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회

1부 사건 : 라이 (2)

게임의 규칙 4

플레이어가 있어야 할 위치를 정확히 파악한다


*


복도에서 다른 이들을 마주칠 때마다 시선이 아래로 떨어졌다. 혼자 예민해진 것뿐이었다. 훈이 그런 일을 소문낼 사람은 아니었다.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는 전과 같았다. 만약 테스트 중 일어난 사고, 그러니까 훈이 기록 영상까지 삭제해 증거 인멸한 그 사건을 누군가 알게 된다면, 몰래 비웃거나 불쌍히 여기겠지. 어느 쪽도 만만치 않은 부담이었다. 특별히 훈이 나를 생각해 비밀에 부친 건 아닌 듯했다. 이 공간에서 그가 나 말고 다른 동료와 친하게 지내는 모습은 본 적 없었다. 훈은 대체로 혼자였다. 애초에 비밀이 새나갈 구멍이 없었다.  

며칠 사이 ‘열리지 않는 문’은 최상 난이도로 분류되어 모든 캐릭터에게 접근 가능한 공동 수행 퀘스트로 변경되었다. 가장 약체인 중학생 캐릭터도 반복되는 훈련으로 능력치를 올리거나 고가의 햅틱을 사용한다면 충분히 도전할 수 있었다. 테스트도 벌써 20회차가 넘어갔다. 화재 현장에서 문을 연 플레이어는 아직 없었다. 필요 수치를 2퍼센트까지 줄인 것이 현재 최고 기록이었다. 물론 그 기록의 주인공은 민수호였다. 다른 캐릭터의 근력도는 한참 부족했다. 근력차는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민수호는 플레이되지 않는 시간에도 팔 운동을 하도록 설정되어 있었다.

“보름 후에 베타 테스트 진행할게요.”

대표가 팀장급만 불러모으더니 갑작스러운 소식을 전했다. 물론 내부 테스트 후 실제 유저가 될 타깃층에게 테스트를 진행하는 것이 맞지만, 이렇게 하기로 했으니 그렇게 알도록, 하는 분위기로 해치울 일은 아니었다. 

“지원자는 어떻게 모집하죠?” 

상황 파악이 빠른 홍보 팀장이 대표의 독단적 결정을 탓하기보다는 해결책을 찾으려 했다. 일단 저질렀다면 다음 단계로 돌입해야 했다.

“하던 대로 해야죠. 비밀 유지 조항이 포함된 계약서들 쓰시고요.”

대표가 회의실을 나서자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 테스트실로 가려는데 대표의 비서가 종종 걸음으로 따라왔다.

“라이 님, 잠깐 대표님이 오시래요.”

무언가 탐탁지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비서를 따라 대표의 사무실로 갔다. 역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왜 안 열리는 겁니까?”

대표가 신경을 곤두세우며 다짜고짜 물었다.

“퀘스트 말씀이세요? 필요한 수치가 높잖아요.”

그보다 조금은 높은 목소리로 받아쳤다. 그가 나를 꾸짖을 이유는 없었다. 기세에서 밀리지 않아야 했다.

“오차 범위가 있지 않나요? 플러스마이너스 5퍼센트일 텐데, 그럼 45퍼센트까지 도달하면 열려야 하는 거 아닌가?”

대표는 수치를 앞세워 따지고 들었다. 아무리 숫자로 만든 세계라 하더라도, 계산대로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는 걸 그는 모르는 걸까. 그럴 리 없다. 지금 그는 다른 말이 하고 싶은 것일 테다.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올 순간을 아껴두고 있는 듯했다.

“저도 그게 의문이에요. 장갑이 과도하게 고정되어 있어 그럴 수도 있고요.”

나는 줄곧 미심쩍어하던 것을 말했다.

“햅틱이 문제라는 건가요?”

“다른 문제는 없잖아요.”

대표는 고개를 살짝 들고 눈동자를 좌우로 굴렸다. 자신이 화가 났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어했다. 뭘 어쩌라는 건가? 잠자코 그가 다시 말할 때까지 기다렸다. 

“햅틱은, 완벽해요.”

그가 겨우 꺼내놓은 한마디였다.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왜’라는 의문은 좋은 방패였다. 나는 점점 차분해졌다. 조금 더 하면 이런 기세 싸움에서 이길 수도 있으리라.

“기계는 문제가 없어요. 사람이 문제죠. 수치를 거짓으로 기록하는 건 아니겠죠?”

“혹시 문을 열 수 있는데 안 열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대표의 입가에 잠시 미소가 번지다가 사라졌다.

“정답이요! 맞혀버렸네.”

소변 사건을 말해줄까 하다가 관두었다. 

“솔직히 말하면 라이 팀장을 못 믿는 것이 급하게 베타 테스트를 결정한 이유예요.”

우리는 몇 초간 서로 노려보았다. 그가 먼저 눈을 깜빡였다.

“솔직하게 말할 필요는 없어요. 적어도 지금은 그게 유용하지 않으니까요.”

그가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뱉었다. 이어서 지친 듯 입을 열었다.

“정말이지 나한테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없어요. 알아요?”

날이 서 있던 눈빛이 누그러졌다. 그에게는 젤리 한 봉지가 필요해 보였다. 솔직해진 후에 사람들은 이렇게 무기력해지는 건가. 그 무력감이 내 마음을 서서히 돌려놓았다. 

“솔직히, 미안하지는 않지만, 일단 사과는 할게요.”

그가 솔직해서 싫었지만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인 것보단 나았다. 우리는 동시에 깨달은 듯 했다. 서로 기세로 밀어붙일 일은 아니었다.

삑, 하는 알람이 울리자 대표가 의자에서 일어섰다. 

“나가죠. 나도 이제 나갈 시간이니까요.”

그와 나란히 대표실을 나왔다. 헤어질 때 그가 속삭이듯 말했다.

“난 진짜 솔직할 뿐이고 라이 팀장을 싫어하는 게 아니에요.”

“제가 보기에는 아닌 것 같아요.”

나는 그에게 무언가 말해주고 싶었다. 이로써 더 명확하게 자신을 들여다볼 기회를 주는 것인지도 몰랐다.

“무슨?”

살집이 붙은 그 얼굴을 덤덤하게 바라보았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싫어하는 감정을 떠나서요. 대표님은 그냥 솔직한 거예요.”

“무슨 말이죠?”

대표는 의아하다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그는 예기치 못한 반응이라면 무엇이든 즐기는 타입이 분명했다.

“자신이 솔직해도 되는 위치에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이겠죠.”

순간 그의 얼굴이 구겨졌다. 대표는 굳은 표정으로 비서의 안내를 따라 뻣뻣하게 앞으로 걸어갔다. 그 뒷모습이 영원히 닫혀버린 문처럼 보이기도 했다. 앞으로 회사 생활은 괜찮은 걸까? 짧은 순간 온갖 걱정이 찾아들었다. 그러고 보면 솔직해지는 것은 이토록 피곤한 일이 아닌가. 그 순간 나에게는 젤리 한 봉지, 아니, 더 많은 당분이 든 무언가 필요하리란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테스트실로 출근하자 이미 훈이 도착해 있었다. 팔짱을 낀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옅게 코 고는 소리가 들렸다. 손에 든 차가운 커피를 볼에 가져다댔다. 훈이 고개를 살살 저으며 눈을 떴다. 그는 자연스럽게 손을 올려 커피를 받았다. 한 모금 마시더니, 꿈을 꿨는데요, 하면서 웅얼거렸다. 목이 잠겨 있었다. 

“제가 꿈에서 민수호를 본 거 있죠?”

그가 기운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꿈에서 민수호가 보다니. 그럴 만도 했다. 그는 두 달 넘도록 민수호 캐릭터가 쓰는 장비를 조율하고 있었다. 

“거기에서는 휠체어를 타지 않았어요.”훈은 두리번거리며 무언가 찾았다. 나는 그에게 기다란 스푼을 건넸다. 

“나한테 관심이 없진 않았네요.”

훈은 농담을 던지더니 스푼으로 컵 속 얼음을 떠서 입에 넣었다. 

“정신이 돌아오네요.”

스툴을 가져와 그 옆에 앉았다.

“계속 말해봐.”

“뭘요?”

훈의 오른 뺨이 얼음으로 불룩 튀어나왔다.“꿈.”

다음 이야기가 궁금했다. 

“그래서? 휠체어를 타지 않은 민수호는 어땠는데?”

“글쎄요.”

훈은 내 얼굴을 뚫어져라 보았다. 마치 이해하기 힘든 책을 펼쳐 읽는 듯 미간이 좁아졌다. 

“기억이 날아가고 있군요.”

훈이 어딘가 의심스럽다는 듯 눈을 가늘게 떴다.

“됐어.”

나는 스툴에서 엉덩이를 떼고 일어났다. 그때 훈이 허공으로 손을 쭉 뻗었다. 

“어? 잡았어요.”

“뭘 잡아?”

“기억이요.”

나는 그를 흘겨보았다. 

“왜 그렇게 봐요?”

잠이 다 달아난 목소리로 훈이 물었다.

“그래서 민수호가 누구인데요?”

“무슨 소리야? 민수호는 게임 캐릭터잖아.”

훈이 입에 든 얼음을 이로 부수었다. 바드득, 바드득 소리가 울렸다.

“진짜 말 안 해줄 거예요?”

나는 당황해서 얼버무렸다. 민수호? 그 캐릭터가 왜? 훈은 입을 다문 채 차분한 눈길로 나를 살폈다. 그는 이미 내 속을 읽고 있는 듯했다. 나는 실존 인물을 모델로 시나리오를 썼다는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아주 지독한 짝사랑이로군. 그렇게 모두가 알게 될까 두려웠다. 회사에서 오줌까지 지린데다 죽은 짝사랑 상대를 메인 캐릭터로 만든 사람이라니. 최악이다. 나도 어쩔 수 없었다. 대표가 괴력 팔 사나이의 서사를 빌드 업 하라 지시했을 때, 아무리 생각해도 다른 인물이 떠오르지 않았다. 도대체 괴력 팔 사나이는 무슨 이유로 하루종일 팔 근육을 키우고 휠체어를 탄 채 불 속으로 뛰어드는가. 수호의 목적은 분명했다. 수호는 은하를 구해야 했다. 그렇기에 수호는 그 어떤 캐릭터보다 이 게임에 적합한 모델이었다. 그에게는 여전히 자신의 목적을 완수할 세계가 필요했다. 그리고 나에게도 내 목적을 실현할 세계가 필요했다. 


사고 후 얼마나 지났을까. 시신이 인도되고 그 당황스러운 영혼결혼식마저 끝난 후, 수호 가족이 나를 찾아와 옷을 쥐어뜯을 듯 멱살을 잡았다. 너 때문이라고, 내 어깨를 주먹으로 내리쳤다. 살려내라고 울면서 부르짖었다. 그들에게는 해결되지 않는 감정의 응어리를 풀어야 할 상대가 필요했고, 처음에는 그게 나라는 사실이 부당하게 생각되었다. 그들의 원망이 나를 향한 것은 화재가 일어난 원인을 알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인지 몰랐다. 피복이 다 벗겨진 열선이 발견되었지만 발화의 시작점이 정확히 밝혀지지는 않았다. 단순한 관리 부실이 그렇게 큰 화재의 원인이라니. 사람들은 믿을 수 없어 했다. 그렇다고 수호에게 그 쇼핑몰에서 은하를 만나라고 설득한 사람을 이 사고의 원인으로 지목해야 하는 것인가. 당연히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았다. 시간이 좀 더 지난 후, 나는 서서히 무언가를 깨달았다. 정말 몰랐던 것일까. 모른 척한 건 아니었을까. 어느 쪽이든 무슨 상관인가. 결과는 똑같을 텐데. 

쇼핑몰 지하 주차장에서 두 번이나 불씨가 피어올랐고, 모두 방화의 시도로 추정된다는 뉴스가 보도된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었다. 뉴스를 보면서 그곳에 절대 가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차차 잊어갔다. 그 보도 이후 별일 없지 않았던가. 그날은 은하의 생일이었다. 수호는 정오가 지나서야 알았다. 그 작년에 수호가 은하의 생일을 잊어 호되게 혼난 모습이 떠올랐다. 은하의 선물을 준비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그에게, 나는 쇼핑몰에 갈 것을 권했다. 그곳에 은하가 좋아할 만한 옷이나 액세서리가 있을 테고, 두 사람이 데이트할 만한 근사한 식당도 있을 거라고 했다. 게다가 꼭대기 층에서 팝업 서점이 문을 열 거란 소식도 전했다. 은하가 책을 좋아하니까. 그렇게 말하자 수호는 은하가 좋아하는 건 책이 아니라 소설이라고 말했다. 그게 그거잖아. 수호는 다르다고 했다. 책은 책이고 소설은 소설이지. 수호는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며 허탈하게 웃었다. 그냥 설명 없이 이해되는 게 있잖아. 물론 그런 것이 나에게도 있었다. 이제 끝난 건가 싶다가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던 짝사랑의 날들이 그랬다. 한번 시작된 마음은 왜 끝나지 않는 걸까? 그것은 설명되지 않았지만 이해 가능한 것이었다. 오픈 날이라 서점에서 연필을 나눠준대. 선착순이고 까렌다쉬 연필을 준다는데? 수호는 까렌다쉬가 뭔지 몰라도 은하에게 연필을 수집하는 취미가 있다면서 내 어깨에 손을 올리더니 고맙다고 말했다. 그는 곧 재킷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그 다음날 수호는 쇼핑몰의 비상계단에서 발견되었다. 

생명 활동은 정지되어 있었다.

문틈 사이 뻗어나온 손을 꼭 붙잡고 있었다.

은하의 손이었다.

어느 밤, 나는 경찰서를 찾아갔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맞잡고 빌었다. 제가 그랬어요. 제가 미쳤었나봐요. 그렇게 고백했다. 경찰들은 내가 쇼핑몰에 불을 냈다고 자백하는 줄 알았다. 정말 아가씨가 그랬어요? 나는 네, 라고 확신에 차서 대답했다. 거기 불이 날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 가라고 했어요. 수호랑 은하는 그런 곳에 가는 사람들이 아니에요. 걔네들은 쇼핑몰 같은 데 가는 취미가 전혀 없어요…… 경찰이 피곤하다는 듯 눈을 감더니 뒷목을 잡았다. 나는 이제 그만 돌아가보라는 차가운 목소리를 들었고, 그들의 팔에 붙들려 밖으로 끌려나왔다. 한동안 그 앞에 있던 나무 한 그루를 올려다보았다. 어느 계절이었던가. 나뭇잎들이 경찰서에서 흘러나온 불빛에 흐릿한 연둣빛으로 은은히 빛났다. 바람에 뒤척거리는 잎들을 보면서, 나는 용서를 구할 곳을 찾을 수 없다는 걸 깨달아갔다. 적어도 이곳에서는. 나에게도 그런 곳이 필요했다. 용서를 구할 만한 어딘가가 있어야 했다. 

훈은 이런 이야기를 듣고 싶은 걸까? 그는 해맑았다. 자신이 어떤 이야기든 받아줄 수 있을 거라 믿는 듯했다. 어떤 진실은 비밀에 부쳐야 한다는 걸 모르는 듯했다.

“제가 꿈 이야기를 할 테니, 라이 님은 민수호가 누구인지 말해줘요.”

“민수호가 진짜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왠지 그래요. 라이 님이 그 캐릭터에 집착하니까요.”

“내가 만든 캐릭터잖아.”

그럴 수도 있겠다며 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뭔가 더 있어요.”

훈이 커피에 젖은 입술을 달싹거렸다. 

“왜 그런 생각이 들어?”

“나한테 얘기해줘봐요.”

“뭘?”

“더 좋아질 거예요.”

“대화가 안 되고 있는 거 알아?”

“되고 있어요. 이상해도 연결되는 기분이 들잖아요.”

대화의 논리를 기분으로 가늠한다는 말에 피식 웃음이 났다. 그 말이 틀린 것도 아니었다. 

“한 가지만 말할게.”

어쩌면 숨겨야 할 것을 더 잘 숨기기 위해, 보여줄 만한 패만 골라 꺼내놓는 전략 같았다.

“좋아요.”

“열리지 않는 문에 관한 이야기.”

“그 퀘스트 설정에 무슨 사연이 있어요?”

“이게 민수호 이야기야.”

“거봐요. 실존 인물 맞잖아.”

훈이 흥미를 보이며 두 손을 모아 깍지를 꼈다. 

“딱 한 번만 말할 거야. 다시는 안 해.”

“좋아요. 두 번은 나도 안 들어요.”

훈이 등을 받치던 쿠션을 가슴 앞으로 가져와 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