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나는 그것을 우선 어딘가에 써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정승이 어떻게 처음 애인을 만나게 되었는지 수미에게 이야기한 곳은 두 사람이 함께 묵은 호텔방 안이었다. 두 사람은 주로 이메일로 서로의 소식을 전했고 한 달에 한두 번 전화 통화로 좀더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위태로울 때, 밑으로 꺼져가는 기분일 때, 몸을 일으키기 힘들 때 두 사람은 서로에게 전화를 했다. 그렇게 이메일과 전화로만 소식을 전한 지는 반년이 넘었고, 한동안 만나지 못하다 운이 좋게 시간이 맞아 이번에 함께 호텔에서 묵게 된 것이다. 정승은 오 년 전 이혼을 했고 그 이후로 수미에게 애인을 소개하거나 만나는 사람이 있다고 밝힌 적은 없었다. 그보다는 육아의 고됨, 아이의 놀라운 말과 행동들, 경제적 어려움과 고투, 마찬가지로 이혼한 어머니와의 복잡한 관계 같은 것을 이야기했다. 수미는 지금 내가 무얼 하고 있나. 대학을 졸업하고 한참 지난 뒤 시작한 유학이라는 선택에 대해 공부를 따라가다가도 문득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을 때가 있었다. 그럴 때 친구인 정승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를 들어 발표 준비를 하느라 밤을 새워야 할 것 같을 때, 끝없이 스스로가 의심스러울 때 그럴 때 수미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고 두 사람은 각자의 이야기를 시작하고 또 들어주었다. 수미는 신경이 곤두서고 불안함이 두통으로 나타날 때 정승에게 전화를 걸어 이야기를 털어놓고는 했는데 어째서 자신이 지금 어떻다는 것을 단지 이야기하는 것만으로 두통이 가라앉고 마음이 차분해지고 무언가를 시작할 의욕이 생기는지 늘 조금은 놀라웠고 조금은 안도하게 되었다. 그러다 듣게 되는 정승의 이야기들은 그러니까 예를 들면 오늘 아이가 갑자기 영원히 죽기 싫어라고 말했다는 것, 그때 갑자기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얼마 전 받은 정밀검사 결과가 음성이었다고 말하며 똑같이 아아 죽기 싫어라고 말했다는 것. 수미는 웃으며 정승의 그런 이야기를 듣다 문득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이 보일 때, 혹은 차 좀 우리고 올게라고 말하며 뜨거운 물을 컵 안에 따를 때 그러다 뜨거운 김이 얼굴로 들이닥칠 때 문득 삶이 저곳에서도 다른 모습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그 선명한 당연함을 그 순간 이해하게 되고는 하였다. 

정승은 그가 일본에서 드문 개신교 신자라고 했고 종교 때문은 아니고 술과 담배를 전혀 하지 않는다고 했다. 술은 한 잔만 마셔도 취하고 담배는 학생 때 잠깐 피웠지만 잘 안 맞는 것 같아서 곧 관두었다고. 정승은 그게 왠지 웃기고 좋다고 하였다. 정승은 자신이 담배를 피우는 것이 애인과의 관계에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왠지 신경이 쓰여 평소보다는 덜 피우게 된다고 하였다. 두 사람은 호텔방 안 트윈 침대에 각각 누워 각자의 이야기를 하다가 어느 부분에서는 집중하고 열중하다가 긴장이 풀려 웃다가 쉬다가 하며 서로의 이야기를 하였다. 정승의 웃는 얼굴이 좋았고 이야기를 하다가 어제 사둔 빵과 푸딩을 꺼내서 주면 기뻐하며 맛있게 먹는 얼굴이 좋았다. 잠시 커피를 마시러 나가기 전 정승은 옷을 갈아입으려 몸을 일으키며 수미에게 물었다.


―이모랑은 무슨 이야기 했어?

―너랑 비슷한 이야기 했지.


수미는 아침까지 함께 있던 언니를 잠시 생각했고 친구에게는 이모라고 말했지만 집에서는 언니라고 부르는 그 얼굴을 떠올렸다. 오늘 아침까지 함께 있던 그 얼굴은 현재의 얼굴과 몇 년 전의 얼굴과 이십여 년 전의 얼굴이 합해져 떠올랐고, 바로 그 언제라고 할 수 없는 얼굴로 자신에게 남을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정승이는 이어서 너는 어떻게 지내느냐고 물었는데 수미는 문득 시간이 좀더 지나면 누가 누구를 기억하고, 그러니까 사람들이 언니를 기억하고 이야기하는 일이 점점 줄어들고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이 그때 들었다. 나는 잘 지냈고 잘 지낼 것이라고 수미는 대답했고 그렇다면 어떻게 처음 언니와 만나게 되었는지를 써둬야겠다고 마음먹게 되었다. 


두 사람은 옷을 입고 호텔 근처 찻집으로 갔다. 언니와 세 번이나 들렀던 곳이었다. 익숙한 가게로 들어가 익숙한 메뉴판을 천천히 살피며 수미는 어제와 같은 따뜻한 블렌딩 커피를 주문했다. 주인은 이제 수미의 얼굴을 외운 듯 반가운 표정으로 주문을 받았다. 언니와 처음 어떻게 만났는지 쓰다보면 이야기의 끝은 여기서 커피를 마시고 호텔로 돌아간 것이 될 것이다. 수미는 그것을 기억나는 대로 간단히 써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정승은 마치 어제의 언니처럼 담배를 집중해서 아껴 피우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보며 수미는 왠지 정승이 곧 담배를 끊게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잠시 후 커피가 나오자 정승은 행복한 표정으로 정말 맛있다고 말했다. 


―담배가?

―커피가.

―정말? 담배가 아니고? 커피가?

―둘 다 둘 다. 둘 다 같이. 


수미와 정승은 웃으며 그래 둘 다 둘 다 말하며 커피를 마셨다. 수미는 이틀 사이 몇 차례나 이곳에 함께 왔던 언니가 마치 이곳 어딘가에서 두 사람을 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순간 들었다. 우리 모두는 각각 다른 사람으로 각기 다른 순간과 국면을 가지고 각자에게만 생생한 순간들을 살아가는데 우연히 언니와 함께 커피를 마실 수 있어서 좋았다는 생각, 그리고 그 자리에 친구와 와서 좋다고 수미는 생각했다. 우리는 웃고 있고 우리는 웃고 있어. 정승은 웃으며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느냐고 물었고 수미는 웃으며 손을 뻗어 정승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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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친구로부터 연하장을 받은 것은 새해가 시작된 지 한 달이 넘은 어느 날이었다. 구정이 시작될 즈음이었는데 친구는 새해가 이미 시작되고도 한참이 지났지만……이라는 인사로 메일을 시작하였고 연하장이라고 하기에는 어울리지 않지만이라고 덧붙이며 물감으로 그린 그림을 함께 보냈다. 내가 그를 마지막으로 만난 것은 재작년 가을이었는데 그는 그때 삼십대의 마지막 생일이 지났다고 말했다. 


―축하해.

―이제 뭐 젊지 않지만.

―아니 뭐 꼭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


어쨌거나 어린 것은 확실히 아니고 나이든 것도 확실히 아닌 친구의 얼굴을 보며 웃었다. 친구는 그때 그런 말을 했는데 나는 오래 살게 될 것 같지 않아, 일찍 죽을 것 같아. 일찍이 언제야? 이미 일찍은 지난 것 아냐? 내가 묻자 그는 진지한 얼굴로 칠십 살 정도가 아닐까 하고 말했다. 아무런 연명도 하지 않고 주어진 대로 살다가 죽는다면 그 무렵일 것이라고 하였고 그것은 앞으로 이른 죽음이 될 것이라고 했다. 듣고 보니 앞으로는 아니 이미 정말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로부터 일 년이 지난 후 나는 친구가 말한 이른 죽음의 나이에 가까워지는 육십대 여성인 최명환을 만나게 된다. 최명환이 자주 이야기하는 주제 중 하나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왔고 앞으로 어떻게 살게 될 것인가인데 그런 이야기를 하며 최명환의 집 소파에 앉아 있는 오후의 시간에는 어쩐지 시간은 천천히 흐르고 나는 내가 당장 처리하고 신경써야 할 생활의 여러 문제들은 떠오르지 않고 한 사람의 시민으로 혹은 인류의 일원으로 나 자신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럴 때면 현재를 살고 있는 나는 지금 어떤 시간 속에서 살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되었고 그런 식으로 나 자신을 멀리서 바라보며 인식하게 되는 드문 상태 속에 있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그 상태는 차를 한 잔 마시는 정도의 시간 동안에만 가능한 것이었다. 차를 마시고 다시 물을 끓이러 갈 때 고개를 돌려 해가 지고 있음을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날 때 그 순간 페이지를 넘기듯 그런 시간은 뒤를 돌아 다른 세계로 사라져갔다. 


그런 오후 어느 날 최명환은 자신이 백이십 살까지 살게 될 것을 대비하여 여러 보험과 연금을 들어두었고 아파트도 여러 채 가지고 있음을 밝히며 백 살이 넘으면 자신의 인생을 정리하고 회고록을 쓸 것이라고 하였다. 결혼한 적도 아이를 낳은 적도 없고 당연히 재산을 물려줄 사람도 없으니 미리 잘 준비하고 정리해둘 것이라고 말하는 그의 회고록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제대로 된 매듭을 짓기 위하여 백 살의 생일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나는 어떤 식으로 죽어야 할지 선택하기로 하였다. 많은 죽은 사람들이 그것을 나 대신 해두었다. 나는 그것을 읽고 이해하고 나의 상황에 맞게 분류하여 선택하기로 하였다. 나는 내가 어떤 과정을 거쳐 결국에 어떤 선택을 해두었는지 정리해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것은 그 과정을 적은 것이다. 


그러나 최명환은 동시에 지구는 그전에 이미 기후변화로 끝이 확실히 보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회고록은 쓸지도 몰라. 아무튼 그럴 것이라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준비한다고 했다. 지구는 끝이 날 가능성이 높고 나 자신은 오래 살 가능성이 높다는 그 양쪽 모두를 대비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는 뜻이었다. 나 역시 어떻게 될지 내년의 일도 가늠이 안 되는데 삼사십 년 뒤의 일은 더더욱 확신할 수 없지만 어쨌거나 나는 그때 최명환의 녹취를 푸는 역할을 맡기로 하였다. 최명환은 나에게 그 일을 맡길 것이라고 하였고 나는 아마 거절하지 않을 것이다. 그 일이 힘들어진다면 나는 나보다 젊은 사람에게 그것을 시켜야 하므로 앞으로 오랫동안 친구를 사귀고 사람들을 만나 밥을 대접하고 커피를 사는 일에 인색해서는 안 된다. 앞으로 수십 년간 사교의 끈을 놓지 않는 사람으로 살다 죽음을 앞둔 최명환이 녹음한 내용을 역시 꽤 늙은 내가 풀다가 아니 이건 이제 나에게도 힘들어요 내 친구를 데려올게요. 그러면 더 젊은 사람들은 아니 이런 것은 이제 다 이렇게 쉽게 가능해졌답니다 말하며 뭔가를 해줄 것이다. 그런 식으로 20세기 후반에 태어나 살았던 최명환의 이야기는 정리가 될 것이다. 그때 일찍 죽을 것 같다고 말하던 내 친구는 과거 자신의 예언대로 살고 있을지 나는 우리가 함께 녹취를 푸는 것 같은, 내가 도장을 찍으면 너는 종이를 접는, 네가 종이를 접으면 내가 봉투에 넣는 그런 것을 하면 재미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너 근데 칠십 살이 넘었구나.

―오호. 그러고 보니 예전에 그런 이야기를 했었지.


우리는 웃으며 녹취 푸는 일을 나눠 맡고 그런 생각을 하다보니 문득 다급하게 칠십 살이 넘어서 내가 부탁할 일이 생길 것 같아. 일단 되도록 그때까지 사는 것으로 마음을 먹어보지 않을래? 라고 연락을 해야 할 것 같다.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 우리가 만난다면 나는 마주한 사람의 얼굴에서 칠십 살이 넘은 모습을 그릴 수 있을까. 혹은 백 살이 넘은 최명환은 편한 차림으로 침대에 누워 녹음기를 켠 채 스무 살의 자신을 회고하고 그때 나는 최명환의 스무 살이 그려지지 않고 나의 스무 살도 희미하게 여겨질 것이다. 그러나 빗나갈 것을 생각하지 않고 그것이 정해진 미래라고 우리는 미래에 마주앉아 서로의 이야기를 듣게 될 것이라고 그것을 여러 번 반복하여 익히고 걸치고 입어버리면 나는 그 순간을 어느 순간 겪어버릴지 모른다. 미래에 익숙해지고 미래를 손에 만져본 적이 있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고 나서는 문을 열고 나가 하던 일을 가던 길을 이어나갈 것이다. 


친구가 보낸 연하장에는 대학 연구실처럼 보이는 창 너머로 원숭이와 공작새가 각자 알아서 놀고 있었다. 창 너머에는 숲처럼 나무들이 우거졌고 바닥에는 풀들의 색이 선명했다. 나는 그것이 왠지 미래적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창 너머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머물며 내가 있는 세계를 생각할 것이다.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그러나 다른 직업의 다른 관계 속에서 나와 비슷하지만 다른 사람으로 책상에 앉아 일을 하다 잠시 창밖을 바라볼 것이다. 그 사람이 살고 있는 세계는 지금보다 더 합리적으로 움직이는 곳이었고 그곳에서 인류는 더 나은 미래를 살고 있었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미래였는데 한편으로는 그것이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내가 회고하게 될 과거의 순간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최명환의 말처럼 기후가 변화하고 동물들이 사라지고 지구의 끝이 가까워질 때 나는 그 창 너머를 떠올리며 내가 갖고 싶은 미래가 이제는 돌아올 수 없는 아름다운 과거로 여겨질 것이고 그때는 괴로울 것인지 후회스러울 것인지 혹은…… 하지만 그것은 동시에 간절히 되살리고 싶고 만들어가고 싶은 미래이기도 했다. 과거의 사람들이 가져오려 애쓰던 미래는 여전히 미래로 여겨지고 내가 그리는 미래도 미래에는 다시 되살리고 싶은 미래가 될 것이다. 나는 원하는 미래를 손에 그리고 만져보기 위해 어떤 시간을 반복해야 하는가. 나는 그것을 우선 어딘가에 써두어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