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기억
무언은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사설 경비 사업을 하면서 자리를 비우는 것은 침입할 여지를 주는 일이라는 생각이 굳어졌다. 그럼에도 딱 한 번, 거의 이 주 가까이 크루즈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충동적인 결정이었다. 우연히 인터넷 사이트에 광고 배너로 뜬 바다 사진을 클릭했고, 거대한 흰 선박 위 사람들이 햇볕에 달아오른 얼굴로 손을 흔드는 사진을 조금 오래 보았을 뿐이었다. 그 사람들 중에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눈을 잔뜩 찡그린 채 한쪽 얼굴근육을 지나치게 치켜올려 비대칭적인 미소를 띤 어린 남자아이였다. 그 얼굴이 무언을 향해 이리로 오라고 손짓하고 있었다. 멀고 낯선 지중해의 바다라면 구두를 처분하기에도 좋을 것 같았다. 무언은 육십 세 생일을 앞두고 있었고 이선은 박사과정을 시작하기 전에 잠깐 한국에 들어와 있었다. 이선은 한국에 와서도 뭐가 그리 바쁜지 집에 붙어 있지 않았지만 무언의 여행 제안에는 선뜻 알겠다고 답했다.
무언은 짐을 챙기기 전에 옷장 깊숙이 넣어둔 구두 상자부터 꺼냈다. 오랫동안 들여다보지 않았는데도 길이 잘 든 가죽이 부드럽게 삭아가는 냄새가 물씬 풍겼다. 무언은 자신이 아직 건강하다고 믿었지만, 최근 들어 몇 번 넘어진 적 있었다. 길을 걷다 어디 걸리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발이 꼬여 꼬꾸라졌다. 크게 다치지는 않았으나, 주변을 조금씩 정리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였더라, 눈이 아주 많이 온 일요일에 비상근무를 서러 본청으로 불려갔던 날이. 아니 그렇게 오래전은 아니었다. 까마득한 척 시간을 가늠하다니, 간사한 마음이었다. 기억은 생생했다.
대공과 부장이 당장 월요일에 장군이 본청을 방문할 예정이니 비상 점검을 해야 한다고 연락을 돌렸다. 눈이 내리는 일요일 오후였다. 가까운 하숙집에 방을 얻어 살고 있던 무언이 본청에 가장 먼저 도착했다. 복도 왁스칠부터 사무실 책상 정리, 휴게실의 자판기도 분해해 닦고 화장실 청소까지 모두 마친 후에도 눈이 계속 내렸다. 부장이 각 과의 막내들을 모아 밤새 불침번을 서 진입로에 눈이 쌓이지 않도록 빗질을 하라고 지시했다. 무언은 다른 동료들과 달리 담배도 피우지 않고 묵묵히 지시를 따랐다.
다음날 저녁에 검은 세단을 타고 온 장군은 본청은 둘러보지도 않고 전체 회식을 열었다. 고급 요정을 통으로 빌렸다고 했다. 밤새 눈을 쓸고 아침부터 근무했던 무언은 술에 빨리 취했고, 화장실을 다녀오다가 방을 착각했다. 문을 열고 보니 장군과 고위 간부들이 둘러앉은 테이블이었다. 그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 서둘러 나오다가 댓돌에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던 구두 한 쌍의 앞코를 납작하게 밟았다.
회식이 파하고, 장군에게 인사를 하러 모두가 요정의 긴 복도에 섰다. 코가 벌게진 장군이 나오자 신발을 찾던 본부장이 장군의 구두를 보고는 주위를 한 바퀴 둘러봤다. 그리고 구둣주걱을 들고 서 있던 스무 살도 안 되어 보이는 어린 여자 종업원 쪽으로 몸을 돌렸다. 본부장은 종업원의 어깨를 붙잡고 턱끝으로 구두를 가리켜 보였다. 여자애는 고개를 저었다. 작은 손이 콤플렉스라던 본부장이 여자애의 뺨을 쳤다. 후리고, 갈기고, 찢었다. 여자애가 코피를 쏟았다. 장군이 그제야 괜찮다며 구겨진 구두를 직접 펴서 신었고 본부장은 손을 멈췄다. 무언은 묵묵히 자기 발끝을 봤다. 여자애는 주저앉아 울지도 못하고 나무 바닥에 떨어지는 피를 소매끝으로 닦아내고 있었다. 바보같이 코를 막을 생각은 못하고. 피가 똑, 하고 떨어질 때마다 그애는 화들짝 놀라서 가시가 튀어나온 나무 바닥을 소매끝으로 연신 훔쳐냈다. 무언은 손톱이 살을 파고들도록 주먹을 꽉 쥐었다.
그로부터 일 년이 안 되어 무언은 대공과에서도 우선순위가 높은 사건들만 맡는 대공분실로 옮겨갔다. 무언은 구두 밑창에 단단하고 날카로운 쇠판을 박아넣었다. 그에게는 별다른 기술이 없었지만, 구두에 피 한 방울 튀기지 않고 살과 뼈를 뭉갤 수 있었다. 큼직한 간첩 사건이 없던 지역에서도 그는 여러 명의 연락책과 불순분자들을 잡아냈다. 이영훈은 그의 실수였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이영훈은 향토민주연합회의 책자를 돌리다 붙잡혔는데, 너무 어렸기 때문에 작업 전에 잠시 망설였던 것이 원인이었다. 쇄골을 노리던 발이 빗나가 이영훈의 얼굴을 쳤다. 이영훈의 오른쪽 광대뼈가 바스러졌고, 제멋대로 굳어버렸다.
한때 이름을 날린 고문 기술자와 수사관들이 고발당했다는 뉴스를 볼 때마다 무언은 이영훈을 떠올렸다. 자신이 고발당한다면, 이영훈일 터였다. 그는 은퇴 후 소일거리 삼아 이영훈을 지켜봤다. 이영훈의 주소지를 아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이영훈은 내란 음모 가담죄로 오 년 복역 후 아버지가 운영중이던 떡집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매일 새벽 다섯시면 가게문을 열고 떡을 만들기 시작했지만 그는 열시쯤 나와 떡 포장을 돕다가 가게가 한가해진 오후에는 슬그머니 당구장으로 사라졌다. 그의 아버지가 죽은 뒤 떡집 문은 한동안 닫혀 있었다. 무언은 이영훈이 그대로 어디론가 사라졌을까봐 초조했다. 한 달이나 지난 후에야 이영훈은 떡집에 나타났다. 그는 여전히 느지막이 나왔고 떡은 기성품을 배달받아 파는 것 같았다.
그 무렵에 이영훈은 페이스북을 시작했다. 혼자 찍은 자기 사진을 자주 올렸다. 얼굴만 큼지막하게 클로즈업되어 뒷배경조차 잘 보이지 않는 사진들이었다. 물론, 제멋대로 움푹 꺼진 광대뼈는 매끈하게 다듬어져 있었다. 글은 거의 쓰지 않았지만, 당시 인기 있던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개그맨이 웃기지 않다고 비난하는 글을 가끔 올리곤 했다. 이영훈의 부고도 페이스북을 통해 알았다. 그의 여동생이 올린 모양이었다. 부모, 처, 자식 이름을 쓰는 칸이 모두 빈 채, 여동생의 이름만 덜렁 쓰여 있었다. 조문을 가볼까 생각했지만 가지 않았다. 다만 적당한 금액을 여동생의 계좌로 보내긴 했다. 자신의 이름은 지우고, 옛친구라고 적어서.
그는 은퇴 후 몇 번이나 구두를 버리려고 했다. 이미 진작에 쓸모를 다한 물건이었지만 다른 쓰레기들처럼 함부로 버릴 수는 없었다. 무언은 가끔 구두를 꺼내볼 때마다 장군도 본부장도 아닌, 바닥에 주저앉아 제 피를 닦던 어린 여종업원의 소매끝을 떠올렸다. 무언은 결국 자신의 처지도 그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았다. 무엇이든 주어진 것은 깨끗하게 처리해야 하는 삶. 그게 자신의 피든 다른 사람의 피든 마찬가지였다.
무언은 아이처럼 상자를 두 손으로 꽉 안은 채 방 한가운데에 펼쳐놓은 커다란 캐리어를 잠시 바라봤다. 캐리어에는 이선이 미리 챙겨넣은 여름옷 몇 벌에 약봉지와 간단한 세면도구 세트가 들어 있었다. 그는 그 초라한 소유물들 위에 상자를 왕관처럼 올려두고 캐리어를 닫았다.
크루즈는 무언의 생각보다 크고 복잡하고 시끄러웠다. 공항에서부터 도대체 사람들이 왜 이렇게 많냐고 중얼거리던 무언은 크루즈에 탑승하고 나서는 말을 잃었다. 승선구에서 바로 연결된 메인 로비는 천장에서부터 무지개색 조명이 번갈아 번쩍이고 있었고, 붉은 카펫에는 새 발자국 같은 문양이 잔뜩 얽혀 있어서 보기만 해도 어지러웠다. 벽이며 기둥은 사람들이 비칠 정도로 광택이 도는 금속 마감재를 써서 공간이 기이하게 일그러져 보였다. 사람들이 사방에서 밀려오는 것 같았고, 쿵쿵대는 음악이 계속 울려왔다.
무언은 정박지에 내릴 때마다 시큰둥한 얼굴로 햇볕이 너무 따갑다고, 음식이 너무 싱겁다고 마음 편히 툴툴대며 이탈리아 연안의 아름다운 풍광을 즐겼다. 뭐가 마음에 안 드세요? 이선이 물으면 무언은 고개를 저어 보였다. 마음 편히 즐기세요. 아버지는 그래도 되잖아요. 이선은 그렇게 말하곤 했다. 마치 무언이 구두를 버릴 것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엿새째 날은 정박지에 들르지 않고 항해만 하는 일정이었고 저녁에는 갑판에서 폭죽 파티가 열릴 예정이었다. 점심을 먹고 나서 마사지를 받으러 스파에 간 이선은 아직 방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무언은 해가 질 때쯤 캐리어에서 구두 상자를 꺼냈다.
상자를 품에 아기처럼 안아 들고 가장 높은 13층으로 향했다. 갑판으로 나가는 길에 가라오케 무대가 설치돼 있는 레스토랑을 지났다. 무대 위에서 풍채가 좋은 백인 노인이 하와이안 셔츠를 반쯤 풀어헤치고 털이 부숭한 가슴을 드러낸 채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무언은 걸음을 멈췄다. 노인이 노래를 잘해서는 아니었다. 무언이 고등학생 때 영어 시험 때문에 외웠던 노래였다. 오십 명이 넘는 남자 고등학생들이 한 명씩 앞으로 나와서 그 노래를 끝까지 부르고 들어가야 했다. 당시 영어 선생은 사투리가 심하고 머리가 일찍 벗어진 젊은 남자였는데, 노래를 외워오지 못하거나 발음을 제대로 못하면 칠판 앞에 손들고 서서 혀를 빼물고 있게 했다. 혀를 길게 빼야 영어 발음을 잘할 수 있다면서, 입이 마르고 턱이 뻣뻣하게 굳어 침이 질질 흐를 때까지.
그런 일이 있었지. 좋은 추억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무언은 노래를 듣는 동안 그 시절에 대한 향수에 턱이 당기고 침이 고이기까지 했다. 노인이 사람들 중 유일하게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노래를 들어준 무언에게 눈을 찡긋하며 인사를 보냈다. 무언도 살짝 웃어주었다. 얼굴이 벌겋고 머리가 하얗게 센 백인 노인의 인사는 왜인지 무시하기 어려웠다.
무언은 서둘러 몸을 돌려 걸어나갔다. 거센 바람과 바다 너머로 넘어가는 해의 마지막 빛을 맞으며 갑판을 한 바퀴 걸었다. 수영장에서는 물이 튀었고 사람들은 거의 벌거벗은 채 선 베드 위에서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듣거나 무언가를 먹고 마시며, 끊임없이 이야기했다. 무언이 도저히 해석할 수 없는 억양의 언어들이 귓가에 웅웅댔다. 무언은 잠시 비틀댔지만 넘어지지 않고 꼿꼿이 걸었다. 그리고 배의 끄트머리에 도착했다. 그새 해가 바다 너머로 사라지고 하늘이 멍든 것처럼 가장자리부터 물들었다. 곧 요란한 소리를 내며 폭죽이 터졌다. 사람들의 함성 소리가 파도처럼 몸집을 불리며 들려왔다.
무언은 상자를 열고 구두를 꺼냈다. 오른쪽 구두 안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돌이 들어 있었나? 무언은 구두 안으로 손을 깊숙이 넣었다. 그건 그냥 굴러들어온 돌 같은 것이 아니었다. 라이터였다. 당구장 로고와 전화번호가 선명하게 새겨진 라이터. 무언은 한 번도 가본 적 없었지만, 그 당구장에 다니던 사람을 알았다. 무언이 언제나 지켜보던 사람이었는데, 도대체 언제부터 그도 무언을 보고 있었을까. 무언은 신고 있던 운동화를 벗고 구두를 신었다. 발이 그새 쪼그라들었는지 구두가 헐렁했다. 무언은 무거운 다리를 들어올렸다. 따닥. 갑판에 부딪친 구두 바닥에서 묵직한 소리가 났다. 동시에 무언을 둘러싼 바람과 사람들의 함성과 폭죽의 불빛과 열기와 무지막지한 소음이 얼어붙었다. 무언은 무엇을 바다로 던져야 할지 정확히 알았다. 깊고 푸른 바다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처음 보는 낯선 눈동자가 무언을 물끄러미 마주보았다. 바다를 뚫고 손이 뻗어나와 무언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그래, 이때였다. 이때 내 삶을 완벽하게 정리했어야 했는데. 무언은 입을 벌리고 버둥거렸다. 물론 소리는 나지 않았고 몸도 움직이지 않았지만. 억지로 벌어진 입속으로 검은 물이 끊임없이 쏟아져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