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회

1부 사건 : 수호 (3)

창작의 규칙 5

처음으로 돌아가는 일을 두려워하지 마라


*


커피를 마신 후 회사로 돌아왔다. 기술 전시회까지 남은 일정을 확인하고, 데이터실로  들어갔다. 훈이 날 보고 놀랐다. 나는 입력할 데이터가 있다고 말했다. 훈은 자리를 비켜주었다. 나가기 직전 라이는 어디 있느냐 묻길래 휴가 신청을 하고 가버렸다 대답해주었다. 그의 어깨가 힘없이 쳐졌다. 훈은 라이를 좋아했다. 너무 티가 났다. 라이도 훈에게 말한 적이 있었다. 이 세계에서 우리가 연인으로 발전할 가능성은 없다고. 훈은 그 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이 세계가 아니라면 저 세계에서 가능한 일이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훈은 평행 세계 이론 따위를 믿었다. 라이는 그런 생각이 별로 낭만적이지 않으며 과학의 탈을 쓴 섬뜩한 합리화에 불과하다고 했다. 훈은 합리화라는 말에 몸서리쳤다. 라이는 합리화가 아니면 다 무엇이냐고 따졌고, 둘은 씩씩거리며 어느 쪽이 옳은지 나에게 판단해달라고 했다. 나는 아무런 결론을 내릴 수 없었지만, 속으로는 두 사람이 잘 어울리는 커플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뭐, 그런 일이 있었고, 이후 둘 사이 미묘한 신경전을 벌이는 것 같았지만, 여전히 훈은 라이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그럼 나중에 봬요.”

훈이 겉옷을 챙겨 방을 나갔다. 나는 입력 전용 컴퓨터를 켰다. 무엇을 쓸지 알 수 없더라도 키보드에 손을 올리면 무엇이든 떠오를 것 같았다. 수집된 파일 목록을 보았다. 은하를 처음 만난 날의 기록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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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기온 영하 17도. 출근을 하자마자 전화가 왔다. 기획 팀장이었다. 차가 얼어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고 했다. 

“혹시 출근한 사람 또 있어요?”

모르는 사람이 유리벽 너머 회의실에 앉아 있었다. 

“오늘 입사하는 임은하씨일 거예요. 좀 챙겨줘요.”

회사 규모가 크지 않아 사내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을 서로 공유했지만, 사람이 들어오고 나가는 일은 전적으로 기획 팀장이 담당하는 인사 영역이라 전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나는 낯선 사람을 대하는 일에 젬병이었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일을 떠넘길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사무실은 텅 비어 있었다. 

은하는 개별난방이 가동되는 회의실에 들어가 훈풍을 쐬며 몸을 데우고 있었다. 익숙하지 않은 공간에서 따듯한 자리를 찾아내다니 똘똘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회의실로 들어가 안녕하세요, 먼저 인사를 건넸다. 은하는 고개를 반만 들고 네, 하고 대답했다. 

“첫 출근이시죠?”

“네. 지각은 안 했어요” 하며 은하는 자신의 손목시계를 만지작거렸다.

“집이 가까워서요.”

우리는 어색하게 눈을 맞췄다. 얼른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하는데,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 어울리는 자연스러운 대화란 무엇이지? 

“얼마나요?”

집이 가까우니 얼마나 가까운지 물어보는 것, 자연스러운가?

“걸어서 삼분 삼십 초 정도 걸려요.”

은하는 회사 옆에 있는 길쭉한 건물 꼭대기에 살고 있다고 말해주었다. 그러더니 무언가 깜빡했다는 듯 화들짝 놀라며 나에게 손짓을 보냈다.

“여기로 오세요. 여기가 더 따뜻해요.”

은하는 자기 옆자리를 가리켰다. 나는 괜찮다며 손을 내젓고 맞은편 의자를 당겨 앉았다. 

“여기도 괜찮아요.”

“그래요?”

그러더니 은하는 앞에 놓인 책으로 시선을 옮겼다. 나는 긴 머리카락과 그사이 얇게 드러나는 귀를 무심결에 보고 있었다. 누군가를 그토록 넋 놓고 바라보는 일이 무척 오랜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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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의 책상에는 담배꽁초처럼 몽당연필이 쌓여 있었다. 은하는 책상에 붙어 있지 않았다. 주로 빈 회의실에 들어가 있었다. 책상은 그저 연필을 쌓아두는 장소처럼 보였다. 회의실 안에서 은하는 공부에 몰두한 학생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걸 하겠다고 저렇게 티나게 일을 하니?’ 다들 수군거렸다.  

은하가 회사에서 하는 일은 캐릭터와 이벤트 굿즈를 기획하는 것이었다. 대표의 조카가 자리를 꿰찬 상품 디자인 파트의 실적이 썩 좋지 않았기 때문에, 팀장이 고민 끝에 기획만 전담하는 자리를 신설한 것이었다. 은하는 원래 등산 잡지를 만드는 잡지사에서 기자를 하다가 국비지원으로 디자인 툴을 배운 후 재미삼아 참가한 굿즈 공모전에 입상하면서 디자인 쪽으로 발을 돌린 케이스였다. 기자를 하면서 접하게 된 이야기들을 상품에 접목시켜 작업하는 것이 눈길을 끄는 점이었다. 은하가 공모전에서 입상한 상품 디자인 중 잎맥을 새긴 노트 표지는 조난 사망자 근처에서 발견된 이파리를 본 뜬 것이었다. 그후에 수몰된 마을 모형을 담은 스노볼을 만들어 개인적으로 판매를 시작한 것이 특이하게 여길 만한 이력이었다. 

면접 당시 기획 팀장이 왜 그런 굿즈를 기획하느냐 물었더니, 은하는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잊히는 일들이 있다고 답했다. 그 이야기를 전해들었을 때 누구도 은하와 경쟁해 이길 수는 없었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의미로든 ‘좋은 기획이란 소름이 돋아야 한다’ 믿는 팀장에게 조난 사망자와 수몰된 마을 같은 키워드는 절대 놓칠 수 없는 것이었을 테니까.

은하는 왜 그 일들을 기억하고 싶었을까? 나중에 나는 은하가 다니던 잡지사가 어떻게 사라지게 되었는지 듣게 되었다. 취재를 나간 기자가 산에서 조난된 채 발견되었고, 그 소식이 소셜 미디어를 통해 일파만파 퍼졌다. 그러고 보니 어렴풋이 뉴스에서 본 기억이 났다. 건강상 이유로 취재를 거부하던 기자를 강제로 출장 보냈다는 소문이 돌았고 사내 괴롭힘이 밝혀졌다. 곧이어 잘 팔리지도 않던 잡지의 매출이 줄어들었고 충성도가 있던 구독자들마저 떠났다. 누적된 적자를 감당하지 못한 잡지사는 파산해버렸다. 얼마 후 은하가 굿즈 공모에 낸 노트 표지의 나뭇잎은 은하의 옷에 우연히 붙어온 것이었다. 은하는 조난 사망자를 발견한 시각 그곳에 있었다. 구조대를 부른 것도 은하였다. 아무도 그를 찾지 않아 자신이 찾으러 간 것이었다. 잎들은 은하의 옷에 들러붙어 함께 산을 내려왔다. 마치 손톱이라도 있는 것처럼 그 잎들은 옷을 꼭 붙들고 있었다고, 가만히 보고 있으면 혈관처럼 불거져 나온 잎맥에서 은하는 좀처럼 눈을 뗄 수 없었다고 했다. 

“왜 그렇게 한 거예요?”

“그게 제가 떠난 사람을 애도하는 방식이었어요.”

은하는 그렇게 말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 순간 은하에게 처음으로 호감 이상의 감정을 느낀 것 같았다. 밀도나 깊이가 충분하지 않은 감정이었지만 사랑의 발아 단계라고 할 만한 순간이었다.


은하의 책상이 뭉툭한 연필들로 너저분해져 메모지 한 장 펼칠 공간도 남지 않게 되었을 때, 나는 은하에게 별것도 아닌 일을 묻기 위해 회의실로 찾아가곤 했다. 두 잔의 핫초코를 들고서. 그럴 때 은하는, “커피인가요?” 물었다. 연필을 든 손으로 컵을 가리킬 때 연필의 뾰족한 끝을 자신에게 돌려 뭉툭한 쪽이 나를 향하도록 했다. 

“핫초코예요.”

“제 거예요?”

은하가 다가와 컵으로 손을 뻗었다.  

“코코아네요.”

코코아가 아니고 핫초코였다. 그렇지만 둘이 엄연히 다른 메뉴이고, 코코아보다 핫초코가 훨씬 달고 카카오 함량이 높은 음료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은하가 가까이 다가오자 입술이 조금 떨렸다.

“뭐하고 있었어요?”

은하는 그 질문을 반가워하며 작업 노트를 가져와 보여주었다. 할말을 잃게 만드는 장면이 펼쳐졌다. 작은 포인트라도 잡아 칭찬을 하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 은하가 하고 있는 작업이 무엇인지 알아볼 수 없었다. 그것은 노트가 아니었다. 활자가 빠짐없이 줄글로 늘어진 책의 양면이었다. 은하는 그 위에 빼곡히 무언가 적어놓았다. 군데군데 작은 그림도 있었다. 

“이게 뭐죠?”

은하는 입안에 물고 있던 음료를 우글우글 가글하더니 꿀꺽 삼켰다.

“왜요? 어디 이상해요?”

앞니에 갈색물이 들어 있었다. 은하는 치아에 핫초코, 아니 코코아 물이 든 채 환하게 웃었다. 그 모습이 귀여워 보였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손에 든 책을 보았다. 앞 장을 넘기자 더 엉망이었다. 모든 글자에 만년필을 덧입혀두었다. 검은 잉크 자국이 온통 번져 있었다. 무엇이 원래 책 속 글자이고 무엇이 은하의 필적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팀장님도 눈을 비비고 봤어요. 당황하신 것 같았지만 별말씀은 안 하시더라고요.”

지금은 은하가 어떤 기행을 보여도 받아줄 터였다. 지난 분기 은하가 기획한 이벤트 굿즈가 상당한 인기를 끌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우리 회사는 타깃 연령층에 확실한 브랜드 이미지를 각인시킬 수 있었다. 은하의 아이디어로 재고로 남아 있던 피규어 오백 개를 상자에 담아 판매한 것이었는데 그야말로 동이 났다. 은하가 운이 좋았던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운까지 성공에 필요한 요소가 아니겠는가.

“왜 책에 그려요?”

“정신없이 겹쳐놓은 걸 보면 괜찮은 생각이 들 때가 있어서요.”

“어떤 생각이요?”

“어떤 생각이든요.”

책을 돌려 표지를 보았다. 제목은 『타타르인의 사막』이었다. 작가는 디노 부차티이고, 이탈리아 사람이었다. 은하는 그 책이 학창 시절 자신과 이름이 똑같은 친구가 이별 선물로 준 것이라고 했다. 선물이라면, 특히나 이별 선물이라면 깨끗하고 소중히 여겨야 할 것이지만 은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은하는 선물은 자주 닳도록 써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 선물을 준 사람이 소중하다면 더욱 그래야 한다고 했다. 수험 공부를 하던 시절, 그 책은 은하가 가장 많이 손에 들어본 것이었고 자연스러운 수순처럼 대학에서 이탈리아 문학을 전공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막상 대학에 진학해보니 이탈리아 문학이 적성에 맞지 않아, 은하는 전공과목에 소홀한 학생 중 하나가 되었으나 학부 시절 내내 그 책을 가방에 넣고 지냈다. 그러는 동안 한 줄 한 줄 일기 따위를 적어넣던 것이 계기가 되어, 그 책은 점차 책보다는 노트에 가까운 형태가 되어버렸다. 때로는 책 속 글자를 연필이나 볼펜으로 덧칠하듯 따라 썼다. 그렇게 그 소설을 여러 번 정독했다. 

“제목이 『타타르인의 사막』이지만 이 소설에서 타타르인은 나오지 않아요. 처음에는 잘못 읽은 줄 알았어요. 다시 읽었죠. 그렇지만 역시 발견하지 못했어요. 나는 왜 친구가 이 책을 나한테 주었는지 아직도 모르겠어요.”

“아마도 친구가 갖고 있던 유일한 책이 아니었을까요?”

“그럴지도 모르죠.”

“친구에게 연락해봐요.”

“연락할 방법이 없어요. 이사간 후에 연락처를 남기지 않았으니까요.”

“찾으려 하면 찾을 수 있겠죠.”

“그렇겠죠. 그렇지만 그냥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생각할래요. 이 소설 속에서 주인공이 어딘가에 타타르인이 있을 거라고 짐작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은하씨는 이 소설을 좋아하네요.”

“처음에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지금은 그렇게 되었어요.”

은하는 책 속 글자를 따라 적다보면 많은 것이 떠오른다고 했다. 너무나 많은 것이 떠올라 감당할 수 없는 날이 늘어난다고 했다. 

“그러니까, 나는 소설이 쓰고 싶어졌어요.”

“네?”

“이게 무슨 말인지 알아요?”

나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어 은하를 멀뚱히 쳐다보았다. 

“내가 당신에게 호감이 있다는 말이에요.”

이게 그런 말이라고?

“오늘 몇시에 끝나요? 집에 올래요? 우리 이야기해요. 재미있을 것 같아요.”

나는 은하의 제안을 거절할 수 없었다. 치즈케이크를 사서 가겠다고 했다. 은하는 케이크는 식사가 되지 않는다면서 회사 근처 우동 가게에서 카레우동을 먹자고 했다. 

퇴근 후 우리는 약속한 대로 카레우동을 먹었다.

“그 친구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은하가 면발 한 줄을 천천히 입에 넣고 오물거리며 한참을 씹은 후 말했다.

“저는 그 아이가 잘 살고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언젠가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예감이 들어요. 아주 강한 예감이요. 왜 그럴까요?”

“다시 만나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요? 예감은 강한 소망 같은 게 아닐까요?”

“그런가요? 그렇다면 다른 예감도 강한 소망이 되나요?”

“뭘 예감하는데요?”

“우리가 사귈 것 같다는 예감이요. 이게 예감인지 소망인지 모르겠지만요.”

그날 우리는 치즈케이크를 사서 은하의 집으로 갔다. 밤새도록 예감과 소망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이런 대화를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없으리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유일한 대화 상대가 되어갔다. 그건 달리 말하면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되었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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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사이가 되면 익숙해지고, 익숙해지면 더이상 궁금하지 않게 되는 생활이 있었다. 퇴근 후 은하가 소설을 쓰는 일이 그랬다. 그래도 연애 초반에는 종종 물어보았다.   

“왜 소설을 써?”

은하는 자신이 이미 소설가라서 그렇다고 말했다. 한번 소설가가 된 이후에는 어떻게 해도 소설가가 아닌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고 했다. 

“그게 무슨 말이지?”

“소설을 쓰는 일은 그래. 한번 빠지면 그다음이 없어. 계속 사랑하는 수밖에 없어. 피가 마르고 살이 말라도 계속 쓰게 되는 거야.”

무시무시한 말이었다. 그러면서 자신이 쓴 소설을 보여주었다. 쌓아놓은 종이 뭉치가 한 뼘이나 되었다. 제목은 『사막의 타타르인』. 그것은 『타타르인의 사막』에서 단어의 위치만 바꾼 것이었다. 은하는 디노 부차티의 소설에 끝내 타타르인이 나오지 않아서 자신이 그 뒷이야기를 썼다고 말했다. 내용은 디노 부차티가 쓴 소설과 완전히 달랐다. 은하의 소설에서 타타르인은 자신이 타타르인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21세기 자본주의 시대의 평범한 회사원으로 살아간다. 그러나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게임에 빠져들어 생활이 엉망이 된다. 그가 하는 게임은 광활한 사막을 배경으로 한다. 그는 거의 매일 게임만 한다. 그래서 소설의 제목이 ‘사막의 타타르인’인 것이다. 소설에서 타타르인은 바쁜 생활 속에서 결국 자신이 타타르인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는데, 그러한 망각은 그의 삶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이게 무슨 이야기인 거야?” 

“현대인들은 자신의 본래 모습을 망각한 채 살아간다는 메시지……”

은하는 말하다가 고개를 세차게 젓더니 자신이 한 말을 정정했다.

“아니야. 무슨 의미가 있겠어. 쓰다보니 이렇게 쓰였을 뿐이지.”

망각한 채 살아간다…… 그 말이 인상 깊었다. 정말이지 나도 본래의 모습을 망각하고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런데 본래 모습이란 무엇인가. 그런 것을 궁금해하자 은하는 재미있어했다. 

“반응이 괜찮은 거 같네.”

그런 반응에 자극을 받았는지 은하는 그즈음 쓰려던 이야기를 지우고 『사막의 타타르인』 속편을 쓰기 시작했다. 

“이번 편에서 타타르인은 ‘민수호’라는 이름을 갖고 살아가. 하지만 소설 속 민수호는 당신이랑 전혀 다른 사람이야.”

“이미 이름이 민수호인데?”

“그래도 다른 세계 사람이야.”

“다 쓰고 나면 어떻게 할 거야?”

“끈으로 묶어둬야지.”

“그게 다야? 모셔두기만 하면 아깝잖아?”

“보여주려고 쓰는 건 아니니까.”

“그럼 왜 쓰는 거야? 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돈을 벌고 싶으면 다른 일을 해야지.”

“이해할 수 없네. 정말로 왜 하는 거지?”

“그러게. 나도 모르겠어.”

“다른 사람들도 볼 수 있도록 방법을 찾아보자.”

처음에 은하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지만, 그후로는 소설을 쓸 때마다 다른 사람이 볼 수도 있다는 걸 의식하면서 문장을 다듬기 시작했다.


우리가 다니던 회사가 규모를 키우고, 내가 챗봇 개발 프로젝트 팀장이 된 시기에 은하는 퇴사를 했다. 은하는 자신의 소설을 처음부터 다시 다듬어볼 계획을 품고 있었다. 첫 문장으로 돌아갈 용기가 생겼다고 했다. 나는 그러한 용기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그저 너무 긴 글을 쓰는 일이 고될 것 같았고, 퇴사를 하면서 은하가 포기해야 하는 자리가 내 것인 양 아쉬웠다. 

퇴사 후 은하는 『사막의 타타르인』의 속편을 집필하는 작업에 몰두했다. 그 소설 속에서 결국 민수호라는 이름을 가진 타타르인은 과거를 기억해낸다. 망각에서 벗어난 것이다. 그렇지만 과거를 기억하는 것만으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걸 깨닫는다. 그것은 과거를 기억하지 못할 때와 다르지 않은 결과였다. 그는 좌절에 휩싸인다. 이제 마지막 챕터만 남아 있었다. 그러나 은하는 글을 쓰지 않았다. 결론을 내지 않았다. 나는 그 소설이 완성되면 사비를 들여서라도 책으로 출간해볼 계획이었다. 그래서 은하를 재촉했다. 

“어서 결말을 써. 끝을 내.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매듭을 지어야지.”

그러나 은하는 완성하는 일을 계속 미루면서 엉뚱한 소리를 했다.

“결말을 쓰면 소설이 끝나버리잖아.”

“끝내려고 쓰는 게 아니었어? 그럼 왜 쓴 거야? 결말이 없다면 그냥 시간 낭비잖아?”

“시간을 흘려보내기 위해 그런 것일지도 몰라.”

“난 솔직히 이해가 안 돼. 회사까지 그만두었잖아?”

“아직은 끝낼 수 없어.”

은하는 두 팔을 어깨에 교차해 올리고 스스로를 보호하듯 몸을 웅크렸다. 몸을 말아 알처럼 보이는 자세로, 반동을 주어 앞뒤로 움직이면서 지금은 아무것도 쓸 수 없다고 말했다. 마지막 장면은 타타르인이 선택할 일이기 때문에 그 선택을 기다려줘야 한다고 했다. 

“별걸 다 기다려주네.”

“그게 소설을 쓰는 일이야.”

그렇게 말하면서 은하는 미소를 지었다. 결말을 재촉하는 사람이야말로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게 아닌가 돌이켜보게 할 만큼 확신에 찬 얼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