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쓸 수 없음으로 시작되는 쓰기였던 것 같다.

금요일


쓸 수 없음으로 시작되는 쓰기였던 것 같다. 나는 자주 자기인식의 불가능성으로 강의의 첫 인사를 시작한다. 그 인사에는 방어와 공격이 페이스트리처럼 겹겹 포개져 있다. 쓰시마 유코는 “내가 나에 대해 단언할수록 나는 거짓말이 되었다”고 했고, 엘렌 식수는 “내가 말하기 시작하면 나는 내가 말하는 것이면서도 일부는 나에게서 빠져나간다”고 했다. 비슷한 문장 중 주디스 버틀러의 것을 제일 좋아하는데, “내가 생각하는 ‘나’ 안에는 내가 아닌 무언가가 이미 들어와 있다”라는 그의 말을 반복해 읽으면 이미 들어와 있는 무언가로 공포영화를 여러 편 찍을 수 있다. 어쨌든 나는 거짓말이고, 어쩌다 남은 것들이고, 이미 들어와 있는 것의 이웃이므로 나는 나에 대해 말할 수 없음으로 말하기 시작한다. 나는 정말 나에 대해서 할말이 없다. 쓸 건 더더욱 없다. 그런 주제에 어쩌자고 매일 일기를 쓰겠다고 약속한 걸까. 


호르몬제를 세번째 바꿨다. 산부인과 대기실 창밖으로 놀이터가 보였다. 어딘가를 향해 열심히 잼잼거리던 아이의 손과 미끄럼틀 아래로 사라지는 머리통이 너무 작아서 슬펐다. 산부인과 대기실에서 보이는 풍경은 자궁 밖의 꿈 같다. 항암 후유증으로 오는 갱년기 증상일 뿐 갱년기는 아니라는, 2년 전 의사의 말이 아직까지 아리송하다. 이사한 동네에서 찾은 산부인과의 의사도 비슷한 말을 한다. 그 진단명의 증상은 있지만 그것으로 부를 순 없다. 증상이 곧 이름이 아니고 무엇인가. 내가 나라는 증상 외에 무엇으로 나를 설명해야 하나. 그나마 내가 나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건 그런 증상뿐인데. 화가 나요. 증상이 그렇죠. 그런데 갱년기가 아니란 거잖아요. 네, 호르몬 수치가 그렇게 보여요. 그럼 지금을 뭐라고 불러야 해요? 네? 이름을 갖지 못하는 증상 같은 시간, 그 시간을 사는 나를 뭐라고 해야…… 의사는 이해 못한 얼굴이다. 


자라가 바다에서 육지로 올라오니 힘들어 죽겠거든. 그만 입이 얼어서 토생원해야 되는데 호, 호, 호생원…… 해버린 거지. 그리하여 범이 내려오는디! 어느 날 판소리를 배우고 싶다던 친구는 얼마 전에는 심봉사 눈뜨는 대목을 연습하며 심봉사 욕을 한 사발 하더니 오늘은 수궁가 중 ‘범 내려온다’를 웅얼웅얼하다 앞뒤 이야기를 해준다. 의사의 얼굴이 지워진다. 호랑이가 워리렁 운대. 워리렁 워리렁 그건 물려죽은 인간들의 울음소리 같다. 범 물어갈 년. 할머니가 나한테 그랬는데. 워리렁. 범이 진짜 물어가기도 했나보네. 마을에서 처녀도 바치고 했겠지. 워리렁 워리렁 울면서 떨었겠고. 미끄럼틀 아래로 사라진 아이의 머리통이 세상에 나왔을 때 한 여자도 그렇게 울었을 것 같고. 



토요일


홀로(holo)는 그리스어 어원을 가진, 완전하다는 의미의 접두사다. 홀로는 완전하다. 일몰은 전 세계적 슬픔으로 어디에서든 눈물을 꾹 참는 잠깐이 있었는데 진짜 운 건 딱 한 번뿐이었다. 오늘은 그 잠깐, 진짜, 울음 같은 것에 대해 썼다. 잃음이 우선이고, 애도는 그다음이다. 잃음에 우선 집중하는 글을 읽고 싶다. 잃음의 지속성을 사유하는 게 애도라면, 그전에 우선 집중해야 할 게 있을 것 같다. 닿기에 너무 어려운 거기. 홀로. 



일요일


손해보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한동안 어떤 이야기도 가질 수 없었다. 지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나서도, 더는 속지 않겠다고 마음먹고도 마찬가지였다. 쓰기는 어떤 마음의 단념으로부터 시작되는 건가, 여러 번 생각했다. 


“기억은 욕망의 선택이죠. 욕망이 수호하는 시간만이 남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 왜 잊히지 않냐고 묻지 마세요. 욕망이 하는 일인 겁니다.”


그러니까, 그 욕망은 도대체 누구의 것이냐고 묻고 싶었다. 내가 어쩌질 못하는 걸 내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고도.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라는 개소리를 한 번만 더 하면 이 커피잔으로 저 남자의 정수리를 내려쳐버려야지.

정말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유약해 보이지만, 나는 아주 강해 보이는 인간들이 하지 못하는 일을 종종 한다. 그들은 생각도 못한 일을. 강한 인간들은 굳이 그런 일을 하지 않아도 쉽게 주목을 끌 수 있다. 그래서 점점 더 강해진다.

탁,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그가 즉각 눈살을 찌푸렸다. 재빨리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가긴 했지만 그는 내게 들켰다. 한번 들킨 인간은 계속 들키기 마련이다. 재미가 아주 많이 없어졌다. 그만 일어나려는데 그가 말했다.


“뭐 하나 부탁해도 될까요?”

“아니요. 하지 마세요.”


그가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렸지만 눈가에는 서늘한 기운이 스쳤다. 내가 빤히 쳐다보자 그는 입을 다물고 이번에는 기분이 상했다는 걸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탁탁. 구두 뒷굽으로 바닥을 내려치는 모양새가 우스웠다, 그래서 웃었다. 차라리 이게 낫다. 어디서 성숙한 인간 흉내인가!


“부탁을 들어줬으면 좋겠어요. 꼭.”

“일단 말해봐요. 봐서 들어주든지 말든지……”

“당신을 죽이고 싶어요.”

“그러든지, 그럼.”


그렇게 나는 카페에서 죽었다. 8인용 원목 테이블이 내 관이 되었다.


요즘 내 이야기는 다 이 모양이다.



월요일


네번째 관리비를 입금했다. 이곳으로 돌아온 지 4개월이 지났다. 이사와 함께 달라진 것들이 이제야 하나둘 눈에 들어온다. 집은 아직도 게스트하우스 같지만. 변화는 이제 반복되는 혼란 외에 무엇도 아니다. 혼란 속에서 모든 신경계가 맥을 탁 놓고 재조립을 기다린다. 재조립이 끝나면 며칠 아플 것이다. 아직은 아프면 안 된다. 혼란을 연장하고, 안심하지 않는 것으로 아픔을 잠근다. 대신 오늘은 게을러야지, 했는데 월요일이다. 신난다.


원금상환을 미루고 약간의 이자를 납부했다. 이건 시간 이야기이기도 하다. 가령, 이사와 책 발간과 비영리단체들의 사업보고서와 여성노인들과의 인터뷰, 새로운 강의를 정신없이 해치웠지만 원금은 멀쩡히 남아서 12월 한 달 내내 과수면으로 보냈다. 영영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상관없다, 하면서 잠들었다가 어떤 기척에 잠에서 깨면 아빠가 제일 먼저 떠올랐다. 아빠야? 하루는 소리 내 허공에 물은 적도 있는데 갑자기 머리맡에 벗어둔 안경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그걸 써야 할 것 같아서 일어났다. 안경을 쓴 채 머리를 감았다. 세수하다가 안경을 벗었다. 슬펐다.


천천히 긴 세월 동안 헤어지는 중인 사람들이 있다. 그가 나를 이곳으로 불렀다. 누군가와 가까워진다는 건 내가 인간이란 종의 어떤 점을 제일 못 견디는지 알게 하는 경험이다. 나는 내게 제일 불편한 존재이고, 내가 제일 싫어하는 누구도 내가 나를 싫어하는 만큼은 아니다. 그래서 어떤 미움은 쉽게 포기된다. 버겁다. 다른 사람까지 미워하는 건. 그래서 돌아올 수 있었다. 이제 나는 그를 미워하지 않는다. 다만 궁금했다. 그때 잘못 살았던 건 내 탓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여기서 혼자 내가 잘살 수 있으면 그걸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어떻게 살아도 그때보다는 잘사는 게 될 테지만. 


오드리 로드에게 시는 ‘검토되지 않은 마음’이었다. 그 마음을 존중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 시쓰기라고 나는 이해했다. 미움에서 나는 냄새, 내가 찢어놓은 얼굴들, 심해어들이 잃은 시력…… 이런 걸 어떻게 써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시는 내게 평생 먼 것. 먼 것이어서 좋은 것. 안경을 쓴 채 머리를 감는 일 같은 것. 오늘은 그런 글을 쓰고 싶다고 두 번 생각했다. 이런 게 제일 부끄럽다. ‘하고 싶다’의 뻔뻔함. 아직 아프면 안 되니까 게으르고 뻔뻔하기로 한다. 월요일이다. 아이고.



화요일


병원에 가기 싫어서, 헬카페에서 라테를 마시기로 했다. 일단 병원에 들른 다음에. 종일 흐리고 혈압은 잠에서 깰 때부터 발목 정도만 오르내릴 정도여서 신발 신을 마음이 도무지 생기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제 꾼 꿈이 불현듯 스쳐서 옷을 갈아입었다. 최근 꿈에서 꽤 많은 장례를 치렀다. 가장 많이 등장한 망자는 나였는데, 어젯밤에도 내 장례식에 사람이 하나도 없는 꿈을 꾸었다. 나는 관 속에서 어째서인지 바깥을 다 볼 수 있었고, 입구에서 한 여자가 들어오려는 사람들을 사력을 다해 막고 있는 것도 보였다. 웅웅웅웅 벌떼소리 같은 울음소리를 내는 여자였다. 손에 흰 천을 뭉쳐 쥐고, 한 번씩 눈가를 훔치는 여자. 엄마였다. 왜 저렇게 우는 것도 열심인가. 웅웅웅웅. 엄마가 우는 게 싫었다. 관 속에서 엄마를 불렀다. 화난 목소리로 들리지 않길 바라면서. 엄마 손에서 툭, 새하얀 천뭉치가 떨어졌다. 엄마는 화들짝 놀라 재빨리 뭉치를 주워들었다. 그건 하얗게 시든 내 심장이었다.


신발을 신으면서 내가 다니는 병원에 장례식장이 있는지 검색했다. 심장이 탈색되는 기분을 아는 사람이 거기 있었으면 좋겠다. 오늘 달은 어떨지 모르겠다. 정월대보름이 아버지 기일이다. 아버지가 죽고 한동안 아무 연고 없는 사람들의 장례식장을 어슬렁거렸다. 울고 있는 사람에게 말을 걸어오는 일은 잘 없어서 주로 대학병원 장례식장, 가장 사람 없는 호실에 앉아 조용히 울었다. 딱 한 번 누군가 곁에서 등을 쓸어줬다. 다른 한 번은 울면서 밥 먹으면 체한다고 소화제를 쥐여준 사람이 있었다. 내 또래의 여자였다. 나는 울면서도 잘 웃었다. 고맙습니다. 그렇게 말할 때는 더 잘 웃었다. “잘못했어요”를 웃으면서 말하지 않는 것처럼 “고맙습니다”를 울면서 말하면 안 된다. 그래서인지 그렇게 울고 집에 와도 덜 운 기분이었다. 혼자는 울지 않았다. 마찬가지로 혼자 술을 마시지 않기로도 했는데 그건 이제 지워도 되는 결심이 되었다. 지겹게 방영되는 설 특집 재방송처럼 반복해 시동이 걸리는 기억들이 정월대보름까지 이어질 것이다.


이맘때쯤엔 꿈과 현실이 거의 구분되지 않는다. 아버지 장례 이틀째 되던 날에 장례식장과 연결된 영안실로 타다 만 시체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어왔다. 대구지하철화재참사 사망자 192명 중 일부였다. 나는 탄 몸의 냄새를 하루종일 맡았다. 그 냄새도 돌아온다. 자꾸 그렇다. 방화를 저지른 사람은 아버지와 같은 50대 중반의 남자였고 뇌졸중 후유증으로 뇌병변장애, 심한 우울증을 갖고 있었다고 했다. 식장을 찾은 조문객들이 다소 흥분한 상태로 전해준 소식들이었다. 그런 말들보다는 전하는 이들의 눈에 스치던 묘한 흥분감이 더 오래 남았다. 저런 흥분감과 신남이 뭐가 다른 거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누군가의 불행은, 죽음은 원래 신나는 것일지도 모르지. 그때 이후 나는 내 불행도 그렇게 느낄 때가 있다. 어쨌든 나도, 다른 식장의 지친 상주들도 사망자 가족들의 쩌렁한 울음소리에 자세를 고쳤다. 새것이다, 저 울음은. 아버지의 의식 없는 모습을 보고 터진 내 첫 울음도 비슷했나. 내가 도착하길 기다리던 응급실 주변의 사람들이 내 주저앉음과 울음소리에 그래, 표정을 애써 정돈하는 걸 본 것도 같다.


웃음으로 가릴 수 있는 게 많다는 걸 아는 사람들이 제일 어쩔 줄 모르겠다 싶은 곳이 병원 응급실과 장례식장이다. 눈물로 가릴 수 있는 것도 없진 않지만 상대가 안 되지. 그러니까 웃자. 병원에 다녀왔다. 장례식장에는 가지 않았다. 대신 카페에 가서 한 시간 정도 앉아 있었다. 라테를 가져다주는 서버에게 고맙습니다, 인사할 때는 마스크 안에서도 활짝 웃는 입이었다. 웃음과 마스크. 이중 도어락. 



수요일


혼자 살지만 고립되지 않기가 몇년째 비혼 친구들의 화두이다. 너무 고립되어 자아상이 틀어졌거나 더는 연결하기 힘든 세계로 간 이들과의 절연 경험이 고민으로 이어져온 셈이다. 우리는 다를 수 있을까? 혼자 살면 어떤 면에서 보수성이 강화되는 지점이 있다는 얘기를 나누다가 그런 걱정 묻은 자문을 한다. 글쎄. 거의 낙관하지 않는 것도 20년 비혼 삶들의 특징 중 하나인가 싶고. 우리는 조금씩 우리가 이상해지고 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실은 그걸 아는 사람들과만 친구로 지내고 있다. 


기질과 성격에 따라 우선순위가 다르기 때문에 비혼이라도 삶의 양상이 다 다르다. 친구들도 그렇다. 10년, 20년 살다보면 그 우선순위가 바뀌기도 하고. 차이를 만드는 중요한 요소인 계급은 드러내 말하진 않지만 언제나 우리가 ‘너와 나는 다르지’ 하고 등을 돌릴 수 있는 이유로 관계 틈에 도사리고 있다. 비혼 여자 둘이 ‘아파트’에 사는 것과 비혼 여자 혼자 ‘반지하’에 사는 일의 공통점을 찾으려고 하면 한쪽이 많이 지워진다. 신기하게도 사람들은 그런 얘기를 하지 않는다. 자기 소유의 집에서 주식 동향을 살피며 살 수 있길 바라면서 그 욕망에 혹시 흠이라도 생길까봐 어떤 존재들의 입을 막는다. 비혼들의 세계라고 다를 게 없다. 인생의 반을 혼자 살면서 거의 변하지 않은 것이라면 좋은 동행들과 건강의 중요성 정도일까. 무섭다가 무섭지 않고, 막막하다가 또 늘 그렇지도 않다. 하지만 제도적으로 잠시라도 대리/대타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아파도 운신할 수 있을 만큼 아파야 한다는 건 지금까지 같다. 비혼은 결혼하지 않음의 상태 외에도 어떤 세계로부터 배제되어 친구 없이, 가족 없이 혼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 선택이다. 내 선택이 나에게 가장 큰 위협이 되는 삶. 위협과 함께 오는 고통을 지금껏 겪고 살아남았다는 게 또 힘이 될 거라고, 아파서 결근했다는 친구의 집 앞에 죽을 걸어두며 편지도 함께 남겼다. 아플 때, 힘들 때 여자들은 곧잘 자기 저울 위에 다른 여자들을 올린다. 혹독하고 사나운 마음이 된다. 친구는 죽을 다 비우고 너그러워졌다고 했다.



목요일


첫 문장이 툭 떨어지지 않으면 다른 사람의 책들을 뒤진다. 내가 보는 건 그들의 마지막 문장이다. 그게 좀더 양심적일 것 같아서인데, 어째서 그게 양심적인가 묻는다면 설명할 순 없다. 오늘 훔친 마지막 문장은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무수한 얼굴들과 다시 마주친다”였다.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무수한 얼굴들과 다시 마주친다.


5일 만에 집밖에 나왔다. 내가 이름을 아는 얼굴은 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나는 타인의 이름을 잘 잊고, 얼굴은 더욱더 잘 잊는다. 아니다. 처음부터 기억에 담아지지 않은 걸 잊었다고 말할 순 없다. 타인의 이름을 잘 외우지 못하고, 타인의 얼굴은 상형문자나 다름없다.


“안녕하세요.”

강의실에 먼저 와 있던 한 얼굴의 이름 역시 떠오르지 않았다. 5초 정도 그 얼굴에 집중하니 그가 쓴 글이 떠올랐다.


“괜찮으세요?”

글과 연결해서 적절한 질문을 골랐다. 그는 안녕하지 못하고, 전투의 흔적이 글과 얼굴에 남아 있었다. 내 가방 속 약봉지에 든 것과 같은 알약이 그의 글 속에도 있는 것 같았는데 그의 이름은 계속 기억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곧 얼굴도 흐려졌다. 고양이 한 마리가 그와 나 사이를 지나갔다. 죄책감이 없어서 자기 연민도 없는 존재 하나가. 오늘도 구원은 고양이뿐이다. 


이름을 알 수 없는 무수한 얼굴들이 말을 하고 웃고 찡그렸다. 이름을 알 수 없는 무수한 얼굴들이 서로를 읽어나갈 때 나는 그 얼굴들에서 내 얼굴이 겹치는 부분을 계속 지우고 있었다. 모두의 얼굴에 내 얼굴이 있다. 지긋지긋한데 봉긋봉긋해서 두 손톱을 세워 짜버리고 싶다, 늘. 진심에 가까울 뿐 진심은 아닌 얼굴들, 그건 다 내 얼굴이다. 죄책감이라는 너와 나의 악몽. 꿈을 깨는 데 망치가 좋을까, 돌이 좋을까. 자신이 도망쳐온 그곳으로 한 번은 돌아가야 하는 일이 곧 글쓰기이기도 해서 그 얼굴들은 한 번씩 지독하다. 다시 도망치고, 또 돌아가면서 어떤 때는 딱 한 문장, 그 한 문장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지구 반 바퀴를 날아가기도 했는데. 아직 나는 그 한 문장을 쓰지 못한다. 참, 저 무수한 얼굴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