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회

1부 사건 : 수호 (1)

1부 사건 : 수호


창작의 규칙 1

시작된 이야기는 자유롭게 쓰여야 한다


*


은하가 쓴 마지막 문장을 읽고 각자 다른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이런 전개였어요?”

답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훈이 어깨를 한 번 들썩였다. 

“나쁘지 않네요.”

솔직히 말해서 제법 훌륭했다. 은하는 몇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읽어줄 만한 소설을 써냈다. ‘은하’는 자동 창작 프로그램으로, 입력 도중 구동을 멈추고 새로운 문장을 입력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우리가 ‘중간 문장’이라고 지칭하는 그 문구에 영향을 받아 전개 방향이 달라졌다. 순조로운 흐름을 끊고 일부러 오류를 일으키게 하는 방식이었다. 

이번에 시연 팀에서 중심 키워드로 잡은 단어는 ‘비밀’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은하가 폭로할 비밀이 무엇일지, 은하가 쓰기 전까지 아무도 몰랐다. 더군다나 은하 자신도 모를 터였다. 모든 것은 은하의 알고리즘에 따라 우연하게 결정되었다. 


등장인물 이름은 각자의 것을 사용했다. 은하의 애인은 민수호, 바로 나였고 친구는 라이였다. 편집장 역할은 훈이 맡았지만 안타깝게도 훈의 이름은 ‘불필요한 단어’로 처리되어 은하의 이야기에 등장하지 않았다. 새로운 전개를 이끌어내는 물속호랑이는 결말부에 입력한 추가 인물이었다. 물속호랑이는 ‘수호’라는 이름의 한자어를 풀어 쓴 것이었고, 내가 웹상에서 쓰던 실제 아이디이기도 했다. 

은하의 창작에 방해가 될지 모를, 도저히 맥락이 맞지 않는 문장을 넣기로 한 것은 내 아이디어였다. 


때때로 민수호는 잔혹한 농담 같은 일을 벌였지


특히 ‘잔혹한 농담’이라는 키워드에 가중치를 부여했다. 은하는 그 ‘잔혹한 농담’에서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낼까? 

“그야말로 농담 같은 일이지 않아?”

라이가 문장을 입력하고 나를 돌아보았다. 일부러 그러는 것처럼 ‘잔혹한’이란 형용사는 생략한 채 묻고 있었다. ‘잔혹한 농담 같은 일’이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뜻하는 게 아닌가도 싶었다. 이것은 죽은 은하의 인격을 가상에서 되살려내는 작업과 다름없었다. 은하가 두 개의 수로 이루어진 세계에서 부활하여 예전처럼 다시 소설을 쓰는 일. 그런 것이 가능할까 싶었지만, 기술적인 영역만 따지고 보면 못할 것도 없었다.


일반적으로 막대한 기록 데이터를 학습 기반으로 삼는 창작 인공지능에, 특별히 죽은 이에 관한 기억을 조합해 가상 인격으로 만드는 일은 원 라이브러리의 창작봇 개발에 최근 관심을 보이는 이들이 적극적으로 동의하는 부분이었다. 죽은 이와 관련된 이들의 증언, 실제로 그가 남겨놓은 기록을 학습한 인공지능이 자연스럽게 문장을 만들어내고 심지어 고인의 목소리를 흉내내는 음성 기술과 만난다면 어떨까? 은하를 개발하기 전까지 ‘죽음’이 얼마나 큰 시장성을 가진 것인지 나는 미처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누구보다 잘 안다고 할 수 있었다.

“은하의 이야기에 따르면 결국 민수호가 방화범인 거네. 수호가 은하에게 말하지 않으려던 비밀도 그런 것이었을 테고.”

은하라고 부를 때마다 라이는 약간 머뭇거렸다. 은하는 창작봇에 붙인 이름이지만 원래 내 연인의 이름이었다.

“우리가 입력한 문장이 이야기의 흐름을 바꾼 거겠지.”

나는 떨떠름하게 대꾸했다.

“원래 은하는 어떻게 이야기하려고 했을까?”

“‘원래’라는 건 없어. 우리 앞에 나타난 것이 원본이자 최종본이야.”

라이는 팔짱을 낀 채 입꼬리를 내렸다. 

“내 생각에는 이번에 출력된 이야기도 시연 때 공개할 만한 건 아닌 것 같아.”

“왜요? 난 저번에 나온 호랑이 이야기보다 좋은데요. 거기서는 호랑이가 다 잡아먹어 버리잖아요.”

훈이 장난스러운 말투로 끼어들었다.

“그거 알아요? 지금까지 452회나 테스트했는데, 389회가 비극으로 끝나요.”

그가 테스트 결과표를 띄운 태블릿을 보여주었다. 

“어떤 비극?”

“주인공이 죽잖아요.”

그렇게 말하면서 훈은 시무룩한 얼굴이 되었다.

“나머지는 어떻게 끝나지?”

“행복한 결말은 없어요. 다치거나 정신이 이상해지거나 거리를 떠돌죠. 아니면 세계의 종말을 암시해요.”

훈이 한숨을 내쉬었다.

“저는 다른 결말을 보고 싶어요. 행복해질 거란 예감이라도 주면 안 되는 걸까요?”

“은하가 우리 뜻대로 되는 건 아니지.”

라이의 말이 맞았다. 자꾸 잊게 되는 것은 자동 창작 기술 프로그램이 우리 마음대로 이야기를 만들어주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아무리 인간이 개발한 것이더라도 ‘창작’이라는 카테고리에 속하는 순간, 우리의 요구를 강요할 수 없었다. 은하의 자율성은 곧 창작의 자유에 닿아 있었다. 은하가 창작 로봇이 되기 위해서는 자유롭게 문장을 구사할 권리를 가져야 했다. 

개발 초기와 비교하면 지금은 상황이 좋은 편이었다. 그때 은하는 그야말로 제멋대로였다. 자신이 쓴 소설에서 범죄를 방관하고 동물을 학대했다. 불을 지르거나 길을 가다 아무나 붙잡고 시비를 걸었다. 당시 주기적으로 진행하던 A/B문장 선호 테스트에서도 높을 때는 95.46% 확률로 부정적인 문장을 선택했다. 초기에 ‘무조건 많이’ 긁어모은 데이터가 문제였다. 우리는 사용이 용인된 문서 중 공신력 있는 매체에서 발행한 수백만 건의 기사를 취합해 기본 데이터를 형성했고, 그런 기사들이란 대체로 고통스럽고 자극적이었다. 결국 은하는 세계를 그런 곳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당연히 결과물도 그에 상응했다. 

은하의 방향성을 바꾸기 위해 실제 창작자가 오랜 시간 고민해 만든 인과의 흐름, 감정의 논리가 필요했다. 그러나 이제 막 창작봇 개발을 시작한 스타트업인데다가, 개발자로만 구성되어 지원 인력이 미비한 프로젝트팀이 희소한 정보를 얻기란 쉽지 않았다. 저작권이 만료된 자료가 아닌 최신 창작 데이터를 구할 수 없었지만, 우리는 그 부분을 의외의 방식으로 해결했다. 창작자들이 드나드는 플랫폼에 ‘우리에게 당신의 소설을 팔아달라’는 광고를 낸 것이었다. 놀랍게도 하루 만에 수백 건의 신청서가 쏟아졌다. 보름 만에 일만 건 가까운 소설을 모았다. 그중 분량순으로 오백 건을 선별했다.  창작자들에게는 별도의 비용을 지불했다. 소설을 제공한 이들 중 자신이 쓴 글로 돈을 벌어보는 일이 처음이란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글을 쓰는 일이 비참할 정도로 돈을 벌어다주지 못한다고 했다. 은하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글을 쓰는 건 돈이 되지 않는다고. 그래서 늘 다른 일이 필요하다고. 돈을 벌어다주는 일이. 글을 쓸 시간을 벌어다주는 일이. 

그런데 정말 그런가? 이번 기술 전시에서 창작봇 시연이 성공하면 수십 억 혹은 수백 억을 손에 쥐고 달려올 기업들이 있었다. 지금이라면 은하에게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게 왜 돈이 안 돼? 네가 쓰는 모든 문장은 돈이 될 거야. 무엇을 쓰든 세상은 놀랄 테고, 너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돈의 문제를 초월하는 영역이 되겠지.




창작의 규칙 2

일단 첫 문장을 쓰라


*


“점심 같이 먹을래?”

활기찬 목소리. 방으로 들어온 사람은 라이였다. 벌써 오후 두시였다. 키보드에서 손을 떼고 휠체어 브레이크를 올렸다. 어느새 라이가 다가와 뒤에 달린 손잡이를 잡았다.

“내가 할게.”

호의를 거절하고 미는 바퀴에 손을 올렸다. 라이는 성큼 발을 뻗으며 나란히 걸었다. 

“왜 점심도 안 먹고?”

“너랑 먹으려고.”

아마도 라이는 출근길에 일어난 일을 신경쓰는 것 같았다. 아침에 보니 회사 앞 보행자 도로가 공사중이었다. 아직 땅에 삽을 꽂거나 포클레인이 동원된 건 아니지만, 붉은 통제 라인이 길을 둘러싸고 있었다. 길이 좁아지고 주차장 입구가 막혔다. 회사로 들어오려면 갓길에 주차한 후 반 바퀴를 돌아 얕은 경사가 있는 길로 올라가야 했다. 경사는 이면도로에 붙어 있어 자칫 휠체어가 뒤로 굴러갈 경우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다. 어쨌거나 경사를 오르려면 힘을 잘 분배해야 했다. 중간에 한 번 멈춘 후, 힘을 내어 다시 한번에 올라서야 했다. 경사를 오르고 나서, 수호야,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돌아보니 어느새 라이가 옆에 서 있었다. 묻지도 않은 말에 괜찮아, 라고 답하는데 목 언저리에서 한줄기 땀이 흘러내렸다.

“주차장 입구는 내일 개방한대.”

건물 밖으로 나오면서 라이에게 손잡이를 맡겼다. 우리는 공사 현장을 멀리 비껴갔다. 회사 근처  파스타 가게에 모처럼 웨이팅이 없었다. 들어가자마자 직원이 테이블 의자를 치우고 자리를 안내해주었다. 처음 이 가게에 왔을 때는 서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허둥거리던 일이 떠올랐다. 지금은 괜찮았다. 매뉴얼이 있는 것처럼 다들 동작이 매끄러웠다. 

“좀 놀랍지 않아? 여기 오는 동안 쓰레기 하나 없던데?”

라이가 자리에 앉아 식기를 세팅하며 말했다.

“구청에서 환경 미화에 돈을 많이 쓰나봐.”

거리에 쓰레기가 보이지 않는 까닭은 초록 옷을 입은 남자 덕이었다. 라이는 그 사실을 몰랐다. 나는 라이에게 그에 대해 말하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라이는 착각한 채 계속 구청의 일이라 여기고 깨끗한 거리를 칭찬했다. 

음식이 나왔고, 라이는 시금치 파스타를 포크로 둘둘 말았다.

“어때? 슴슴하니 좋지?”

라이는 내 손에 든 것이 소금통인 걸 모르는 모양이었다. 나는 소금통을 뒤집어 탈탈 털었다. 라이는 이 집 파스타가 건강하게 맛있는 맛이라고 종알거렸다. 그러다가 큰 실수를 저질렀다는 듯 얼굴을 일그러뜨리더니 곧 휴대폰을 꺼내 항공샷 구도로 파스타가 담긴 접시를 찍었다. 그후에는 무슨 말을 꺼내려는 것인지 입술만 달싹거리며 내 눈치를 봤다.

“무슨 말이 하고 싶어서?”

라이는 입술을 혀로 한 번 훑더니 침을 삼켰다.

“언제부터 그런 거야?”

“뭘?”

“돈 말이야.”

그 말을 듣자마자 라이가 알아버렸다는 걸 직감했다. 들켰다고 해서 당황할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내가 번 돈이었다. 어떻게 쓰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사실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어.”

라이는 답답한 듯 숨을 내쉬었다. 몇 달 전 회계팀에서 연말 정산 중 대뜸 라이에게 업무 추진비 내역을 청구한 일이 있었다. 세무서에서 넘어온 지출 내역을 확인하는데, 내 지출 내역이 기이할 정도로 적었던 것이다. 혹시나 개인 지출을 업무 추진비에서 사용하는 건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업무 추진비 내역에서 특별히 문제삼을 일은 없었으므로 회계팀의 의심은 금방 사라졌지만, 그 일을 통해 라이가 내 상황을 눈치챈 것이었다.

나는 매달 은하의 부모에게 돈을 보내고 있었다. 

은하의 부모는 D타워 쇼핑몰 앞 천막에서 살았다. 벌써 3년이었다. 쇼핑몰 화재로 가족을 잃은 유족들과 노숙을 했다. 나는 월급날이면 그들을 찾아갔다. 돈이 든 봉투를 그들 주머니에 악착같이 찔러넣으면, 그들은 다시 봉투를 주머니에서 꺼냈다. 나는 제발 집으로 돌아가달라 청했다. 그들은 한데서 자니 종일 뼈가 시리다면서도 노숙 생활을 계속했다. 두 사람에게는 돌아갈 집이 있었다. 심지어 꼬박꼬박 집세도 내고 있었다. 그런데도 거리에서 잤다. 철거 공사마저 중단된 흉물스러운 쇼핑몰 앞에서 글자가 다 바랜 시위 푯말을 세워둔 채 지냈다. “돈 좀 그만 가져와.” 그들이 돌려주려는 돈봉투를 피하다가 매번 바닥에 떨어뜨리곤 했다. 그럴 때마다 은하의 어머니는 봉투를 주워 내 옆구리에 쑤셔넣었다. 내가 그것을 다시 바닥에 떨어뜨리고 줍지 않았기에 이번에는 은하의 아버지가 그것을 주워들었다. 나는 그들을 협박하듯 말했다. “집으로 가세요, 그러지 않으면 계속 돈을 가져올 거예요.” 그들은 상관없다는 듯 별말이 없었다. 포기한 듯 축 처진 팔 끝에 돈봉투가 힘없이 매달려 있었다. 이렇게 지내는 건 은하를 위한 일이 아니라 말해도 그들은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슬픔을 재앙처럼 받아들이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느껴보고 싶다고 했다. 슬픔을 겪은 이들 속에 섞여 있을 때, 땅에서 올라오는 한기를 느끼며 서로 몸을 붙이고 잠들 때, 이상하게도 슬프지 않고 잠시 평화롭다고 했다.  

왜 그들이 슬픔을 그런 방식으로 견디는지 알 수 없었다. 우리가 같은 일을 겪었는데도 각자의 몫으로 슬픔이 주어질 때는 그 모양이나 무게가 다르다는 점을 한동안 이해할 수 없었다. 드러내놓고 말할 수 없었지만 어떤 날에 나는 전혀 슬프지 않은 것 같았다. 슬픔에 짓눌려 일부러 차가운 바닥에 몸을 누이는 사람을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어떤 날에는 가만히 있다가도 심장이 터질 듯 뛰었다.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터져나왔다. 슬픔이 신체의 고통으로 이어지는 감각을 여실히 느껴야 했다. 그럴 때 나는 슬픔에 빠진 모든 이들을 잠시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떤 날에는 하염없이 울었다. 너무 많은 눈물은 피를 흘리는 것과 비슷해서 말 그대로 죽지 않기 위해 희미해지는 정신을 붙들고 구조 요청을 보내야 했다.

그럴 때마다 나를 살려낸 사람은 라이였다. 

라이는 엎드린 나를 일으켜세우고 차가워진 손을 단단히 잡았다. 천천히 숨을 쉬라고 알려주었다. 

“숨을 들이마시고 내쉴 때마다 HP가 조금씩 올라갈 거야.”

정말이지 라이다운 주문이었다. 그것은 대학 시절, 우리가 만든 조잡한 롤플레잉 게임에서 주인공이 체력을 끌어올리는 방법이었다. 가만히 숨을 쉬는 것. 방향키를 위로 아래로 눌러가면서 깊이 들이마시고 내쉬는 일을 계속하는 것. 그것은 게임에서 그렇듯 현실에서도 효과가 있었다. 계란 악당이 등장하는 그 게임 속에서 플레이어는 아무리 체력이 떨어져도 죽지 않았다. 언제나 싸워야 할 곳으로, 자신이 있어야 할 곳으로, 계란 악당의 던전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우리는 그에게 체력을 충전할 수 있는 묘약을 무한히 마시게 해주었고, 숨만 쉬고 있어도 되는 여유로운 시간을 충분히 가지게 해주었다.

“그래도 적당히 보내.”

라이는 돈의 액수가 너무 많다고 지적하면서도 그들이 돈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유리하게 해석했다.

“아무리 프로그램이라고 해도 딸의 이름을 붙였잖아. 불편한 이야기를 쓰면 좋아하시지 않을 거야. 그렇지만 달리 생각하자면 돈을 받고 있다는 건 그런 일을 허락한다는 소극적인 표현 아닌가 싶기도 해. 기사에 나오는 내용도 크게 신경쓰지 않으셨고.”

그러고 보니 언젠가 은하의 부모는 나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그 소설 쓰는 로봇은 잘 만들어지고 있니?” 그들은 그것을 절대 ‘은하’라고 부르지 않았다. “은하는 거의 완성되어 가고 있어요.” 무심결에 대답했을 때 그들은 부드럽고 정확하게 틀린 부분을 짚어주었다. “그래, 그 소설 쓰는 창작 기계 말이야.” 

“그 분들은 은하를, 절대 은하라고 부르지 않아.”

라이는 더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식은 파스타를 입에 넣으며 생각했다. 어쩌면 은하의 부모는, 우리가 은하라고 이름 붙인 창작 기계가 아름다운 이야기를 써주기를 바라고 있지 않을까. 그런 착각을 하고 싶었다. 나와 라이가 그런 마음을 가진 것처럼 그들도 같은 마음이기를 바라면 안 되는 걸까?

라이 말대로 지금 상황은 우리에게 유리했다. 화재 사고 유족의 동의를 받아 희생자의 기억을 바탕으로 개발된 인공지능 창작 로봇이라는 기사가 나간 이후, 세간의 관심이 차츰 커져가고 있었다. 죽은 이와 관련된 생전 데이터를 입력해 초기 세팅을 만든 디지털 인격이라는 점에서, 이것은 가상 인간에 대한 실험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게다가 고인이 이루고 싶던 꿈이 작가였다면, 창작 로봇이란 가장 어울리는 서사가 아닌가. 하지만 그 로봇이 계속 어두운 이야기만 쓴다면? 전혀 행복하지 않은 결말만 내놓는다면?

“은하가 쓴 이야기를 읽으면 그분들은 상처받을 거야.” 

“모르겠어. 이건 소설일 뿐이잖아.”

내 입을 통해 나왔지만, 나에게조차 와닿지 않는 말이었다. 나와 라이는 조용히 몇 초간 서로를 바라보았다. 상대의 눈동자에 떠오른 똑같은 물음을 읽고 있었다. 정말 이 모든 게 소설일 뿐일까? 그렇게 말하면 아무도 상처받지 않는 걸까?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길에 라이는 휴가를 요청했다.

“훈이 테스트를 돌릴 거고, 은하가 다른 버전을 생성하는 데 이틀은 걸릴 거야.”

보름째, 라이는 집에 돌아가지 못했다. 

“그렇게 해. 기술 전시 전까지만 돌아오면 돼. 쉬면서 뭐하려고?”

“걸을 거야.”

“어디를?”

“산에 가려고.”

“어느 산?”

라이가 고개를 젖히고 웃었다. 

“언제까지 물을 거야? 그렇게 궁금해?”

나는 외출하려는 엄마의 옷자락을 붙드는 아이 같았다. 라이가 산에 가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고 라이는 데이트를 하러 가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드디어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알았어. 이제 안 물을게.”

라이는 싱겁다는 듯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돌아오지 않을까봐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