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

한낮의 악령(2)

낸시. 낸시의 본명은 막순이다. 원래 그녀는 이름이 없었다. 아버지가 외간 여자와 낳은 아이로 두 살이었나, 그때쯤 집에 데리고 왔단다. 그래서 생일도 모른다. 새엄마는 동사무소에 가서 생년과 이름을 대충 등록했다.

낸시는 애틀랜타에 살게 됐을 때 지은 이름이다. 기구하다면 기구한 사연이고 별거 아니라면 또 별거 아닌 과거다. 아들이 대학원을 간 뒤 낸시는 첫 남편과 이혼했다. 오래 끌었다. 진작 했어야 하는데, 남편은 결혼 생활 내내 바람피우면서도 이혼은 안 된다고 버텼다. 무슨 심보였는지 지금도 이해할 수 없다. 일종의 책임감일까. 무슨, 책임감? 뭘 한 번이라도 책임진 적이 있었나, 그 새끼가. 어쨌거나 이혼을 하고 나니 홀가분했다. 혼자 사는 건 어렵지 않았다. 식당에서 일하고 모텔에서 일하고 가끔 아들을 보고 그렇게 살았다. 계속 그렇게 살아야 했는데 어쩌다 초등학교 동창을 만났다. 이십대에 애틀랜타로 이민을 가서, 운수업으로 성공을 했다는 동창. 수십 년 만에 동창회에 왔단다. 전남편의 절반 정도 되는 작달막한 키였지만 몸이 다부지고 믿음직한 구석이 있었다. 뭔가, 책임이라는 걸 질 수도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늦은 나이의 재혼을 아들이 불편해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아들은 환영했다. 그래, 좋다. 낸시는 덜컥 애틀랜타로 떠났다. 여권을 만들고 새 이름을 짓고 결혼 전과 달리 무뚝뚝하고 퉁명스러운 태도의 동창놈에게 아침밥과 도시락을 챙겨주며, 성공은 무슨, 동창놈의 작은 아파트에서 말도 안 통하는 미국 생활을 견뎠다.

그래도 거리의 흑인들이 있어 재미가 있었다. 동창은 노숙자와 어울리지 말라고 했지만, 낸시는 그들이 편했다. 백인들은 영어를 가르치려 들었다. 말이 통해야 이해를 할 수 있다나. 흑인들과는 말이 안 통해도 떠들다보면 웃음이 절로 터졌다. 흑백을 그런 식으로 나누지 말라고 아들이 충고했지만 낸시는 무시했다. 이건 내가 느끼는 것이니, 내가 알아서 할 것이다. 미국에 살아본 적도 없는 놈이 충고는…… 집 앞 거리에 사는 노숙자에게 담배를 쥐여주고, 안 입는 옷도 갖다줬다. 노숙자는 매앰, 매앰, 하며 낸시가 지나갈 때마다 거수경례를 했다. 매앰은 여사님이라는 뜻이란다. 낸시는 여사님 되기 참 쉽다고 생각했다. 이 쉬운 걸 평생 못 되어봤으니, 어려운 인생이었다.

애틀랜타 생활이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사건이 있었다. 미국 간 지 1년쯤 지난 어느 날이었나, 아들이 낸시의 전화를 받았다. 애틀랜타는 새벽이었는데, 낸시가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다짜고짜 집에 왜 안 들어오냐고 말한 것이다.

무슨 집? 엄마, 무슨 말이야?

시간이 몇신데 집에 안 들어오고 뭐하노.

아들은 영문을 몰랐다. 엄마는 애틀란타에 있고 자신은 김포에 있는데, 떨어져 산 지가 십수 년인데 갑자기 집에 안 들어오냐니.

아들이 상황을 설명하자 낸시는 사색이 됐다. 내가 지금 애틀랜타라고? 애틀랜타가 어딘데? 우리 같이 사는 거 아이가?

낸시의 말을 들은 아들도 새파랗게 질렸다. 엄마의 뇌에 문제가 생긴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갑자기 과거로 시간 여행이라도 한 걸까? 낸시는 발 디딜 곳을 잃은 사람처럼 허둥지둥 같은 말을 반복했다. 너 집에 왜 안 오냐? 지금 밤이 늦었는데…… 암흑 속으로, 깊고 어두운 틈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뒤늦게 일어난 동창이 낸시를 한인 병원에 데려갔다. 낸시는 다음날 밤에야 정신이 돌아왔다. 의사는 고열과 스트레스로 인한 일과성 완전기억상실 증상으로 진단했다. 선행기억과 역행기억을 상실하는 증상으로…… 최근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고 과거의 일만 기억합니다…… 보통 24시간 안에 회복하고 재발율도 낮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고요…… 술 담배 안 하시죠? 스트레스 받지 마시고 운동 열심히 하시고…… 집에 오는 길에 동창은 낸시에게 당신은 의료보험이 안 되기 때문에 병원비가 비싸다고 말했다. 여기는 한국이랑 달라, 아프면 그냥 죽어야 된다고.

낸시는 회복했지만 두려움은 떠나지 않았다. 답답하지만 견딜 만했던 애틀랜타 생활은 모래성 무너지듯 무너졌다. 더 있다간 정말로 정신이 나갈지도 몰랐다. 동창에겐 애저녁에 정이 떨어졌다. 알고 보니 그에겐 여자가 있었다. 낸시가 알았던 모든 남자는 알고 보면 여자가 있었다. 아빠도 남편도 동창도, 아들도?

공항으로 가는 길에 노숙자에게 담배 한 보루를 쥐여주며 떠나게 됐다고 말했다. 마지막을 직감한 그는 똑바른 자세로 경례를 했다. 매앰, 위 얼 세임 레이스. 아이 노우 댓. 낸시는 돈 한 푼 없이 애틀랜타를 떠나 아들의 집으로 들어왔다.

 

일주일이 지났다. 아무 일도 없다면 아무 일도 없는 시간, 애틀랜타에서 김포로 오고 난 뒤 이어진 시간들처럼 반복적이고 무료하고 망각하는 시간들이었다. 아들의 식사를 준비하고, 집안일을 하고, TV를 보고, 유튜브를 보고, 집안의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그게 문제였다. 예전과 같지만 다른 것이 하나 있다면 집에 누가 있고 그것과 대화를 나누는 기분이 든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실제로 말을 하진 않지만, 어쩐지 그런 기분이었다. 아들이 집을 비우면 형광등은 이상할 정도로 밝게 빛났다. 해가 잘 안 드는 집안의 내부를 가득히 채우는 희고 따뜻한 빛이었다. 가끔은 지 멋대로 헤어드라이기가 켜지고 전기포트가 끓고 진공청소기가 울었다. 낸시는 한낮처럼 환한 식탁에 앉아 켜졌다 꺼졌다 하는 전자 기기들의 소음을 들었다. 이상하게 편안했다. 그 소리들은 음악 같았고 울음 같았고 언어가 통하지 않는 나라에서 낸시가 했던 말처럼 들렸다.

형광등의 수명은 심각할 정도로 짧아졌다. 적어도 6개월에서 1년은 갔는데 이제는 반나절 만에 거뭇하게 그을었다. 낸시는 마트에서 그녀가 옮길 수 있을 만큼 많은 형광등을 샀다. 점원이 수상하게 여길까봐 잔뜩 긴장했다. 점원은 움츠러든 낸시를 보며 말했다. 적립은요? 적립? 적립해야지. 010……

 

낸시는 그것에 대해 아들에게 말하려다 그만뒀다. 아들이 미친 사람 취급할까 두려웠다. 두렵다. 아니, 두렵다기보다 억울했다. 나는 정상이다. 정상…… 정상인가? 낸시는 선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럴 때 기댈 수 있는 사람이 선자밖에 없다는 게 억울했다. 평생 열심히 살아온 대가가 이거라니. 수십 년 단골인 마트에 적립을 하나도 안 한 것 같은, 그런 기분이었다.

아들은 여전히 바빴다. 원래도 바빴지만 지진 이후로는 오지게 바빴다. 아들은 집에 변화가 있는지도 몰랐다. 벽에 금이 간 것도 모르고 깨져나간 화분과 액자가 있는지도 모르고, 불이 껌벅이고 형광등이 수십 개 쌓여 있어도 몰랐다. 원래가, 그랬다. 냉장고 문을 열고 코앞에 우유가 있어도 엄마 우유 어딨어, 하는 아들이었다. 오늘도 그랬다. 낸시는 소리쳤다. 거기 있잖아. 아니 이거 말고 오트 밀크. 오트 밀크? 전에 사두라고 했는데…… 락토프리 말하는 거가? 락토프리 거기 있는데. 그거 말고. 아들이 인상을 찌푸렸다. 아, 됐어. 나 그냥 출근할게.

낸시는 락토프리 우유를 식탁에 꺼내놓고 핸드폰으로 오트 밀크를 검색했다. 오트…… 밀크는 또 뭔가. 어릴 땐 하루에 우유를 1리터씩 먹던 새끼가 갑자기 저지방 우유를 먹어야 된다고 하더니 얼마 전에는 락토프리로 바꾸고 이젠 또……

낸시는 선자에게 오는 길에 우유 좀 사오라고 카톡을 보냈다. 락토프리 말고 오트…… 밀크로.

 

넌 오트 밀크도 모르니?

선자가 편의점에서 사온 오트 밀크를 식탁에 탁 올렸다. 너 잘났다, 이년아. 지금은 다소 맛이 갔지만 선자는 고등학교 땐 수재 소리를 들었다. 학년에서 이화여대에 간 유일한 애였다. 책도 읽고, 책도 아주 요상한 것들을 읽었다. 하이젠베르크니 슈뢰딩거니 하는 물리학자가 나오는 책이었다. 낸시는 물리와 수학이라면 치를 떨었다. 그래도 국어와 세계사는 자신 있었는데, 이젠 모두 잊었다. 기억이 나질 않고, 기억했던 게 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평균 수명이 85세라는데, 아직 살날이 10년 넘게 남았는데, 너무 많은 것들이 막막하고 아득했다.

날이 좋았다. 바람이 산만한 봄날을 지나 여름이 왔고 정오의 태양 아래 우거진 나무들이 생명력을 드러냈다. 귀신, 이야기를 하기엔 적당하지 않은 날이었다. 선자는 귀신이 아니라고 말했지만. 귀신이 어딨어, 너는 그런 걸 믿니. 선자는 그것을 스트레인저, 라고 불렀다. 그녀가 학부 시절부터 탐독한 책 『플랫랜드』에 나오는 인물이란다. 아니, 인물이라는 말은 정확하지 않다. 그건 구였다. 그러니까 동그라미, 각이라고는 전혀 없는 완벽한 형태의 구. 플랫랜드는 2차원 공간이지만 구는 3차원에서 온 존재였다. 구는 플랫랜드에 사는 스퀘어씨에게 우주에는 평면뿐만 아니라 입체도 있다는 사실을 깨우쳐준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낸시는 선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게 한국말인가 싶었다. 그러니까, 동글뱅이가 우리 집에 있다는 거냐? 너희 집에도? 너는 정말 미친 거냐? 아니면 내가 미쳤든지…… 아니, 아니. 들어봐. 선자는 『플랫랜드』의 스트레인저는 은유라고 말했다. 다른 차원에서 온 존재를 얘기하려고 예를 든 거야. 우주엔 우리가 사는 곳 말고 더 많은 차원이 존재해. 여분의 차원이 두루마리 휴지처럼 말려 있는 형태로…… 4차원, 5차원, 6차원, 7차원…… 두루마리 휴지가 풀려나가듯 선자의 이야기가 이어졌다. 더 높은 차원의 존재가 낮은 차원으로 오면 정보가 손실되고…… 우리의 그림자가 우리의 몸과 달리 2차원인 것처럼…… 전하를 띤 파동의 형태로……

초점을 잃은 낸시의 눈이 서서히 감기는 걸 본 선자가 말을 멈췄다. 야, 됐다 어려운 얘기 다 관두고. 내가 노인정에서 알아봤는데 집에 스트레인저가 나타난 노인이 한둘이 아니래.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에 낸시의 눈이 번쩍 뜨였다. 지진 이후로 그것들이 찾아왔단다. 일어나는 현상은 조금씩 다르지만, 다들 집안의 전자 기기가 살아 움직이는 체험을 했다. 선자는 경험자들이 유튜브에 남긴 영상과 이 현상을 설명하는 채널을 보여줬다. 아주 유명한 과학자 출신 역술인이 운영하는 채널이었다. 역술인 출신 과학자였나? 아무튼…… 그에 따르면 지진은 어느 연구소에서 여분 차원의 입자를 찾기 위해 진행한 실험 때문에 일어났다. 그때 갈라진 틈을 통해, 다른 차원의 존재들이, 우리가 사는 세계로, 넘어왔고,

낸시의 시선이 벽의 갈라진 틈으로 향했다. 선자의 시선도. 낸시가 침을 꿀꺽 삼켰다. 사이비 신도, 라도 된 기분이었다. 다른 차원의 존재……가 이 세상으로 넘어왔다고? 그게 과학적으로 말이 되나? 아들이 연구소에서 일한다고 하지 않았어? 선자가 물었다. 거기가…… 거긴가? 모르지. 그런 건 기밀이거든. 선자가 검지를 입술에 갖다댔다. 아들한텐 비밀로 해.

 

완전히 뭔가에 홀린 것 같고, 믿기지 않는다. 낸시는 인생이라는 것이 참말로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식으로 이상할 거라곤 생각 못했지만…… 이런 식이면 또 어떤가. 그러려니 할 수밖에 없다. 이상하게 무섭지가 않았다. 형광등을 하루 두 번씩 갈아주면서, 자기 마음대로 TV 채널을 돌리는 스트레…… 그것을 돌보는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스트레……가 아들에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뭐든 다 아는 척하는 아들이지만, 이건 모르지 요놈아, 같은 심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