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회

1부 사건 : 라이 (1)

게임의 규칙 1

목적을 달성할 때까지 무한히 시도한다


*


여섯 번 시도했다. 민수호는 문을 열지 못했다.

“다시 할게요.”

훈이 리셋 버튼을 눌렀다. 불과 오 분 전 보았던 문구가 다시 화면에 떴다. 

괴력 팔 사나이, 테스트 7회차. 

벗어두었던 햅틱 장갑을 손에 끼웠다. 체내 수분 측정 센서에 밀착되도록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맞췄다. 테스트 제품이라 아직 불완전했지만 모든 면에서 좋아지고 있었다. 더 이상 센서에서 전류가 통하는 일은 없었다. 어차피 전압이 낮아 신체에 주는 피해는 적었지만,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안정성 검사만 반년을 거쳤다. 그사이 나는 테스터에게 필요한 근력 운동을 시작했다. 덕분에 허리가 반듯하게 펴졌다. 등근육이 탄탄해졌고 솟아오른 어깨가 자리를 잡았다. 팔을 돌릴 때 어깨에서 번번이 뚜둑거리던 소리도 사라졌다. 이제는 거의 모든 장비의 안정성이 검증되었고, 괴력 팔 사나이를 비롯해 다른 캐릭터의 플레이 환경도 향상되어 있었다.


괴력 팔 사나이. 이름은 민수호, 성별은 남성, 추정 나이는 삼십대 중반. 그는 휠체어를 탄다. 이 캐릭터가 수행하는 퀘스트 중 가장 어려운 시나리오는 화재 현장에서 사람을 구하는 것이다. 괴력 팔의 특징을 살려 모든 미션을 팔에서 나오는 힘으로 해결해야 한다.

“라이 님! 뭐해요? 머리에 손! 얼른 손이요!”

훈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지금 민수호는 휠체어에서 떨어져 낙상 상태였다. 그렇게 6회차가 종료되었다. 다시 퀘스트 첫 지점으로 돌아갔다.

“행운의 7회차입니다. 힘내세요.”

웃음기 섞인 훈의 응원이 들려왔다. 아마도 엉거주춤 서 있는 내 모습이 우스꽝스러울 테다. 엉덩이를 뒤로 빼고 배에 힘을 주었다. 불이 난 쇼핑몰에서 달려오는 사람들에 밀리지 않도록 주먹을 쥔 채 머리를 감쌌다. 

“좋아요. 잠시 기다리세요.”

훈의 목소리에서 긴장감이 돌았다. 지난번 테스트가 떠올랐다. 그때는 쓸데없는 과적합이 일어나 사람들이 민수호의 머리를 밟고 지나갔다. 퀘스트 상황이 현실에 가까울수록 좋다는 개발팀의 말도 안 되는 논리가 반영된 탓이었다. 이 상황이 현실이라면 혼비백산한 군중이 땅에 쓰러진 사람을 주의하겠는가? 그런 생각이었다. 유저들이 실제로 신체 손상을 입어야 게임 속 세계가 실감날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다행히 헬멧을 쓰고 있지 않아 가상의 고통을 실감할 만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다른 일에 밀려 훈이 헬멧 센서를 수정하지 않은 덕에 끔직한 장면은 연출되지 않았다. 만약 헬멧을 쓰고 있었다면, 한순간이긴 해도 강한 압박을 느낀 센서가 게임을 중단시켰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순간 내 머리는 어떻게 되었을까? 사고 가능성을 전해들은 대표가 강하게 경고했다. 그러나 개발 팀장은 물러서지 않았다. “이게 또하나의 현실이라면서요? 그럼 진짜가 되어야 하지 않겠어요?”


“이제 일어나요.”

훈의 주문에 맞춰 햅틱 장비를 끼운 팔을 옆으로 세게 밀었다. 실제로는 허공이었지만 무거운 벽이 세워진 듯 단단했다. 게임 화면에서는 팔로 땅을 밀어내고 있었다. 상태 바에서 근육량이 올라가는 게 보였다. 햅틱이 가진 근육량 5퍼센트에 내 몸이 가진 근육량 25퍼센트가 더해졌다. 몸을 들어올리기 위해 필요한 근육량은 40퍼센트. 목표치까지 10퍼센트가 부족했다. 민수호가 그 특징대로 괴력 팔을 가진 캐릭터가 되려면, 무엇이든 10퍼센트의 근육을 더 채워야 했다. 실제로 게임을 진행하는 유저 입장이라면 고급 버전의 햅틱 장비를 구매해 근력을 늘릴 수도 있을 것이다. 당연하게도 근력 수치에 따라 구입 가격은 올라갈 테다. 이것이 바로 레이어드가 새롭게 추구하는 수익화 모델이었다. 새로운 장비에 대한 구매욕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구매 심리를 자극하려면 유저들이 플레이하는 캐릭터에 밀도 높게 이입해야 한다고, 어떻게든 퀘스트를 해결하고 싶어하는 내적 동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대표는 주장했다. 

“안 되겠어.”

아무리 힘을 써도 근력도가 32퍼센트 이상으로 올라가지 않았다. 힘을 풀자 민수호는 땅으로 내려앉았다. 온몸으로 밀려오던 저항감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테스트 7회차 종료.

장갑을 벗고 소매를 잡아당겼다. 이마에 난 땀을 닦았다. 

“퀘스트 수행에 필요한 근육량을 낮추거나 다른 수치를 추가하는 게 어때?”

“개발팀에 건의하세요. 알다시피 저는 햅틱 담당이라.”

“너도 개발팀이잖아?”

“제가요?”

훈은 어깨를 으쓱했다. 자신은 소속만 개발팀일 뿐이고 아무 권한이 없다며 실실 웃었다. 들고 있던 장갑을 바닥으로 던져버릴까 싶었다. 하지만 개발에 수억 원을 쏟은 장비를 함부로 다룰 수는 없었다. 나는 장갑을 거치대에 조심히 걸었다. 땀이 식기도 전에 테스트실을 나왔다. 개발 팀장을 만나야 한다는 사실을 떠올리자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렸다.



게임의 규칙 2

새로운 판에는 새로운 플레이어가 필요하다


*


체지방 18% 

골격근량 25kg


오랜만에 측정해본 인바디 결과지를 트레이너가 낚아챘다. 

“잘하셨네요.”

체중은 그대로였다. 지방은 줄이고 근육을 채웠다. 거울 속에 비친 모습은 운동을 시작하기 전과 달랐다.

“사진이라도 찍으시죠.”

트레이너는 기분이 좋아 보였다. 꾸준히 출석해온 회원의 몸 상태가 그 자신도 자랑스러운 듯했다. 나는 휴대폰을 꺼내지 않았다. 

“그게 동기부여 되고 좋습니다.” 

“괜찮아요.”

“더블데이 같은 데 올리셔야죠. 다들 그렇게 하잖아요.”

트레이너는 내 계정을 팔로우하고 있었다. 석 달 전이었나. 체지방률이 20퍼센트로 내려가자 더블데이 피드에 알림이 떴다. 새로운 인물이 나를 팔로우한다는 소식이었다. 동그랗게 뜬 프로필을 보아하니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트레이너의 피드에 들어가자 #오운완 해시태그가 모든 게시물에 달려 있었다. 스크롤을 내리다 #오운완 태그에 손가락이 닿았다.  셀 수 없이 많은 게시물이 작게 분할된 화면으로 쏟아졌다. 딱 붙는 운동복을 입고 거울 앞에서 모델처럼 포즈를 취한 사람들이 보였다. 골반을 살짝 비튼 그 동작을 나는 혼자 있는 방에서도 결코 따라 해본 적이 없었다. 

내가 올린 더블데이 게시물은 다섯 개밖에 되지 않았다. 트레이너는 내 피드에 올라온 게시물에 전부 ‘좋아요’를 눌러 두었다. 나도 알고 있었다. 어차피 그가 관심을 두는 건 내가 아니라 내 소속일 터였다. 대체로 그랬다. 레이어드(layered)에 다닌다 말하면 사람들의 태도가 달라졌다. 당신이 거길 다닌다고? 그런 눈빛을 하고서 갑작스러운 상냥한 말투로 나를 대했다. 정말인가요? 나날이 상한가를 찍고 있는 그 레이어드? 잘나가는 건 사실이었다. 레이어드는 실감형 게임을 만드는 회사로 점차 세상의 주목을 받고 있었다. 불과 이 년 전만 해도 소수 취향의 싱글 게임을 만드는 작은 회사였지만, 미세 전류 반응 센서가 부착된 햅틱 장비를 자체 개발하면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동시에 만드는 회사이자 메타버스 플랫폼으로 영역을 넓혀가고 있었다. 수익 모델을 광고에서 햅틱 장비로 바꾸고, 대대적인 투자를 시작한 사람은 새로 부임한 대표였다. 싱글 게임을 만들 당시 레이어드의 창립 멤버였다가 개인적 이유로 회사 일에서 손을 뗀 사람이었다. 그러다가 전 대표가 여러 스캔들로 자리에서 물러나자 어쩔 수 없다는 듯 레이어드로 돌아왔다. 

출근 첫날, 새 대표는 전 직원 앞에서 버벅거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러다가 다 망할 거예요.”

도무지 신뢰할 수 없는 언사였다. 거기에는 외모도 한몫했다. 서른 중반이 넘었다는데, 젖살이 남은 듯 통통한 볼이 말할 때마다 분홍빛으로 달아올랐다. 조금만 당황하면 “부끄럽습니다” 하면서 더운 볼을 손으로 감쌌다. 직원들 사이에서 귀엽다는 의견과 역겹다는 의견이 오갔다. 어느 쪽이든 직원들 대부분은 그가 기울어가는 회사를 살려낼 거란 희망을 갖지 않았다. 

한 달쯤 지나, 그가 다시 직원들을 불러모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도 그에게 기대하지 않았다.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한 이들이 출입문으로 들락거렸다. 정해진 시간이 되자 상관없다는 듯 그가 부스럭거리며 발표를 시작했다. 부스럭? 그 표현이 어울릴 만한 상황은 아니지만 다른 말을 떠올릴 수 없었다. 그가 한 손을 들어 사인을 보내자, 비서가 직원들에게 젤리를 한 봉지씩 나눠주었다. 곧이어 대표도 똑같은 봉지를 뜯어 부스럭부스럭 젤리를 집었다. 그가 젤리를 하나 입에 넣었다. 찹찹, 마이크를 통해 소리가 퍼져 나갔다. 

“찹찹, 제가 지난 한 달 동안, 찹찹, 우리 회사를 위해, 찹찹, 무엇을 했냐면요, 찹찹찹……” 

직원들은 젤리나 먹으면서 대표의 재롱을 구경하자 생각했다. 다음에 무슨 말이 나올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돈을 받아왔어요, 찹찹, 이백 억을, 찹……”

이백 억?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젤리를 떨어뜨렸다. 그런 사람이 나만은 아니었던지, 바닥에 젤리 몇 알이 굴러다녔다.

“연봉을 두 배로 올릴 겁니다. 찹찹…… 전원이요. 그리고 근무 시간도 찹…… 두 배가 될 거예요. 앞으로 회사에서 다들 살아야 해요. 찹찹…… 헬스장도 샤워실도 만들 거예요. 숙소도 마련할 거고, 찹찹……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할게요. 아침에 샐러드도 배달시키고…… 뭐든 의견을 줘요. 다 해줄 테니. 대신 우린 이제 게임을 만들지 않을 겁니다. 앉아서 손가락만 움직이는 게임이요. 찹찹찹…… 그것은 금지. 우리는 헬스케어로 갈 거예요. 온몸으로 미션을 클리어하는 시스템. 사람들이 몸을 쓰게 만들 겁니다. 그게 우리의 목표예요. 내일부터 햅틱을 만드는 인력을 충원할 겁니다. 괜찮은 사람이 있다면 추천해주세요. 물론 다 뽑는 건 아니고 제 마음에 들어야……”

어느새 찹찹, 소리는 사라지고 그가 말을 잘한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수줍은 척 연기를 해온 것인가, 다들 의심했다. 직원들이 넋 놓고 반하기 직전, 그는 본래 모습으로 돌아갔다.

“여기까지, 찹찹, 하겠습니다, 찹…… 질문 따위 받지 않을게요, 피곤해……”

다음날, 인력 충원과 더불어 의중을 알 수 없는 개인 면담이 시작되었다. 


그는 책상에 여러 개의 카드를 올려두고 나를 맞았다. 카드마다 직책과 업무가 쓰여 있었다. 그는 ‘팀장-레벨 디자인’이라고 쓰인 카드를 집어들었다. 레벨 디자인은 게임에서 플레이어가 활보하는 공간을 만드는 일로, 이 회사에서 내가 맡은 역할이었다. 나는 숱한 밤을 지새우며 스테이지마다 몬스터를 얼마큼의 비율로 어디에 숨겨놓을지 계산했다. 어차피 해치울 몬스터라 해서 아무렇게나 배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적당히 예상 가능한 위치에 역시나 예상 가능한 비율로 나타나야 했다. 무엇보다 대왕 몬스터가 나타날 위치를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했다. 모든 것이 예상 가능하면서도 지루하지 않아야 했다. 처음부터 레벨 디자인을 지망한 건 아니었다. 일을 시작할 때 맡은 임시 직무가 그대로 내 담당이 되었다. 일이 그렇지 않나. 배우며 배워졌고 하다보니 딱히 못할 것은 없었다.

“라이 님은 내일부터 시나리오랑 퀘스트 기획으로 옮길 거예요.”

대표는 에둘러가지 않았다. 개인적으로 마주하니 사람이 좀 달랐다. 분위기를 깨우는 스몰토크 따위 없는 타입. 볼도 달아오르지 않았다.  

“왜요?”

아이스 브레이킹? 나에게도 그런 건 없다.

“라이 님은 기획이 어울려요. 원래 시나리오 쪽 아니었어요?”

그의 말대로 원래 나는 시나리오를 썼다. 공모전에서 줄줄이 낙방한 후 그동안 써둔 시나리오를 포트폴리오 삼아 기획 파트에 지원한 일이 여기까지 이어진 것이었다.

“시나리오 봤어요. 재밌던데요? 괴력 팔 사나이.”

입사 때 제출한 시나리오를 읽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왜 그걸? 

“그 괴력 팔 사나이를 주요 캐릭터로 만들 거예요. 세심하게 팔 근육을 단련하는 캐릭터로 말이죠. 근육마다 부위별로 쪼개서 힘을 키우는 캐릭터인 거죠.”

“무슨 말인가요?”

“그러니까 우리는 괴력 팔에 대한 서사가 필요해요. 그걸 라이 님이 만들 거고요.”

“지금 하던 일은 어떻게 하죠?”

“말했잖아요. 이제 우린 다른 걸 해요. 조만간 공지를 띄울 거고, 당분간 서버는 열어두지만 버그 수정 말고 별다른 업데이트는 없을 겁니다.”

그 단호함은 당혹스러울 정도였다. 계획대로라면 언젠가 밟아야 할 수순이지만 지금은 너무 이르지 않나. 민원이 생길 거라 말하자 CS팀에서 처리할 문제라고 간결하게 정리했다. 

“걱정은 회사가 하는 거예요. 신경 끄고 일에 집중하세요.”

그 말을 듣는데 목 근육이 수축되고 어깨가 절로 올라갔다. 예전과 달라지리라는 예감 때문인지 등줄기로 소름이 돋았다. 뭐지? 새 플레이어의 등장인가?

“내 말대로 하는 거죠?”

나는 네, 라고 짧게 답했고, 이것이 기회라는 걸 어렴풋하게 눈치챘다. 무슨 기회인지는 차차 알아갈 것이었다.



게임의 규칙 3

같은 게임 안에서도 저마다의 목적은 달라진다


*


“추가는 안 돼요. 데이터가 부족하잖아요.”

예상대로 개발 팀장은 진지하게 들어주지 않았다. 같은 결과를 기대하면서도 어쩜 이렇게 생각이 다를 수 있을까? 그런데 우리가 같은 결과를 바라는 게 맞나? 따지고 보면 대표는 헬스케어를 핑계로 웨어러블 장비를 파는 게 목적이고, 개발 팀장은 커리어에 정점을 찍어 연봉을 높이고 싶은 것일 테다. 그렇다면 나는? 

“헬멧 센서로 몰입도는 쉽게 측정할 수 있는 거 아니에요? 몰입도를 근육 상태에 반영해줘요. 아니면 퀘스트마다 필요한 근육량을 조정해주면 되잖아요?”

“그렇게 말만 한다고 되는 거 아닙니다. 생각을 좀 하고 말해요.”

“뭐라고요?”

“몰입도를 무슨 기준으로 측정할 건데요?”

나는 반사적으로 내뱉었다.

“전두엽 활성화?”

물론 깊이 생각하는 부분은 아니었다. 뇌에 관해서 아는 게 별로 없었다. 

“전두엽이고 뭐고, 측정 수치를 더할 때마다 데이터가 있어야 해요. 아주 많은 양이요. 그걸 확보하는 방법부터 알아와요.”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테스터를 거치면서 수치는 조정해갈 수 있었다.

“실험체가 필요하면 제가 할 수 있어요.”

“겨우 한 사람 데이터로 뭘 할 수 있죠? 그렇게 빈약한 데이터는 없는 게 나아요.”

“왜요? 하나라도 있는 게 낫지 않아요?”

개발 팀장이 할 말을 잃은 듯 싸늘한 눈으로 나를 보았다. 

“그건 한 사람만을 위한 환경 설정이 되니까요.” 

나는 떠밀리듯 개발 팀장의 방에서 나왔다. 

‘한 사람만을 위한 환경 설정’

그가 남긴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복도를 지나가던 훈이 나를 보더니 반색하며 장난을 걸어왔다.

“왜 그렇게 혼이 쏙 빠져 있어요?”

말없이 그를 지나쳐 계속 걸었다. ‘한 사람만을 위한 환경 설정’ 그 말이 귀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혹시 이 프로젝트를 날 위한 것으로 만들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러니까 민수호를, 게임에서라도 그를 보고 싶어서?

“라이 님!”

어느샌가 훈이 어깨에 손을 올리고 나를 보고 있었다.

“지금 넋 놓고 있을 때가 아니에요. 할일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렇게 말하며 훈이 내 팔을 붙들고 테스트실로 향했다. 나는 그를 따라 해야 할 일 속으로 다시 들어갔다. 


일주일 후 8회차 테스트가 시작되었다. 몰입도 지표를 추가하지 않았지만 퀘스트 클리어에 필요한 근육량은 조정되었다. 개발 팀장이 한 발 물러났다. 조만간 내부 테스트가 통과되지 않으면 더 많은 부분을 수정해야 할지 몰랐다. 대표 같은 리셋 중독자라면 전부 마음에 안 든다며 설계 단계부터 다시 지시할 법도 했다. 애초에 개발 팀장이 양보할 일이었다. 수정된 퀘스트의 클리어 조건은 33퍼센트. 과감하게 7퍼센트가 줄었다.

“행운의 8회차입니다.”

훈이 건넨 새 헬맷을 쓰고 스쾃 자세로 준비를 마쳤다.

“지난번에 ‘행운의 7회차’였잖아. 매번 행운의 회차인 거야?”

고글을 쓰고 있어 훈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장난기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얄밉게 웃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늘 행운이 따르는 겁니다. 그럼 시작할게요.”

훈이 스타트 버튼을 눌렀다. 화면이 전환되고 쇼핑몰 정문에서 사람들이 쏟아져나왔다. 나는, 아니, 민수호는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급하게 손을 들어 머리를 보호했다. 아무래도 수치를 조정하면서 개발팀이 말도 안 되는 설정을 또 집어넣은 건 아닌지 불안했다. 물론 걱정하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머리를 밟히지는 않았다. 기분 나쁠 정도로 아슬아슬 비껴갔을 뿐. 

“이제 일어나요.”

지시에 따라 팔에 힘을 주었다. 확실히 달랐다. 햅틱의 저항력이 줄었다. 훨씬 가벼워진 느낌. 팔을 옆으로 밀어냈다. 윗니와 아랫니가 맞물릴 정도로 힘이 들어갔다. 땅이 약간 밀리는 것이 느껴졌고, 다음 순간 수월하게 몸이 수직으로 세워졌다. 그대로 휠체어 바퀴를 잡고 엉덩이를 밀어올렸다. 딸깍, 소리가 나고 몸이 의자에 착 붙었다. 제법 실감이 났다. 하지만 게임 속 플레이어에게 작용되는 감각을 온전히 느끼려면 전신 수트가 필요할 듯했다. 예전에도 전신 수트 개발을 대표에게 진지하게 건의한 적이 있었다. 단번에 거절당했다. 수트는 돈이 너무 많이 든다고 했다. 이백 억으로 수트 하나만 만들 수는 없지 않느냐 핀잔을 들었다.

“아싸! 8회차 통과!”

훈이 신나서 소리를 질렀다.

“그다음은 뭐지?”

곧바로 지시가 내려졌다.

“문으로 가요. 클리어 미션.”

지정된 문으로 가서 미션을 달성하면 이번 스테이지의 엔딩을 볼 수 있었다. 그래픽 팀에서 어떻게 해당 미션의 엔딩을 만들었는지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과연 이번에는 볼 수 있을까? 나는 더욱 힘을 냈다. 드디어 다리를 움직일 때가 된 것이다. 같은 자리를 반복할 뿐인 트레드밀 위를 달렸다. 동시에 게임 속 캐릭터는 휠체어 바퀴를 밀어 앞으로 빠르게 나아가고 있었다. 게임 밖 유저는 서 있는데 게임 속 캐릭터는 앉아 있다니. 정말이지 이 부분은 납득되지 않았다. 여러 번의 테스트 결과 유저와 캐릭터 사이 움직임이 일치되지 않는다는 의견이 많았고 실제로 이 캐릭터를 선호하게 될 사람들을 위해 전용 햅틱을 개발하자는 주장도 있었지만, 내부의 결론은 이러했다. 장애를 가진 사람이 이 게임을 할 가능성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렇다면 왜 휠체어를 탄 캐릭터를 만든 거지? 대표의 답은 간단했다. 캐릭터 다양성을 고려하는 것처럼 보일 테고, 교복 입은 여중생만 메인 캐릭터로 삼는 것보다 훨씬 낫지 않나. 그리고 이 캐릭터는 팔 근육을 단련시키는 시스템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시스템이라…… 회사에서는 멋대로 떠들어도 상관없지만 외부 인터뷰에서도 그렇게 얘기하는 바람에 장애인 단체에서 거센 비난을 들었다. 한 달 정도 시달리다가 그 이슈는 유야무야 사라졌다. 언론은 레이어드 대표가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헬스케어 분야의 진입을 원하는 기업을 설득해 투자금을 유치한 점에 더 주목했다. 그는 미래 십 년을 이끌 차세대 리더 순위에 이름을 올렸다. “겨우 십 년이라니?” 전체 회의 때 그가 고개를 갸웃거리던 모습을 좀처럼 잊을 수가 없었다. 도대체 저런 사람은 뭘 바라는 걸까? 어차피 그가 머릿속으로 굴리는 생각이란 나처럼 회사에 소속된 개인이 기껏 잔머리를 굴려보는 차원과는 다를 터였다. 

“잠깐! 거기서 멈춰요.”

꾸짖듯 훈이 말했다.

“여기야?”  

플레이어 입장에서 게임을 볼 때 지도를 조감하기 힘들었다. 

“맵 좀 정확히 띄워야겠어. 방향이 안 잡혀.”

“체크해둘게요. 이제 거기서 멈추세요.”

훈이 거칠게 타이핑하는 소리가 들렸다.

“열리지 않는 문, 테스트 1회차입니다.”

드디어 테스트 지시가 내려졌다. 보였다. 문틈 사이로 사람의 눈동자가 보이기 시작했다. 

“와, 씨, 이게 뭐야?”

눈을 가까이 마주하는 느낌이 들도록 그래픽에 공을 들인 티가 났다. 문틈 사이를 메운 눈동자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곧 흘러내리겠구나 싶은데도 흐르지 않고 검은 눈동자만 불안하게 흔들렸다. 눈동자가 내 시선을 쫓아왔다. 너무 사실적이라 소름이 돋았다. 차라리 입체감을 제거하고 사람의 눈이라는 인지 정보만 주는 그래픽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그래픽 디자이너 중 이런 일을 실제로 겪은 사람이 있는 건 아닌가 싶었다. 가상의 그 눈에는 현실감이, 그러니까 절박감이 녹아 있었다. 

‘살려줘.’

목소리가 눈동자에서 흘러나왔다. 햅틱 장갑을 낀 손을 가까이 모으고 문틈 사이로 집어넣었다. 그런데 목소리라니? 

“왜 이 부분만 성우 더빙이 되어 있어?” 

훈에게 물었다. 

“그럴 리가요. 레코딩은 시작도 안 했는데요?”

“살려달라는데?”

“게임에 너무 집중한 거 아니에요?”

훈이 놀리지 말라며 담담하게 응답했다. 그렇게 집중하고 있었나? 나도 모르는 사이 그렇게 되었다면 상당히 성공적인 프로젝트가 될 것 같았다. 어쨌든 게임에 밀착된 기분, 집어넣은 손의 각도가 문틈에 알맞게 고정된 것이 느껴졌다. 그 각도를 유지한 채 장갑은 석고처럼 굳어가며 강도를 높였다. 유저의 손가락이 멋대로 흔들리지 않도록 지지해주는 기능이 활성화되었다. 이런 건 추가 결제를 하는 건가? 나중에 훈에게 물어봐야지 싶었다. 이제 문을 열어젖히기만 하면 된다. 문 너머에 있는 사람을 구하면 된다. 그렇지만 이 퀘스트의 이름을 기억한다면 그렇게 쉽게 풀릴 일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타이틀은 ‘열리지 않는 문’. 그러니까 열리지 않는 것을 열어야 했다. 필요한 근력이 상태 바에 새롭게 표시되었다. 목표치 50퍼센트. 나도 모르게 헉, 소리가 터져나왔다.

“말도 안 돼! 설정값 좀 제대로 세팅하라고!”

툴툴거리자 훈이 응답했다.

“어쩔 수 없어요. 일단 해봐요. 뭐든 나와야 바꿀 테니까.”

훈의 말이 맞았다. 뭐든 해봐야 수정할 값도 계산할 수 있었다. 나는 힘을 주었다. 목표치에 도달하려면 12퍼센트 부족했다. 이러다가 소변을 지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온몸에 힘을 주었다. 9퍼센트가 더 필요했다. 문 너머 불안하게 흔들리던 눈동자는 고정되어 나를 보고 있었다. 뒤편으로 조금씩 화면이 붉어지며 이글거렸다. 불이었다. 이번 스테이지는 화재 현장을 배경으로 하고 있었다. 만약 현실이라면 이미 연기에 질식해 쓰러졌겠지만, 이곳은 게임 속이었다. 직관적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위험을 감지할 수 있도록 연기 대신 불을 보여줄 뿐이다. 제때 문을 열지 못하면 불길이 문을 덮칠 테고, 문 밖에 있는 플레이어도 위험해진다. 차라리 미션을 포기하고 도망가는 게 나으려나. 그렇지만 미션을 포기하면 엔딩을 볼 수 없을 뿐더러 이어지는 게임의 서사에서 민수호는 계속 고통받게 된다. 앞으로 어떤 삶을 살든 자신이 포기해버린 그 일을 영원히 후회하게 된다. 그것이 내가 만든 시나리오였다. 후회와 자책의 이야기 속에서 살게 할 것인가. 아니면 이겨내게 할 것인가. 둘 다 아니라면 문 너머 눈동자와 불에 휩싸일 것인가.  

‘도망가.’

눈동자에서 다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당신이라도 도망가.’

아무리 힘을 주어 문을 열어젖혀도 추가로 필요한 수치가 9퍼센트 이하로 줄어들지 않았다. 여기까지인가. 더이상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자, 손에서 절로 힘이 빠졌다. 당장이라도 빠져나가지 않으면 플레이어도 불길에 휩싸일 게 분명했다. 하지만 눈앞에 구해야 할 사람이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수호도 같은 생각을 했던 걸까?


이 시나리오의 시작은 그날의 수호였다.

그날, 사고 현장에서 수호는 빠져나오지 않았다. 어차피 문은 열리지 않을 테고 문 너머에서 구조를 요청하는 이들을 살릴 가능성은 희박했다. 희생자 수색 작업이 이루어졌을 때, 열리지 않는 문 사이로 손을 맞잡고 죽은 연인이 발견되었다. 수호와 은하였다. 그들은 세상의 관심을 끌었다. 비상계단에 있던 남자는 건물 밖으로 나올 수 있는데도 끝까지 애인의 손을 놓지 않은 것으로 짐작되었다. 어떻게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을까? 누구도 그의 선택을 비난할 수 없었다. 그들은 살아 있을 때 약혼한 사이였으므로, 부모들의 뜻에 따라 영혼결혼식이 열렸다. 나는 그 결혼식에 초대받았다. 결혼식은 장례식이나 다름없었다. 수호의 모친은 울다 쓰러져 구급차에 실려갔다. 나는 울지 않기 위해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문 채 버텼다. 그들을 위한 축시를 읊을 때 도대체 무엇을 축하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잘못된 애도인 것 같았다. 애도를 해야 한다면 더 근사한 다른 방식이어야 했다. 가령 완전히 새로운 세계에서 그들을 살려내는 건 어떤가? 수호가 살아 돌아오는 모습을 눈으로 볼 수 있다면? 갇혀 있던 이들이 문을 열고 탈출하는 이야기라면? 결말을 바꿀 수 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라이…… 라이 님……”

훈이 내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괜찮아요?”

불길이 솟구쳐 시야를 가렸다. 눈앞이 붉디붉었다. 불인지 벽인지 인식할 수 없을 만큼 가까웠다. 이미 문 너머 사람은 보이지 않았고 문도 보이지 않았다.


GAME OVER. You died, but you can alive again in this stage……


화면이 꺼지고 가운데만 부풀어오른 테스트실이 눈에 들어왔다. 고글을 벗자 시야가 평평해졌다. 헬맷을 벗자 땀이 줄줄 흘렀다. 문득 차가운 기운이 신경쓰였다. 신발 주변으로 물이 고여 있었다. 훈이 말없이 테스트실을 나가 검은 수건과 밤샘을 대비해 챙겨둔 트레이닝복을 가져왔다. 

“깨끗한 거예요.”

“다음에는 기저귀라도 차야겠어.”

훈이 입술을 꾹 다문 채 걱정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여기 너밖에 없어서 다행이야.”

훈이 피식 웃더니 고개를 저었다.

“이 정도면 최고의 동료 아닌가요?”

옷을 갈아입을 테니 그에게 방을 나가달라고 했다. 훈은 방금 전까지 촬영하던 테스트 영상을 삭제하고 경례를 붙이더니 방을 나갔다. 옷을 갈아입은 후 탁자에 놓인 물티슈를 뽑아 주변을 닦고 닦았다. 이것이 나에게 일어난 일인가 싶었다. 현실감이 전혀 없었다. 로봇이라도 된 마냥 자동적으로 바닥을 닦기만 했다. 나의 의식은 여전히 게임 속에 있었다. 여전히 눈앞에 거대한 불의 벽이 놓여 있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