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회

한낮의 악령(1)

남편 복 없는 년은 아들 복도 없다더니. 낸시는 부엌 형광등을 갈아보려 끙끙댔다. 형광등 구조가 지랄 같았다. 여러 개의 덮개, 나사…… 의자에 올라가도 손이 안 닿아 무거운 식탁을 끌어다놓고 올라가야 했다.

아들은 바쁘다는 핑계로 일주일째 도와주지 않았다. 형광등 갈 시간도 없이 바쁘단 말인가, 대체. 지구라도 구하나.

대견한 아들이었다. 쥐뿔도 없는 집안, 대학도 못 나온 부모 밑에 태어나 박사 학위까지 따고 교수 비슷한 연구원 뭔가가 됐으니.

하지만 진짜 대견한지 잘 모르겠다. 지금에 와서는 아무것도 모르겠고 아들과 말이 통하지 않고 아들이 나를 필요로 하는지도 모르겠고 내가 아들을 필요로 하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나에게 진짜 필요한 건 돈, 돈 아닌가. 돈만 있으면 자식도, 자매도, 친구도 저절로 따라붙게 되어 있다. 하지만…… 말자. 쓸데없는 생각이다. 형광등이나 갈자.

지진이 일어난 건 그즈음이었다. 사물이 대각선으로, 세상이 사선으로 미끄러져 내려가고 있었다. 바닥에 떨어진 낸시는 본능적으로 식탁 밑으로 기어들어갔다. 액자가 떨어지고 화분이 깨졌다. 마당을 면한 벽에 실금이 그어지는 게 보였다. 누가 연필로 긋는 것처럼, 금이 갔다.

핸드폰에 뒤늦게 재난 경보가 울렸다. 낸시는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들은 전화 받기 무섭게 엄마 괜찮아? 지금 바쁘니까 이따 통화해, 라고는 전화를 끊었다. 따로 또 전화할 사람이 없었다. 아무도 낸시에게 전화하지 않았다. 어쨌거나 다치지 않았으니 다행이다. 누가? 내가? 아들이?

 

낸시는 주말 저녁마다 일하는 고깃집에 출근하기 위해 집을 나섰다. 아들 집에 마냥 얹혀사는 게 불편해서 시작한 일이다. 사장은 냄새나는 인종차별주의자였지만 손님 구경을 하고 주방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재미가 있었다. 이거라도 해야지, 아니면 치매가 올지도 모른다.

정류장에 내리는데 선자에게 전화가 왔다.

집에 누가 있어.

누가 엿듣기라도 하는지, 선자가 속삭이듯 말했다. 누가 있는데? 누군지 모르겠는데, 주방 후드에 누가 살아. 주방 후드…… 환풍기 말하는 거야? 어.

선자는 낸시의 고등학교 동창이다. 오래 교류가 없다가 최근에야 연락이 닿았다. 번호를 어떻게 알았는지 낸시에게 전화를 걸어 너 김포에 있다며, 나 서울이야, 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뭐, 못 볼 사이는 아니었다. 친했다면 친했던 사이다. 그렇다고 굳이 또 보고 그럴 사이는 아니었지만. 선자는 서울에서 혼자 살았다. 혼자 산 지 꽤 된 것 같았다. 선자가 결혼은 했던가. 애는 낳았던가. 선자의 지나온 세월에 대해선 아는 바가 없다. 어딘가, 이상하다는 것 말고는. 선자는 정신이 온전치 않아 보였다. 그렇지만, 그러려니 했다. 이제 와서 어쩌겠나. 일흔이 된 나이에, 일상생활만 가능하면 그러려니 하는 것이다. 낸시의 동창 중엔 영부인 팬클럽 부회장도 있었다. 그러니, 그러려니 하는 수밖에 없다.

지진 났잖아. 그때 누가 주방 후드에 들어왔어.

선자가 속삭였다.

나가라고 해. 낸시가 말했다. 나 지금 일 가니까 나중에 통화하자.

걱정이다. 선자가 걱정이 아니라 선자처럼 될까 걱정이었다. 연금이라도 받으면 모를까, 집도 절도 없는 주제에 아프기까지 하면…… 낸시는 유튜브에서 치매 예방을 위한 생활습관을 검색했다. 수십 번은 본 영상이었다. 걷고, 책 읽고, 컴퓨터를 배우고, 사회활동을 늘려라……

한번은 아들에게 치매 예방 하겠다고 컴퓨터를 사달라고 했다 핀잔만 들었다. 아들은 걱정 말란다. 치매도 유전적 요인이 큰데 엄마 쪽에는 없지 않냐고.

니 외할머니가 치매였던 것도 모르냐. 낸시가 쏘아붙였다.

엄마, 외할머니는 엄마 친엄마가 아니잖아.

아들이 말했다. 맞는 말이다. 그녀는 친엄마가 아니지.

그래도…… 영향이 있지 않나?

과학적으로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아무튼 바쁘니까 나중에 얘기해.

맨날 바쁘기는 이 새끼가……

낸시는 문득 엄마를 떠올린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친엄마와 낸시를 키워준 새엄마가 겹치고 오래전 고향집의 풍경이 스쳐지난다. 마당에 커다란 감나무가 있는 이층집이었다. 마을에서 제일가는 부잣집. 낸시의 아버지는 슬레이트 장사로 한몫 단단히 벌었다. 집과 붙은 가게는 지역에서 몰려온 업자들로 북적였고 식구들은 아버지가 시킨 일을 하느라 제각기 부산했다. 그 집에서 낸시는 한 번도 편하지 않았다.

한 번도, 마음 편했던 적이 없다. 이복형제와 새엄마 사이에서, 평화롭고 안락한 고향집의 풍경 속에서, 그녀는 외로웠다. 안락하고 평화로워서, 외로움이 무한히 계속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가 사랑 못 받고 컸으니 아들은 사랑받고 커야 한다고 생각했다. 최선을 다했다. 거지같은 남편과 살며 고생이란 고생은 다 했지만 아들 하나는 제대로 키우려고 노력했다. 사랑받고 자란 아이가 되도록, 나와 같은 설움을 겪지 않도록. 그런데 지금 와서 보니 사랑을 너무 많이 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저 놈은 지만 안다.

요즘 애들은 다 그렇나? 아닌데, 우리 아들은 착한데. 낸시는 머리를 흔들어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생각을 다잡는다. 너무 늙었다. 늙어서 아무 생각이나 막 한다. 죽어야 한다. 더 늙고 아프기 전에, 아들에게 쓸모없는 사람이 되기 전에, 짐이 되기 전에 죽어야 한다. 어쩌면 이미 쓸모없는지도 모른다. 수명이 다 된 인간은 수명이 다 된 형광등 같은 것이다. 어둑어둑하고 자주 깜빡이고, 번거롭다. 그녀를 한 번도 사랑해주지 않은 새엄마도 노년엔 그랬다. 그렇게 무서운 사람이었는데, 늙은 뒤에는 그저 번거로운 존재가 됐다.

 

고깃집엔 별일 없었다. 지진 얘기가 잠깐 화제에 올랐지만 여진도 못 남기고 사라졌다. 집에 돌아왔는데 부엌 불이 훤히 켜져 있었다. 아들은 오늘 회사에서 밤을 새운다고 했는데…… 내가 깜빡하고 나왔구나. 전기세가 얼만데.

눈이 부셨다. 형광등 빛에.

그럴 리가 없는데…… 불이 들어오는 등이 하나밖에 안 남아 어두웠는데, 지금은 눈이 부셔 등을 제대로 쳐다보기 힘들었다. 이상했다. 살펴보니 모든 방의 불이 켜져 있었다. 안방에도 화장실에도, 다락방까지. 드디어 이년이 미쳤구나, 미쳤다. 등골이 오싹했다. 정신이 나갔다. 집안의 불을 모두 켜놓고 나가다니, 미쳐도 희한하게 미쳤구나. 낸시는 방을 돌아다니며 불을 껐다.

그러고 돌아서는데, 부엌 불이 켜져 있다. 분명 방금 껐는데. 전기세 귀신이 붙었나? 혹시 아들이 그사이 집에 왔다 갔나? 아들은 어릴 때부터 불을 끄는 버릇이 없었다. 불 좀 끄고 다니라고 수천 번은 말했는데, 지 할일만 하면 나머지는 모르쇠다.

아들은 새벽에 귀가했다. 낸시는 불을 켜놓고 갔냐고 물었다. 무슨 불? 뭔 소리야? 엄마 나 피곤하니까 나중에 얘기해. 아들은 귀찮다는 듯 방으로 쑥 들어갔다.

양치했냐? 낸시가 방문에 대고 소리쳤다.

내가 초딩이야 뭐야.

낸시는 안방 침대에 누워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고 가만히 있었다. 아무도 없는 거실의 형광등이, 켜지고…… 꺼지고…… 켜지고…… 꺼졌다. 문틈으로 빛의 진동이 느껴졌다. 선자가 한 말이 생각났다. 집에 누가 있어. 누가…? 낸시는 눈을 질끈 감았다.

 

낸시는 다음날 형광등을 직접 갈았다. 등에는 이상이 없었다. 끝부분이 새카맣게 그은 것 말고는. 이것 때문에 불이 밝게 들어온 걸까. 낸시는 집안을 둘러보았다. 아들은 일어나기 무섭게 출근했다. 주말인데도 급한 일이 있다고 했다. 그래도 낸시가 준비한 샌드위치와 우유는 입에 쑤셔넣고 갔다. 식탁에 부스러기가 한가득이었다.

생각해보니 낸시는 아들이 뭘 하는지도 잘 모른다. 어느 기관의 어느 연구소에서 어떤 연구를 한다고 했는데…… 아들이 낸시가 하는 일을 잘 모르는 것과 비슷하다. 엄마 좀 쉬어, 뭐한다고 자꾸 일해? 그러다 병난다. 아들의 말은 걱정인지 비난인지 잘 구분이 안 간다. 내가 할일이 없어 보이나? 내가 일할 능력이 없어 보이나? 계속 일하다가 탈나면 병간호해야 될까 저러는 거겠지. 걱정 마라, 니 발목 안 잡을 테니. 낸시는 구시렁거리며 설거지를 했다. 그때 틱- 하는 소리와 함께 안방 TV가 켜졌다. 낸시는 소리를 들었지만 가만히 있었다. 볼륨이 지 멋대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있다.

긴장감으로 목구멍이 턱 막히고 위장이 조여왔다. 정신을…… 부여잡아야 한다. 집에는 아무도 없다. 아들은 회사에 갔고 나 혼자 있다. TV는…… 가끔 혼자 켜질 때도 있다. 요즘 TV는 인공지능…… 뭐 그런 기능이 있지 않나. 낸시는 집안일을 얼른 끝내고 서둘러 고깃집으로 출근했다.

 

고깃집은 어제와 같았다. 늘 고만고만한 숫자의 손님에 같은 일, 같은 직원, 같은 이야기들. 주방 일이 슬슬 힘에 부쳤지만 동료들 덕에 쉬어가며 할 수 있었다. 특히 터줏대감 노릇을 하는 차오령이 낸시의 뒤를 잘 봐줬다.

살갗이 두툼한 차오령은 예순 살쯤 된 조선족 여자다. 낸시가 조선족을 개인적으로 알 게 된 건 처음이지만, 죽이 잘 맞는다. 낸시의 고향에는, 낸시가 한참 일하던 시절에는 조선족이 없었다. 아니, 있었는데 몰랐던 것일까?

무슨 생각해, 언니? 쉬어가면서 해.

차오령이 낸시를 억지로 앉힌다. 차오령은 주 6일 10시간씩 일하는데도 지친 기색이 없다. 사장은 4대보험도 들어주지 않는데, 그런 대접을 받으면서도 차오령은 10년째 이 집에서 일하고 있다. 너도 좀 쉬라고 차오령에게 말하면 손을 휘휘 내젔는다.

괜찮아. 나는 아들이 있잖아.

차오령은 오늘도 어김없이 아들 자랑을 한다. 런던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홍콩 사모펀드에서 일하다 일본 여자와 결혼해 도쿄에 정착한 아들. 사돈어른이 일본 국회의원이라나. 그러니 낮은 임금이나 4대보험 따위는 문제없단다. 이상한…… 논리다. 게다가 어쩐지 거짓말 같기도 하다. 아들이, 사돈이, 그렇다고?

초콜릿 먹을래, 언니?

포장지에 가타카나가 쓰인 일본 초콜릿이다. 낸시는 매주 차오령이 건네는 일본 과자를 먹으며 의심을 잊는다. 따지고 보면 자신의 인생도 그닥 참말 같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