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회

한낮의 악령(마지막)

비가 오는 초여름 밤, 눅눅하고 비린 풀냄새가 거리에 진동했다. 고깃집에는 손님이 꽤 많았다. 사장은 초저녁부터 친구들과 테이블을 차지하고 소주를 마셨다. 모두, 노년의 남성들이었다. 한때 어느 지역에서 어느 정도 잘 나갔다고, 주장하는 할배들. 사장은 이름만 말하면 다들 슬슬 피하는 전국구 건달이었단다. 어쩐지…… 말이 많았다. 말이 많고 목소리가 크고. 낸시의 고향에서도 건달이라고 하는 남자들은 다들 말이 많았다. 건달은 입으로 하는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저렇게 말이 많을 수가 없다.

차오령이 주방과 홀에서 일당백으로 일하는 동안 낸시는 정신을 빼놓고 있었다. 선자와 나눈 얘기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스트레인저와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선자는 말했다. 핸드폰을 충전기에 꽂고 전원을 꺼둔 상태로 기다리면, 스트레인저가 말을 건다고 했다. 다른 차원에서 걸려온 전화처럼, 검은 액정에 빗물이 떨어지듯 파동이 일어나며 모습을 드러낸다고 했다.

어지간히…… 그러겠다. 낸시는 선자의 말을 무시했지만,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그사이 사장이 소주를 가지고 오라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 낸시는 듣지 못했다. 때마침 차오령이 사장 뒤를 지났다. 사장이 소주! 외쳤지만 일에 쫓기는 차오령은 무시하고 걸음을 옮겼다. 화가 난 사장이 손을 뻗어 차오령을 잡아챘다.

기우뚱, 차오령이 넘어지고 쇠그릇이 바닥이 떨어지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차오령은 발목을 잡고 일어나지 못했다. 낸시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뛰어왔다. 사장은 직접 소주를 꺼내오며, 씩씩댔다. 존말 할 때 꺼내오지.

 

차오령은 발목이 부러졌고 구급차에 실려갔다. 병원에서 연락을 받은 사장은 산재는커녕 병원비도 못 내준다고 소리를 질렀다. 보험은 무슨 보험, 내가 호구로 보이나? 요즘 일하는 것들은 책임감이 없어, 소상공인 등골이나 빼먹으려고!

미친놈, 씨발놈. 낸시가 차오령과 통화를 하며 사장 욕을 있는 대로 했다. 욕이, 전국구 건달처럼 쏟아져나왔다. 반면 차오령은 침착했다. 언니 괜찮아. 아들한테 연락했으니까 걱정 마. 나 없어서 많이 바쁘지? 미안해. 마감하고 나왔어야 되는데. 미안하긴 니가 왜 미안해. 화가 난 낸시가 소리쳤다. 내가 미안하지, 내가.

일을 끝낸 낸시는 여전히 친구들과 술을 마시는 사장에게 병원비를 요구했다. 사장은 딴청을 피웠다. 그는 조선족인 차오령에게 하는 것과 달리 낸시에겐 쉽게 하대를 못했다. 집요하게 구는 낸시에게 사장은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퇴근하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말끝에 흘리듯 덧붙였다. 거 아줌마도 됐으니까 다음주부턴 나오지 마세요. 낸시는 뭐라 대꾸하지 않고 고깃집을 나섰다. 사장이 뒤에서 떠드는 얘기가 어렴풋이 들렸다. 저것들끼리 농땡이나 피우고 말이야, 안 그래도 자르려고 했어……

 

주말 알바지만 몇 년을 일했다. 낸시는 수많은 직업을 전전했다. 젊을 때는 보험을 팔며 회사 비슷한 곳을 다녔지만 대부분의 직업이 서비스업이었고 비정규직이었다. 그래도, 그래도 몇 년 씩은 일했다. 특별한 사정이 있지 않는 이상, 오래, 누구보다 성실히 일했다. 하지만 언제 퇴직금 한번 받아본 적이 없다. 보험 하나 들어준 놈이 없다. 그러면서도 사장들은 자기들 때문에 먹고사니 고마워하라고, 사정이 여의치 않아 못 챙겨주는 거지 때가 되면 책임질 거라고 말했다. 그놈의 때, 언제 오나? 책임은 누가 지나? 아무도 남의 인생을 책임져주지 않았다. 낸시는 알고 있었고 누가 그러길 바라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정말 이래도 되는 걸까? 똑똑하게 살지 못한 내가 바보고 차오령이 바보고 선자가 바보다. 자식새끼들은 그러지 않아야 할 텐데, 우리처럼 어리석게 당하지 않아야 할 텐데…… 그놈의 새끼들은 지가 잘나고 똑똑한 줄 알지만 그것도 한때다. 세상은 혼자 멀찌감치 앞서 나간다. 오트… 밀크처럼 우유도 아닌 것이 우유 행세를 하는 것이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버림받는다. 그런 것이다.

비가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낸시는 버스정류장에서 막차를 기다렸다. 적막한 정류장에 사내 하나가 비를 피해 들어왔다. 어디선 본 듯한데…… 고깃집에서 사장과 같은 테이블에 있던 사내다. 낸시와 비슷한 연배의, 비를 맞아 꼴이 좀 그렇지만 그래도 허우대가 좋은 사내다. 쭈뼛쭈뼛하더니 낸시 곁으로 다가왔다. 저기, 얘기 좀 합시다. 무슨 얘기요? 뭐, 그…… 안타깝게 됐는데, 내 친구기도 하고 잘 얘기하면 또 잘 풀릴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사내가 뭘 원하는 건지 알 수 없다. 됐거든요. 낸시가 거리를 뒀다. 사내가 다시 슬쩍 다가왔다. 어디…… 조용한 데 가서 얘기도 좀 하고 그러자니까. 가까이서 본 사내의 눈이 풀려 있었다. 소름이 쫙 돋았다.

마침 버스가 도착했다. 낸시는 얼른 올라탔다. 사내도 올라탔다. 사내가 앞쪽에 앉은 낸시를 지나 버스 맨 뒷좌석에 앉았다. 그는 낸시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설마…… 낸시는 도리질을 쳤다. 내 나이가 몇인데…… 아무리 술에 취해도 저런 미친놈이.

낸시가 버스에서 내리자 사내도 따라 내렸다. 낸시는 잰걸음으로 걸으며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들은 받지 않았다. 오늘도 회사에서 밤을 새운다고 했지. 사내는 거리를 두고 낸시를 계속 쫓아왔다.

희뿌연 물안개 속에서 집이 모습을 드러냈다. 연고도 없고 와본 적도 없는 김포시 구석에서 아들과 함께 산 지 벌써 수년이 지났지만, 아직 골목도 집도 어색하게 느껴졌다. 아들은 엄마랑 같이 산다고 회사에서 멀지 않은 곳의 구옥을 샀다. 낸시는 그냥 편한 아파트에 살고 싶었는데 속도 모르는 아들놈은 고향 생각나고 좋지? 하며 구옥을 샀다. 고향은 무슨, 가본 적도 없는 놈이.

그렇지만 지금은 집이 보이는 것이 어느 때보다 마음을 안심시켰다. 사내는 몇 발짝 거리에서 계속 낸시를 따라오고 있었다. 집에 들어가면 포기하겠지. 설마…… 집 앞에 이르자 사내의 걸음이 빨라지고 낸시의 걸음도 빨라졌다. 낸시가 바깥문을 열고 들어가기 무섭게 사내가 발을 문틈 사이로 넣었다. 미쳤나 진짜? 얘기 좀 하자고…… 그때 팍 하고, 바깥 현관 등이 터졌다. 사내가 움찔하는 틈을 타 낸시가 얼른 집으로 들어갔다. 잠시 망설이던 사내가 문고리를 잡고 소리쳤다. 잠깐만, 화장실이 급해서 그러는데 화장실만 좀 쓰게 해줘요. 낸시가 경찰에 신고를 하려다 사내의 말을 듣고 멈칫했다. 진짜, 나 나쁜 사람 아니라니까. 사장한테 물어봐요. 내가, 여의도에 아파트도 있고, 군인 출신이라 연금도 잘 나오고. 와이프랑 사별해서 외롭고 그래서 그냥 그쪽 보니까 옛날 생각도 나고, 옛 이야기도 하고 싶어서 그런 거라니까. 진짜 화장실만 쓰고 갈 거죠? 아, 속고만 살았나. 낸시는 경찰에 신고하길 포기하고 핸드폰 전원을 껐다. 그리고 충전기에 핸드폰을 연결했다. 진짜, 화장실만 쓸게. 여기서 집까지 가려면 한참이야.

낸시가 문을 열어줬다. 사내가 유들유들하게 웃으며 안으로 들어왔다. 아유, 집 좋네. 아들 오니까 얼른 화장실만 쓰고 가세요. 아니, 손님이 왔는데 뭐 과일 같은 것도 좀 내오고 그래야 되는 거 아니야? 낸시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이 사람이 진짜…

야이 씨발놈아.

갑작스러운 욕에 사내도 낸시도 흠칫한다. 누구야? 사내가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핀다. 아무도 없다. 남자도 여자도 아닌, 남자도 여자도 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밋밋하고 건조한 목소리가 또박또박 말한다.

야이 씨발놈아.

사내가 낸시를 쳐다본다. 지금 나 놀리는 거지? 당신 복화술해? 낸시가 고개를 흔든다. 사내가 낸시를 움켜잡으려 다가오고 낸시가 몸을 웅크린다. 그때 형광등이 눈이 멀 것처럼 환히 빛나더니 비명을 지르며 폭발한다. 유리 파편이 의지를 가진 것처럼 사내에게 쏟아져내린다. 낸시는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

 

전기세가 터무니없이 많이 나왔다.

사건이 있은 후 일주일이 지났다. 경찰은 낸시의 증언대로 사건을 처리했다. 사내는 죽진 않았지만 얼굴과 목에 지워지지 않는 흉터가 남았다. 그의 증언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저 여자가 복화술로 나를 위협하더니 형광등을 터뜨려서 나를 죽이려고…… 네, 네. 선생님 그러니까 형광등을 어떻게 터뜨렸다는 걸까요? 야이 시발놈아! 하니까 팡…… 하고 형광등이…… 유리가 나한테 팍 하면서…… 네, 네……

하마터면 엄마가 봉변을 당할 뻔했다고 아들은 길길이 뛰었다. 세콤을 설치해야겠어, 아니면 아파트로 이사갈까, 경비실 있는. 낸시는 그럴 필요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그것보다는 이젠 제때 들어와서 저녁도 좀 먹고 해라. 생활비도 더 주고. 세금이 많이 올랐어. 낸시는 전기세 용지를 슬그머니 감추며 말했다. 많이 나와도 너무 많이 나왔으니 아들이 알면 이상하게 생각할지도 몰랐다. 알겠어, 엄마. 근데…… 아들이 집 거실에서 단둘이 대화를 나누는데도 목소리를 낮춰 속삭이듯 말했다. 혹시 집에 이상한 일 없어?

없는데.

뭐 있잖아, 갑자기 TV가 켜진다든가, 밥솥이 말을 한다든가……

밥솥이 말을 해? 그게 과학적으로 말이 되니?

안 되지, 그치. 근데 혹시 그 비슷한 일이라도 있으면 얘기해줘.

아들은 연구소 일 때문에 물어보는 거라고 얘기하고는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지 방 불도 안 끄고 훌렁 출근한다. 낸시는 아들을 보내고 한낮인데도 환하게 켜놓은 부엌 불 아래에서 두릅전을 준비한다. 이번 계절 마지막 두릅이다. 오후에 차오령과 선자가 집에 놀러오기로 했다. 두릅의 갓 부분을 벗겨내고 끝부분을 잘라낸다. 가시를 긁어내고 굵은 줄기에 칼집을 낸다. 소금 푼 뜨거운 물에 살짝 데치고 튀김가루를 묻혀 굽기 시작한다. 아들에게 카톡이 온다. 생각해보니 이참에 안전하고 오래가는 LED 등으로 바꿔야겠어, 아니면 디자이너 브랜드의 조명을 사서 유럽처럼 부분 조명을 하자고. 하지만 낸시는 지금이 편안하다. 이 빛 속에는 니가 모르는 것이 있다. 그게 뭔지는 나도 모르지만, 낸시는 알고 있다. 누가 있다는 사실을. 낸시가 직접 답장을 하지 않아도, 핸드폰이 저절로 답장을 보내니까. 지금으로 충분하다고, 지금이 내가 딱 원하는 밝기라고.