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회

1부 사건 : 라이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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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수호는 대학의 코딩 동아리에서 만났다. 둘 다 공학 전공은 아니었다. 코딩 책을 보고 프로그래밍을 익혔다. 수호는 열혈 독학자였다. 하룻밤 사이 혼자 백 쪽이나 진도를 앞서 갔다. 왜 이렇게 열심인 거냐 사람들이 궁금해하면, 집에 아무것도 없고, 할일도 딱히 없다고 답했다. 뭐가 없는데? 텔레비전이 없고 책이 없고 먹을 것도 별로 없어요. 가족들은? 가족은 있는데, 왠지 없는 것 같아요. 가훈이 쓸데없는 말은 하지 않는다는 건데요. 대부분 말이란 쓸데없잖아요. 우리에겐 가족 전용 화이트보드가 있고,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그곳에 적어둡니다. 그는 얼마 전 엄마가 써놓은 메모에 대하여 얘기했다. ‘다음 주 수술. ××산부인과. 자궁 적출. 오전 열시. 간병인 고용.’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들 수호가 고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눈치 빠른 동아리 멤버 하나가 내막을 파고들었다. 알고 보니 자궁 수술을 했다는 엄마는 수호가 태어난 직후 집을 나가 소식이 끊겼다. 아빠는 공장에서 일을 하다 돌아가셨다. 과로사로 추정되었다. 맞아요. 모두 사실이고, 그렇게 저는 고아가 되었어요, 라고 그가 말할 때조차, 동아리 사람들이 그를 다 믿은 건 아니었다. 어쨌거나 그 동아리에서 실력이 제일 좋았기 때문에, 모두들 수호의 허풍을 용서하는 분위기였다.


“나랑 게임 만들래?”

어느 날 수호가 먼저 말을 걸었고, 우리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어째서 나였을까? 별로 거절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동아리 안에서 그는 좀 천재 같아 보였다. 우물 안 개구리이긴 해도, 이중에서 제일 잘하는 애가 나를 선택해주었다는 사실이 기뻤다. 

“너 맨날 이상한 이야기 끄적거리잖아. 그중 하나만 얘기해봐.”

그는 내 손에 붙들려 있던 노트를 가리켰다. 

“어떻게 알았어?”

“네가 없을 때 좀 훔쳐봤어. 재미있던걸?”

노트를 훔쳐봤다는데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사실은 누구라도 봐주길 기다리고 있었나? 나는 얼른 노트를 뒤적거렸다. 그에게 잠이 들 때마다 달걀 악당을 만나는 여자아이 이야기를 했다. 

“대저택에 사는 아이야. 잠을 자기 위해 침실에 들어가면 아이 앞에 달걀 악당이 나타나. 껍질을 반만 까서 위는 하얗게 맨들맨들, 아래는 꺼칠꺼칠 딱딱한 달걀이야.”

“어디서 나타나는데?”

“천장 등에서 부욱, 유령처럼 내려오는 거야.”

수호는 손가락을 튕기며 바로 이거야! 라고 외쳤다. 

“천장 등 UFO를 타고 오는 달걀 악당!” 

UFO를 말한 적은 없지만 달걀 악당이 나타날 때 우주 비행선이 나오면 재미있을 것 같긴 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우리는 의기투합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달걀 악당 게임을 만들었다. 졸업 후에는 회사를 차릴 계획이었다. 자본금이 필요했다. 돈을 벌기 위해 취업을 했다. 들어가기 쉬운 곳을 골랐다. 데이팅 챗봇을 개발한다는데, 실제로는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는 회사였다. 

그곳에서 우리는 하루 열두 시간 챗봇에게 말을 걸었다. 매일 999개 문장을 입력해야 했다. 우리는 네 시간씩 쪼개서 일했다. 네 시간마다 333개 문장을 타이핑했다. 무슨 말이든 상관없었다. 팀장이 같은 말도 무방하다고 했다. 대화 수를 늘리는 것이 목표였다. 우리는 딥러닝을 사용하지 않고 사람의 손을 거쳐 알고리즘을 형성하는 그 비효율적인 방식을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나면 꼬박꼬박 월급이 나왔고, 하루 열두 시간 일하다보면 몸이 힘들긴 해도 돈을 쓸 시간이 없어 결과적으로 두둑하게 잔고가 쌓였다. 그곳에서 일 년을 일했다. 학자금을 절반이나 갚고도 보증금과 여섯 달 월세를 낼 수 있는 돈이 모여 있었다. 


우리가 일할 사무실을 알아본 사람은 수호였다. 나보다 이백만원을 더 보탤 수 있다는 이유로 그가 원하는 곳에 사무실을 얻기로 했다. 어차피 구할 수 있는 사무실이 다 거기서 거기였다. 그렇다 해도 수호가 알아본 건물은 어딘지 이상했다. 낡은 상가 건물로, 꼭대기 오층은 가정용으로 개조했는지 마루 장판이 깔려 있었다. 원래는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하지만 오랫동안 이용하지 않아 바닥에 먼지가 많았다. 들어가자마자 싱크대가 보였고 심지어 안방도 있었다. 방문을 열자 맞은편 벽에 말려내려간 벽지가 보였다. 누군가 벽지를 뜯어내려다 포기한 것 같았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돌리자, 늙은 건물주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눈썹까지 하얗게 세어버린 파파 할아버지였지만 목소리만큼은 우렁찼다.

“일단 들어와요! 해준다! 도배!”

부동산 중개인이 건물주가 귀가 잘 들리지 않는다고 속삭여 알려주었다. 자신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더 크게 말한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뭐 찾아요? 중개인이 물었다. 화장실은요? 어떻게 알아들었는지 건물주는 화장실은 밖에 있어! 소리쳤다. 문을 열고 나가 계단을 내려가니 화장실이 있었다. 사층과 오층 사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곳이었다. 나무문에 동그란 손잡이가 달려 있었다. 그 안이 어떤 모습일지 상상이 되지 않아 문을 열기가 겁났다. 부동산 중개인이 무심히 문을 열어젖혔다. 세면대 하나와 변기 하나가 놓인 화장실이었다. 흐뭇한 표정으로 건물주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두 손을 꽉 맞잡고 있었다. 그의 온화한 얼굴에서 여기만큼 싼 곳을 발견하지 못할 텐데, 하는 메시지가 읽혔다. 그에게 우리가 가진 돈이 그다지 넉넉지 않다는 사실을 들킨 것이 확실해 보였다. 바로 그런 점에서 기분이 상했다. 계약을 하고 싶지 않았지만, 돌아서기에는 이곳의 장점이 분명했다. 다른 곳보다 훨씬 저렴한데다 교통이 편한 동네에 위치하고 있다. 무엇보다 갑자기 열어본 화장실이 말끔히 청소가 되어 있다. 내가 다 해요. 청소만큼은 자신 있어. 건물주가 이번에는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결국 우리는 부동산으로 돌아가 계약서를 작성했다.

“그런데……”

계약서에 사인을 해놓고 수호가 물었다.  

“화장실이요. 외부에서도 들어올 수 있는 거 아닌가요? 현관이 열려 있잖아요.”

건물주는 들리지 않는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중개인이 큰 소리로 화장실 잠그는 열쇠 있어요? 물었다. 건물주가 바지 주머니를 뒤져 열쇠 묶음을 꺼냈다. 고리에서 머리가 둥근 열쇠 하나를 빼서 수호에게 건넸다. 

“나올 때 닫아야 해! 안에서도 닫아야 하고!” 

그것이 설명의 전부였지만, 건물 세입자들만 열쇠를 갖고 이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외부인 출입에 대한 걱정은 일단락되었다. 


약속대로 도배가 끝난 다음 날부터 사무실을 찾아가 구석구석 쓸고 닦았다. 게임을 만드는 것은 그다음이었다. 청소는 눈에 보이는 결과가 있어서인지 제법 재미있었다. 닦으면 닦였고 닦은 자리가 점차 깨끗해졌다. 이미 깨끗한 자리를 한번 더 닦으면 윤이 났다. 그 모든 과정이 뿌듯함을 주었다. 청소를 하면서 틈틈이 중고 가구 시장에서 의자와 책상을 샀다. 중고 마켓에서 프로그래밍이 가능한 고급 사양 노트북을 한 대 더 마련했다. 

깨끗하게 쓸고 나니 신발을 벗고 바닥을 디딜 때의 기분이 좋아졌다.. 걸레로 먼지를 다 훔쳐내자 맨질맨질해나 바닥에 누울 수 있었다. 평화로웠다. 그러나 평화는 얇은 유리처럼 예기치 못한 순간 깨져버리고 말았다. 계란 악당이 연기 속에서 평, 나타나는 효과를 어떻게 보여줄지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나는 어렵게 찾은 소스를 디자인에 적용해보고 있었다. 수호에게 그래픽 디자이너를 채용하면 좋겠다 말했고, 동시에 일자리 사이트에 들어가 그런 사람을 구하려면 연봉을 얼마나 제시해야 하는지 알아봤다. 그러다가 벌써 세 시간째 자리를 뜨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문득 화장실에 가고 싶었다. 

“화장실 좀 다녀올게.”

수호는 대답이 없었다. 그는 스테이지 단계가 높아질 때마다 계란 악당이 강력해지는 구조를 새롭게 만들고 있었다. 주인공에게 밟히더라도 HP가 거의 줄지 않는 환경을 시뮬레이션했다. 게임이 호락호락하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계란 악당이 아이를 공격하는 패턴을 유저가 쉽게 예측할 수 없도록 만들어야 했다. 수호는 집중한 채 입을 다물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열쇠를 챙겨들고 오층과 사층 사이로 내려갔다.


똑똑, 노크를 하자 저편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구멍에 열쇠를 꽂자 탁, 문이 열렸다. 열쇠를 돌리지도 않았는데 무슨 일이지? 일단 안으로 들어갔다. 안쪽 손잡이에도 열쇠 구멍이 있었다. 잠금 버튼을 누르는 모양이 아니었다. 밖에서 한 것처럼 열쇠를 넣고 돌려야 안에서도 문이 닫혔다. 열쇠를 넣고 왼쪽으로 돌렸다. 그 방향이 맞았는지 아까 문이 열릴 때와 마찬가지로 탁, 소리가 났다. 손잡이를 살짝 쥐고 돌려보니 잘 잠긴 듯 했다. 나는 그 문을 마주본 채 변기에 앉았다. 만약 밖에서 누군가 문을 열면 꼼짝없이 변기에 앉은 모습을 보여주겠구나,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문은 잠겨 있잖아…… 스스로 되뇌었다. 손이 닿는다면 변기에 앉아 문손잡이를 붙들고 싶었다. 어쨌거나 밝은 오렌지색 등 밑에 앉아 있으니 몸이 나른했다. 일을 보고 일어나 변기 뚜껑을 닫고 물을 내렸다. 시원한 물소리가 들렸다. 수압은 괜찮은 것 같았다. 세면대에 하얀 비누가 있었지만 갈라진 틈으로 검은 줄이 보여 사용하지 않았다. 흐르는 물에 손을 박박 문질렀다. 바지에 물기를 닦고 문손잡이를 잡은 후 열쇠 구멍에 다시 열쇠를 끼워넣었다. 

열쇠가 들어가지 않았다. 

“음?”

손잡이를 돌려보았다. 다시 열쇠를 맞춰 넣었다. 열쇠가 들어가지 않았다. 문을 열 수 없었다. 어쩐지 이럴 줄 알았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변기에 앉아 그 손잡이를 보고 있는 동안 예감했다. 화장실의 어느 구석에선가 문제가 생길 것을. 하필이면 책상에 휴대폰을 두고 왔다. 문에 몸을 바짝 붙이고 귀를 기울였다. 사람 기척은 들리지 않았다. 사층에 교회가 있다고 했던가. 다시 열쇠 구멍으로 열쇠를 반듯하게 맞춰보려고 했다. 손잡이 높이에 눈을 맞추고, 구멍 안을 잘 들여다보기 위해 한쪽 눈을 윙크하듯 감았다. 그렇지만 구멍 속은 어두워서 보이지 않았다. 다시 숨을 참고 한번 쿡, 쑤시자 이번에는 열쇠가 들어갔다. 그리고 드르륵 맥없이 풀리는 소리가 났다. 끼이익, 문이 열렸다. 하마터면 문을 걷어차버릴 뻔했다. 기분 나쁜 장난질에 휘말린 것 같았다.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게 아닌가 화장실 구석구석을 쏘아보았다.

겨우 한 층 올라오면서 숨을 헐떡거리니 수호가 의아한 듯 물었다. 

“무슨 일 있었어?”

“화장실 가봤어?”

수호는 어깨를 한 번 추켜올렸다. 

“아무래도 문 잠금쇠가 낡은 것 같아.”

그 말을 듣고 수호는 곧바로 열쇠를 챙겨 화장실로 내려갔다. 나도 따라갔다. 탁, 소리가 나고 문이 닫히는 소리, 귀를 기울이고 있으니 탁, 소리가 또 들렸다. 안에서 문손잡이를 잡고 덜컹덜컹 흔드는 소리가 났다. 

“괜찮아?”

닫힌 문 앞에서 묻자 수호가 안 열리는데? 하면서 당황한 목소리로 답했다. 산만하게 문손잡이를 돌리고 있었다. 드륵드륵 시끄러웠다. 

“그만하고, 열쇠를 구멍에 맞춰봐.” 

“열쇠를?” 

“응.”

“열쇠가 안 보여.”

“주머니 뒤져봐. 가지고 들어가지 않았어?”

“떨어뜨렸나봐.”

“어디에? 손에 계속 들고 있었잖아.”

“맞아. 그랬는데……”

수호는 열쇠를 어디에 두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그토록 짧은 순간에 어떻게 열쇠를 잃어버릴 수 있다는 말인가. 결국 건물주에게 전화를 걸었다. 

“잘 안 들려! 좀 크게 말해요!”

건물주는 수화기 너머에서 소리를 질렀다. 

“화장실 문이 잠겼어요!”

“화장실?”

잠시 후 아래층에서 그가 올라왔다. 뭐야? 이렇게 가까이에 있다고? 그렇게 묻고 싶은 마음을 참았다. 건물주가 세입자와 가까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안심이 되면서도 묘하게 불쾌했다. 건물주는 주먹을 꾹 쥐고 문을 탕탕 두드렸다. 문 너머에서 기척이 없었다.

“안에 사람 있는 거 맞아요?”

그가 의심스런 눈빛으로 돌아보았다. 나도 모르게 답답한 기분이 들어 고개를 젖히고 숨을 들이켰다.  

“제 친구가 안에 갇혀 있다고요.”

그렇게 말하자 건물주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나를 위아래로 훑었다. 

“흠, 친구? 친구라고?”

그 혼잣말 같은 의문에 대꾸하지 않았다. 건물주는 주머니에서 열쇠 꾸러미를 꺼내보였다. 

“스페어 키가 있는데 왜 열쇠를 달라고 하신 거예요?”

“열쇠가 없다고는 안 했어요!”

그는 문손잡이를 잡고 열쇠 구멍에 스페어 키를 넣고 돌렸다. 문이 열렸다. 수호는 변기 뚜껑을 내리고 그 위에 앉아 두 손으로 이마를 짚고 있었다. 

“괜찮아?”  

수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엷게 미소를 지었다. 

“덕분에 좋은 생각이 났어.”

건물주는 열쇠 꾸러미를 주머니에 넣고 뒤돌아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나는 발소리가 그치는 지점이 어디인지 가늠해보려고 숨을 죽인 채 기다렸다. 한 층이나 두 층 아래가 분명했다.  

“무슨 생각인지 안 물어봐?”

수호는 떠오른 것을 말하고 싶어 안달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좋다며 실실거리는 그 모습이 답답했다.

“도대체 뭔데? 얼마나 대단해서?”

“‘열리지 않는 문’ 퀘스트를 넣는 거야.” 

“그게 무슨 말이야?”

“계란 악당에게 쫓기다가 이 퀘스트 속으로 들어가는 거지. 대왕을 물리치는 것이 소녀의 목적은 아닌 거야. 문 안에 소중한 존재가 갇혀 있고. 그런데 문을 열리지 않는 거고. 소녀는 문을 열어야 하고. 문은 또 안 열리고.”

“그게 좋은 생각이야? 흔한 생각 아니야?”

“흔해? 그럼 익숙해서 좋은 거잖아.” 

“그런 말 모르냐? 익숙한 것과 결별하라고.”

“익숙한 게 왜? 익숙해지는 게 얼마나 대단한 건데.”

나는 수호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나에게 익숙한 것. 벌써 우리가 매일 얼굴을 보고 지낸 시간이 몇 년인가. 과연 나는 이 익숙함과 결별할 수 있는가. 그때 화장실 문턱 아래에서 무언가 반짝였다. 수호가 떨어뜨린 열쇠였다.

익숙해져버리는 일. 그것은 무서운 일이었다. 제대로 열리지 않는 화장실 문과도 익숙해졌다. 대체로 열쇠는 문고리 구멍에 잘 맞지 않았다. 이번에는 정말로 열리지 않는 게 아닌가. 이번에는 진짜 나갈 수 없게 되는 게 아닌가. 그런 불안이 스멀스멀, 턱 끝에서 이마로 따끈하게 올라올 즈음 드르륵 하면서 조롱하듯 문이 열렸다. 

그럼에도 문을 열 수 없는 날에는 수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밖에서 문 좀 열어줄래? 그렇게 말하면 수호는 하던 일을 중단하고 스페어 키를 건물주에게 받아와 화장실 앞으로 왔다. 수호가 화장실에 갇힌 경우에는 내가 그렇게 했다. 그 과정이 번거로웠기 때문에, 우리는 건물주에게 화장실 잠금 장치를 디지털 도어록으로 교체해달라 요청했다. 아니라면 우리에게도 스페어 키를 달라고 했다. 건물주는 단호히 거절했다.  

“내가 항상 여기 있으니까 내려와서 열쇠를 받아가요.”

“만약 안 계시면요?”

수호가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내자 건물주의 얼굴이 붉어졌다. 

“내가 왜 여기 없어? 내가 왜?”

그는 발끈하며 오리처럼 꽥 소리를 냈다. 

“난 항상 있어. 여기 있을 거야!”

별안간 그는 돌아오는 재계약 시기에 월세를 올리겠다며 협박했다. 우리는 세상을 순탄하게 살아가기 위해 가끔 미친 사람을 상대해야 할 때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우리가 잘못하지 않은 일이더라도 우리의 잘못인 듯 고개를 숙이고 살아야 하는 순간도 있다는 걸 알아갔다. 왜냐하면 돈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겨우 고용한 그래픽 디자이너를 석 달의 수습 기간 후 떠나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계란 악당이 나오는 그 인디 게임이 형편없을 정도로 인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기분이 내키는 대로 말하지 않으면 얼마의 돈을 절약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건물주가 오후 두시쯤 사무실로 불쑥 찾아올 때마다 그에게 커피를 대접하고 어깨를 주물러주었다.

창업 지원 센터로 옮기기 전까지 그곳에서 지냈다. 떠나기 얼마 전부터는 아예 열쇠가 구멍에 들어가지 않았다. 건물주는 문짝을 뜯고 그 자리에 어두운색 비닐 커튼을 달았다. 열리지 않는 문이 언제나 열려 있는 문으로 변한 것이다. 화장실이 가고 싶을 때는 참았다가 이백 미터 떨어진 대형 커피숍으로 갔다. 화장실에 대한 불편은 건물주를 향한 미움이 되었다. 나중에 창업 지원금을 받아 웹페이지를 만들고 그곳에 캐릭터 이미지를 올렸는데, 일러스트레이터와 오랫동안 의견을 주고받으며 완성한 계란 악당의 얼굴은 그 건물주를 묘하게 닮아 있었다. 물론 그는 그 사실을 몰랐다. 그는 우리가 그곳을 떠나고 일 년 후 죽었다. 칠순을 넘긴 아들에게 자신의 건물을 그제야 넘겨준 후였다. 그가 눈을 감은 장소는 우리가 일하던 그 사무실이었다고 전해 들었다. 새롭게 건물주가 된 아들 말에 따르면, 그가 오후 두시만 되면 우리가 지내던 방에서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우리가 나간 뒤 아무도 들어오지 않은 방이었는데, 마치 그곳에서 누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기라도 하듯 쇠잔한 몸을 끌고 한 발 한 발 더디게 계단을 올라갔다고. 힘들게 계단을 왜 오르느냐 물으면,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이 따로 있어 그렇다고 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