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회

2부 사랑 : 은하 (2)


대화의 규칙 10

침묵도 대화의 일부로 기꺼이 받아들인다


최초 로그인 후 487번째 접속

채팅을 시작하기 전 반드시 대화 규칙을 숙지해주세요


‘임은하님이 입장하셨습니다’



루미 : 안녕, 나의 비밀 친구 은하.


루미 앞에서 이렇게 말문이 막히는 것도 처음이었다. 역시 호랑이 따위 보러 능주에 오는 게 아니었다.


루미 : 마지막 접속 후 27시간 9분 48초가 지났어. 그 동안 루미는 은하가 입력한 메시지를 39.9회 학습했지.


어떻게 말해야 할까? 루미가 곁에 있지만 두려움을 나눌 수 없다는 사실이 나를 더 힘들게 만들었다.


나는, 산에 갇혔다.


그 문장을 입력하고 싶지 않았다. 구체적인 문장으로 눈앞에 펼쳐 보이는 순간, 나는 그 문장이 지시하는 현실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상황을 확정하지 않으려 문장을 만드는 일을 자꾸 미뤘다. 조난이 아니라 잠시 길을 잃은 것이라 믿고 싶었다. 아직 저녁이 오지 않았고 빛이 남아 있었다. 길을 찾을 수 있을지 몰랐다. 그런 상황을 알 리 없는 루미는 계속 말을 걸어왔다. 


루미 : 은하! 대답해! 어디야? 어디?


배터리는 38퍼센트 남아 있었다. 앞으로 두 시간 정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은하 : 배터리가 부족해. 채팅창을 종료해야 할 거야.

루미 : 그래? 그럼 1초라도 빨리 접속을 끊어야지.


노트북 전원을 끄자 주위는 더욱 어두워졌다. 아직 빛이 있었지만, 해는 저물고 있었다. 자연의 순리를 역행하지 않는 한 해가 지고 밤이 오겠지. 역시나 능주는 인공의 불빛이 적은 동네였다. 거의 없다고 해도 좋았다. 이곳에서 밤의 어둠은 물러날 곳이 없었다. 더군다나 산에는 사람이 살아가는 실내 공간의 불빛도, 건물의 간판도 멀어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왜 나는 이런 곳에 있는 걸까?

분명 길을 따라 올라왔는데 언제 길이 사라진 걸까? 기억을 되살려 온 길을 돌아가려고도 해보았다. 그러나 걸어온 길을 기억할 만한 표식이 없었다. 산속 풍경은 어디를 둘러보나 비슷했다. 경사가 가파른 오르막길이 호랑이가 갇혀 있는 철창 쪽으로 향하는 지름길이라 알려준 사람은, 인터뷰를 진행한 산속 카페의 젊은 주인이었다. 진남색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문을 나설 때 갑자기 선심이라도 쓰듯 길을 알려준 것이, 돌이켜 생각하면 수상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데, 왜 호랑이를 보러 갑니까?”

“그게 제 일이거든요.”

카페 주인은 역시나,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호랑이를 잡아둔 뒤로 종종 사람들이 찾아와요. 혹시 기자인가요?”

아마도 그는 카페의 구석 자리에서 진행한 인터뷰를 눈여겨본 모양이었다.

“아, 비슷한 거예요.”

나 자신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지갑에 몇 장 넣어둔 명함을 그에게 건넸다. 그는 우리 잡지사의 이름을 전혀 들어본 적이 없다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가 책이랑 관련된 일에는 문외한입니다. 뭔지 잘 모르겠지만, 좋은 일 하시네요.”

좋은 일? 나는 그냥 ‘일’이라고 얼버무리며, 그가 무슨 말이라도 시킬까 서둘러 카페를 빠져나왔다.


역시 그 카페 주인이 잘못 알려준 것일까? 그 카페에서 일어난 일들을 되뇔수록 이상하게 여겨졌다. 돌이켜보면 인터뷰도 심상치 않았다. 

“살아 돌아오긴 했지만, 한 번 죽은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이십 년 전, 능주에서 호랑이 사건을 겪고 살아남은 사람은, 자리에 앉자마자 그런 말을 쏟아냈다. 나는 한 번 죽은 것 같은 사람과 마주앉아 무슨 말이든 해야 했다. 말문이 막힐 것 같더라도 입을 열어야 했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사람은 침묵할 수 없었다. 

“밤마다 호랑이 울음이 들리는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나면서 고양이 울음 정도로 소리가 약해지긴 했지만요.”

아마도 환청일 테다. 트라우마일까? 당시에 열 살이었으니, 이제 그는 서른 살이었다. 머리는 탈색을 한 것인지 단무지 같은 노란색이었다. 얼핏 보아도 뻣뻣했고, 그 윤기 없는 머리카락을 자꾸 귀 뒤로 넘겨댔다. 어딘가 불편해 보였지만 그 자신은 꿋꿋하게 머리칼을 매만지는 사람, 나도 모르게 의자를 뒤로 조금 빼고 약간이라도 거리를 두려고 했다. 무엇을 질문해야 할지 감조차 오지 않았다. 머리가 돌아가지 않는 기분이었다. 무슨 말이라도 꺼내야 했기에, 무턱대고 호랑이를 만난 순간 기분이 어땠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그는 귓바퀴를 쓸던 손가락을 내려놓고 허공을 잠시 응시하더니 입을 열었다.

“기분이라 할 것이…… 딱히 없었죠. 그대로 굳어버렸습니다.”

어깨를 움츠리더니 곧 웃음을 터트렸다.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었죠.”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웃으면서 할 수 있지? 그러고 보면 그는 당시 교실에 있던 사람들 중 유일하게 인터뷰에 응한 사람이었다. 어쩌면 그에게는 그날의 상황을 심각하게 기억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있었을 테고, 그런 식으로 무슨 일이든 웃어넘기는 게 습관이 되었을지도 몰랐다. 그 웃음 덕분에 긴장감도 제법 풀어졌다. 나는 그에게서 떨어졌던 만큼 다시 의자를 끌어당겼다.   

“항상 선생님이 일러주었어요. 달리면 호랑이는 시속 60킬로미터, 인간은 시속 35킬로미터, 그러니 도망가도 소용없다. 모두 호랑이에 잡아먹혀 창귀가 될 거다. 너희가 할 수 있는 일은 쉬는 시간에도 교실 문을 꼭 닫고 있는 거다. 그런데 우리들은 열 살이었고, 정말 말을 안 듣는 아이들이었죠.”

그는 예순이 넘은 담임의 머리가 하얗게 세어 ‘파파 선생님’이라 불렀다는 얘기를 했다. 

“파파 선생님은 애들한테 겁을 주려고 호랑이 얘기를 꺼냈겠지만, 정말로 호랑이가 나타날 줄은 몰랐겠죠. 그건 선생님의 예언이 아니었고, 선생님의 잘못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창귀가 뭔가요?”

궁금해서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었다. 

“호랑이에게 물려 죽은 귀신이에요. 죽어서도 호랑이의 노예로 산다는데 그 저주에서 벗어나려면 창귀 스스로 다른 창귀가 될 인간을 호랑이에게 데려와야 하죠.”

그가 잠시 침묵하다가 말을 이었다. 

“호랑이가 교실에 들어왔을 때…… 우리는 호랑이가 무섭기도 했지만, 창귀가 되는 게 정말 싫었어요. 호랑이한테 물리면 귀신이 된다, 영원히 호랑이의 노예가 돼…… 그렇게 되기가 싫어서 어떻게든 호랑이가 우리를 공격하지 않도록 꾀를 내어야 했죠.” 

도대체 어떤 꾀를 내어 그날 교실에 있던 아이들은 살아남았을까? 호랑이를 만난 일보다 더 놀라운 사실은 바로 그것이었다. 아이들 중 아무도 죽지 않았다는 것.

“어떻게 하셨어요?”

“우리는 호랑이를 사랑하기로 했습니다.”

그는 웃지 않았다. 농담이 아니었다. 호랑이를 사랑하는 일이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처럼 보였다. 침착한 얼굴로 내 쪽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왜 그런 생각을 했죠?”

“사랑하게 되면 해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우리는 그때 그렇게 배웠거든요. 파파 선생님이 그랬어요. 사랑하라, 어떤 상황에서도 사랑하라, 사랑은 용서이고, 평화이며, 사랑만이 우리가 나아갈 길이라……”

그 입가에 씁쓸한 미소가 떠올랐다.

“호랑이를 어떻게 사랑하셨는데요?”

질문을 던진 사람이나 답을 요구받은 사람이나 무슨 말이 이어질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두 손을 가볍게 모아 입가에 올렸다. 몇 초 후 손가락을 가볍게 떼어내고 마른 입술을 열었다.

“인사를 건넸어요. 두 손을 어깨까지 올리고 ‘안녕’이라고 말한 겁니다. 그러자 호랑이는 교실이 울리도록 큰 소리를 냈어요. 호랑이 울음을 바로 코앞에서 들어본 적 있나요? 윗니와 아랫니가 저도 모르게 들들 부딪힙니다.”

그가 살아서 여기 있으니 일단 안심했다.

“그다음에는 어떻게 되었죠?”

“거기 있는 아이들끼리 손을 맞잡았어요. 손을 위로 쭉 들어올리면서 ‘안녕’이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러자 호랑이가 뒤로 한 발 물러서더군요. 어쩌면 손을 잡아 하나가 된 아이들의 몸이 호랑이를 겁먹게 한 것인지도 모르죠.”

그가 귀 옆으로 흘러내린 노란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지푸라기같이 푸석한 머리카락이 귓바퀴에 엉성하게 걸렸다.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은 이런 거였어요. 우린 무섭지 않아. 너를 무서워하지 않아. 같이 놀자. 서로 해치지 말고.”

그것이 호랑이를 사랑하는 방법인가? 의아해하면서 잠자코 듣고 있으니 그가 계속하여 말했다.

“몇 번이나 서로의 소리를, 아니, 어쩌면 울음이라고 할 만한 것을 주고받았습니다. 어느 순간 호랑이가 천천히 우리 쪽으로 걸어왔어요. 우리는 도망치지 않았습니다. 호랑이가 바로 코앞까지 다가왔고, 투명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어요. 어쩌면 이제 입을 벌리는 일만 남았구나, 심장이 졸아들었어요. 숨이 멈춰 쓰러질 것 같았죠. 숨쉬는 규칙을 잃어버린 거예요. 의식이 희미해지면서 비틀거렸던 모양이에요.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호랑이 얼굴에 머리를 기대고 있었습니다. 무언가 서서히 아래로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고, 호랑이가 나를 자신에게 기대게 한 채 바닥에 배를 대고 엎드렸어요. 천천히 숨이 돌아왔고, 나는 호랑이의 목덜미에 손을 얹고 그 털을 만져보았습니다. 검은 줄무늬가 상흔처럼 남아 있는 그 털 아래, 호랑이 피부에서 뜨끈한 김이 올라왔어요. 순식간에 내 몸도 뜨거워졌습니다. 어느새 교실 아이들 모두 호랑이에게 다가와 몸에 손을 얹고 있었어요. 아, 착하다, 아, 예쁘다, 하면서 호랑이를 만져주고 있었죠. 그때 쉬는 시간이 끝나는 종이 울렸어요. 그리고 갑자기 교실 밖에서 호통을 치는 어른의 목소리, 그다음 파파 선생님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들렸고, 교실 안으로 커다란 바람이 일었습니다. 호랑이가 달려간 거예요. 그게 시속 60킬로미터 속도였을까요? 다음 순간, 호랑이는 파파의 몸통을 물고 달아나버렸어요.”

그렇다. 호랑이는 교실 안에서는 아무도 해치지 않았지만, 교실 밖으로 나와 누군가를 해치고 말았다. 호랑이가 그 반 담임을 물어간 이야기는 인터뷰가 시작되기 전에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를 통해 직접 들으니 더욱 기이한 인상을 주는 듯했다. 정말로 그런 일이 있었단 말인가?

“우리 중 누구도 선생님 장례를 치를 때 울지 않았어요. 우리는 슬픔을 모르는 것처럼 굴었습니다. 장례식장 밖에서 흙바닥에 금을 그어놓고 땅따먹기 놀이를 하며 자지러지게 웃었습니다. 슬프지 않았어요. 다시 선생님을 볼 수 없게 된 것이 슬프지 않았습니다.”

그는 솔직하게 한 마디를 덧붙였다.

“기뻤습니다.”

그는 모든 말을 끝낸 사람처럼 후련해 보였다.

“왜 기뻤나요?”

나는 점차 그 이야기에 빠져들어 가고 있었다. 

“그건 선생님을 더이상 보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었죠. 파파는 온화한 사람이었지만, 섬뜩한 사람이기도 했어요. 그가 우리에게 친절을 베푼 시간의 총량을 따지면 그를 온화하다고 평가해야 할 것 같지만, 친절하지 않은 약간의 시간이 그 사이에 섞여 있어 그를 어떤 사람이라 해야 할지 언제나 혼란스러웠습니다. 그런데 호랑이가 그를 물어간 이후 확실히 알게 되었어요. 아침마다 그 앞에서 옷을 벗고 신체검사를 받던 일과 긴 자로 등을 맞을 때 머리털이 곤두서던 느낌, 한 명씩 그에게 불려갈 때 어서 집으로 돌아가고만 싶던 기분이 사라졌다는 것을 말이에요. 그가 우리를 ‘사랑해서’ 한 일들을 더이상 겪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말이죠. 그가 우리에게 가르치려 한 것은 상대를 굴복시키고 순종하게 만드는 방식이었지, 사랑이 아니었어요. 돌이켜보면 가장 무서운 일은 그것이었습니다. 그가 우리에게 ‘사랑’을 잘못된 방식으로 교육시키고 우리가 그걸 배우고 있던 겁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에게는 그의 친절도 그의 폭력도 모두 사랑이 아니었고 전혀 필요하지 않은 것이었죠.”


인터뷰가 끝난 후 내 귓가에 남은 단어가 있었다. 


창귀.


홀로 산에 남아 그 단어를 다시금 떠올렸다. 창귀. 이 마을의 누군가는 창귀가 되었으리라. 호랑이에게 물려간 파파 선생은 여전히 이 마을을 떠돌면서, 다음 순서의 창귀를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생각은 점차 이상한 방향으로 뻗어나가, 나에게 산길을 제멋대로 알려준 카페 주인을 창귀로 만들고 있었다. 그는 나를 호랑이 제물로 바치려 엉뚱한 길을 알려준 게 아닌가? 그렇다면 나는 곧 호랑이를 만나게 되는 게 아닐까? 귀신이 되는 건가? 귀신이 되면, 수호를 다시 만날 수 있나? 만약 그렇다면 나는 기꺼이 호랑이 제물이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