰다. 도저히 앉아만 있을 수는 없었기에 해가 질 때까지 온 마을을 돌아다녔다. 엽은 슬리퍼를 신고 뛰느라 엄지발가락에 물집이 잡혔다. 집으로 돌아오자 엽의 발을 본 누나는 바늘로 물집을 터트렸다. 엽은 이대로 개를 잃어버리게 되는 거냐고 물었다. 누구도 쉽게 답할 수 없었다. 그러자 엄마는,
여기선 흔한 일이야.
라고 말하며 설탕에 절인 토마토를 갖다줬다. 토마토에서 쓴맛이 났다. 엽은 먹지 않았다.
며칠 뒤 엽은 가방에 짐을 쌌다. 예정했던 기간보다 더 머무는 바람에 아버지를 도울 일손이 많이 부족해진 것 같았다. 엽은 밤마다 가요, 간다고요, 전화하곤 이불로 얼굴을 가렸다. 나도 엽을 따라 엽의 아버지 일을 돕기로 했다. 엽은 화색이 도는 얼굴로 내 손을 잡으며 아르바이트 비용은 많이 받을 거라고 말했다.
누나는 조만간 청주에 갈 일이 있다고 했는데 이유는 말해주지 않았다. 그때 다시 보자며 우리보다 먼저 집을 떠났다. 아버지는 평소 아껴 마시던 말벌집으로 담근 술을 엽에게 줬다. 술이 아니라 약이라고 말씀을 드리면 알 거라고 아버지는 말했다. 어머니는 마당에 말려둔 제철 나물과 버섯을 몇 움큼 모아 봉지에 담았다. 엽은 그것들을 받으며 몇 번이고 인사했다.
우리는 버스 터미널을 향해 함께 걸었다.
여기 얼마나 살았어?
네 살에 왔대.
여기 오기 전에는?
영동. 민씨들만 사는 집성촌에 살았어.
다 민씨야?
옆집, 앞집, 뒷집, 건넛집. 지금도 명절에 가면 동네 사람들 성이 다 똑같아.
조선시대 같네.
조선시대 같지.
언젠가 아버지는 누나와 나를 키우기에 그곳은 적절하지 않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고 했다.
나는 한곳에서만 살았어. 거기서 태어났고. 시골에 온 것도 처음이야.
어땠어?
엽은 별다른 대답 없이 하천을 보며 걸었다.
방학 중의 기숙사는 어딘가 무섭고 쓸쓸한 분위기라 밤에는 문을 꼭 잠그고 잤다. 현은 개학 전날에 올 거라고 말하며 대추 과수원에서 포즈를 취하고 찍은 사진을 보냈다. 나는 이불 속에서 현이 보낸 사진을 보며 다음 방학에는 여기에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엽의 아버지 일을 돕기로 했지만 거절당했다. 집에 도착한 엽은 내게 바로 연락을 줬는데 아버지가 내키지 않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남은 방학 동안 뭘 하면 좋을지 생각했지만 딱히 하고 싶은 일이 없었다. 엽도 개학할 즈음에 보자며 전화를 끊었다.
기숙사에서만 지내는 생활이 이어졌다. 휴게실에는 사생들이 갖다놓은 만화책과 잡지, 소설, 비디오테이프가 책장에 꽂혀 있었다. 나는 그때까지 책이나 영화를 접할 기회가 많이 없었다. 중학생 때 아버지가 녹화해둔 영화를 몇 번 돌려 본 정도였다. 이연걸이 등장하는 황비홍이나 정무문 시리즈 같은 것들이었고, 가끔은 일요일 오전에 방영하는 티브이 애니메이션을 봤다.
휴게실 소파에 앉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만화책과 영화를 봤다. 방학에는 점호가 없어서 새벽까지 그 자리에 있어도 간섭할 사람이 없었다. 며칠을 그렇게 보내던 어느 날 누군가 휴게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는 한 학년 선배로 예전에 옥상에서 언뜻 본 기억이 났다. 나는 소파에서 일어나 인사했다. 그도 나처럼 기숙사에 남아 하릴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 같았다.
이런 인사 없애야 돼. 고등학생들끼리 무슨.
그는 혼잣말을 하며 책장을 살폈다. 그러고는 한 권 고른 뒤 내게서 최대한 먼 자리에 앉아 읽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책을 읽을지 방으로 돌아갈지 고민하다 이도 저도 아닌 상태로 자리에 앉았다. 그는 한동안 말없이 책을 읽다가 대뜸 물었다.
너도 할 거 없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 나가자.
그는 내 대답도 듣지 않고 서둘러 휴게실을 나섰다.
나를 데려간 곳은 학교 강당 옆에 위치한 건물이었다. 학교에 그런 건물이 있는지 몰랐다. 그는 슬리퍼를 질질 끌며 문을 열었고 중앙에 피아노가 보였다. 칠판에는 중창단 신입 부원 모집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는 피아노 앞에 앉아 건반을 누르며 노래를 불렀다. 나는 근처에 놓인 의자에 앉아 숨죽인 채 노래를 들었다.
노래를 부르다 말고 그가 말했다.
너도 불러볼래?
11
누나의 결혼식 날에는 이른 아침부터 분주했다. 엄마는 오랜만에 입은 한복이 불편하다며 얼른 식을 마치고 옷을 갈아입고 싶다고 말했다. 대전에 있는 손님들을 모시기 위해 대절한 버스가 약속된 시간보다 먼저 주차장에 도착했다. 버스 앞좌석에 음식과 음료를 실었다. 몇몇 손님들은 나더러 언제 이렇게 컸냐며 자신을 알아보겠느냐고 물었다. 누군지 기억나지 않았지만 알은체하며 인사했다. 버스가 출발함과 동시에 마이크를 들고 도착 예정 시간을 안내했다. 마이크를 쥔 김에 노래나 한 곡 하라고 누군가 말하자 엄마는 어차피 이따 식장에서 부를 거라고 대꾸했다. 양복이 어색해 넥타이를 몇 번이나 고쳐 맸다.
누나는 내게 축가를 불러달라고 부탁했다. 몇 번이나 거절했지만 말이 통하질 않았다. 신혼집에 필요한 물건을 선물한다거나 축의금을 많이 내겠다고 해도 속수무책이었다. 누나가 내게 뭔가를 그토록 부탁한 적이 처음이어서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동생은 보통 축의금을 걷지 않나, 라고 엄마에게 말했는데 그건 다른 사촌들이 하면 된다고 했다.
나는 결혼식장에 도착하자마자 사람들을 안내하고 서둘러 신부 대기실에 갔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누나는 긴장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모습으로 사진을 찍고 있었다. 매형과 함께 찍은 웨딩 사진이 대기실 곳곳에 놓여 있었다.
그때 고모가 대기실에 들어왔다. 나와 누나를 번갈아 끌어안았다.
네 아빠가 있었으면 오늘 좋아했을 텐데.
신부보다 먼저 울면 어떻게 해.
누나는 고모의 어깨를 토닥였다. 고모는 대기실에서 나갈 때까지 훌쩍였다.
매형 어디 있어?
잠깐 차에 갔어.
누나는 친구에게 가방을 갖다달라고 부탁하더니 봉투를 꺼내서 내게 줬다.
가족도 이런 건 줘야 잘산대.
무슨 뜻인가 싶었는데 아마도 축가를 부르는 것에 대한 수고비인 것 같았다. 평소 미신은 절대 믿지 않는 사람이 그런 말을 하니 뭔가 부자연스러웠다. 거절하면 잔소리를 들을 것 같아 재킷 안주머니에 넣었다. 결혼식장 직원이 다가와 간단히 축가 리허설을 하자고 말했다. 누나에게 이따 보자고 짧게 인사하며 대기실을 빠져나왔다.
준은 함께 오지 않았다. 결혼 소식을 알리긴 했지만 함께 가자고 물어보지 않았다.
결혼식이 시작되고 사람들의 박수 소리와 함께 누나가 입장했다. 누나는 축구공만큼 부른 배에 손을 올려놓고 좌우를 바라보며 가벼운 고갯짓으로 인사했다. 엄마는 출산 후에 결혼식을 하길 바랐지만 누나의 생각은 달랐다. 아이를 키우다보면 결혼식은 기약 없이 미뤄진다는 게 누나의 판단이었다. 게다가 매형은 조만간 직장을 옮겨서 더 바빠질 거라고 말했다. 부모석에 앉아 있는 엄마는 벌써 눈가를 소매로 훔치고 있었다. 옆자리는 비어 있었다. 고모가 고모부를 앉히는 건 어떠냐고 물었으나 누나는 거절했다.
주례사가 끝나고 축가를 부를 차례가 왔다. 하객들을 향해 인사를 한 뒤 노래를 시작하려는데, 전주가 나오자마자 누나가 울음을 터트렸다. 누나는 아이처럼 울었고 직원이 휴지를 갖다줬다. 나는 눈물을 흘리는 누나를 보느라 첫 소절을 부르지 못했다.
결혼식이 끝나고 친척들과 둘러앉아 식사를 했다.
너는 언제 결혼하려고.
작은아버지가 물었다.
형이 그렇게 갔으니까 너희는 잘살아야 돼.
고모가 작은아버지의 등을 때렸다.
너는 좋은 날에 왜 그런 소리를 하냐.
나는 친척들의 그런 말이 가끔은 큰 책무처럼 느껴졌다. 좋은 직장에 다니고, 결혼을 한 뒤 아이를 낳아서, 아버지 몫까지 잘살아야 된다는 말이. 그건 정말 내 몫일까, 내 몫이라고 부를 수 있나, 아버지의 죽음이 내 삶에 그런 방식으로 작용된다면 나는 그것을 내내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오래 만났대. 결혼하겠지.
엄마는 평소에는 하지 않았던 말을 그 자리를 빌려 처음 꺼냈다. 나는 접시에 놓인 음식을 포크로 뒤적였다. 엄마에게 이제 내게 마음이 없는 것 같아, 라고 말하며 다시 나를 좋아할 수 있는 방법이 뭔지 묻고 싶었다. 엄마와 친척들은 나보다 삶의 경험이 많을 테니 알 수도 있지 않을까, 나 역시 평소에는 하지 않았던 터무니없는 생각을 떠올렸다.
결혼식이 끝난 늦은 밤 준의 집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준은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으로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밥 먹었어?
준은 돌아보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낯선 적막감이 방 안을 채웠다. 결혼식은 어땠는지, 축가는 잘했는지, 멀리서 오느라 피곤한 건 아닌지 준이 물어볼 줄 알았는데 그 이상 대화는 이어지지 않았다. 드라마 속에선 누군가가 고성을 지르며 범인을 쫓아가고 있었다. 나는 옷을 갈아입고 집을 정리했다. 분리수거를 하고 세탁기를 돌린 뒤 설거지를 했다. 사실 집은 깔끔했지만 어떤 일로라도, 어떤 소리로라도 이 적막을 깨뜨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멈춘 시간이 흘러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청소기 전원을 켜자 준이 방에서 나오며 말했다.
피곤할 텐데 얼른 자야지.
나는 청소기를 다시 원래 자리에 갖다뒀다. 적막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모교에서 인터뷰 촬영이 있는 날이었다. 대학교 유튜브 채널에 게재되는 영상이었다. 따로 시간을 마련하기가 어려워 강의가 있는 날 오전으로 일정을 잡았다. 사전에 보내준 질문지를 보며 학교로 향했다. 학교와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답변을 하고 싶었다. 소설쓰기와 현재 생활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묻는 질문들이 많았고, 나는 내가 거짓말을 할까 덜컥 두려워졌다.
소설을 쓰는 행위로 당장 내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그런 가능성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았다. 준과의 관계를 생각하면 소설은 내게 아무런 보탬이 될 수 없었다. 소설은 소설이었고, 나와 준은 마음이 서로 다르게 기울기 시작한 연인이었다. 소설쓰기로 준과의 관계가 회복된다면, 그게 어떤 소설이든 쓸 수 있었다. 쓰고 싶었다. 소설은 내 삶에서 그 어떤 힘도 발휘하지 못했고, 발휘되면 안 됐다. 내가 직면한 삶이 이러한데 억지로 답변을 만드는 게 과연 맞을까 생각하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척 소설을 감싸는 말들을 준비했다. 그것은 기만이 아니다.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하고 제 할말만 하는 이기적인 사람처럼 보이고 싶지 않아서였다. 삶에서 소설이 갖는 의미라는 건 그리 거창하지도, 뚜렷하지도 않으니까, 있는 그대로 말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학교에 도착하자 도서관 테라스에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마이크를 옷깃에 달고 카메라를 바라봤다. 모든 세팅이 끝난 후 잠깐 시간이 남아 기다리는 동안, 불현듯 학교에 입학하기 직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당시 나는 서울에서 살기로 계획했지만 잘 곳이 없었는데 소식을 들은 외삼촌이 집에 남는 방이 있다며 김포로 와서 지내라고 했다. 다만 조건은 주일마다 교회에 나가는 것이었다. 목사인 삼촌이 개척교회를 설립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 엄마는 자기가 불교 신자인데 어떻게 아들을 교회로 보내냐며 따지다가 서울 집값을 듣고는 군말 말고 삼촌네 가서 지내라고 말했다. 막 제대를 했던 때라 모은 돈이 없었고 생활비도 받지 않겠다는 삼촌의 말에 나는 그 제안을 덜컥 수락했다.
토요일 아르바이트가 밤늦게 끝나면 서둘러 집으로 갔다. 일요일마다 찬송가를 부르고 성경을 읽었다. 어떤 날엔 신도가 없어서 삼촌네 가족과 나만 자리를 채운 적도 있었다. 삼촌은 직접적인 방식으로 나를 전도하지 않았다. 신의 교리에 대해 말한다거나 신앙심을 갖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설파하지 않았다. 나는 그 점이 의아했지만, 그래서 좋았고, 삼촌이 강단에서 설교할 때만큼은 마음이 편해졌다. 그 집에서 살았던 일 년 동안 신앙심은 생기지 않았다. 그러나 삼촌 가족과는 친해져서, 나는 외숙모에게 생활비가 담긴 봉투를 한 달에 한 번씩 건넸다. 삼촌과 외숙모는 오래 연애를 한 뒤 결혼했는데, 번듯한 직장에 다니던 삼촌이 돌연 목사가 되겠다고 해 신학교 공부를 하는 동안 힘들게 살았다고 했다. 힘들게 산 게 어느 정도인지는 정확히 몰랐지만 세 아이를 키우면서 오랜 시간 공부했으니 쉽지 않은 생활이지 않았을까 추측했다. 아버지가 집에 놀러온 삼촌 차에 쌀 포대를 몇 자루 실었던 기억도 있다. 삼촌 집에서 지내는 동안 삼촌과 외숙모가 언성을 높이거나 아이들이 떼를 쓰는 일은 보지 못했다. 아이들도 내가 혹여 불편함을 느낄까 필요 이상의 말은 건네지 않았다. 삼촌은 대학 입시 실기장에 나를 직접 차로 데려다줬는데 차에서 내리기 전, 그날 처음 내 손을 잡고 나를 위해 기도했다. 나는 어린양이자 삼촌의 조카였다.
문득 그때 생각이 나서 촬영 관계자가 가까이 오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 촬영은 별다른 문제 없이 제시간에 끝났다. 관계자는 내게 학교 굿즈가 가득한 쇼핑백을 건네줬다. 준에게 촬영이 끝났다고 문자를 보내자 무슨 촬영을 했는지 물었다. 며칠 전 잠들기 전에 말했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 듯했다. 그보다 준은 저녁에 약속이 있는지 물었고, 시간이 괜찮으면 저녁 약속에 함께 가자고 제안했다. 예전 직장 동료였던 선생님을 만나러 간다고 했다. 준이 내게 뭔가를 같이 하자고 제안하는 게 오랜만이라 최대한 빨리 가겠다고 답장했다. 수업을 하는 내내 시계만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