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방파제

수민은 방파제를 향해 서 있었다. 

수민의 키를 웃도는 높이의 장벽이 해안선을 따라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게 이어졌다. 레몬색으로 페인트칠을 한 방파제 벽면에는 바다 생물 조각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부조되어 있었다. 소라, 불가사리, 따개비, 물고기 모형을 눈으로 좇던 수민이 고개를 들자, 먼 곳으로 갈수록 차츰 색이 짙어지는 여름하늘이 보였다. 미지근하고 부드러운 바람에 바다 비린내가 실려왔지만 방파제에 가로막혀 수민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바다를 보기 위해 땡볕에 한 시간 동안이나 걸어 이제 막 도착한 참이었다. 오늘 아침 수민은 휴대폰의 지도 앱으로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바다를 찾았었다. 도보로 삼십 분. 화면을 가로지르는 해안 산책로 위쪽으로는 바다가, 아래로는 관광호텔과 SNS로 유명해진 브루어리가 딸린 편집 숍이 있었다. 바다를 일별한 뒤 맥주를 한잔 마시고 돌아갈 계획이었다. 바다에 오는 길에 오르막이 있었던데다가 출구 공사중인 지하보도에서 헤매는 바람에 시간이 두 배쯤 더 걸렸지만 괜찮았다. 여행이 다 그런 거니까. 그러나 방파제의 높이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 것은 지도 어디에도 나와 있지 않았다. 운동화를 신은 발바닥이 불에 덴 듯 화끈거렸다. 수민은 창문을 모두 닫아두어 열기에 익어가고 있을 자신의 아파트를 떠올렸다. 수도 레버를 냉수 방향으로 끝까지 돌려도 물에서 찬기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날이 더워, 세간도 사람도 무르기만 한 날들이 오래 이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끈질긴 더위도 언젠가는 지나가기 마련이었다. 조금만 더 견딘다면. 계절의 순환은 수민이 미래에 대해 가질 수 있는 가장 안전한 낙관이었다.


수찬에게서 문자 메시지를 받았을 때, 수민은 여느 때처럼 집에서 원고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갓 데뷔한 젊은 스위스 작가의 연애소설이라는데, 유럽에서 상을 몇 개 받으며 꽤 주목을 끈 모양이었다. 편집 의뢰를 한 곳은 이제 막 외서 한 권을 출간한 신생 독립 출판사로, 수민은 세 달 전 합정역 부근의 공유 오피스에서 대표와 미팅을 했었다. 사무실로 가는 길, 벚꽃이 진 자리에 돋아난 잎사귀들이 풍성하게 그늘을 드리운 늦봄 골목이 싱그러웠다. 대표는 대학을 졸업한 지 얼마 안 된 듯 앳돼 보였다. 원고가 아직 번역 작업중이라 편집 일정이 유동적이라고 양해를 구하는 목소리가 사근사근했다. 텀블러를 만지작거리던 대표는 일 얘기가 마무리될 즈음 갑자기 예상보다 높은 제작 단가와 대형 서점의 매대 진열 비용, 크라우드 펀딩에 필요한 굿즈 제작 등등 일인 출판사 창업 이후 무궁무진하게 샘솟는 어려움에 대해 늘어놓기 시작했다. 수민을 내내 ‘수민님’이라고 부르더니 헤어질 무렵엔 눈을 맞추며 “언니, 많이 도와주세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수민은 일개 외주 편집자인 자신이 무엇을 도와줄 수 있을까 싶어 웃고 말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어리고 기민한 대표에게 자신이 허황되게 노련해 보이려 했던 것은 아닐까 반성이 되기도 했다. 수민은 출판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전향한 이래로 새롭게 만나는 업계 종사자들의 나이가 점차 자신보다 어려지고 있다는 것을 최근에 들어서야 실감한 참이었다. 세상에 뒤처지고 있다는 조바심이나 마흔을 코앞에 두고도 여전히 불안정한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다는 자책감을 느낀 것은 아니었다. 그런 시기는 이미 지났다. 다만 몸에 익은 태도나 감각에 대한 의구심이 들기는 했다. 자신이 응당 언니로 보이나? 과연 자신이 언니라고 불릴 만한가? 같은 것들.

소설은 므제브의 겨울 별장에서 무료하게 휴가를 보내던 주인공이 스키장에서 우연히 만난 남자에게 호감을 느끼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그와 카페로, 레스토랑으로, 칵테일 바로 자리를 옮겨가며 기나긴 탐색전을 거치는 동안, 소설은 몽블랑의 절경을 성실하게 담아냈다. 둘 사이에 흐르는 성적 긴장과 지적 유희로 서사는 지루하지 않게 흘러갔지만 수민은 어쩐지 문장에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그 대신 유사한 배경의 다른 작품들, 이를테면 젊디젊은 동성 연인과 별장으로 휴가를 떠났다가 애인에게 주먹으로 얻어맞은 안경 쓴 늙은 남자의 이야기나, 나치를 피해 도망친 므제브에서 믿었던 이에게 배신당하고 급기야 기억까지 잃어버린 인물의 서글픈 독백 같은 것들만 연달아 떠올랐다. 출판사에서 원문 대조용으로 보내준 프랑스어 원서의 PDF 파일과 번역 원고 파일, 검색창, 불한사전 사이트 등으로 어지러운 컴퓨터 화면 아랫단에서 수찬의 문자 메시지 창이 떠오른 것은 그때였다. 수민아, 나 스님이 될까 해.   

 

수민은 돌아가기로 했다. 바다를 찾은 것은 섬 여행의 의례적인 과정일 뿐, 그다지 간절한 목표는 아니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것은 실제로도 그래서, 막상 섬에 도착하자 여행의 의욕이 순식간에 사그라져버렸다. 숙소는 시내에 위치한 레지던스였다. 수민이 그곳으로 숙소를 잡은 건 휴가철을 살짝 비켜났지만 여전히 바닷가 부근의 숙소는 만실인데다가 떠들썩한 분위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수민은 밤이면 투숙객들이 옥상이나 거실에 모여 술을 마시고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른다는 낭만적인 후기가 올라온 숙소들을 가장 먼저 제외했다. 섬이니 사방이 바다일 텐데, 굳이 바닷가 쪽에서 잠까지 잘 필요는 없지 않나 싶기도 했다. 다행히 침실에 난 작은 창으로 먼 바다를 볼 수 있었다. 사흘의 여행 기간 중 이틀 내내 비가 내리는 바람에 숙소에 머무는 시간이 많았던 수민에게, 해질녘 수평선 위로 켜켜이 쌓이는 노을과 갈치잡이 어선의 일렁이는 등불이 뒤섞이는 풍경은 여행의 가장 인상 깊은 장면으로 남기도 했다. 수민은 어스름할 무렵이면 침대 끄트머리에 앉아, 해가 완전히 진 어둠 속에 집어등 불빛만이 희미하게 깜빡일 때까지 천천히 맥주 한 캔을 비우곤 했다. 그것은 벽 너머에서 쉼없이 들려오던 말소리와 웃음소리를 상쇄할 만큼 충분히 의미 있는 경험이었다. 여행은 의외로움 없이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여행지에서의 우연한 만남과 소동은 소설적 형식일 뿐이었다. 이제, 늦은 오후에는 비행기를 타야 했고 공항엔 그보다 일찍 도착해야 했다. 

수민이 막 산책로를 벗어나려는데 어디선가 고함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초록색 탄성 포장재가 깔린 야외 농구장이 눈에 들어왔다. 청년 넷이 둘씩 편을 먹고 농구를 하고 있었다. 청년들은 농구공을 쫓아 몸을 움직이며 소리를 질러댔다. 고함의 주인은 그들 중 하나인 모양이었다. “여기” “미친놈아” 따위의 말들이 수민의 귀에 닿았다. 수민은 한동안 농구공이 이 손에서 저 손으로, 가끔 골대로 옮겨지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땀을 닦거나 음료를 나눠 마신다는 핑계로 경기는 자주 중단되었지만 햇빛은 일정한 밝기로 그들을 가두고 있었다. 청년들은 농구를 하면서, 혹은 농구를 하지 않을 때에도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는 듯 과장되게 행동했다. 젊음을 과시하는 것처럼. 어쩌면 젊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않아서 더욱 과시적으로 느껴지는 것일지도 몰랐다. 농구장 뒤로 광장이 있어, 킥보드를 타는 아이들과 개를 데리고 산책을 나온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것이 보였다. 벤치에는 유아차를 끌고 나온 여자가 앉아 있었다. 네다섯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비눗방울을 불며 여자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여자는 아이를 바라보다가 아이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주변을, 그보다 조금 더 먼 곳을 보다가, 이내 아이 손에 들린 비눗방울 막대를 고쳐 쥐여주었다. 수민은 눈을 가늘게 뜨고 아이가 연신 불어대는 비눗방울을 보려 했지만 거리가 먼 탓인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는 허공에 대고 소리를 질러 동료를 부르는 작은 동물 같기도 했다. 


수찬이 수민의 눈에 띈 것은 아주 오래전, 한인이 운영하는 파리의 한 노래방에서였다. 그 당시 수민은 한 살 위의 유학생과 함께 살고 있었는데, 룸메이트는 그르노블과 코트 뒤 론의 어학원을 거쳐 파리에서 이 년째 보자르 입학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이른바 장수생이었다. 대학교 졸업을 한 학기 남겨두고 일 년짜리 어학연수를 위해 이제 막 비행기에서 내린 수민에게 사 년 동안이나 프랑스 전역의 어학원을 섭렵하고 있는 룸메이트는 그저 멋스럽게만 보였다. 케밥을 포장하는 동안 가게 주인과 농담을 주고받는 것을 보면서, 프랑스어가 저렇게나 유창한데 왜 아직 입학을 못했는지 의아하기도 했다. 룸메이트가 구사하는 프랑스어가 단어와 단어가 조악하게 연결된 몇 가지 문장 유형의 돌려 막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수민은 한두 달이 지나고 귀가 트이며 자연스레 깨닫게 되었다. 그래도 룸메이트는 장점이 많았다. 수민은 파리에 도착한 첫날 룸메이트가 차려준 어설픈 저녁 밥상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날 룸메이트는 코트 뒤 론산 샴페인 한 병과 함께 골뱅이무침을 내왔었다. 골뱅이무침이라니. 매운 음식을 잘 먹지 못하는데다가 대형 캐리어를 끌고 공항에서 지하철로, 포석이 깔린 길과 엘리베이터가 없는 아파트의 육층 계단을 걸어올라오느라 진땀을 뺀 수민에게는 반갑지도 그렇다고 새롭지도 않은 음식이었다. 숨이 죽지 않아 뻣뻣한 파채 위에 가지런히 얹어져 있던 골뱅이들. 수민은 그걸 몇 개나 집어먹었는지는 잊어버렸지만, 그날 밤 냉골 같은 방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펑펑 울었던 것만은 기억하고 있었다. 너무 어렸어. 수민은 자신이 낯선 세계를 감당하기엔 너무 어리숙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누군가 그 시절에 대해 물을 때면 으레 너무 어렸다는 말로 운을 떼곤 했다. 골뱅이 통조림이 질 좋은 와인 한 병의 가격과 맞먹는다는 사실을, 그래서 그날의 밥상이 큰 호의와 환대의 의미였음을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한참이 지난 뒤였다. 룸메이트는 사람 사이의 주고받음이 일종의 세상의 리듬이라는 것을 일찍이 깨달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누굴 만날 일이 생기면 그게 어떤 자리든(심지어 어학원 종강 파티에도) 내성적인 수민을 끌고 다녔다. 수민을 살뜰하게 챙기는 룸메이트 때문에 둘은 때때로 레즈비언 커플로 오해를 받기도 했지만 둘 다 그냥 웃고 넘어갔다. 

그 자리는 룸메이트가 그르노블에서 어학연수를 했을 당시 알고 지낸 한국인 유학생들과의 모임이었다. 대부분이 유학 이삼 년 차에 어학을 끝내고 대학 생활을 시작한 터라 수민의 눈에는 그들이 이미 성공한 사회인들처럼 보였다. 그들은 토요일 저녁마다 어학원 기숙사 앞으로 자신들을 태우러 오던 나이트클럽의 봉고차에 대해 좋았던 한때를 추억하듯 이야기했다. 한식 주점에서 값비싼 닭 모래집 볶음을 안주 삼아 한 병에 십 유로가 넘는 소주를 몇 병이나 시키는 호기를 부리기도 했다. 아직 어학생이라는 길고 어두운 터널을 빠져나가지 못한 룸메이트는 그날따라 말수가 적었다. 룸메이트는 원체 넉살이 좋은 사람이었다. 놀러오면 짜파게티를 끓여주겠다는 친구의 말에 수민까지 끌고 아파트 칠층까지 걸어올라갈 정도였으니까. 수민아, 우리집은 육층이라 참 다행이야, 그렇지? 생각보다 좁고 어두운 통로에 겁을 먹은 수민을 안심시키듯 룸메이트는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헉헉대며 말했었다. 그래서인지 그 술자리에서 룸메이트가 지었던 애매모호한 표정은 오랫동안 수민의 마음에 남았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수민과 함께했던 그 시기가 룸메이트에게는 유학 시절 중 가장 견디기 어려운 나날이었을 것이다. 터널을 빠져나가기 직전에, 산 정상의 마지막 고비에서 사람들은 가장 비관적이 되곤 하니까. 게다가 룸메이트는 수민의 선배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긴 했지만, 겨우 스물네 살이었다.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수민은 아마 룸메이트에게 값비싼 소주를 한 잔이라도 더 따라주었을 것이다. 등을 다독이면서, 조금만 더 견디면 다음해에 언니가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게 될 것이라고, 몇 년이 지나면 금의환향하듯 한국으로 돌아와 안국동에서 개인전도 열게 될 것이라고 귀띔을 해줬을 것이다. 그러나 그때의 수민은 아무것도 몰랐기에 한 그루 나무라도 된 양 침묵을 지키고 있었을 뿐이었다.

노래방으로 자리를 옮기고 더욱 자리가 불편해진 수민이 일어날 기회를 엿보느라 주변을 훑어보고 있을 때였다. 오랑지나를 축내며 옆 사람과 가만가만 이야기를 나누던 남자애 하나가 노래방 리모컨을 가져가더니 신중하게 버튼을 누르는 것이 보였다. 통성명은 했지만 그 이상은 서로가 궁금하지 않아 말을 섞지는 않았었다. 사실 그 자리에 있는 누구도 자신을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걸 수민은 눈치채고 있었다. 그곳에는 성취감과 기대감이 뒤섞인, 자기 확신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 사이를 시계추처럼 오가는 거대하지만 과민한 자아들이 모여 있었고, 아직 아무것도 증명해내지 못한 수민에게 관심을 보일 이유는 전혀 없었다. 전주가 흘러나오자 소파에 몸을 파묻고 있던 그가 자세를 바르게 고쳐 앉았다. 마이크를 양손에 꼭 쥐고서 한없이 간절하게 보아의 <어메이징 키스>를 부르던 동갑내기 남자애. 그게 수찬이었다.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났다. 수민은 요즘 마음속으로 자주 그 문장을 되뇌었다.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다고. 별과 우리의 영원을 노래하던 순진한 그 남자애는 어디로 갔을까. 승려가 되고 싶다는 수찬의 문자 메시지를 받은 뒤 수민은 충동적으로 비행기표를 예약했다. 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혼자 찜통 같은 방에 틀어박혀 일만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작업실로 사용하는 서재에는 에어컨이 없었다. 에어컨이 있는 거실에서 작업을 하면 되었지만, 혼자 시원하자고 에어컨을 틀게 되진 않았다. 혼자 시원한 게 뭐 어때서. 수민은 얼음을 탄 커피를 너무 많이 마신 탓인지 아려오는 아랫배를 쓰다듬으며 생각했다. 커서가 깜박이는 문서 편집기에 ‘피서’라고 적어보았다. 이미 쓰인 단어들 사이에 끼인 두 글자가 그 어떤 문장보다도 적절해 보였다. 

어쩌면, 수찬의 말은 진심이 아닐 확률이 높았다. 그는 늘 원하는 것을 에둘러 말하는 버릇이 있었으니까. 그래서 수민은 때로 프로파일러가 된 심정으로 수찬의 일거수일투족을 추적해 그가 소망하는 것을 유추해보곤 했다. 그러나 대체로는 내버려두었다. 무엇이든 적당히 해야 하는 법이니까. 재작년, 수찬이 목공일을 해보겠다면서 굳이 경기도 북부 외곽의 다 쓰러져가는 창고를 빌려 주말마다 그곳에서 먹고 자고 했을 때에도 내버려두었다. 그런 태도가 문제였을까. 언젠가부터 수찬은 주중에도 그곳에 가 있기 시작했다. 수민은 혼자 눈을 뜨고 밥을 먹고 잠이 드는 것에 점차 익숙해졌다. 그래도 내버려두었다. 시간이 해결해주는 것도 있기 마련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수민은 수찬을 아주 오랫동안 보아왔다. 그를 속속들이 안다고 할 순 없지만, 알 만큼은 안다고 생각했다. 수찬은 노력에 비해 일이 잘 풀리는 축에 끼진 못했다. 능력에 비해 좋은 평가를 받아본 적도, 요행을 얻어본 적도 없었다. 그는 늘 기대에 살짝 못 미치는 정도의 결과를 받아왔고, 정작 원하는 것을 얻었을 땐 너무 늦어 필요 없어지거나 더 큰 것을 원하고 있었다. 그러나 완전히 실망할 정도는 아니었기에 일을 관두지 않았을 뿐이라는 것을 수민은 잘 알았다. 뭐든 의미 없는 과정은 없다고, 포기하지 않고 버티다보면 노력이 복리로 돌아올 거라고 스스로를 다독였을 것이다. 수찬은 함께 유학 생활을 했던 이들이 종종 들려주는 놀라운 소식들, 이를테면 해외에서 상을 받았다거나 회사를 차렸다거나 대학에 전임으로 임용되었다거나 하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들과 자신의 처지를 비교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면서, 저마다 삶의 속도와 방향이 다르다는 자기 계발서식 자위 방법을 통해 평정심을 유지하려 했을 것이다. 흔들리면 지는 거라고, 자신에게 주어진 작고 소박한 세계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으려고 애쓰면서, 점차 쌓여가는 피로와 회의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라 주변을 두리번거렸을 수찬을, 수민은 이해했다. 그럴 수 있었던 건 그간 수민의 처지도 수찬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였다. 그러나 문제는 수찬이 수민의 법적인 배우자라는 사실에 있었다. 그리고 그 점은 아주 자주, 유대와 이해를 가로막는 넘을 수 없는 장벽으로 기능했다.


산책로를 벗어나자 성벽처럼 도시 바깥을 에두른 관광호텔들이 보였다. 대형 마트와 횟집들, 여행객들을 대상으로 전복죽이나 옥돔구이를 파는 식당들이 호텔 뒷길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지도 앱을 따라 골목 안쪽으로 조금 더 들어가자 너른 공터가 나타났다. 파라솔이 딸린 야외 테이블에서 대낮부터 맥주를 마시는 사람들 뒤편으로 두 개의 낮은 건물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사층 정도 되어 보이는 세련된 외관의 건물 중앙 벽에는 편집 숍의 트레이드마크로 보이는 그라피티가 있었는데, 그 앞에 서서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부산했다. 건물로 들어가기 위해 가까이 가자, 하나같이 어리고 잘 꾸민 차림새라 수민은 자신의 단출한 입성이 새삼스레 의식되기도 했다. 일층 브루어리 반대편에는 화분 몇 가지와 함께 정원용품을 구비해두고 있었다. 아파트에 사는 수민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었다. 베란다에 화분 정도는 둘 수도 있었을 텐데, 벌레가 꼬인다는 이유로 수찬이 극구 만류했던 기억이 났다. 요리사가 집에선 절대 요리하지 않는다거나 개그맨이 집에선 누구보다 과묵하다거나 하는 말들처럼, 조경회사에 다니는 수찬 역시 집에서는 아무것도 기르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닐까 싶어 수민은 쉽게 단념했었다.

그때, 노래방에서 수찬이 어떤 표정을 하고 있었더라? 높은 키의 노래를 목이 터져라 부르던 수찬은 평균보다 큰 키에도 불구하고 아직 덜 자란 듯 여린 느낌이었는데, 마이크를 두 손으로 꼭 쥐고 있어서 양어깨가 종이를 접은 것처럼 보였다. 입고 있던 청바지가 유독 두껍고 질기게 느껴졌던 것도 기억났다. 그러면서도 목소리는 어딘가 울분에 차 있어서, 전체적으로 불균형한 성장의 한 과정을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중에 왜 그렇게 마이크를 간절히 쥐고 있었냐고 묻자, 수찬은 손이 너무 떨려서 어쩔 수 없었다고 대답했다. 처음 보는 수민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 자체가 크나큰 만용이었다고. 그때의 수찬은 그를 구성하고 있는 그 어떤 요소도 조화되지 않은, 불안정성의 집결체 같았다. 그건 수민에게 너무나 익숙한 것이자 하루라도 빨리 벗어던지고 싶은 것이었지, 매력적이라고 느낄 만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나중에 그가 스트라스부르에서 원예학을 공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선별된 꽃들과 인위적으로 재단한 나무들로 꾸며진 프랑스식 정원이 그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때문에 도리어 문득문득 생각나곤 했다.

 

맥주는 달고 시원했다. 브루어리는 셀프로 운영되고 있었는데, 센서가 부착된 팔찌를 원하는 맥주에 태그한 뒤 알아서 따라 마시는 방식이었다. 맥주의 이름과 정보가 적힌 안내판에 십 밀리당 가격이 쓰여 있었다. 익숙하지 않은 방식인데다 남은 자리가 사 인석 하나뿐이라 망설였었지만, 맥주를 들이켜는 순간 앉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오래 땡볕에서 걸었고 바다를 보는 것도 실패했으니 이 정도 만용은 괜찮지 않나 싶었다. 수민은 첫잔을 빠르게 비운 뒤, 파인트 글라스를 챙겨 가장 도수가 높은 에일맥주를 따랐다. 느긋하게 비우고 천천히 왔던 길을 되돌아가면 자연스레 술이 깰 것이라고 생각했다.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니 비로소 주위의 풍경에 흥미가 생겼다. 한쪽 구석에 쌓인 소포장된 볶은 메밀도 보였다. 기념 삼아 두어 개를 결제하고 돌아왔을 때, 수민의 자리 근처에 젊은 남녀 한 쌍이 쭈뼛거리며 서 있었다. 수민이 테이블에 앉자, 둘 중 여자가 조심스레 말을 걸어왔다. 빈자리가 없어서 그러는데 옆에 앉아도 되겠느냐고. 혼자 오신 것 같아 실례를 무릅쓰고 여쭙는다고. 수민은 잠시 당황해 입을 떼지 못했다. 합석이라니. 요즘 세상에도 합석이라는 게 있구나 싶어서. 

수민의 옆자리에 마주보고 앉은 남녀는 한눈에도 연인 같았다. 몇 살일까. 수민은 빠르게 잔을 비우며 대각선 맞은편에 앉아 무음 카메라로 연신 여자를 찍어대는 남자를 힐끔 보았다. 아마 무척 어릴 것이라고, 어쩌면 자신이 수찬과 첫 데이트를 했을 때보다도, 혹은 자신이 유학 비용을 모으느라 수업을 마치자마자 아르바이트를 하러 카페로 달려가던 그 시절보다도 더 어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수민은 귀국을 두 달여 앞둔 늦가을, 수찬과 파리의 수목원에서 첫 데이트를 했었다. 서울에서는 첫눈이 내렸다는 소식이 들려왔지만, 파리는 거의 매일 비가 내리고 스산하기만 한 날이 오래 이어지고 있었다. 지긋지긋한 날씨라고, 코트는 습기를 먹어 점점 더 무거워지고 석회질의 물과 어학원 선생의 등쌀에 머리숱이 절반으로 줄어든 것 같다고, 이러다 곧 대머리가 될지도 모른다고 느끼면서 이런 칙칙한 곳에 있을 만큼 있었으니 그만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아침에 눈을 떠서 자기 직전까지 떠나지 않던 때였다. 수목원에 도착하자, 수찬은 꽃이 모두 진 수련 앞으로 수민을 데려갔다. 그러곤 메마른 꽃대만이 구부러진 철사처럼 군데군데 남아 있어 폐허처럼 보이는 얕고 더러운 연못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제도 저걸 치웠어. 뭘? 수민이 묻자 수찬이 대답했다. ‘부’ 말이야. 요즘은 매일매일 학교 정원에서 부를 치워. 수찬은 저걸 다 걷어내면 그때부터 정원의 겨울이 시작된다고 했다. 저 아래엔 죽은 잎들과 나중에 무엇이 될지 모르는 씨앗들과 작은 복족류들로 가득차 있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수민의 뻣뻣한 모직 코트의 소매를 슬쩍 잡았다 놓은 수찬이 속삭이듯 말했다. 내가 작은 민달팽이 보여줄까?  

수민은 그때 자신이 뭐라고 대답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주 나중에, 그 시시한 데이트를 끝으로 수찬과 친구로 남기로 한 뒤에, 먼저 한국으로 돌아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취직한 어느 출판사 책장에 꽂혀 있던 식물에 관한 에세이에서 수찬이 매일 치웠다는 그것을 ‘오니’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았다. 더러운, 그러나 가능성으로 가득찬 진흙 더미. 

수민은 이제 자신에게 ‘가능성’이라는 단어가 아름답게만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 단어는 다른 사람들, 예를 들면 옆자리에 앉은 풋풋한 커플이나 그보다 어린 사람들의 것일 때만 좋아 보였다. 특히 결혼 후 그 말이 수찬의 입에서 튀어나왔을 땐 늘 싸움으로 번졌다. 어떤 때는 ‘현실’이나 ‘인내’, ‘책임’ 같은 단어로 수찬의 입을 틀어막아버리고 싶기도 했다. 수민은 생각했다. 정말 그럴까? 자신에게 가능성이란 더는 유효하지 않은 단어일까? 문득 수민은 자신을 의자로부터 떼어내는 어떤 힘을 느꼈다. 너무나 부드러워 이것을 힘이라고 불러야 할지 혼란스러울 정도로 미약한, 그러나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서는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분명하게 느껴지는 힘이 자신의 등을 떠밀고 있었다. 그건 수민이 태어나 처음 경험하는 종류의 감각이었다. 아직 무엇이라 정의 내릴 수 없고 인정하고 싶지도 않은, 그러나 명백히 추락에 가까운 감각. 수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절반 정도 남은 맥주잔을 반납 트레이에 올려두고 가게문을 열자 잠시 잊고 있었던 강한 열기가 수민을 덮쳐왔다. 수민은 택시 호출 앱을 켰다. 다시 생각해보니 걸어가기엔 날이 너무 더웠다. 이제 정말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