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회

1부 사건 : 수호 (4)

창작의 규칙 6

시간이 지나기를 기다려라


*


다음날에도 초록 남자는 옥상에 있었다. 나는 기술 전시를 앞두고 스트레스가 많다고 털어놓았다. 은하의 이야기를 사람들이 마음에 들어할지 알 수 없었으니까. 당분간 어딘가로 떠나 있다가 모든 일이 끝나면 돌아오고 싶다고 말했다. 

“좀 걸을까요? 답답할 때 걷는 게 좋죠.”

걸을까요? 나는 그 말을 잠시 되새겼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은 ‘걷는다’는 표현을 나에게 건네지 않았다. 라이도 그랬다. 산책할래? 잠깐 나갈까? 바람 쐴래? 그런 말을 통해 ‘다리의 움직임’을 은근히 지워버렸다. 하지만 다리만이 어딘가로 우리를 데려다주는 건 아니었다. 나에게는 휠체어가 있었다. 힘을 주어 앞으로 가면 달릴 때처럼 공기의 흐름이 피부로 강하게 느껴졌다. 멈춰야 하는 순간에는 브레이크와 단련된 팔이 있었다. 

“좀 멀리 가보면 좋겠어요.”

초록 남자는 벤치에서 일어나 가슴을 쭉 내밀었다. 목을 좌우로 꺾을 때마다 둑, 둑, 굳은 근육이 제자리를 찾아가듯 소리가 울렸다. 

“그럼 갑시다.”

초록 남자가 등을 돌렸고, 나는 바퀴를 밀며 뒤따라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와 연보라색 유니폼을 입은 청소부를 지나쳐 건물 밖으로 나왔다. 초록 남자가 입술을 일자로 다문 채 나를 보다가 “그럼, 호수에 갈까요?” 물었다. 

“근처에 호수가 있나요?”

“멀리 가볼 생각이라면 갈 수 있습니다. 물론 시간이 걸리긴 하죠.”

초록 남자는 호수에 가면 큰 건물이 있다고 알려주었다. 모든 면이 유리로 되어 있어 햇빛이 좋은 날이면 보석처럼 빛나는 건물이라고 했다. 초록 남자는 자신이 그 건물이 지어지기 전 그 자리에 있던 공장에서 일했다고 알려주었다. 

“그때 큰돈을 벌었습니다. 100년쯤은 아무 일 하지 않아도 될 만큼 많은 돈을 벌었죠.”

농담인가? 아무리 봐도 그는 큰돈을 번 사람 같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같은 옷이 옷장에 백 벌쯤 있는 사람이면 아무래도 부자인 걸까?

“그런데 왜 일을 하시는 거예요? 돈이 필요 없다면 말이죠.”

그러고 보니 그는 고용된 청소부가 아니었다.

“아시다시피 돈을 받지는 않습니다. 일은 필요하지만 돈은 필요 없어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갸웃거리자 초록 남자가 픽 웃으며 덧붙였다.

“정말로 그 건물에서 일하는 젊은 사람들을 보고 싶어서 그런 건가요?”

“물론이죠.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내 아들 같아 보입니다.”

“그럼, 아들은……”

지금 어디 있나요? 물으려다 관두었다. 꺼내기 힘든 이야기를 하게 될 것 같았다. 오히려 서슴없이 말을 꺼낸 쪽은 초록 남자였다.

“사실 우리 부자는 공장에서 일했습니다.”

그가 뒤로 물러서더니 휠체어 손잡이를 잡았다. 

“이쪽입니다. 길이 좁아지죠.”

손에 힘을 주자 목소리도 단단해졌다. 그의 말대로 길이 좁아졌다. 울퉁불퉁 솟은 보도블록을 지났다. 수풀에 가려 보이지 않던 샛길이 보였다. 길이 아닌 곳을 사람이 다니면서 뚫어놓은 흙길이었다. 

“이 길로 가면 큰 길로 가는 것보다는 시간을 줄일 수 있죠.”

그는 콧노래를 불렀다. 이동의 주도권이 그에게 넘어가자 불안함이 밀려왔다. 그가 이 길에 나를 버리고 간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물론 그가 그럴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기대하세요. 호수가 나올 겁니다.”

그의 걸음이 빨라졌다. 덕분에 나도 속도를 내어 앞으로 나아갔다. 

길의 끝에 도달하자 놀라운 풍경이 펼쳐졌다. 대단지 아파트 하나가 들어설 만큼 넓은 공간을 차지한 호수였다. 사람은 많지 않았다. 물가에 피크닉 매트를 깔고 앉아 호수 건너 나무들을 구경하는 이들이 있을 뿐이었다. 아무도 호수에 들어가지 않았다. 보기보다 수심이 깊은 곳이라고 초록 남자가 슬그머니 알려주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묵직한 구름이 호수 위로 드리워져 있었다. 햇살을 받은 구름의 윗부분은 깨끗한 흰빛을 뿜어내는 반면 아랫부분은 검푸른 빛으로 그늘져 있었다. 호수의 풍경은 밝게도 보이고 어둡게도 보였다. 위를 볼 것인가 아래를 볼 것인가 선택하기에 따라 달리 보일 것이었다.

“이곳은 원래 호수가 아니었어요.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지대가 낮은 곳에 있다보니 해마다 홍수 피해가 심했죠. 시간이 흐르는 동안 하나둘 떠나니 나중에 다섯 집도 남지 않게 되었고요.”

피크닉 매트에 앉아 있는 사람들 사이로 휠체어를 밀고 지나가며 초록 남자가 말했다. 지면이 울퉁불퉁하긴 해도 휠체어가 못 지나갈 정도는 아니었다. 우리는 호수를 더 잘 볼 수 있는 곳까지 나아갔다. 

“다섯 집 중 하나가 우리집이었어요. 마을에 물을 채울 거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와 아들은 막 공장에 들어가 일을 하고 있었죠.”

호수로 가까이 다가가자 해안에 있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밀려오고 쓸려 가는 파도의 흐름만 없었지, 많은 물이 갇힌 공간은 바다를 연상케 했다. 물은 탁했다. 그것이 사람들이 호수에 들어가지 않는 까닭이리라. 흐르지 않는 물이 얼마나 더러운지 가까이서 눈으로 보아야만 알 수 있었다.

초록 남자의 아들 이야기가 계속되었기 때문에 나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은 어디 있나요?”

“아들은 이 세상에 있지 않습니다.”

그는 담담히 말했다. 그 대답은 말 그대로 ‘이 세상’이란 장소에 아들이 없을 뿐이란 것처럼 들렸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바보 같은 질문을 던지고 말았다.

“그럼 어디 있습니까?”

초록 남자는 내 옆으로 걸어와 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무릎을 세우고 두 팔을 그 위에 올리고 손을 맞잡았다. 

“어딘가 있겠죠.”

초록 남자가 고개를 돌려 올려다보았다. 나는 시선을 떨군 채 질문을 했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신다는 거잖아요?”

그의 얕은 탄식이 들렸다. 귓가로 싸늘한 기운이 돌았다. 

“죽었습니다.”

결국 그 말을 하게 만들었다. 

“죄송합니다.”

실은 나도 실망했다. 아들이 어딘가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싶었던 것이다. 

“괜찮아요. 당신은 나와 비슷한 아픔을 겪고 있잖아요. 어떤 말을 듣고 싶었던 건지 이해합니다.”

“언제 그렇게 되었나요?” 

“공장에서 소독 작업을 한 날에 그렇게 되었습니다.”

물가에 닿을 듯 무겁게 내려앉아 있던 구름이 어느새 한쪽으로 휩쓸려가고, 한결 가벼워진 작은 구름이 머리 위에 떠 있었다. 호수는 하늘의 변화와 상관없이 여전히 잔잔했다. 하지만 아무리 잔잔해 보이는 물이라도 가만히 멈춰 있는 것은 아니었다.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물결을 일으키며 하염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호수의 표면은 해안으로 쓸려와 헐떡이는 물고기처럼 파닥파닥 빛을 튕겨냈다.  

“그날은 아들이 파트를 옮긴 첫날이었죠.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자 눈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짜증을 내더군요. 까다롭고 예민한 아이였습니다. 그러더니 밤중에 울면서 응급실에 데려가 달라고 했습니다.”

초록 남자가 말을 멈추었다. 눈앞의 풍경이 조금 달라졌다. 누군가 호수 안으로 걸어 들어가 몸을 낮추고 두 팔을 벌렸다. 수영을 하려는 모양이었다. 더러운 물속에서 뭘 하는 거지? 나의 의문과 달리 물속에 들어간 사람은 즐거워 보였다. 그는 뒤를 돌아 한 손을 들어올렸다. 물가에 앉은 일행에게 시원해, 라고 크게 외쳤다. 다시 들려오는 초록 남자의 목소리.

“나는 아들을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습니다. 내일도 일을 해야 하니 어서 자라고,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말했습니다. 다음날 아침이 되자 아들은 울고 있지 않았습니다. 이불을 머리까지 끌어다 덮은 채 누워 있었어요. 나는 아들을 내버려두었어요. 징징거리면서 어리광만 부리는 아들이 지긋지긋했습니다. 방안에 틀어박혀 컴퓨터만 쳐다보는 녀석을 공장에 밀어넣은 것도 나였죠. 세상을 좀 배우게 하고 싶었습니다. 아들이 좋아하는 그 컴퓨터 속에 진짜 세상은 없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사람과 부딪치고 견뎌내면서 세상을 경험해야 녀석이 잘 살아가리라 믿은 겁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디서든 살아 있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합니다.”

초록 남자가 말하는 동안 수영하는 사람의 일행 중 한 명이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정말 유감입니다. 혹시 제가 도와드릴 게 없을까요?”

휠체어를 탄 이후 언젠가 사람들에게 받은 말을 그에게 돌려주고 있는 것 같았다.

“이야기를 들어주세요. 그게 가장 필요하지요.”

“얼마든지요.”

초록 남자가 이어서 말했다.

“출근할 때가 되도록 아들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대로 두고 가버릴까 싶었지만, 공장에서 아들의 평판이 나빠지는 것은 원하지 않았습니다. 화가 난 채 이불을 거칠게 걷어내고 허리를 발로 밀어냈어요. 그 순간 아이의 몸이 옆으로 힘없이 쓰러졌습니다. 코와 입이 베개에 묻혀 움직이지 않았어요. 그제야 유난히 핏기가 없는 목 언저리가 눈에 들어오더군요.”

어느새 나도 모르게 휠체어 바퀴를 손에 쥐고 있었다. 손이 살짝 떨렸다. 나는 눈살을 찌푸리고 앞을 보았다. 첫번째로 호수에 들어간 사람이 멀어져 잘 보이지 않았다. 

“말도 없이 공장에 나가지 않았기 때문에 금방 소문이 퍼졌습니다. 소독 작업에 투입된 아이가 하루 만에 그렇게 되었다는 소문이었죠. 다음날인가 본사 직원이란 사람들이 찾아와 나에게 부탁하더군요. 부검을 하지 말아달라고요. 대신 그들은 위로금을 제시했습니다. 내 생전 그렇게 큰돈은 처음이었어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들을 병원에 데려가지 않은데다가 죽음의 원인을 파헤치는 대신 돈을 받아버린 그를 비난해야 하는 걸까. 잠시 후 세번째 사람이 호수로 뛰어들었다. 세 사람이 그 더러운 물속으로 들어가자 이제 그곳이 수영을 해도 되는 곳처럼 보였다. 

“누군가에게 비밀을 털어놓는 건 처음입니다.”

“회사에서 돈을 받았다는 것 말인가요?”

초록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아들을 병원에 데려가지 않았던 일이요. 아무도 모릅니다. 아들이 병원에 데려다달라고 울면서 나에게 떼를 썼던 그 일을 말입니다.”

우리는 아무 말 하지 않고 수영하는 세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들이 헤엄쳐 호수 건너편 땅에 닿을 때까지, 모든 사람이 안전하게 발을 육지에 디딜 때까지, 숨죽인 채 바라보았다.

“아직 건물을 보여드리지 않았네요.”

초록 남자는 뒤로 돌아가 휠체어 손잡이를 잡았다.


호수 옆으로 이동하자 공장이 있던 자리에 새로 지어진 건물이 드러났다. 그즈음 더이상 수영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초록 남자는 공장이 다른 지역으로 이사했고, 폐건물을 부순 자리에 건물을 새로 지은 것이라 설명했다. 특별히 이곳을 기억하는 사람이 없다면 여기 공장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했다. 건물은 단층이지만 층고가 높았고 삼각 지붕을 얹고 있었다. 유리로 된 표면이 호수의 전경을 반사했다. 대형 카페인 듯했지만 겉모양만 보아서는 어떤 공간인지 정확히 파악되지 않았다. 초록 남자에게 이곳이 어떤 용도로 사용되는 곳인지 물었더니 어깨를 들썩이며 자신도 모른다고 답했다. 

“어쩐지 나는 들어갈 수 없어요. 저와 어울리지 않는 장소 같습니다.”

초록 남자에 따르면 이 건물은 지어진 지 10년도 넘은 것이었다. 그런데도 갓 지은 건물처럼 윤이 났다. 도대체 누가 매일 유리를 닦는 것일까. 단층이더라도 높은 건물이었다. 벽을 청소하려면 누군가 위에서 줄을 타고 내려와야 할 것 같았다. 우리는 건물 둘레를 천천히 돌아보았다. 유리 너머를 훔쳐보듯 곁눈으로 들여다보았다. 그러다가 그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에 있는 사람들은 밖을 신경쓰지 않았다. 그들은 각자 할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옷을 턱 아래 대어보며 길이를 재보거나 넓은 잎을 가진 관상용 나무 옆에 앉아 차를 마셨다. 나는 유리벽에 닿을 듯 다가가 노골적으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한 커플이 눈길을 끌었다. 둘 다 젊어 보였다. 남자는 여자의 귀에 귀걸이를 가져갔다. 손을 어색하게 들어올리고 내려놓기를 반복했다. 여자에게 어울리는 액세서리를 선물해주고 싶은 듯했다. 하지만 해본 적이 없거나 익숙하지 않은 일 같았다. 여자는 미소를 지으며 금방이라도 농담을 던질 태세로 남자를 마주보고 있었다. 그들은 연인으로 보였다. 혹은 공식적인 애인 관계로 진입하기 전일지 몰랐다. 아니라면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는 사이일까? 잠깐 사이 그 관계를 유추하는 일이 흥미로웠다. 자연스럽게 호감이 일고 무언가 사주고 싶고 손가락이 얼굴에 닿아도 개의치 않을 정도로 가까워지는 사이가 되는 것,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 지금의 나는 그런 일이 불가능하게만 보였다. 과거 나에게 일어난 연애의 기억들이 모두 비현실적으로 여겨졌다. 어떻게 나에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 누군가에게 선물을 해주는 일들이…… 은하의 선물로 구입한 스카프는 여전히 새것으로 남아 있었다. 그날, 연기가 솟아오르는 건물로 들어갈 때 급하게 스카프를 맡아준 사람이 있었다. 나중에 그가 스카프를 돌려주었다. 물건을 돌려주기 위해 내가 입원한 병원까지 수소문해 찾아온 것이었다. 세상에는 그런 사람들이 있었다. 자신이 가질 수도 있는 것을 갖지 않는 사람들. 모든 것을 제자리에 돌려놓는 사람들. 만약 은하가 그 사람을 보았다면, 몇 번이나 그런 말을 반복했을 것이다. 세상에는 그런 사람들이 있어. 아주 괜찮은 사람들.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

“들어가볼까요?”

내가 그렇게 말하자, 초록 남자는 커다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기만 했다. 우리가 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할 까닭은 없었다. 다만 자신이 없을 뿐이었다.

“같이 들어가면 괜찮지 않을까요?”

“뭐가 괜찮은 거죠?”

도대체 뭐가 안 괜찮은 걸까? 오히려 되묻고 싶었다. 하지만 금방 괜찮을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록색 작업복을 입은 사람과 희멀건 얼굴을 하고서 휠체어를 탄 사람이 함께 다니면, 각자 떨어져 다닐 때보다 더 시선을 끌 것 같았다. 막상 아무도 신경쓰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저 안으로 들어가 사람들 속에 섞여 커피라도 한 잔을 마시기 위해 우리가 치러야 할 부담감은 예상만으로도 어깨를 짓눌렀다. 

“아닙니다. 가지 말아요.”

초록 남자는 동의했다. 우리는 건물로 들어가지 않은 채 주변만 둘러보았다. 건물 뒤편으로 가자 더이상 유리벽 안 풍경이 보이지 않았다. 

“길이 없군요.”

그가 걸음을 멈췄다. 길은 끊어져 있었다. 무방비하게 버려진 공간이 으레 그렇듯 폐기 처리될 물품이 주변에 쌓여 있었다. 새가 몸에 날개를 바짝 붙인 채 녹슨 철제 테이블에 떨어져 있었다. 힘차게 날다가 건물 유리를 허공으로 착각하고 부딪혀 다친 것 같았다. 

“새가 있어요.”

차마 죽어 있다고 말하지는 못했다. 아직 살아 있을지도 몰랐다. 나는 새를 조심히 들어 유리벽 옆으로 가져가보고 싶었다. 유리에 김이 서리면 살아 있는 것이 아닐까 싶어서. 그것은 사람의 생사를 확인하는 방식이었지만, 새에게도 숨이 있으므로 똑같은 형태로 살아 있다는 증거를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부탁이 있어요” 하고 돌아보았을 때, 초록 남자는 보이지 않았다. 테이블까지 손이 닿지 않았기에 새를 만지기 위해선 그의 도움이 필요했다. 

“어디 있어요?”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언제 사라진 걸까? 화장실에 간 것일까? 하지만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 몰래 방향을 틀어 돌아가버린 게 아닐까? 혹시 건물 안으로 들어간 건 아닌가? 잠시 기다렸다. 누군가 다가오는 기척을 느낄 수 있길 바라면서. 이대로 혼자 길을 돌아가야 하다면 어떻게 하지? 문득 걱정이 되었다. 순서대로 길을 되짚어보았다. 건물을 빙 돌아나와 호수로 향한다. 그다음 좁은 샛길이 나온다. 자잘한 돌이 박힌 지면을 벗어나 앞으로만 가면 된다. 머릿속에 그려지기는 해도 그 일은 가능할 것 같지 않았다. 더 매끄러운 길이 필요했다. 호수가 보이는 곳으로 나가면 다른 길을, 더 평탄한 길을 알려줄 사람이 있을까? 

그 순간 멈춰 있던 새가 푸드덕거리며 갑자기 몸을 일으켰다. 부르르 몸을 떨더니 날개를 펼쳤다. 공중에 떴다가 테이블에 머리를 찧으며 추락했다. 콩알처럼 검은 눈을 빠르게 깜빡거렸다.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지만 일단 새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나 앉은 자리에서는 손이 닿지 않았다. 새가 누워 있는 테이블은 다른 테이블 위에 겹쳐 있어, 나의 앉은 키보다 한 뼘 높았다. 휠체어를 테이블 다리에 바짝 붙이고 손가락 끝까지 힘을 주었다. 새가 한번 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머리를 콩, 테이블에 부딪치며 내 쪽으로 조금 가까이 왔다. 그제야 새의 몸이 손가락 끝에 닿았다. 엄지, 검지, 중지가 차례로 닿았다. 새의 몸은 부드러운 털에 감싸여 있었다. 검지와 중지로 새의 털을 잡아 당겼다. 새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나는 결국 새가 죽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먼지 쌓인 차가운 테이블에 혼자 놓아둘 수는 없었다. 손가락에 다시 힘을 주어 새의 뒷덜미를 잡고 천천히 당겼다. 새는 점점 나에게 가까이 왔다. 손안에 들어온 그 몸은 차갑지 않았다. 아직 살아 있다면 죽지 마, 라고 말해야 할까. 아니면 이제 마음 놓고 편히 가도 좋아, 라고 해야 할까. 새는, 너는, 어떤 말이 듣고 싶은 걸까. 



창작의 규칙 7

피할 수 없는 운명적 상황을 부여하라


*


“엇갈렸군요.”

초록 남자가 나타났다. 나는 얇은 허벅다리 사이 새를 올려놓고 있었다. 

“도대체 어딜 갔던 겁니까?”

아무 일도 없던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고 실제로 아무 일도 겪지 않은 사람이고 싶었다. 

“화장실이 급해 어쩔 수 없었습니다. 말도 없이 사라져 놀랐겠군요.”

“왜 말도 하지 않고 갔습니까?”

결국 칭얼거리는 투로 변해버렸다. 초록 남자는 피식 웃었다. 그는 어른처럼 보였다. 상대가 짜증을 부린다고 그 자신도 똑같은 방식으로 대응하지 않았다. 

“혼자 남겨둬서 미안합니다.”

그가 단단한 목소리로 말하며 미소 지었다. 건물 높이가 만든 어두운 그늘이 그 얼굴의 주름에 더욱 선명한 골을 만들었다. 나보다 훨씬 많은 세월을 살아낸 사람이라는 증거가 새겨진 얼굴이었다. 문득 나는 그의 아들이 된 것 같았다. 숲에서 놀다가 죽은 새를 안고 집으로 돌아온 아이, 새가 죽었다고 말해야 하는데 그 말을 하는 게 무서워 입이 떨어지지 않는 아이가 된 것 같았다.

“이제 그만 돌아갈까요?”

초록 남자가 휠체어 손잡이를 잡았다.


여기……


그 순간 목소리를 들었다.

“무슨 소리 못 들었어요?”

초록 남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입술을 꾹 다문 채 모든 동작을 멈춰버렸다.


여기……

사람이 있어요……


작지만 또렷한 목소리였다. 소리가 난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이었다. 

“소리가 나요. 저쪽으로 가야 해요.”

내가 가리키자 그 방향으로 초록 남자는 말없이 휠체어를 밀었다. 건물 쪽으로 가까이 가자 유리벽 하나가 살짝 벌어져 있었다. 벽이 아니라 문이었다. 닫아두면 벽의 일부로 보이도록 손잡이를 따로 달아두지 않은 것이었다.

여기……

문틈 사이로 사람이 보였다. 문틈이 워낙 좁아서 다 보이지는 않았고, 왼쪽 눈과 그 아래 광대와 점점이 드러난 주근깨가 보였다. 

날 꺼내줘요……

그 말을 쉽사리 이해할 수 없었다. 

문을 열어줘요……

문 너머 사람은 손가락을 문틈으로 내밀고 휘적거렸다. 손 하나가 다 나오지도 못할 만큼 좁았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나를 이곳으로 데려온 초록 남자가 다시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또 어디로 간 것일까? 아무리 둘러봐도 보이지 않았다. 어쨌든 지금은 그를 찾아다닐 때가 아니었다. 무언가 이상해지고 있었다. 

“괜찮으세요?”

문 너머 사람에게 물었다.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휠체어를 당겨 문에 몸을 붙였다. 그러자 문 안쪽에 있던 사람의 얼굴이 더 자세히 보였다. 눈물이 맺혀 반짝이고 있었다. 

문이 열리지 않아요……

나는 눈을 의심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 뒤로 시뻘겋게 불이 일고 있었다. 그 순간 아아악, 비명소리가 귀를 뚫고 들어왔다. 파도처럼 밀려오던 인파 속에서 혼자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던 순간이 떠올랐다. 갑자기 숨이 막혀왔다. 

문이……

문 너머에서 간절한 목소리가 건너왔다. 나는 정신을 차렸다. 팔로 문을 힘주어 밀었다. 문은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문틈으로 손을 집어넣자 열기가 느껴졌다. 

사람들을 불러요……

문 너머로 떨리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어서 가서 사람들을 불러요……

나는 그럴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는 동안 당신이 죽을지도 모른다고 외쳤다.

내가 죽어요? 당신은 어떻게 되는데요?

질문에 대답할 겨를은 없었다. 문틈으로 두 손을 밀어넣었다. 열기를 품고 뜨거워지는 문을 붙잡았다. 그 순간 이것이 기회라는 걸 알아차렸다. 다시 한번 누군가를 살려낼 기회가 찾아온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정말로 죽을힘을 다해 문 너머에 있는 사람을 구하리라 결심했다. 한편으로는 갑자기 주어진 상황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초록 남자가 사라진 일도 그렇고. 혹시 나는 꿈을 꾸는 걸까? 정말로 이것이 꿈이라면 어떤가? 꿈이라면 더 좋은 것 아닌가? 더없이 모든 걸 해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손아귀에 더욱 힘을 주었다. 온몸에 힘을 주었다. 귀가 터져나갈 것 같았다. 얼굴로 압력이 쏠리자 귓속이 울렸다. 그러는 동안에도 환청인 듯 계속 목소리가 들렸다. 

어서 가요…… 당신만이라도 살아요……

동시에 포드닥포드닥 무언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무언가 허벅다리 위에서 움직이고 있었다. 무릎 위에 잠들어 있던 새가 날개를 꿈틀거렸다. 새가 살아있구나, 깨달은 순간 문을 붙잡은 나의 팔과 팔 사이로 새가 날아올랐다. 새는 내 가슴 근처에 머무르며 날갯짓하더니 곧 머리 위로 힘차게 올라갔다. 

“새가 살아 있어요.”

나는 문 너머 사람에게 말했다. 

네? 새요?


날아오른 새를 보면서 나는 손아귀에 더욱 힘을 주었다.

모든 일이 잘 될지도 모르겠다. 이것은 다시없을 기회일 것이다. 

피부가 벗겨지고 뼈가 드러나도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